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 혹시 천사이십니까? (4)
“형님.”
“음?”
“요즘 뭔가 이상하지 않으십니까?”
“어떤 게?”
“뭐 이것저것 말입니다. 당가의 분위기도 험악하고, 그 호탕하시던 장로님께서도 최근 따라 아주 사소한 행동에도 불같이 화를 내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침을 삼킨 무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가주님께서 모습을 보이시지 않은 것이 벌써 수 년이 지났습니다. 처소에 태상 장로님께서 들어갔다 나오시는 건 많이 보았습니다만, 항상 혼자 나오시는 걸 보면 분명히 무슨 일이 생긴게 아닐까 싶은······.”
곁에 서 있던 또다른 무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감히 장로님을 의심하는 것이냐? 그 어떠한 경우에서도 그분들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고 배웠거늘.”
“당연히 저도 그 사실은 압니다. 하지만······.”
무인이 머리를 긁적였다
“태상 장로님께 여쭤보았을 때도 아무런 말도 없이 무시무시한 기운만 풍기시고 가셨습니다. 항상 가문의 식솔들을 아끼시고 미소를 짓고 다니셨던 그분이 말입니다! 무언가 숨길 게 있는 것처럼!”
“······.”
“그것뿐만이겠습니까? 태상 장로님을 포함한 원로회에 계신 장로님들조차 무언갈 숨기고 계시는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런 무인의 호통에도, 형님이라고 불리는 남성은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네 마음은 확실히 이해한다. 나도 최근에는 그런 의문을 가지긴 했지.”
“역시! 형님도 그걸 아시는······.”
“하지만! 그건 의문으로 끝나야 할 뿐. 가문에 무슨 일이 있든지 간에, 그 일들은 오직 원로회와 가주님께서 결정할 일이다.”
“하지만 가주님은 형님의 아······.”
“거기까지 하여라. 다음에 한 번만이라도 더 그 말이 네 입에서 나온다면, 내 필히 그 죄를 물어 이곳에서ㅡ”
그때, 그의 말을 끊을 정도로 심각하게 큰 소리가 대문 밖으로 들려왔다.
“아니, 어떤 소가주라는 ■끼가 지 집도 못 찾아가! 애꿎은 코인만 날려 먹었네!”
“저, 저도 가문을 떠난지 5년이 족히 넘었는데 어떻게 기억합니까! 그것도 어렸을 때입니다, 어렸을 때!”
“겨우 이립정도 넘었다는 애가 어리다고 ■랄은, ■랄. 내가 너보다는 훨씬 더 오래 살았겠다!”
“허? 겉으로만 보면 나보다는 훨씬 더 어려 보이는데. ······잠깐. 그렇네? 나보단 훨씬 어려 보이네? 너 몇살이냐, 이 새끼······ 야악! 악! 미안합니다! 미안하다고! 말로 하면 되잖아!”
그리고······ 어딘가 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끼가 형님이라고 불러도 모자랄 판에 나이를 물어봐? 나이를? 오냐, 오늘 날 잡았다. 네가 죽어서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지만, 천국으로 오면 내 친히 두 팔을 벌려 널 맞이해주마, 이 새■야! 일로 안 와?”
비명소리와 알 수 없는 굉음이 들리는 대문 밖의 소리에 갑작스레 모인 당가의 식솔들은 천천히 대문을 열어보았다.
끼이익ㅡ
“형님. 저기 무슨 일이 생긴 거 같······.”
“안다. 내가 먼저 가보마.”
열린 대문으로 아까 전, 형님이라고 불렸던 한 무인이 근엄한 자세로 멱살을 잡고 싸우는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궁금해서 물어본 거라고, 궁금해서!”
“궁금하다는 애가 ■끼라고 하냐? 이 ■끼야?”
“근데 나보다 어려 보이는 건 맞잖아, 개새······. 어?”
“왜?”
“뒤에 누가 있는데요?”
“말 돌리냐? 어떤 미친■이 내 뒤를 노려?”
“아니, 누가 노린다고 했습니까? 진짜 누가 있다고요!”
“없기만 해봐. 아주 그냥 그 잘난 장포란 장포는 다 찢어서 내 방에다가 전시해둘······.”
텁.
“······진짜로 있네.”
당가의 사람들은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무림계에는 강하고도 강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만큼이나 이상한 사람들이 섞여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어떤 미친 작자라도 그 유명한 사천당가 앞에서는 숨을 죽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이 보고 있는 이 장면은 무엇이냐는 말이다.
“하, 하하! 이거 참 실례가 되었네요. 그럼 저희는 이만······.”
“괜찮소. 소협들은 아직 강호가 어떤지 몰라 무례를 범한 모양이니, 어찌 선배로서 그 행동에 나무랄 수 있겠소?”
잠시 말을 끊고 헛기침을 한 무인이 부드럽지만 위엄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대들의 이름을 물어도 되겠소?”
무인의 질문에 두 사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새끼 누굽니까?’
‘내가 알겠냐? 보나 마나 독쟁이 ■끼인 거 같은데.’
‘예? 얘가 당가라고요? 아무리 봐도 처음 보는 얼굴인······.“
‘에이, 저기 봐라. 네가 입고 있는 장포랑 비슷하네. 거기다가 얼굴이랑 머리를 꾸민 것까지 비슷······ 어?’
저게 똑같으면 안되는 건데?
하라는 대답은 안하고 오히려 무인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두 사람 덕에, 낮게 웃은 무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수줍음을 많이 타시는 모양인가? 그러면 이쪽이 먼저 말하겠소. 소인은 당호엽(當豪曄)이라고 하오. 이곳 사천당가의 소가주이지.”
미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봐봐. 무려 이 사천당가의 소가주라고 하신단다. 소가주였던 네가 그걸 모르면 도대체 어쩌자······. 에? 잠깐, 그쪽이 소가주라고?”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지은 미카엘이 당호엽을 바라보았다.
“니 ■끼. 소가주가 아니었던 거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 소가주입니다, 소가주! 그냥 오래전에 집을 나간 거뿐이지!”
하지만 놀란 것은 당호엽뿐만이 아니었다.
“저거······ 소가주님 아니신가?”
“맞는 거 같은데?”
“그러면 여기에 서 있는건?”
“당연히 형님······ 어라?”
그들이 당황한 이유는 단 하나.
저쪽에 서 있는 당호엽과, 그들 앞에 서 있는 당호엽의 모습이 똑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들이 입고 있는 장포를 제외하고 말이다. 저 금발 머리와 함께 서 있는 당호엽의 장포가 훨씬 더 비싸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그래서, 그쪽은 누구인지?”
얼떨결에 포권을 취한 당호엽이 입을 열었다.
“그······ 본인도 사천당가의 소가주, 당호엽이라고 합니다.”
“음. 당호엽이라. 참으로 멋있는 이름······ 잠깐, 뭐라고? 지금 나를 놀리는 건가?”
“오히려 내가 물어야 할 판입니다! 도대체 그쪽이 왜 당호엽입니까! 아무리 봐도 다른데!”
그 말에 미카엘이 의문을 표했다.
“다른 거 같냐, 아자젤?”
“아니요. 아무리 봐도 똑같아요. 잔털 하나까지.”
“그렇지?”
너만 다르게 생각하는 거 같은데, 호엽아?
봐봐. 저기 식솔분들도 널 이상하게 쳐다보잖아.
“아니, 보십쇼! 어느게 더 당호엽 같아 보입니까? 딱봐도 저 아닙니까?”
“글쎄······.”
번쩍.
“에? 미카엘님? 놓아주ㅡ”
아자젤을 슬쩍 든 미카엘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식솔들 사이에 위치하고 자신의 앞에 있는 이를 가리켰다.
“이 사람이 당호엽 아닐까?”
“아니, 이 새끼가?”
“어어? ■끼? 이야, 저거 아무리 봐도 가짜네.”
당호엽이 진짜로 어이없는 표정을 짓다가,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더니 아무도 없는 것을 발견하고는 분하다는 듯 부들부들 거렸다. 꼭 필요할 때만 그의 편은 없었다. 항상. 억울함에 울분을 토하며 당호엽이 미카엘을 향해 소리쳤다.
“아니, 도대체 뭘 해달라는 겁니까! 뭐를!”
“흐으음. 글쎄에?”
“끄으으으응.”
당호엽은 자신이 한 말을 후회했다. 괜히 물어봤다. 이미 알고 있는 답을 미친 작자에게 물어봤자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저 소협의 표정만 봐도 딱 안다. ‘나를 좀 더 우대해줘야 할텐데?’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 이번 일로 확실하게 서열을 정하겠다는 의미였다.
‘진짜로······.’
진짜로 하기 싫은데.
저 말은 곧 ‘자신을 형님으로 대하라’라는 말과 같다. 당가가 자신보다 선배를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낄낄낄.”
저거 보라고. 저거! 아무리 봐도 악마 같은데! 사람에게 시킬 일이 있고, 시키지 않을 일이 있지!
‘진짜 죽어도 안 한다! 내가 자존심이 있지!’
결심을 한 듯한 당호엽의 표정을 바라보던 미카엘이 안타깝다는 듯 혀를 쳐내며 천천히 검을 꺼내들었다.
“쯧. 진짜 호엽아. 저거 가짜 호엽이다. 내가 도와줄 테니까, 당장 저 녀석의 모가지를 따버릴······.”
“아, 알았다고! 하면 될 거 아니야!”
부들거리는 당호엽이 침을 삼켰다. 그리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처, 처언.”
“그치 그치. 조금만 더.”
“처, 천사 형님······.”
미카엘이 만족스럽다는 듯 다시 아자젤을 들고 자리를 옮겼다.
“그래. 그래. 역시 우리 호엽이야. 천사라는 말을 쓸 줄도 알······.”
돌연, 움직임을 멈춘 미카엘과 아자젤은 말문이 막힌 채로 당호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너, 너 천사라는 거 어떻게 알았어?”
“그야, 당연히······.”
“이 대낮에 다들 무슨 짓거리들인가!”
순간, 뒤에서 엄청난 고함과 함께 호통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가인들은 순간적으로 고개를 숙이며 저도 모르게 외쳤다.
“태상 장로님을 뵙습니다!”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대문은 열지 말라고 했거늘! 감히 가문의 명을 어기겠다는 것인가?”
“아, 아닙니다. 태상 장로님!”
“그러면 도대체 누가 이 문을 열었단 말인가? 어서 나오지 못하겠는가!”
“저이옵니다.”
그 압박감에 모두가 눈을 피하고 있을 때, 한 이가 태상 장로의 앞으로 향하였다.
터벅. 터벅. 터벅.
탁!
깊게 포권을 한 당호엽이 고개를 숙인 채로 말했다.
“소가주인 제가 감히 태상 장로님의 명에 거역한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번 일만은 알아주셨으면 하옵니다.”
“무슨 일?”
당호엽이 손가락으로 또 다른 당호엽을 가리켰다.
“저 자가 자신이 소가주인 당호엽, 즉 저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당가를 욕보이는 일은 반드시 그 죗값을 치르라고 배웠던지라, 어쩔 수 없이 행하였다는 점. 이해해주시길 바라옵니다.”
“······너라고 주장하는 자가 있다고?”
“예.”
태상 장로가 미카엘과 투닥거리는 당호엽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하지만 바라보던 눈빛은 이내 심각한 눈빛을 나타냈다.
“지금이라도 명을 내려주신다면, 당장 저 자를······.”
“아니다.”
“······예?”
“저들을 안으로 모셔라.”
당호엽을 유심히 살펴보던 태상 장로는 서늘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누구도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낮게 말했다.
“······계획에 차질이 생긴 거 같군.”
*
사천당가라는 이름에 알맞게 대문을 들어서자 보이는 모습은 그 위엄을 톡톡히 보여주었다.
내로라하는 장인들을 독점하고 있다봐도 무방한 당가라는 말이 있듯이, 빼곡히 차있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전각들과 끊임없이 울리는 청아한 망치질 소리.
‘이정도면 에덴보다 좋은 거 같은데?’
그나마 미카엘이여서 이정도의 리액션을 보여준 것이지, 곁에 있던 아자젤은 열린 입을 닫을 줄 몰랐다.
“와아······.”
저거 전각 봐봐. 저게 다 금이고 돈이래. 저 전각 하나면 <에덴>에 있는 하급 천사가 몆 년을 더 살 수 있는데.
“미카엘님. 우리 저거 하나만 달라고 하면 안 되나요?”
“되겠냐?”
“하지만 저정도면 하나쯤······ 우와! 저거 봐요! 되게 색깔이 이쁜 연기에요!”
방방 뛰는 아자젤을 바라보며 미카엘이 피식 웃었다.
‘신났네. 신났어.’
지금 저 모습을 보면 며칠 전만해도 가기 싫다고 그 난리를 피우던 애가 맞나 싶다.
“어떻게 연기가 빨간색이지? 심지어 주머니에서 나오는데요?”
“이쁘긴 하지. 근데 그거 독연(毒煙)이다?”
마시면 너 훅 가. 그때는 메타트론이 아니라 루시퍼를 보게 될걸?
금방이라도 뛰쳐나가려는 아자젤을 붙잡은 미카엘이 당호엽을 향해 물었다.
“그것보다. 너는 우리가 천사인 걸 어떻게 알았는데?”
길을 인도하고 있던 당호엽이 한숨을 쉬었다.
“마차 안에서도 하급 천사니, 대천사니 뭐라고 하는데 어떻게 모르겠습니까. 거기다가 이 넓은 무림에서도 ‘미카엘'이라는 이국적이고 신성해 보이는 이름을 지닌 건 천사 형님밖에 없습니다.”
“난 너한테 이름을 알려준 적이 없는데?”
“아까 말하지 않았습니까?”
미카엘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무언갈 깨닫고는 아자젤을 바라보았다.
- 미카엘님. 저건 뭔가요?
- 같이 가요, 미카엘님!
“······아.”
“이제 아시겠습니까?”
머리카락을 휘저은 당호엽이 이어서 말했다.
“거기다가 천사라는 존재를 어떻게 알았냐고 묻지는 마십쇼.”
“안 물어봤는데?”
“아으. 이럴땐 그냥 물어달라는 거잖아!”
쓰으으읍!
후우.
분노를 삭이며 담뱃대를 입에다가 가져다 댄 당호엽이 독연을 힘차게 내뿜었다.
“어릴 때, 그니깐 이보다 한참 더 어릴 때 할아버지께서 스타 스트림을 돌아다니던 이야기를 말씀해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천사 관련된 이야기가 있었고요.”
“잠깐. 네 할아버지가 천사들을 본 적이 있다고?”
“예.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성운에도 들린 적이 있다고 하셨던 거 같습니다. 거기서 어떤 미친 천사도 본 적이 있다고 하셨고요. 오랜 친우였다고 했었나? 거기에 아버지께서도 그분을 본 적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뭐, 물론 그리 친한 건 아니셨지만요.”
미카엘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허탈하게 웃었다.
“어떤 천사가 미쳤다고 당가에 오고, 심지어 네 할아버지랑 놀고 먹으러 다니냐? 아무리 봐도 개연성이 없는 말인데.”
당호엽이 미카엘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면 천사 형님은 뭡니까.”
“······알 거 없다.”
[전용 스킬, ‘섭리를 거스른 자'가 실실 웃습니다.]
당호엽이 킥킥 하고 웃었다.
“뭐, 무튼 저는 형님의 정체를 밝히고 다닐 생각은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 당가에서 제 편은 천사 형님과 동료분 밖에 없거든요.”
말을 하는 당호엽에게는 아까 전 밝았던 모습과는 달리, 어딘가 측은해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당호엽은 고개를 돌려 자신과는 다른 당호엽과 함께 있는 당가의 식솔들을 바라보았다.
“아는 사람들이야?”
“예. 당연히요.”
‘잘 알고 있는 얼굴들이지.’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당엽, 당희, 당조, 당비호, 당잔······.
- 망할 당호엽 녀석. 또 뭐한다냐?
- 저런 녀석이 소가주라고? 당가도 이제 망하겠구먼.
물론 좋은 기억은 없다. 단 한 번도 말을 섞어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그를 피하기 바빴으니깐.
자신보다 강하다는 이유로, 가주에게 온갖 사랑을 받는다는 이유로.
그렇게 그는 철저하고도 완벽하게 배척당했다.
‘그래.’
그것이 그가 알고 있던 당가의 모습이자, 그들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도대체 왜······.
“형님. 이번에 장인들이 만든 비도 보셨습니까? 이번에는 특히 심혈을 기울여······.”
“소가주님! 소가주님을 위해 이번에 상단에서 구해온 영약입니다!”
“소가주님도 참. 그게 그렇게 쉽게 되면 제가 이러고 있겠습니까? 이번에는 기대하십쇼. 저도 봐드리지 않을 테니까.”
“······.”
다르다.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 선망의 눈빛. 모두의 기대를 받고 있는 눈빛.
그가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당가의 소가주였던 때에?
‘전혀.’
없다.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꽈악.
당호엽이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저 자리는 분명 그가 있어야할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 저 자리에 있는 당호엽은 누구란 말인가. 어째서 같은 이름을 가졌음에도 저렇게 대우가 다를 수 있는가.
사실은 그가 당호엽이 아니였던 것일까? 그저 이 모든 것이 그의 한낯 꿈이었을 뿐이고, 저 당호엽이라는 자가 진짜 소가주였던 것은······.
빠악!
“아악! 왜 때리십니까!”
“정신이나 차리고 말해라. 우리가 네 편이든 뭐든, 너부터 정신줄을 놓아버리면 모두 답이 없어.”
당호엽의 뒤통수를 한 대 후려갈긴 미카엘이 한숨을 쉬었다.
‘쟤는 정신력이 무슨 유중혁 급이야.’
딱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우울함과 무기력함이 대량 첨가된 저 표정 말이다. 차라리 유중혁만큼 강하기나 할 것이지. 그러면 도움이라도 될 텐데.
“똑바로 바라봐. 네가 추구한 길이고, 네가 만들어낸 길이니까.”
“······예.”
타다다다다닥!
시무룩해 하고 있는 당호엽에게, 한 작은 소년이 재빠른 발걸음으로 앞에 섰다.
“저 혹시 당호엽 소가주이십니까?”
당호엽은 잠시 멍하니 소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소년은 그 행동을 오해한 것인지, 급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저는 당소(當小)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태상 장로님께서 급히 찾으시는 바람에······.”
“태상 장로님이? 나를? 도대체 왜······. 저, 형님?”
번쩍.
미카엘이 갑작스럽게 당소를 들어 올렸다. 당소의 표정에선 당혹함 밖에는 찾아낼 수 없었다.
“저, 저기 누구십니까······?”
당소를 구석구석 살펴보던 미카엘이 표정을 찡그리고는 내려주었다.
‘나이는 대략 5살 혹은 10살 정도. 가주 직계는 아닌가 보고.’
살짝 아쉬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장로가 보냈다는 것은 생각보다 똘똘한 아이일 것이다. 크흠, 하며 목을 풀은 미카엘이 입을 열었다.
“네 소가주라는 사람의 손님. 그것보다 태상 장로쯤 되는 작자가 소가주를 왜 찾는데? 지가 오면 될 것을. 거기다 아까 보니깐 당가를 직접 컨트롤 하고 있는 거 같던데, 내가 알기로는 태상 장로는 가문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일은 없는 걸로 알거든?”
태상 장로쯤 되는 이라면 가문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표하기보다는 가주의 곁에서 조언가의 역할을 하거나 가끔씩 가문의 식솔들을 보살펴 주는 일을 한다. 태상 장로에게는 자리에 맞는 충만한 대우, 가주조차 존대를 해줄 정도의 대우가 주어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주보다 큰 가문의 권력이 주어지진 않는다.
그가 가장 의심스러웠던 부분은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 가주처럼, 심지어는 가주보다 더 많은 권력을 부리고 있는 듯 보였다는 것이다.
“그, 그게 가문의 법도상 일원이 아닌 분들께는 공개해 드리기 어려운 정보라······.”
미카엘이 당호엽을 빤히 바라보았다. 멍하니 담배를 피우고 있던 당호엽은 그 시선을 의식한 듯 낮은 눈빛으로 미카엘을 바라보았다.
“저한테 어쩌라는 겁니까. 법도가 그렇다는데.”
“넌 소가주잖아.”
“아무리 소가주여도 법도를 어길 수는 없습니다. 형님도 잘 아시는 거 아닙니까?”
계속되는 반문에 미카엘이 당호엽을 쏘아보자, 당호엽이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고는 당소에게 말했다.
“그냥 말해드려라. 어차피 어디가서 말할 사람도 아니니.”
“하, 하지만.”
귀찮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 당호엽이 당소를 쏘아보았다.
“내가 보증하마.”
“그렇다면······.”
마른 침을 삼킨 당소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제가 들은 바로는 가주님께서 모습을 안 보이신지 벌써 5년이 지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주기적으로 열리는 가문의 회의, 심지어는 원로회의까지도 참석하지 않으셨다고 하시고요.”
“그래서?”
“그래서······ 태상 장로님이 직접적으로 가주님의 자리를 대신 이행하고 계십니다. 동시에 원로회까지 관리하고 계시고요. 최근에는 가문의 봉쇄령까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원로회를 포함한 당가 내부에 큰 위협이 생겼으니 싹부터 잘라내야 하신다고 하셨죠. 그리고 그때부터 장로님께서 직접 가문의 통솔에 나서겠다고 공표하셨습니다.”
당호엽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형님. 이거······.”
“그래.”
너무나 빠르다.
당호엽이 당가에서 자리를 비운지 걸린 기간은 대략 잡아도 5년이다. 그 5년 만에 태상 장로는 당가를 제 손 아래에 두었다.
거기다가 당가의 식솔들은 당호엽이 사라졌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당호엽 그조차도 모르게 새로운 당호엽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주변을 잠시 두리번거린 미카엘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호엽 또한 재빨리 미카엘의 곁에 붙어 보폭을 맞추었다.
“어디 가십니까? 말도 없이.”
심각한 얼굴을 한 미카엘이 저 멀리에 위치한 가주의 처소, 지금은 태상 장로가 사용하고 있는 그 처소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그곳을 향해 걸어가면서도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끼며, 눈썹을 찡그렸다.
“이 일은 절대로 우연적인 일이 아니야.”
시간이 없다. 곧 있으면 가주의 호위대가 조용하게 그들에게 붙을 것이 분명했다. 아이를 보낸 것도 짧은 시간이나마 벌려고 보낸 것일 터. 조금이라도 늦는다면 그들의 행동이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 모두 감시 당할 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조금이나마 파악한 것인지, 곁에서 조용하게 움직이고 있던 당호엽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십니까?”
“내 예상이 맞다면······.”
미카엘이 자리에 멈추어 섰다. 그리고 싸한 기운과 함께 당호엽을 바라보며 무겁고도, 어두운 말을 꺼냈다.
“성운이 개입했어. 일반적인 곳도 아닌, 이 엄청난 속임수를 계획할 수 있을만한 규모의 성운이.”
올만에 복귀하면서 올려보는 글.
하두 오랜만에 쓰는 창작이라서 옛날이랑 개연성이나 설정이 잘 안 맞을 수도 있어. 양해 부탁해.
참고로, <화산귀환>의 '당보'라는 캐릭터와 '당호엽'이 비슷하게 보이는 거 같다면 정상이야. 솔직히 말하자면 같은 부류의 캐릭터를 만들어보고 싶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