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동요해버렸다. 죽은 내 애인 한신영에게 미안한 일이였다. 평소였다면 그냥 무시하면 될 것이였다. 신발에 들어간 모래알처럼 신경은 쓰여도 무시하면 될 일이였다. 하지만 모래알도 신경쓰이기는 엄청 신경 쓰인다고 동요해버렸다. 기분이 묘하다. 기분이 나쁘지 않지만 나쁜 기분이다. 꽝꽝하고 몸을 울리는 심장박동에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나는 몸에 베인 오랜, 그리고 매번 억누르던 습관을 내비쳐버렸다.

 "...응, 그렇네. 안녕."

 한신영과의 2년, 17년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동안의 시간보다도 그와의 2년이 더 가치있었다. 내 인생도 그 2년이 바꿨다. 모진 말을 제대로 못하는 습관도 그 2년의 영향이다. 그가 죽고 최대한 억누르며 모질게 굴었지만, 이번에는 억누르질 못했다. 싱글싱글 웃는 그를 뒤로 한 채 자리로 가 가방을 걸고 엎드렸다. 차가운 책상이 꽤나 맘에 들었다. 자기 딱 좋은 순간이겠거니 했지만 모순되게 잘 수는 없었다. 자보려고 이리저리 자세도 고쳐봤지만 영 잠이 안 왔다. 그렇다고 밤에 자지도 않았다. 5분정도 이러고 있으니 김독자가 내 옆자리 의자를 드르륵 끌어 앉고는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잠이 안 와?"

 씹을까 말까 5초간 고민했다. 그러자 김독자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집어넣으려 하며 말했다.

 "자나보다. 잘 자."

 왜 일까. 왜 잡고 싶은걸까. 그가 한신영을 닮았나? 아니다. 한신영보다 키도 작고 목소리도 한신영처럼 간드러지지 않는다. 거기에 한신영은 고양이 상이고 김독자는 개상이다. 분위기도 달랐다. 무심한 것 같은, 차가운듯 따뜻한 눈 같은 한신영과 다르게 묘하게 따뜻한, 방열 내복같은 김독자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잡고 싶다. 하지만 잡아서는 한신영을 배신하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마칠 겨를조차 없이 이미 팔은 그의 소매를 잡았다.

 "잠시만, 가지마봐."

 그러자 김독자가 기다렸다는 듯 다시 앉았다. 뭔가 진 기분이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부담스럽게 김독자가 나를 웃는 얼굴을 한 채 바라보고 있었다. 뭐 무섭진 않았다. 선의가 느껴졌고 자그마한 미소였기에 시선만 좀 치우면 부담은 없어질 것 같았다. 한 10분동안 정적이 흐르니 어색한듯 김독자가 실실 웃으며 말을 시작했다.

 "넌 나 어떻게 생각하냐?"

 "뭐?"

 "어떻게 생각하냐구."

 3초간의 정적. 그리고 빨리 돌아가는 머리. 소설만 3년째 쓰는 내 머리는 금방 답을 찾아냈다.

 "그냥 반장인데 뭘 어떻게 생각해?"

 그러자 김독자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음, 그 선에서 시작하자."

 "뭘 시작해?"

 "친구생활."

 웃겼다. 어차피 오늘이 마지막 날일텐데 무슨 친구생활인가. 비웃음을 섞어 웃어줄까 싶었지만 그냥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김독자가 자리에서 그만 일어나며 내게 제안했다.

 "이번 주 토요일, 시간 괜찮아?"

*

 커터칼을 앞에 두고 앉았다. 어째서인지 망설여지려한다. 잡념을 떨쳐내기 위해,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듯 커터칼을 잡고 날을 빼내어 손목에 날을 가져다 댔다. 살갗에 날카롭고 서늘한 감각이 느껴졌다. 이제 누르며 당기기만 하면 성공이다. 그럼에도 나는 할 수 없었다. 한신영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어느 새 김독자의 모습도 보였다. 나는 쥐고 있던 커터칼을 내려놓고 달력을 꺼내 이번주 토요일을 표시했다.

 '이 날 밤 자살 예정'

 그리고 학교에선 자질 못했기에 침대에 눕자마자 자버렸다. 꿈에서 한신영이 나오자 잔걸 후회했다. 또 악몽이겠거니 할때, 한신영이 날 안자 또 그 끔찍한걸 볼 각오를 다졌다. 그러나 달랐다. 그가 나를 안았음에도 지하철로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하얀 공간 그대로였다. 따뜻한 느낌이였다. 그리고 그때서야 기억해냈다. 잊고 있었던 그의 유언을, 무너지는 소리에 고막에 이상이 생겨 제대로 듣지 못했던 말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나를 안고 있는 그를 안았다. 오늘의 꿈은 행복한 꿈이였다.

*

 "툴툴대면서도 왔네?"

 김독자가 스마트폰을 보다가 나를 반겼다. 교복 외의 외출복은 오랜만에 입었다. 옛날보다 살이 빠지긴 했는지 옷이 좀 널널했다. 작년 가을에 한신영과 데이트할때 입던 것이여서 이걸 입고 다른 남자와 있어도 괜찮을까 생각했지만 옷이 이거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어디갈건데?"

 김독자가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르켰다. 그 손가락을 따라가자 큰 서점이 있었다.

 "서점 가려고 바쁜 사람 불러냈어?"

 가기 싫었다. 여기는 한신영과 연애할때 100일 기념으로 온 서점이였다. 그랬기에 회상한 추억만 있는 곳은 가기 싫었다. 그걸 모르는지 김독자가 말했다.

 "어차피 주말인데 자고 있었을거 아냐?"

 "아닌데."
 "그래, 그렇다고 치자."

 내 말을 들은 둥 마는 둥 하며 김독자가 내 손목을 잡고 서점으로 향했다.



왜 컴으로 쓰면 왜 이상하게 써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