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기를 머금은 바람이, 내리쬐는 태양이 무덥기만 했다.

다시 찾아온, 평화로운 여름이었다.


충왕종이 아닌 매미가 울고, 평범한 사람들이 웃으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비명소리가 아니라 웃음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은 괴수종을 두려워하는 대신 모기를 두려워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 가득한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삶에 대한 행복이었다.

다음에 다시 만나자 라는, 제발 살아남아달라는 애원이었던 작별 인사는 그저 다음에 다시 또 만나자라 말하고 있었고,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가득했다.


세지 못할 정도로 수많은 시간 끝에 마주한 것은, 그토록 바라던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눈에 비친 푸른 하늘이, 그저 푸를 뿐인 그 하늘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시선을 놓을 수 없었다.


"저희 수영장 가는 건 어때요?"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일상을 외면하던 그 아이가 평범한 일상을 말하고 있었다.

그 기분 좋은 변화에 다들 웃었다.

구하기 위해 죽여야만 했던 수 많은 삶을 살았던 회귀자도, 세계의 멸망을 바라고 망상 속에서 살아가던 소년도, 잃고 싶지 않다고 했던 탄피를 마지막까지 잃어야 했던 군인도, 살기 위해 친구를 죽여야만 했던 소녀도, 악마를 태우던 불로 모든 것을 불태운 대천사도.

그 후에 이계의 신격으로서 수 많은 세월을 버텼던, 모두가.

더 이상 등장인물이 아니게 된, 이제는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이.


"좋은 생각이야."

"야, 김남운. 수영복은 뭐를 입는 게 좋겠냐?"

"난 네가 어떤 걸 입든 지 다 예쁘다고 생각하는 데?"

"가도록 하지, 다들 짐을 챙기도록."

"짐은 제가 챙기겠습니다."


그 기다림 끝에 맞이한 안온한 일상은, 너무나 소중하고도 행복해서.

존재했던 모든 시간이, 수 많은 기다림으로 가득 채워졌던 그 시간 조차도 있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이 일상을 마주할 수 있었으니.



웃지 않던 아이가 그 누구보다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


"우와!"


흥분한 듯 높게 올라간 목소리가 즐겁다고 말하고 아이는 밝게 웃고 있었다.


"그렇게 좋아?"


"네, 저 수영장은 처음 와보거든요. 반 애들이 다들 수영장 갔다고 자랑해서 꼭 가보고 싶었어요."


웃으며 말하고 있었음에도 왜 흘러나온 말이 행복한 것 만은 아니었을까.

밝은 웃음과 대비되는 어두운 말에 잠시 말을 잃었다.


멸망하지 않은 세계였음에도 그 평범한 일상은 어째서 아이에게 사치일 수 밖에 없었나.

그 작은 행복조차 느껴보지 못한 아이를 보며 애써 웃어주었다.

그 아이가 위화감을 느끼지 않도록, 그 웃음이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


"그럼 꼬맹아, 형이랑 같이 물놀이 할래?"


그 추억이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만들어 주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말을 걸었다.


"... 지혜 누나, 혹시 유령 함대도 보여주실 수 있어요? 여기 물 많잖아요."


"어이, 꼬맹아?"


"저 꼬맹이 아니에요."


그 말을 한 대상이 대상인지라 곧바로 무시당했지만.

그렇다 해도 그 아이가 즐거워 보였기에 무시당한 이 또한 웃었다.


치이이익ㅡ.


물총에서 물이 나오는 소리가 들렸고 등은 물에 젖어 축축해졌다. 신난 듯이 웃고 있는 모습. 고개를 돌리니 물총을 쏜 사람은 즐겁게 웃고 있었다.


"유령 함대 대신에 물총으로 물놀이나 하자고."


"누나, 먼저 쏘는 건 반칙 아니에요?"


"원래 뭐든지 선빵필승이란다."


"쳇."


촤아악.

물이 뿜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물은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뿜어졌다.


"야, 김남운!"


"왜, 원래 선빵필승이라면서. 조금 전에 말했지 않았어?"


"... 그래서 한 판 하자고?"


"당연하지."


그 한마디가 끝나기도 전에 두개의 물총은 동시에 물을 뿜었다.


촤아악.


물이 뿜어지는 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크게 들려왔다.

휴식을 위해 갔던 여름의 수영장에서 그 누구보다도 신나게 놀고 있는 것은 그 둘 이었다.


그 둘을 바라보며 한 아이가 웃었고 누군가는 처음보는 광경에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아직 오지도 않은 점심 시간에 먹을 식사를 고민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수영장의 지도를 익혀두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곧 깨져버린 평화로움에 불과하더라도.


평화를 깬 것은 가지고 놀던 물총이었다.


물이 뿜어지는 소리가 문제를 일으킨 것은 아니었다.


물이 뿜어지는 소리는 이제 배경음과도 비슷해진 탓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다만, 그 물이 튄 대상에 문제가 있었을 뿐이다.


"어라?"


"...이지혜."


운이 좋지 않게도, 아니 절망스럽게도 그 물은 회귀자 였던 이에게 튀었다.


용암이 끓어오르는 듯한 목소리, 원래 용암이 끓어오른다면 곧이어 한계치에 도달하고 그 화산은 폭팔한다.

그리고 사람은 화산이 터질 것을 알게된다해도 바로 도망칠 수 없다.

그저 무력감만을 느낄 뿐.


1


2


3


화산폭팔의 카운트다운.

그 카운트다운은 3초 만에 끝이 났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물총을 쏜 이가 놀라 멈춰있던 3초가 지나자 그 화산은 결국 폭팔했다.


"잠, 잠시만!"


"이지혜, 넌 오늘 죽는다."


주변에 천사가 있던 탓에 몇 분전에 함께 물총을 쏘던 남운은 지혜를 향해 성호를 그어주었다.

그녀가 죽는 것은 명확한 기정사실이니 나름 상황에 맞게 명복을 빌어주었다.


그는 그녀와 함께 그 또한 이 일의 원인으로 인식되었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기에 그런 행동을 취했다.

알고 있었다면 빠르게 도망가지 않았을까.


"김남운, 너도 마찬가지다."


"나, 난 왜?"


"이 일은 전적으로 너와 이지혜의 잘못이다. 이 정도면 답이 되었겠지."


"아니 지혜는 알겠는 데 나는 왜 포함되냐고!"


"너와 이지혜가 함께 물총 놀이만 하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말은 언제나 몸보다 느렸고 어느새 주먹은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으아아악!"


"한 번만 봐주세요!"


"소용없다."


둘의 각기 다른 비명과 냉혹한 목소리만이 수영장에 울려퍼졌다.


"현성 아저씨, 우리엘. 그냥 저희끼리 안전하게 물놀이해요. 저기에 끼면 답 없어요."


다른 셋은 그저 저 셋을 즐겁게 구경하며 물놀이를 즐겼다.


언제나 그렇듯 조금의 문제가 있었지만 그 끝은 평화로운, 익숙한 그들의 일상이었다.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