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왔습니다."
붉은 노을이 그를 비췄다.
너풀너풀 흩날리는 종이원고들은 꽃잎처럼 그를 맞이했다.
모두가 굳어있었다.
그 누구도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움직이지 못했다.
그가 돌아온건 확신하고 있었지만 모두가 굳어 움직이지 못했다.
심장소리와 숨소리같은 소리만 들렸다.
그 정적을 김독자 본인이 깨버렸다.
"저기?"
그러자 모두가 맞추기라도 한듯 움직였다.
유상아고 유중혁이고 두 꼬마고 정희원이고 이현성이고간에 모두가 그를 안았다.
김독자가 기쁜듯 웃으며 그들의 이름을 다 부르고 있었다.
나도 뒤늦게 그를 향해 달리려했다.
그도 나를 보았다.
그냥 보는건 아니였다.
그가 노려보고 있었다. 격을 담아서 노려보고 있었다.
[성좌, '구원의 마왕'이 당신을 죽일듯 노려봅니다.]
다른 사람들이 당황한듯 그를 보았다.
그런 그가 그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빠져나와 내 멱살을 잡았다.
"어떻게 내 기억에도 없는 성좌가 살아있을 수 있지?"
그가 아공간 코트에서 '부러지지 않는 신념'을 꺼내들었다.
"잠시만요! 독자씨!!"
이미 늦었다.
유상아가 소리친 순간 이미 검은 출발했다.
그가 익숙하게 팔을 휘둘렀다.
그 곡선을 따라 검이 궤적을 그리자 시간이 느려지는 것 같았다.
솔직히 억울했다.
아무리 내 인생을 하나의 소설로 생각하고 있다지만 한때 동경했고, 연민했고 사랑했던 남자에게 죽는 소설의 여주인공으로서 가장 슬픈 결말이라니.
나는 눈을 질끔 감았다.
그리고 곧바로 느려졌던 시간이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챙하고 검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눈을 뜨자 유중혁이 '흑천마도'로 그의 검을 막고 있었다.
"김독자! 이게 지금 무슨 짓이지?"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무슨 짓인지 물었다! 답해라!!"
유중혁이 열불을 토하자 그때서야 김독자가 유중혁을 보며 말했다.
"저 성좌는 도대체 누구야?"
"한수영이잖나!"
그러자 김독자가 더 몰아붙이며 말했다.
"한수영이 누구냐고!"
그때서야 파악되었다.
나는 유중혁의 앞에 서서 격을 발산해 검격을 막았다. 그리고 넘치려는 감정을 숨긴 채 말했다.
"내가 기억 안 나?"
"에초에 만난적도 없는데 무슨 기억을 한다는거지?"
역시 김독자다. 내 모든 격을 내뿜고 있음에도 밀리는 느낌이 거세게 든다.
하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말했다.
"이성국은 기억해?"
"그 사람을 잊을리가 있어?"
그의 태도에 나는 조금 화가 났다.
내가 이성국보다 못한 존재였던가.
나는 최대한 참아보려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삼키려했다.
하지만 못 참았다.
내 4년의 시간은, 그를 기다린 50년은, 함께한 3년은 허사였던가. 나는 겨우 이성국보다 못한 존재가 되기위해 그를 살려냈나.
이젠 의미가 없어졌다.
김독자가 죽든, 살든 내 알바가 아니다.
나는 결단을 내리고 병실에서 뛰쳐나왔다.
모두가 나를 따라나왔지만 뭐라하는지는 안 들렸다.
그대로 달렸다. 따라오던 사람들도 이젠 지쳤는지 안 보였다.
그걸 확인한 나는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현관문에 기대 흘러내렸다.
눈물도 안 나온다. 그대로 시간을 버렸다.
마감시간을 알리는 알람이 울렸을때 정신이 들었다.
나는 그 알람을 보다가 스마트폰을 저리 던져버렸다.
이젠 쓰지도 않을 알람이다.
나는 그대로 터덜터덜 걸어가 침대에 몸을 던졌다.
푹신한 침대의 감각이 내 기분을 더 더럽게 만들었다.
그제서야 눈물이 났다.
난 무엇을 위해 4년을, 50년을, 3년을, 13년을 썼는가.
그대로 울다가 지쳐 잠에 들었다.
이건 피폐일수도 있고 해피엔딩일수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