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로 꿈을 꿨다. 그 꿈의 내용은 매번 같았다. 한신영이 내 앞에 걸어온다. 그리고 나를 안았다. 안기자마자 주변은 무너진 지하철 내부로 바뀌고 그는 섬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너 때문에 ."

 그 소름끼치는 소리에 그의 품에서 나오면 그는 피눈물을 흘리고 코피를 흘리고 피를 뱉었다. 그리고 죽을때의 그가 된다. 그는 섬뜩하게 충혈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내 목을 잡는다. 이내 무게로 눌러 넘어뜨린다. 그리고 꾹 누르며 갈라지는 목소리로 소리친다.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그리고 잡고 있던 손부터 썩어문들어진다. 그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썩어 사라지자 그때서야 꿈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밤에 잘 수 없다. 다행히 해가 떠있는 동안은 그 꿈을 안 꾸기에 학교에서 잔다.

그랬는데 반장이 방해해버렸다. 바나나우유와 생크림빵으로 한신영을 떠올리게 해 자는걸 방해한거다. 이 상태론 잘 수도 없다. 그럼에도 자보려 노력했다. 자는 것도 노력한단게 조금 우습지만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자려 노력했다. 하지만 눈만 감으면 한신영이 보였기에 뜬 눈으로 점심시간을 버렸다. 나는 화장실이라도 다녀오자 싶은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터덜터덜 걸어가자 애들이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계속 자던 애가 걸어다니니 그럴만했다. 볼일을 보고 반으로 돌아가 누웠다. 생각이 정리되고 기분이 가라앉자 다시 졸렸다. 나는 팔을 베개삼아 다시 엎드려 잤다. 아무도 깨우지 않아줬기에 편하게 잘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누가 날 깨웠다.

 "학교 끝났어."

 이번에는 책상을 똑똑 두드리지 않고 내 어께를 잡고 흔들었다. 평소처럼 대꾸도 안 하고 일어나버릴까 생각했지만 오늘 죽을건데 반을 위해 희생하는 애한테 신경질 내진 말자는 생각이 앞질렀다. 그가 죽은 후 한 번도 올라간 적 없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그가 죽은 후 남에게 처음 말을 꺼냈다.

 "응, 고마워."

 역시 어렵다. 나 어떻게 웃고 감사인사를 했었지. 어색한 나머지 나는 얼른 커터칼만 들어있는 큰 가방을 메고 자리를 뜨며 인사를 했다.

 "잘 있어."

 이 인사가 맞는 인사인가 생각했지만 어차피 내일부턴 그와 나는 다르게 된다. 반장인 김독자는 산 사람, 애인을 잃은 나는 죽은 사람.

애써 웃어보이자 김독자의 표정이 어째선지 살짝 미소지어 있었다.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학교를 빠져나왔다. 터벅터벅 걸어 집으로 들어갔다. 부모님은 없었다. 죽어갈때 몸만 회복시켜준 무정한 사람들. 그냥 여기서 목을 그어서 죽은 나를 보여주는걸로 작별할까 생각했다가 너무 못 된 것 같아 방으로 들어갔다. 편지따위는 남기지 않는다. 내가 편지를 남기고 죽어야 할 정도로 난 가치있지도 않고 그 편지를 볼 사람들도 그리 가치있고 도움되는 인간들은 아니다. 장례식이라도 치뤄주면 다행이다. 다시금 한신영이 내 인생의 의미였단걸 깨달은 나는 미련 없이 그를 보러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방에 손을 넣어 커터칼을 찾으려했다. 빈 가방임에도 커터칼은 만져지질 않았다. 한참을 뒤적거렸지만 커터칼의 서늘한 감촉이 없었다. 혹시나 해서 가방을 탈탈 털어본 후에야 이해했다. 커터칼을 잃어버린 것 같다.

 어디서 잃어버렸을지 생각해본다. 학교는 아니다. 가방을 열지도 않았다. 길가에서 열지도 않았기에 잃어버릴 수 없다. 하지만 아침에 가방에는 커터칼이 있었다.  그렇다면 누가 범인일까.

 밤 새 한 고민이 무색하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빈 가방을 다시 메고 학교로 갔다. 아침 일찍이였음에도 누군가 와 있었다. 보드러운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는, 김독자가 있었다. 김독자가 문 여는 소리를 들었는지 내 쪽을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왔어?"

 거부감은 없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겹쳐보였다. 반장의 웃는 모습이 한신영의 웃는 모습과 겹쳐보였다. 나는 그 엿 같은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기분 나쁘게 말했다.

 "왜 인사를 해?"

 "응?"

 "왜 관심도 없는 사람한테 인사를 하냐고, 그냥 내버려.."

 "누가 관심이 없댔어?"

 김독자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살짝 증발했다. 웃는 상이였기에 웃음기는 조금 남았지만, 어딘가 진지한 기색이 흘렀다.

 "누가 관심이 없댔냐고."

 "아니, 그럼 나 좋아하냐?"

 "응, 그런데?"

 예상치 못한 말에 조금, 아니 많이 놀랐다. 뭐라 답할 겨를도 없이 그가 다시 싱긋 웃으며 말했다.

 "뭐, 그건 그거고 인사는 좀 받아줘라. 관심이 없어도 인사정도는 주고받잖아?"

 아직도 그 뜬금없는 충격고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내 애인은 한신영뿐이다. 2년전에도, 지금도 이 생각은 변함없다. 그가 죽었어도 내 애인은 바뀌지 않는다.




좀 많이 부족한 글이 나와버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