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아끼는 애인이 있었다. 그 누구보다 작가같은 작가였고 독자같은 독자인 그를 처음 만난건 2년 전 겨울이였다.
술잔이 오가고 술이 오가는 인기작가들만의 자리에 나는 인기작 작가라는 이유로 미성년자임에도 자리를 지킬 수 밖에 없었다. 술이 오간다는 것 외에는 꽤나 멀쩡한 자리였다. 나는 셀러드바에서 채소나 집어와 우적우적 먹을 생각이였다. 자리를 물색하던 도중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옆자리가 빈걸 확인했다. 그리고 신나게 가던 도중, 누군가에게 막혀버렸다.
"저기 말고, 여기 앉아요. 저 작가님 술버릇이 영 아니거든요."
중학교 1학년이던 내 또래같았지만 나잇대에 비해 큰 키에 고양이상인 미남이였다. 사나워보일 수 있는 인상임에도 선량함을 내보이는 표정에 나는 아쉬운 마음을 꼬깃꼬깃 접어 깊숙한 곳에 위치한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그리고 그 작가의 옆으로 가는 그를 보며 본인이 앉으려고 그런거구나 하고 실망했다.
기분이라도 내자는 느낌으로 여러음료를 섞어 마셨다. 색도 불길했고 맛도 영 아니였지만 홀린 듯 마셔댔다. 그러다 10잔이 넘어가자 속이 울렁거렸다.
참다못해 조금 게워내려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가 내게 저 자리로 못 가게 한 이유를 보게 되었다. 그는 말 그대로 폭행당하고 있었다. 평생 타자만 쳤을 손이 그의 머리를 강타했다. 그럼에도 그는 무표정이였다. 맞고, 맞고, 또 맞았다. 그걸 본 나는 울렁이던 속을 신경쓸게 아니란걸 알게되었다. 내 인생의 모토이자 내 진로를 결정해준 명작가의 술버릇에 충격을 먹는 것보다도, 맞고 있는 그가 너무나도 불쌍했다. 평소처럼 머리가 차게 식지는 않았다. 반대로 조금 뜨겁게 달아올랐다. 나는 당당히 걸어가 그를 잡고 말했다.
"저기."
힐끔. 그의 이름표를 빠르게 읽고 표정을 유지하며 말을 이었다.
"한신영씨. 말씀드릴게 있는데 좀 나와주세요."
옆에 있던 작가가 내게 욕을 하려 표정을 구기기 시작했지만 보고만 있던 작가들이 나가보라고 신호를 했다. 나와 그는 대충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한신영이 먼저 내게 말했다.
"저기 하실 말씀이란게?"
사실 그딴건 없었다. 그를 빼내기 위해 한 거짓일 뿐. 나는 대충 말을 지어내려다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제안했다.
"우리, 나가서 데이트좀 해요."
그러자 그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좋아요, 저도 불편하던 참인데."
그 후 그와 시내로 나가 실컷 놀았다. 관계자들도 우리를 배려한건지 연락은 없었다.
그렇기에 즐겁게 놀았다. 오락실도 가보고, 인형도 뽑았다. 영화도 봤다. 밤이 깊어지자 우리는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고 서로 갈길 갔다.
정말 냉정한 관계라고 생각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불타는 관계였다. 그 일이 있고 한달도 안 되서 연인이 되었다. 좋아한다는 감정으로 맺어져 100일, 200일, 300일. 시간이 지날때마다 더욱 깊어져 하루도 안 보면 죽을 것 같은 깊디 깊은 관계가 되었다. 하지만
난 그걸 후회한다.
연인이 되고 2년째가 된 날이였다.
동갑이였던 우리는 고등학생이 되어 데이트를 다녔다. 버스를 타고 종착역에서 종착역까지도 가보고, 놀이공원, 아쿠아리움, 동물원··· 안 가본 곳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소박했지만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했다. 하지만 신은 내 행복이 아니꼬웠나보다.
잘 가던 지하철이 탈선을 해버렸다. 큰 충격과 찌그러지고 무너지는 지하철 내에서 그는 나를 감쌌다. 이곳 저곳 부딛쳐 정신이 혼미해지려하는 나를 그가 세게 감싸안고는 소리 쳐 내 정신을 깨웠다. 덕에 깨어난 정신이 마주한 현장은 끔찍했다. 몇몇은 잔해에 깔려 죽었다. 또 몇몇은 잔해에 몸이 깔려 죽어갔다. 어느 사람은 중상을, 어느 사람은 경상이였다.
한신영, 내 애인은 충격에 나를 감싸다가 내게 오는 충격을 대신 맞았다. 그 때문인지 그는 피철갑을 넘어서 아예 핏덩이 상태였다. 고르지 못한 숨, 옅어져가는 숨, 멎어가는 숨, 위태롭게 뛰다가 이내 지쳐 쓰러진 심장, 멎어버린 숨. 구조될때까지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체감상 몇년은 된 것 같았지만 실제는 5분 도 채 안 된 시간이였다. 그 시간동안 그는 죽었다. 그 순간까지도 나를 감싸안고, 천장을 향해 등을 돌려 잔해로부터 안전하게 만들어줬다.
구조 됐을때의 기억은 없다. 공황상태였다고 한다. 내가 제대로 정신을 차린건 구조를 받고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였다. 정신을 차리고 먼저 찾은건 한신영이였다. 그가 죽어가는걸, 그가 차갑게 식어가는걸 직접 느꼈으면서 그의 행방을 물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울었다. 그가 죽은걸 확인받았다. 내가 정신을 못 차리는 바람에 그의 장례식에는 내가 없었다. 퇴원을 하고, 학교를 다녔다. 하루하루가 쓰레기같았다. 처음에는 죽어버린 그에대한 원망이 컸다. 하지만 점점 자기혐오에 빠져버렸다. 내가 연인이 아니였다면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그 지하철을 안 타도 됐을거라고 자기혐오에 빠져 살았다.
그리고 그가 죽은지 반년이
됐을 때,
내 인생을 버리기로 결심했다.
나를 살리려 대신 죽은 한신영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난 네가 없으면 살 수 없어.
그렇기에 나는 마지막으로 학교를 나왔다. 한신영이 죽을때까지 입고 있던 동복을 보니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또다시 나는 회피를 택했다. 책상에 팔을 올려 베개삼고 엎드렸다. 한참동안 그를 회상하다가 잠에 들었다.
"야, 일어나봐."
똑똑하고 책상이 두들겨지자 나는 흔들리는 정신을 잡아가며 두들긴 장본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김독자였다. 언제였더라. 학기 초에, 그러니까 사고가 나기 한달 전 쯤에 반장 후보로 나와 2학기에는 반장까지 성공한 애였다. 그가 내 책상에 바나나 우유와 빵을 올려두고 말했다.
"뭔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배는 채우고 다녀."
그러고는 그대로 자리를 떠버렸다.
바나나 우유, 한신영이 내 앞에서 처음으로 제일 싫어하는거라고 못을 박은 음식이였다.
빵은 그가 너무 달다고 했던 슈크림 빵이였다. 나는 그것들을 먹을 수 없었다. 먹고 싶지도 않았다. 그랬기에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