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다녀왔ㅅ-"



- 풀썩



 나는 일행들과의 재회 후 바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 김독자!

 - 독자 씨!

 - 형아!

 - 아저씨!


 꺼져가는 의식 사이로 들려오는 일행들의 목소리. 이대로 다시는 그들을 보지 못하게 되는걸까?

 그렇다고 해도 나의 마지막을 그들과 함께한 것이니 후회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봤으니......



.

.

.



*



 "검사 결과, 설화 수치는 멀쩡하네요. 단순히 오래 잠들어 있다가 깨어나서 아직 적응이 안된 모양이에요."

 "네, 감사합니다."


 

 나의 우려와는 다르게 나는 다음날 바로 일어나게 됐고, 몸 상태 또한 지극히 정상적이란 검사 결과도 마주하게 되었다.



 "아, 독자 씨."

 "네? 또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병실 문을 열고 나가려던 이설화는 무엇인가 떠올랐는지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그, 대부분의 설화는 원상태로 돌아왔는데 한가지 설화가 갈기갈기 찢겨 있더라고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일렌 씨랑 같이 일정 수준으로는 회복시켰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요."

 "혹시 그 설화가 무엇인지도 알 수 있을까요?"

 "제멋대로 곡해자? 그런 이름이었던거 같아요."



 '제멋대로 곡해자'. 언젠가 내가 73번째 마계에서 얻었던 설화였다. 분명 '제4의 벽'에게 갈기갈기 찢겨 흔적조차 남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행히도 소생 가능할 정도로는 보존되어 있었던 것 같다.



*



 이설화가 병실을 떠난 뒤, 그녀에게 내 소식을 들은 일행들은 나에게 인사와 짧은 대화를 나누고 각자의 할 일을 하러 돌아갔다. 그렇기에 강의를 하느라 가장 늦게 온 한수영 만이 병실에 남아있었다.

 한수영은 도착하자마자 나에게 상태가 어떤지 물어보았다.



 "야, 김독자. 멀쩡한거 맞지?"

 "응, 설화 씨가 문제 하나도 없다더라."

 "이설화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괜찮긴한가 보네. 특별한 점 같은것도 없어?"



 특별한 점이라...... 나는 한수영에게 '제멋대로 곡해자'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그게 뭔데?"

 "상황에 맞게 다른 설화를 개조 시켜주는 그런 설화야."

 "그럼 엄청 좋은거네?"

 "이젠 딱히 누군가와 싸울 일도 없으니까 뭐......"



 그 순간, 머릿속에서 무엇인가 울렸고, 그 결과가 나와 한수영의 눈 앞에 나타났다.


 [설화, '제멋대로 곡해자'가 곡해의 대상을 물색합니다.]


 갑자기 발동되는 설화. 이설화는 내게 걱정하지 말라 했었지만 '제멋대로 곡해자'는 이름 그대로 제멋대로인 설화였기에 그녀의 예상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응? 뭐야. 갑자기 왜 설화를 발동시켰어?"

 "내가 일부러 한 건 아니고, 설화 씨가 말했던 것처럼 온전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

 "위험한건 아니지?"

 "응, 당연하지."

 


 다음 순간, 내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내 몸속에서 환한 빛살이 타올랐다.


 [설화, '제멋대로 곡해자'가 곡해할 이야기를 찾았습니다!]

 [설화, '제멋대로 곡해자'가 설화 곡해를 시작합니다.]



 "뭐야? 갑자기 또 왜 이래?"



 당황한 한수영을 뒤로 한 채로 '제멋대로 곡해자'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설화, '만물의 사랑을 받는 자'가 곡해 되었습니다!]

 [설화, '만물의 사랑을 받는 자'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시스템의 알림과 동시에 나는 나를 바라보던 한수영의 눈빛이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지금 이 존재는 '만물'의 사랑을 받는 자. 」


 막대한 마력이 빠져나가며 설화가 스스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 그 존재는 세상의 모든 것들에게 사랑받으며 태어나. 」

 


  "독자야......"



 나는 한수영이 나를 부르는 호칭과 그 다정한 말투에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어떤 존재도 이 자에게서 헤어나올 수 없다.  」



 "야, 한수영! 정신차려!"



 나는 나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는 한수영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한수영은 그런 내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더니 이내 양손으로 나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야! 한수영!"

 "......김독자, 너가 갑자기 왜 이렇게 잘생겨보이지?"



 한수영의 상태는 이미 손을 쓰기엔 너무 늦어보였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당장 이 병실에서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에 도달했고, 한수영의 손을 뿌리친 나는 병실 문을 열고 복도로 뛰어나갔다.



 "어디가아!"



 상대적으로 짧은 다리를 이용해 내 뒤를 쫒고 있는 한수영. 나는 한수영을 따돌리기 위해 마침 내가 있는 층에 도착해있던 엘레베이터에 타서 1층과 닫힘 버튼을 계속해서 눌렀다.



 "좀 닫혀라 제발."

 "김독ㅈ-"



 다행히도 한수영이 타기 전에 닫힌 엘레베이터. 나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뒤를 돌아보았고, 멀뚱멀뚱 서서 상황파악 중인 이설화와 눈이 마주쳤다.



 "독자 씨? 수영이 씨랑 무슨ㅇ-"



 이설화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울려퍼지는 알림.


 [설화, '만물의 사랑을 받는 자'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하...... 

 이설화의 동그랗게 떠져있던 눈은 어느새 하트 모양으로 바껴있었고, 나는 최대한 그녀를 밀어냈다.



 "독자 씨...... 제가 독자 씨 많이 사랑하는거 알죠?"

 "아뇨, 모릅니다. 유중혁을 생각하세요. 결혼까지 하신 분이 이러시면 안되는거 아닙니까?"

 "중혁 씨도 좋지만 독자 씨가 더 좋은 걸요?"

 "......"



 시간은 내 편이 아닌 것인지 너무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도착하지 않는 1층......



 - 띵동, 3층입니다.



 마침 그때 열리는 엘레베이터의 문. 1층은 아니었지만 한시가 급했던 나는 문이 열림과 동시에 문 쪽으로 뛰어나갔다.



 - 쿵



 하지만 급했던 것은 나만이 아니었는지 반대편에서 뛰어들어오는 아일렌과 부딪혀 넘어지고 말았다.



 "아야...... 독자 씨 괜찮ㅇ -"



 이번에도 아일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울리는 알림.


 [설화, '만물의 사랑을 받는 자'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하......

나는 아일렌과 이설화를 뒤로 한 채로 창문을 향해 뛰어가 몸을 던졌다.



 "수리비는 나중에 청구하세요!"



 - 쨍그랑



 나는 유리창을 깨고 나온 뒤 '마왕화'를 이용하여 날개를 펼쳤다. 하지만 방금 깨진 유리 조각이 날개 사이에 박혔는지, 나는 날개가 찢어질 것만 같은 통증으로 인해 다시 땅을 향해 곤두박질 쳤다.



 "어어어!"



 - 쾅



 "어머, 저 사람 좀 봐."

 "저 날개는 뭐지?"

 "엄마! 저 사람 하늘에서 떨어졌어!"



 나는 몸을 일으켜 세운 후, 나를 둘러싼 채 웅성거리는 대중들을 사이로 뛰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 사람들에게는 설화가 발동되지 않았......


  [설화, '만물의 사랑을 받는 자'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어머, 저 사람 좀 봐. 진짜 잘생겼다."

 "저 날개는 뭐지? 너무 멋있잖아!"

 "엄마! 저 사람 하늘에서 떨어졌어! 천산가봐!"



 망할 놈의 설화......

 나는 나에게 쏠리는 관심을 줄이기 위해 마왕화를 포기하고 날개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긴 행렬을 만들며 도망치던 나는 인근의 한 건물로 몰래 숨어들어 숨을 돌리고 있었다.



 "하아......"

 "어머, 독자 씨?"



***



 "!@#$@@@!"
 "#@%^$##@"

 "!@$@#@$@!$#"


 [컷! 잠시 쉬었다 가겠네.]



 오늘따라 유독 소란스러운 거리. 그 거리에서부터 시작된 소음으로 인해 '양산형 제작자'는 촬영 중이던 광고를 멈추었다. 



 "밖이 시끄럽네요."

 [그러게나 말일세.]



 아무리 기다려도 잠잠해질 생각을 하지 않는 거리. '양산형 제작자'는 한숨을 쉬며 내게 말했다.



 [이 상태로는 더 찍지도 못할 것 같은데, 오늘은 이만 끝내는 걸로 하지.] 

 "네, 그럼 내일 뵙도록 하겠습니다."

 [촬영하느라 힘들었을텐데 들어가서 쉬게나.]



 나는 '양산형 제작자'와 촬영을 도와주던 스태프 들에게 꾸벅 인사하고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내가 있었던 스튜디오는 고작 2층 밖에 되지 않았기에 나는 계단으로 내려갔고, 1층에서 예상치 못했던 한 인물을 만나게 되었다.



***



 "여긴 어쩐 일로 오신건가요?

 "아 상아 씨, 상아 씨는 어쩐 일로 여기에......"



 나는 이 건물이 유상아가 광고를 촬영하는 스튜디오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나로 인해 생겨난 행렬 때문에 촬영을 일찍 접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죄송합니다 상아 씨."

 "네? 갑자기 왜 사과를 하시는 거죠?"

 


 나는 저 행렬이 생긴 원인에 대해 자초지종 설명을 하였고, 유상아는 내 사정을 듣고는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지금 저랑 같이 있는 것도 위험한거 아닌가요?"

 "네? 아, 그렇죠?"

 "그 설화가 언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할지 모르는 거잖아요."



 유상아의 말이 맞았다. 지금은 왠일인지는 몰라도 '제멋대로 곡해자'가 조용히 하고 있었지만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는 순간, 유상아가 도망치는 내게 '긴고주'를 외울 수도 있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설화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더라도 '긴고주'를 외우시는 건 지양해 주셨으면 합니다."

 "흐흥, 글쎄요. 그런말 할 시간에 얼른 도망이나 가시ㄴ-"

 "저기로 간거 아니에요?"

 "내가 이리로 갈테니까 이설화, 너는 저기로 가봐."



 어느새 나를 찾으러 코앞까지 다가온 사람들. 더 이상 도망칠 곳을 못찾은 내가 망연자실하고 있을 때, 유상아가 뒷편에 있는 문을 열더니 그 안으로 내 손을 잡아 이끌었다. 

 잡다한 물건들과 그 위로는 먼지가 잔뜩 쌓여있는 것으로 보았을 때, 이 곳은 창고가 틀림없어 보였다.



 "분명 여기에서 인기척이 느껴졌었는데...... 이 문은 뭐지? 여기로 숨었나?"



 문 바로 앞에서 느껴지는 한수영의 기척. 다행히도 이 창고는 열쇠가 없으면 못들어오느-



 "어? 열렸다."



 ......응?



 "유상아 씨, 설마 문 안잠궜어요?"

 "안에서 어떻게 잠궈요."



 아......

 나는 문득 내가 얼마나 바보같은 말을 내뱉은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김독자? 너, 여기 있지."



 나와 유상아가 소근대는 소리를 들었는지 한수영은 창고를 이 잡듯이 뒤지고 있었다. 그 때 유상아가 내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크게 내었고, 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 거기구나?"



 소리가 난 지점으로 천천히 다다오는 한수영의 발걸음.내가 다 포기하고 일어나려고 하자 유상아가 나를 만류하더니 자기가 먼저 일어나서 한수영에게 인사했다.



 "어? 수영 씨. 여기는 무슨 일 이에요?"

 "유상아, 너가 거기서 왜 나와?

 "저희 스튜디오 건물이니까요?"

 "너 여기서 광고찍어?"

 "네."

 "근데 왜 창고에서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채로 나와?" 

 "찾을 물건이 있어서요."



 의심되는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였는지 한수영은 유상아에게 질문 세례를 하고 있었고, 유상아는 침착하게 하나하나 대답해 주었다.



 "여기 관계자 외에는 출입 금지니까 얼른 나가죠."



 유상아는 한수영의 등을 밀며 문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 때 불안하게 다시 한 번 울리는 머릿속.


 [설화, '만물의 사랑을 받는 자'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설화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고, 이 알림창을 본 것은 나 뿐만이 아니었다.



 "김독자!"

 "독자 씨."



 신난듯이 내 이름을 부르는 한수영과 한숨을 쉬며 말하는 유상아. 유상아는 다시 내가 숨어있는 곳으로 돌아왔고, 한수영도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여기 있었네?"

 "그러게 내가 얼른 도망치라 했죠."

 "죄, 죄송합ㄴ- 으읍, 읍!"



 내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무언가 촉촉한 것이 내 입술에 닿았고, 이내 끈적끈적한 살덩어리 하나가 내 입속을 파고들었다.



 아 시발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