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신경쓰였다. 급식을 먹을때도 그녀가 있나 찾아보기도 하고, 도서관에 가 책을 읽을때도 무슨 책이 취향일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수업시간에도 저리 자기만 하면 내신이 망할 것 같은데 하고 쳐다보기도 해봤다. 그럼에도 관심조차, 아니 얼굴 한번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 그녀였기에 반쯤 포기했다. 서점에 들러 잊어보기 위해 책을 골라보기도 했고, 처음 먹어보는 음식도 먹어봤다. 쥐꼬리 같은 돈들이 빠져나가는걸 볼때마다 마음 아픈건 어쩔 수 없다보다. 돈계산 덕에 한수영이 까마득하게 잊어진 것 같아 이정도면 선방했다 싶었다. 그리고는 큰 방 하나짜리 반지하 집에 돌아가 가방을 던져두고 알바를 뛰러 갔다.

 책을 사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는지 평소보다 더 바쁘게 움직였다. 일하는 레스토랑에 가자 인사할 겨를도 없이 유니폼을 입고 서빙을 해야했다. 심지어는 달리면서 주문을 읇기도 해야했다. 덕분에 줄어들던 한수영에 대한 생각도 줄어들다 못해 사라져버렸다.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내오고, 받고, 내오고, 받고, 내오고.

 간단하고 별거 없는 행위에도 머리가 하얘질 정도였다. 로봇처럼 일하던 나의 머리를 꺠운건 자그마한 소리였다. 지잉하고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겨우 웃으며 온 사람을 반겼다.

 "어서오세...요."

 한수영이였다. 자그마한 키에 어께에서 찰랑이는 머리카락, 두꺼운 안경은 벗었는지 큼직한 눈이 바깥으로 나와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평소에는 보이지 않은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확실히 무표정이였다. 하지만 어딘가, 정말 어딘가 달랐다. 슬픈 무표정과 웃는 무표정이 나뉘어있듯 그녀의 무표정도 달랐다. 화난 것 같기도, 우는 것 같기도 한 무표정이였다. 그녀의 눈은 싫증이 난 것 같았고 입은 곤란함을 머금고 있었다. 걸음걸이는 본인의 감정을 숨기려하는지 과장되게 평범한 걸음이였다. 순간 멈춘 나를 못 봤는지 그대로 걸어서 어느 배우 앞으로 갔다. 인기배우였지만 화장이 없었기에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익숙한듯 앉아 그 배우와 얘기를 하고 있었다. 여전히 가만히 있자 선배중 한 명이 나를 툭툭 치고 말했다.

 "가서 주문이나 받아."

 그때서야 제정신이 들었다. 나는 주문을 받는 일을 한다. 그렇기에 상대가 누구든 주문을 받아야 한다. 천천히 걸어갔다. 주머니에 있는 메모를 꺼내고, 할 말을 다시 속으로 읊었다. 그리고 차분했던 준비와 다르게 그녀가 나를 인지하게 하는건 꽤나 급했다.

 "취급좀 해줬더니 기어오르려 들어!"

 눈앞에 뻔한 미래가 보였다. 배우 손에 들려있는 물은 한수영의 얼굴을 강타한다. 이 레스토랑 규칙에 명시된 것에 따르면 물을 뿌리든 침을 뱉든 음식을 던지든 신경써선 안 된다. 제3자가 피해를 받을 위험일 경우에는 개입해야 하지만.

 그렇기에 원래라면 신경써선 안 된다. 하지만 그런걸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이 먼저 튀어나갔다. 의식이 몸에게 뒤쳐진단게 이런 기분이구나 싶었다. 손으로 컵 입구를 막고 메모를 든 채 미소지었다. 

 "여기 직원으로서 말씀드릴게요. 물 뿌리시면 닦기 힘드니까 뿌리지 말아주세요." 

 그리고는 컵을 들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수영이 반 반장으로서 말하면, 저희 반 애 건들지 마세요. 어머니여도 마찬가집니다." 

 그러자 배우가 충격이라도 먹은 표정을 짓더니 입술을 꽉 깨물었다. 피라도 떨어지면 곤란한데 싶을 즈음 지갑에서 카드를 탕하고 내려놓고는 일어서며 말했다.

 "추태를 보였군. 수영아, 나중에 다시 부를테니 먹고 싶은거 다 먹어. 카드는 두고 갈게." 

 배우가 꼬리빠지게 레스토랑을 빠져나왔다. 우스꽝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피식 웃음이 나와버렸다. 아차싶어 한수영의 눈치를 살피자 한수영이 살짝 미소지으며 말했다.

 "고마워."

 나는 그에 호응하듯 활짝 웃으며 답했다.

 "아냐, 반장으로서 한건데 뭐."

 그녀가 웃는 모습을 보자 다시 심장이 미쳐날뛰는 기분이였다. 역시 나는 그녀가 좋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