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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에도 한수영은 도서관에 왔다.

전날에 빌린 책 3권을 품에 안은채로.


"반납 좀."


그녀는 데스크 위에 책을 던지듯이 놓았다.

김독자는 그런 한수영을 곁눈질로 째려보다가 곧 반납 처리를 하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한수영은 그런 김독자의 얼굴을 보다가, 김독자가 읽고 있는 책의 표지로 시선을 옮겼다.


"그 책. 무슨 내용이야?"


김독자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로맨스 소설인데, 한순간에 사랑에 빠진 사람의 마음을 표현했지. 그래서 제목도 분홍 폭포수고."


호오, 소리를 내며 한수영은 다시 물었다.


"소설 좀 읽을 줄 아나봐? 재미는 있고?"


김독자는 인상을 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수영은 어제처럼 짧게 웃더니 잠시 뒤에 보자며 도서관을 나갔다.

김독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책에 집중했다.

.

.

.

탁.

얇은 종이 표지가 닫히는 소리와 함께 김독자는 기지개를 켰다.


"와, 글 진짜 잘 쓰네. 이 작가 다른 작품은 없나."


「분홍 폭포수」 글 S0


웹소설 작가 같은 필명이었지만 나름대로 심플하고 좋다고 김독자는 생각했다.

책의 원래 자리를 찾아준 후 그도 데스크로 돌아와 책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S0 작가의 다른 작품은 검색되지 않았다.

김독자는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셨다.

도서관 문이 열렸다.


"사서 쌤, 오셨어요?"


"아직 하교 안 했구나? 잘됐다. 소개해 줄 사람이 있어."


"누군데요?"


"새로운 도서부원. 인사해."


김독자는 순간 자신의 인생은 진부한 클리셰의 연속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사서 선생님의 등 뒤에서 튀어나온 한수영을 바라보았다.


"이름은 한수영이고 1학년 4반. 도서부원 독자 너 혼자였는데 수고 좀 덜겠다. 앞으로 사이좋게 지내고 선배인 너가 잘 챙겨주렴. 알겠지?"


김독자는 얼빠진 얼굴로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한수영은 장난스러운 얼굴로 김독자 앞에 섰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선배."


"인사성도 좋아서 참 마음에 드네. 나 먼저 퇴근할테니까 원래 하던대로 문 잠그고 키 교무실에 두고 가라. 내일 보자."


"내일 뵙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도서관 문이 닫히고 김독자와 한수영만이 남아있었다.

한동안 멍하니 있던 김독자는 금세 정신을 차리고 한수영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 갑자기 도서부에는 왜 들어온거야?"


"나 책 좋아해서. 1학년 동아리 선택 기간인데 제대로 된 동아리가 여기 밖에 없어 보이기도 했고."


"나 동아리 홍보도 안 했는데. 그리고 제대로 된 동아리가 왜 없어. 경제/경영 동아리 좋은데."


"그럼 넌 거기나 들어가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냐?"


"나도 책 좋아하니까. 아니 근데 아까 쌤 앞에서는 존댓말 쓰더니 지금은 왜 또 반말이야?"


"그거야 선생님 앞이니까? 겨우 한 살 차이 난다고 유세는."


김독자는 한수영을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어쨌든 도서부의 하나 밖에 없는 후배이기 때문에 참기로 했다.


"그 싸가지없는 태도, 나한테는 그렇게 해도 되는데 도서관 오는 학생들한테도 그러면 쌤한테 말씀드려서 짜를거야."


"그러든가."


한수영은 관심없다는 얼굴로 데스크 위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열심히 액정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데스크에서 안 내려와?"


한수영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하아- 한숨을 내쉬고 김독자는 자리에 앉았다.


'나도 모르겠다... 저 싸가지를 어떻게 하지?'


띵-


김독자의 핸드폰이 울렸다.


[새 메시지 : 상아 선배]


김독자의 얼굴이 밝아졌다.


[독자야 도서부 몇 명 들어왔어? 우리 동아리 지원자 너무 많아서 면접 봐야될 수준이야😭]


[또 면접 질문 준비하신다고 밤새시는거 아니죠?]


[이번엔 진짜 그래야 될 것 같아 ㅠㅠ]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너는 도서부 관리해야지 ㅎㅎ 여유있는거 보면 몇 명 안 들어왔나봐?]


[딱 한 명이요. 원래 도서부는 인기 없잖아요.]


[독자가 부장인데 어떻게 인기가 없을 수가 있지🤔]


[제가 부장이라서 인기가 없는거 아닐까요?]


[그건 아니지 ㅋㅋㅋ 나 수업 시작한다. 이따 다시 톡할게.]


[화이팅!]


김독자가 보낸 마지막 메시지의 1 표시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 짝사랑하는 선배?"


어느샌가 김독자 뒤에 서있던 한수영이 휘파람을 불었다.

김독자는 황급히 핸드폰을 덮고 한수영을 노려보았다.


"너.... 다 봤냐?"


"봤지. 누구야? 예뻐?"


"남의 사생활 훔쳐보니까 재밌냐?"


"원래 남의 연애 얘기가 제일 재밌는 법이지."


김독자는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입 교육 해줄거니까 따라와."


"그거 필요없는데."


"뭐?"


김독자는 슬슬 한수영의 싸가지에 폭발할 것 같았다.


"필요 없다고. 나 중학생 때도 도서부 해서 다 알아."


"중학교랑 고등학교랑 같냐?"


"오히려 고등학교 시스템이 더 쉽더라고."


"그럼 해봐. 니 책 니가 직접 대출해보라고."


한수영은 날렵하게 책 세 권을 가지고 와 자신의 정보를 띄워놓고 바코드를 찍었다.

이 모든 행동이 20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확실히, 김독자보다 빨랐다.


"봤지? 쉽다고 했잖아."


김독자는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 교육은 안 해도 되겠고... 그럼 집 가면 되겠네. 나가자."


한수영은 책을 들고 도서관 밖으로 나갔다.

김독자는 도서관의 불을 끄고, 문을 잠그고, 키를 교무실에 가져다놓았다.

한수영은 어느샌가 사라져있었다.

김독자는 집으로 가려다가, 걸음을 돌려 어디론가 향했다.

.

.

.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고 학생들이 무리지어 나왔다.

그 중심에는 유상아가 서있었다.


"유상아 내일 봐!"


"내일 보자~"


친구들과 헤어지며 등을 돌리는 유상아 앞으로 누군가가 다가섰다.

김독자였다.


"선배, 집 가요?"


"독자야! 여긴 어쩐 일로 왔어?"


"여기 옆 건물에 친구 학원 있어서 만나고 나오다가 선배 보여서요."


물론 김독자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김독자는 친구가 없다.


"그래? 난 스터디카페 갔다가 집 가려고."


"선배 스터디카페 어디 다녀요?"


"저기 사거리 옆에 있어. 넌 원래 집에서 공부하지?"


"네. 근데 저녁은 안 드시게요?"


"그냥 편의점에서 빵으로 대충 때우려고. 혹시 너 배고프니? 뭐 좀 사줄까?"


"아니요. 저 이제 가야돼서. 내일 봬요 선배."


"그래 조심히 들어가! 내일 보자."


김독자는 애매하게 멀어보이지만 또한 살갑게 느껴지는 유상아에게 어떻게 말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순간 뒤돌아서 그녀를 다시 따라갈까 생각도 해봤지만, 이내 고개를 젓고 집으로 돌아왔다.

.

.

.

"다녀왔습니다."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조용한 집안.

김독자는 익숙한 듯 가방을 방 안에 던져놓고 옷을 벗었다.

씻고 나와 핸드폰을 확인하니 모르는 연락처로 메시지가 와있었다.


[나 한수영인데 이거 김독자 전번 맞음?]


김독자는 화면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싸가지 없는거 마음에 안 들어..."


혼자서 중얼거리던 그는 금세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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