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마구 돌아다니는 메뚜기들 때문에 난장판이 되었다.
대부분 나는 뒷전이고 메뚜기 잡기에 몰두했다.
몇몇 사람들은 날 치고 가며 "이따가 보자 시발련아."같은 협박을 했다.
무섭진 않았다.
거의 기어다니며 메뚜기를 찾아다녔다.
"찾았다!"
"내놔!"
뒤 돌은 상태였지만 소리만으로 난장판임을 알았다.
나는 내 눈앞에서 불길하게 몸을 푸는 김남운을 보았다.
김남운이 애매하고 섬득하게 미소를 지었다.
"왜 저런 짓을 한거야? 그냥 내주는게 나았을텐데."
나는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공격에 대비했다.
체력도, 체격도 밀리겠지만.
머리끈으로 대충 머리를 묶었다.
"열 두명이였거든."
"···응?"
그가 얼빠진 소리를 냈다.
멸살법에도 가끔 나오는 개그같아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채집망에는 겨우 세마리였고."
미소만 띄운 채 서 있었다.
김남운은 잠깐 얼이 나갔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12 대 3이라서 던졌다고?"
"응."
"지랄하네."
웃던 김남운이 정색했다.
그리고 다시 섬득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꼴을 보고 싶었던거잖아?"
잠깐이지만 이 놈한테 정상적인 사고를 기대한 나를 한심하게 생각한다.
멸살법의 김남운과 내 앞 김남운이 겹쳐지려한다.
[전용스킬, '등장인물 일람'이 발동합니다.]
이어서 제멋대로 창이 떴다.
내 특성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보고 있으려니 감이 잡혔다.
<인물 정보>
이름:김남운
나이:18세
배후성:없음(현재 두 개의 성좌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용 특성:중2병(일반)
전용스킬:[비 정상적인 적응력 Lv.3] [나이프 파이팅 Lv.1] [흑화 Lv.1]
종합 능력치: [체력 Lv.3] [근력 Lv4] [민첩 Lv.6] [마력 Lv.4]
종합 평가:특별한 계기를 맞아 흑화 한 중2병입니다. 엮기지 않는 것을 추천합니다.
멸살법에 등장한 대부분의 중2병은 바뀐 세상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래서 대부분 자살하거나 미쳐버렸다.
하지만 김남운은 달랐다.
망상악귀 김남운.
그런 이름으로 불리던 소년은 정상이 아니였다.
언제나 세상이 멸망하길 바랬고 꿈꿔왔고, 그랬기에 실제로 멸망하자 그 누구보다 빠르게 적응한 소년.
"나랑 팀 먹자."
그 소년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등장인물, '김남운'이 당신에게 호감을 표합니다.]
[등장인물, '김남운'에 대한 당신의 이해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저 손을 잡으면 난 살아남는다.
'그 자식'에게 죽을지 모르지만 일단은 살아남을 수 있다.
만약 내가 멸살법을 읽지 않았다면 저 손을 달려가서라도 잡았을 것이다.
"미안한데, 난 혼자가 좋아."
"그래? 안타깝네."
입맛을 다시던 김남운이 나에게 바짝 붙었다.
"그럼 좀 꺼져, 난 저 할망구한테 볼일있어."
반사적으로 시선이 뒤에 있는 노인에게 갔다.
겨우 숨을 뱉어내는 노인이다.
나는 눈동자를 굴려 김남운을 바라본 후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미안한 일이 또 생겼네, 못 비켜줄래."
[등장인물, '김남운'의 호감도가 하락합니다.]
"이제와서 정의의 사도 짓좀 해보려고?"
"글쎄."
김남운이 입꼬리를 씰룩거리다가 설마하며 말했다.
"그래서 저기로 던진거야?"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러자 김남운이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시발 어른이란 작자들은 다를게 없어."
[등장인물, '김남운'이 당신을 혐오합니다.]
누구에게 혐오당하는건 오랜만이네.
"꺼지라고!"
타이밍을 쟀다가 뒤로 살짝 허리를 뺐다.
그러자 허공을 가르는 주먹이 검은 궤적을 그렸다. 뒤늦게 쫒아오던 머리카락의 끝부분이 타닥하며 탔다.
머리카락을 잡고 그를 보자 몸에서 보랏빛이 감돌고 있었다.
흑염이다. 벌써 스킬을 쓸 수 있게 되다니, 저러니까 미친놈이여도 주인공이 데리고 가려하지.
김남운이 자세를 고쳐잡았다.
"어쭈? 제법인데?"
그가 주먹을 내질렀다.
첫 타는 가까스로 피했지만 두번째는 맞았다.
다행인 점은 어께라는 점이고 안타까운 점은 후유증으로 오른손이 저리단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진다.
여기서 '그걸' 써야하나?
속으로 시간을 계산하던 찰나.
[등장인물, '김남운'에 대한 이해도가 급격하게 상승합니다.]
[전용 스킬, '전지적 독자 시점' 1단계의 사용조건을 충족했습니다.]
이건 또 뭐야?
눈 앞에 뜨는 창에 따라 몸을 움직이자 김남운이 뻗던 주먹은 바닥에 꽂혔다.
쾅을 넘어서 지하철 칸 전체가 진동할 정도였다.
움푹 페인 바닥을 보며 김남운이 웃었다.
"나 존나 쎄!"
그러고는 계속 주먹을 내질렀다.
쾅, 쾅, 쾅.
한방한방이 치명타다.
맞으면 그 즉시 죽을 준비를 해야한다.
하지만 나는 맞지 않는다.
김남운이 답답한듯 소리쳤다.
"좀 맞아라!!"
당연히 안 맞는다.
내 두번째 스킬 덕이다.
[오른쪽 옆구리]
허리를 비틀어 피했다.
[왼쪽 눈]
이어서 허리를 숙여 피했다.
"존나 안 맞네, 시발!!"
부실하다못해 존재하는지도 의문인 운동신경 때문에 반격은 못한다.
하지만 피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
[왼쪽 대퇴부]
이정도면 어느정도 버텼다.
이제는 대충만 피해도 충분하다.
나는 날아드는 주먹들을 피하며 공중에 시계를 가르켰다.
"꼬맹아, 2분 남았어."
"이런 시발!"
선택의 기로에서 김남운은 할머니를 죽이기로 결정한 듯 눈동자를 노인에게 고정했다.
나는 다급하게 할머니를 감싼 채 굴렀고 김남운은 그걸 노린 듯 웃었다.
"잘 뒤져."
그가 품에서 무언갈 꺼냈다.
형광빛을 반사하는 은색 맥가이버 칼이였다.
반짝이는 칼날이 내게 달려들었다.
향할 곳은 한 곳.
[심장]
피할 시간도 없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몸을 틀었다.
그러자 왼쪽 어깨를 칼이 파고들었고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흑염 때문인지 불타는 기분도 들었다.
"이제 그만 뒤져!"
나지막하게 숨을 뱉고 김남운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할머니께 사죄하고 말했다.
"김남운, 질문 하나만 할게."
"뭔데?"
"알도 생물일까?"
김남운이 뭔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난 생물시간에 자서 그런거 몰라, 하지만 확실히 아는건 있지."
역으로 질문한다.
"뭐지?"
김남운이 내게 칼을 내질렀다.
"네가 죽는단 사실!"
나는 얼른 들고 있던 메뚜기의 사체를 뭉갰다.
대부분의 알이 뭉개지며 손에 끈적하고 찐득한 진액이 나왔다.
털고 싶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정답은 '생물이다'야."
그리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2700코인을 '체력'에 투자합니다.]
[체력 Lv.1>체력 Lv10]
[체력 레벨이 크게 증가합니다!]
[육체의 내구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칼날이 내 가슴팍을 긁고 지나갔다.
김남운이 당황한듯 여러번 쑤시려했다.
하지만 긁히는게 끝이였다.
"메뚜기는 알을 100개정도 낳지."
"시발!!"
김남운이 시계를 노려보고 내 목에 칼을 꽂으려 했다.
조금 무른 부위라 그런지 조금 더 깊게 들어갔지만 아프진 않았다.
10초.
김남운이 풀썩 주저앉으며 소리쳤다.
"제발, 제발 살려줘!!"
그 말을 원했어.
나는 얼른 사체에서 터지지 않은 알을 꺼내 그에게 넘겨줬다.
그가 얼른 그걸 움켜쥐었다.
나는 맥가이버칼을 주워 칼날을 집어넣은 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알림이 떴다.
[당신은 총 124개체의 생명을 학살하였습니다.]
여러 알림이 떴지만 뭐 관심 없었다.
창가를 바라보자 생전 해보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웃지도, 울지도, 무표정도 아닌 애매한 표정.
나는 뺨 언저리에 묻은 피를 문질러 지우려했다.
하지만 그건 창가에 묻은 피였다.
창밖을 보자 괴수들이 건물을 부수고 있었다.
이젠 우리가 알던 세상은 사라졌다.
새로운 이 세상의 결말을 아는 유일한 독자는 나였다.
만우절 낚시 못 했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