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상쾌하게 불어오는 날에, 내 무릎에 기대어 자는 너를 보며 미소 짓고선 어떤 사진첩을 꺼내 펼쳤다.
그러다 네가 인형을 들고서 나에게 달려오는 사진을 보고 떠오른 기억에 몸을 맡겼다.
오늘처럼 바람이 불어오는 날에 너는 나에게 다가와 어린아이 특유의 새는 발음으로 말했다.
어떤 고래인형을 들고서
"나는 고래야, 고래서 너를 조아해."
약간은 얼굴을 붉히는 모습에 장난스럽게 말했다.
"넌 고래가 아니라 오징어자냐."
"아냐, 나 오징어아냐."
조금 억울한 투로 말하는 너는 그런 나도 좋은지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그러다 다시 돌아가 대게 인형을 들고 돌아온 너는
"나는 대게야, 그래서 너를 대게 조아해."
그런 너의 뒤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강아지 꼬리가 보인 듯 한 것은 착각이었나.
'웃어줘' 라 말하고, '귀엽다 말해줘' 라 말하는 것만 같은 너라서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나보다.
강아지 다루듯
"기여워."
라 말하고 머리를 쓰다듬는 것조차 좋은지 봄날에 꽃이 피어나듯 미소를 피워내는 너였다.
-
어떤 날은 빵을 들고 오면서
"나는 빵이야, 그래서 너를 대빵 조아해." 라 말하고 빵을 건넸다.
내가 뭐가 그리 좋은지 너는 나에게 계속해서 좋아한다고 말했다.
어린 나는 그저 빵을 먹고 기분좋게 웃었을 뿐인데, 빵이 맛있어서 웃을 뿐인데도 너는
"조아해!"
라 말했다.
언제나
"조아해!"
라는 말을 마주칠 때마다 해서 눈치없던 나는 그게 네가 나에게 하는 인사인 줄 알고 손을 흔들 뿐이었다.
그렇게 엇갈리던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더라.
코 끝에 다가온 네 체향에 다시 눈을 떴을 때, 웃는 네 모습이 과거의 네 모습과 겹쳐져 무심코
"귀엽네..."
라 말했다.
-
"나 귀여워?"
아 그렇게 웃으면서 물으면 반칙이잖아.
심장에 무리가 가서 매번 '나 살아있냐?' 라 묻게된다니까.
"어."
귀여운 건 귀엽다 말해야지.
그럼 거짓을 말할까.
"어, 이거 우리 어렸을 때 사진이네."
"맞아, 너 맨날 나한테 좋아한다고 말했잖아."
"지금도 말해줄까?"
"어."
"좋아해, 수영아."
우리가 사귀기 전의 네 고백이 다시 귀에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져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좋아?"
"어. 그런데 오늘은 다른 게 듣고 싶은 데?"
오랜만에 서투른 말투로 말하는 네 고백이 듣고 싶어졌다.
"조아해."
귀여운 말투의 좋아한다는 말이 귓가에 기분좋게 맴돌았다.
바람에 가볍게 흩날리는 사진들이 넘어가자 사진첩에 쓰여진 LOVE라는 글씨가 눈에 담겼다.
그날의 내 눈에 담겼던 것도 LOVE 였다.
-
어느 종이로 만든 카드에 쓰여있는 글귀.
LOVE.
라 쓰여있는 활자들을 보고서,
"사랑을 왜 저런 낱말로 나타내는 걸까, 그저 낱말 하나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복잡하지 않나?"
라고 작게 소리내어 물었다.
"알려줄까?"
라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와 달콤하지만 사라질 듯 연하게 퍼지는 그 향이, 봄이 찾아오듯 소리없이 다가와 따스한 봄 햇살처럼 퍼져나갔다.
잠시 미치기라도 한 듯이 귓가에 울린 그 목소리가 너무나 좋아서,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얼이 빠져있는 내 몸을 가볍게 안은 그가 활자를 하나씩 짚으며 속삭였다.
L을 가리키며,
"팔을 굽혀서,"
O를 가르키고,
"둥근 원을 만들어,"
V를 가르켜,
"팔을 뻗어 너를 안아."
E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아직 열리지 않은 마음의 문을 열어 너를 마주하는 건 사랑이 아닐까?"
라 말을 마치며 눈을 가볍게 휘어 미소를 지었다.
"헛소리."
라 퉁명스럽게 말했으나, 왜 작은 뺨에서 열기가 느껴지는 걸까.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리고,
"맞아, 헛소리인 것은 나도 알고 있거든.
그럼 거짓이지 사실일까."
라 말하는 목소리가 조금은 얄밉게 들려왔다.
"누가 언제 이런 걸 알려달,"
끝맺지 못한 말의 종착점은 네 포옹이었다.
"좋아해서, 사랑해서 그냥 꾸며낸 거짓말이야. 너를 안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서 꾸며낸 말장난이야. 그냥 안고싶었는 데 마땅한 이유가 없어서 그랬어. ...미안, 나도 내가 뭐라 중얼거리는 지 모르겠다."
라 말하는 너는 그저 부끄러운 듯 헤실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정말 단단히도 빠졌나 보다.
아니면 이제서야 자각했는 지도.
그저 이런 사소한 일에 마음을 열다니, 내가 미쳤지 정말.
이상하게도 네가 말한 그 말장난이, 그 말장난을 듣고서 너를 안고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마음을 열어 너와 함께하고 싶어졌는 데 고작 말장난으로 치부해버리는 네가 얄굿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 녀석의 멱살을 가볍게 쥐어 잡아당기면서,
"말장난이면 더이상 말장난이 아니게 하면 되겠네."
라 말하며 너를 끌어안았다.
LOVE.
사랑이라는 단어가, 사랑이 내 눈에 담겨서.
이제는 사랑을 알고싶어졌다.
"나도 좋아하고, 사랑해 바보야."
후기:들고왔다. 이번 주가 오늘이 되는 마법(?) 이번 주에 들고온다했는 데 오늘 들고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