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시나리오를 넘었다. 100개의 이야기였다. 너와 생사를 함께 하고,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걸 해봤다.
그러나, 넌 뭐가 그리 불만이었는지 우리 곁을 떠났다. 또 우리를 위해, 자신의 절반만을 덩그러니 남겨놓고, 너는 또 떠나갔다.
너의 절반과 함께, 너를 찾으러 갔다. 내가 아는 너와는 다른 너와 함께, 너와의 추억을 되돌아 보았다. 다시 시작한 시나리오엔 너와의 추억이 남아있기에, 그리고 바꿀 수 있다 믿었기에 우리는 그 머나먼 여정을 다시 떠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말을, 난 납득할 수 없었다. 너가 닫은 이아기를 비집고 들어갔지만, 그곳에 있는건 너였지만 너가 아니었다. 듬직한 어깨, 차갑지만 따뜻한 얼굴, 묘하게 휘어지는 눈, 재수없게 씩 웃는 입을 가진, 내가 아는 넌 모두 흩어지고, 그곳엔 상처받아 죽어가는, 읽는 것 밖에 못하는 어린 아이가 있었다.
너였다.
처음으로 널 원망했다. '우릴 위해서 그런 걸거야.' 라는 말은 더이상 소용이 없었다. 나는, 누군가의 시선이 없어 세계가 멈춘대도, 그 지하철이 좋았다. 모든게 끝나고, 모두가 함께 웃으며 떠들던 그곳이 좋았다. 그곳이 내 ■■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네가 그곳은 네 ■■가 아니라고, 억지로 이야기를 이어나가게 했다.
행복한 순간에,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가 멈췄다는 사실도 모른 채, 영원히 멈춘 시간속에서 영원히 행복한 것이 더 좋았다. 이렇게 작아진 널 보는것 보단 훨씬 나았다.
그래. 우리는, 네가 준 ■■를 거절할거야. 다시 널 살릴거야. 우리가 파멸에 이르고, 영원히 불행해진다고 해도.
널, 살릴거야.
*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일어났다.
또 졸고 있었나..... 노트북에 머리를 박고 자고 있었다. 거울을 보니 내 이마에는 키보드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다시 한번 더 뛰면, 잘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왜 하필이면 여기야..... 짜증나게.
정신을 차리려 냉수를 한 컵 마신 뒤, 다시 원고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가 내 감정에 얼룩진 거짓일지언정, 나는 진심을 담아 글자들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몇줄 적은 뒤 그만 키보드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씨발...... 마감까지 얼마 안 남았다고 한수영......"
나 자신을 아무리 닦달해도, 난 글을 쓸 수 없었다. 아니, 글을 쓰면 쓸 수록 불안해졌다. 불안감을 가라앉히기 위해, 난 다시 계획을 점검했다.
'김독자는 자신의 파편을 온 세계선에 뿌렸다.'
'김독자는 자신이 상상한 것을 이 세계선에서 일어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파편 개인의 힘은 미약하기 때문에 우리 세계관에 이상현상이 생겨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최대한 많은 세계관에 일명 '전독시'를 퍼뜨려 파편들이 같은 상상을 하도록, 김독자가 돌아올 수 있도록 개연성이 움직이게 할 수 있도록 한다.'
사실 너무나 잔인한 계획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이 계획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아직 실패하지 않았다고 믿도록 하기 위해 유중혁을 다른 세계관으로 보냈다. 가능성이 극악하다는거,당연히 안다. 그러나 우리는 고작 우리의 망상은 위해 그를 저 우주 너머로 떠넘겼다.
「이것은, 단 한 사람의 독자를 |」
모니터의 커서가 깜빡거린다. 끝나가는 이야기는, 나를 불안하게 한다. 더 우리의 이야기를 넣고 싶다. 이 이야기를 완성하고 싶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완성했을 때, 그가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 무서웠다.
「이것은, 단 한 사람의 독자를 위ㅎ|
어느새 그녀의 손이 타자를 치고 있었다.
「이것은, 단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한 이약
그녀는 이야기를 쓰기 싫어서 쓰고싶지 않은 게 아니었다.
「이것은, 단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한 이야|
그녀는, 역설적이게도,
「이것은, 단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한 이야기이다
마침표 하나만,
「이것은, 단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한 이야기이다.|
홑낫표 하나만 더 넣으면,
「이것은, 단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한 이야기이다.」
한수영은 엔터를 누르고 싶지 않았다. 엔터를 누르는 순간 이 글은 영원히 그녀의 손을 떠나는 것이기에, 그녀는 엔터를 누르는 것이 두려웠다.
「이것은, 단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한 이야기이다.」|
한수영은 심호흡을 했다. 아무 문제 없을거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이것은, 단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녀의 손은,
-달칵
「이것은, 단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한 이야기이다.」
|
엔터를 눌렀다.
길게 쓸 생각 없었는데 2189자 ㄷㄷㄷ
오랜만에 써서 그런지 필력 ㅈ븅신 된거 같아서 앞으로는 자주 써야겠음 봐줘서 ㄱㅅㄱ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