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독자, 김남운. 너희는 내신 생각은 조금도 안 하는 군,"

 유중혁이 짜증난다는 듯 한숨을 쉬고 스마트폰에 띄운 메모장에 내 이름과 내 옆에 있는 김남운의 이름을 적었다. 원망스럽게 김남운 쪽을 바라보자 김남운이 내 눈빛을 피했다.

 아침을 상쾌하게 맞이한 후 대충 가방을 들춰 맨 후 김남운의 집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그렇게 30분. 조회 시간까지 20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버티다 못해 전화를 걸었다.

 제법 긴 시간동안 연결음이 들리더니 이내 김남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맑은 목소리가 아닌, 잠에 취한 듯한 낮고 어눌한 목소리가 들렸다. 등골이 싸해진 감각을 받은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에게 물었다.

 "야, 혹시 지금 일어났냐?"

 머리를 긁는지 작게나마 벅벅 소리가 나고 이내 김남운이 당황한듯 소리쳤다.

 "시발! 5분만 기다려!"

 척이면 척이다. 나는 한숨을 쉬며 속으로 김남운의 욕을 했다. 나는 끓어오르는 화를 삭히며 선언했다.

 "5분 지나면 간다."

 그러자 우당탕 소리가 났고, 김남운이 화장실에 들어가며 말하는 듯 소리가 살짝 울렸다.

 "딱 기다려!"

 그렇게 5분···이 지나고 가려 하는 시점에서 그가 뛰쳐나왔다. 머리는 말리지도 못했는지 물기만 닦여져 있는 상태였다.

 그 덕분에 놓친 버스를 기다리느라 7분, 버스를 타고 학교까지 가는데 5분, 내려서 올라가는 데까지 10분이 걸렸다. 덕분에 지각을 해버린 우리 둘은 하필 선도부장인 유중혁에게 걸린 것이다.

 결론적으로는 그를 기다린 내가 미련했다. 하지만 원인은 김남운이 아닌가. 나는 그를 탓할 권리가 있다. 탓한다고 지각을 한 사실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멍청한 놈들, 너희는 벌점을 몇 번 받는 거지? 이러다가는 대학교도 못 가겠군."
 잠시만, 내가 저 놈한테 그런 말을 들을 정도로 막 다니진 않았다. 공부는 커녕 펜 한 번 잡지 않는 유중혁에게 일침을 듣다니. 정말 기분이 묘했다.

 이러나 저러나 유중혁은 내 생각을 모르는지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고 운동장을 가르켰다.

 "학생부장의 명령이다. 지각한 놈은 늦은 분당 운동장 한 바퀴를 뛰라더군."

 젠장. 원망의 원망을 담은 눈초리를 김남운에게 쏘아대자 김남운이 나를 피해 먼저 운동장으로 향했다. 후회를 담아 그의 등을 바라보다가 뛸 준비를 했다.

 그때 뒤로 유중혁의 냉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멈춰라."

 순간 나에게 한 말인 줄 알았다. 그래서 뒤를 돌아보자 어제도 보았던 어깨부근 까지 오는 단발이 보였다.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제법 단정하게 일직선을 이루는 머리카락의 길이들이 보였다. 고양이가 연상될 정도로 차가운 인상에 눈 밑에 자그마한 점 하나.

 "아, 씨. 좀 들여 보내주라, 얼마 지나지도 않았구만."
 유중혁이 시간을 보더니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아쉽게도 10분이나 지났군, 뛰어라."
 그녀가 짜증난다는 듯 빨고 있던 레몬사탕을 이빨로 아그작 씹고는 내 쪽으로 걸었다.

 "김독자, 너도 지각이냐? 좀 빨리빨리 다니지 그래?"
 나는 그녀에게 뒤쳐지지 않도록 적정 속도를 유지하며 말했다.

 "수영아, 네가 할 말은 아닌데?"
 "난 많은 일이 있었단 말야, 지나가다가 운석도 보고, 액체같은 벌레도 보고···."
 "넌 소설가란 애가 그렇게 상상력이 없냐?"

 한수영, 내 소꿉친구인 그녀는 선생들에게 꽤나 눈엣가시다. 매번 지각을 하면서도, 수업시간에는 졸기까지 하는 말 그대로 불성실한 학생의 표본이다. 하지만 그녀를 혼낼 구실은 없다. 그녀는 이미 소설가라는 직업을 가졌다. 그것도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있는 소설 사이트에서 굳건하게 1위를 지키고 있는 소설가라는 점에서 그녀는 선생들에게 아무런 소리를 듣지 않는다. 그런 사람 입에서 나온 변명이 저런 거라니. 소설가란 직업의 품위를 혼자 다 떨어뜨리는 것 같다.

 "닥쳐, 나도 안 속을 거 아니까."
 이런저런 잡담을 하며 느릿느릿 걷자 유중혁이 소리쳤다.

 "얼른 얼른 뛰어라! 그러다간 1교시도 다 지나가겠군!"

 그 고함에 열심히 뛰고 있던 김남운도, 느긋하게 걷던 한수영과 나도 속도를 낼 수 밖에 없었다.

*

 "유중혁 그 새끼는 뭐가 문제라서 지랄이냐?"

 한수영이 계단을 비틀거리며 올랐다. 투덜대는 그녀에게 뭐라 해줄 말이 없어 그저 실실 웃고만 있자 한수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내게도 투덜거렸다.

 "넌 뭐가 좋아서 실실 대냐?"

 "아니, 아무 것도."

 답을 하고 다시 실실 웃자 한수영이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넌 옛날부터 그러더라."

 그 말에도 웃으며, 오히려 더 빠르게 올라가자 한수영이 한숨을 쉬고는 다시 낑낑대며 따라 올라왔다. 그 것에 맞춰 더 빨리 올라간 후 뒤돌아보자 그녀가 경악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안 힘드냐?"
 "별로."
 "미친 새끼."

 반 즈음 도발하듯 어깨를 으쓱거리자 한수영이 이를 꽉 깨물고 계단을 올랐다.

*

 시작부터 운동장을 뛰고 시작해서 그런지 수업이 귀에 안 들어왔다. 그렇다고 잤다가는 시험을 망칠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대로 수업을 듣는다 해도 들릴 리가 없다.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 고민을 하던 도중 한수영이 갑작스레 옆에 앉았다.

 "아까는 안 힘들다더니, 이젠 졸리냐?"
 덕분에 잠은 조금 달아났지만 그래봤자 또 졸릴 게 분명하다. 나는 힘 없이 눈을 반 즈음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한수영이 웃음기를 머금은 채 말했다.

 "그으래? 그렇단 말이지?"

 또 뭔 짓을 할까 겁났다. 어린이집 때부터 그녀는 꽤 도가 지나친 장난을 친 경력이 있기에 각오를 해야 했다. 그리고 이윽고 입술로 뭔가 단단한 게 느껴졌다. 턱을 움직여 입을 닫을까 고민했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빠르게 진입한 그 것이 혀에 닿자 새콤한 맛이 났다. 혀로 느껴지는 맛과 모양, 그리고 입술에 걸쳐진 막대의 감촉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이건 사탕이다. 그것도 그녀가 즐겨 먹는 레몬사탕.

 "맛있냐?"
 나는 그 새콤한 맛에 잠이 깨어가는 걸 느끼며 말했다.

 "웬 일이냐? 이런 걸 주고."
 한수영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길게 키득 거리더니 이어서 말했다.

 "맛있을 거야, 이 누나가 먹던 거니까."
 어쩐지, 그녀가 정상적인 걸 줄리가 없지. 뭐, 이 것도 비교적 정상이지만.

 한수영이 여전히 키득거리며 놀리듯 말했다.

 "이 누나랑 간접키스 하니까 설레지?"
 레몬사탕을 어금니로 깨물어 부수며 답했다.

 "설레기는, 5살 때는 청혼도 했으면서."
 "야, 야! 그거 말 안 하기로···!"
 "뭐라 했더라? '나는 독자랑 결혼해서 애를 셋 낳을꺼야!' 였나?"
 그러며 눈을 힐끔 떠 그녀를 보자 그녀가 주먹을 꽉 쥐었다가 내 멱살로 손을 옮겼다.

 "그때는 어렸으니까, 그러니까 잊으라고 좀!"

 나는 장난스럽고 과장되게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잊겠어? 그 설레는 순간을···."

 "아 좀!"

 그 후 남은 5분 간 그녀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녀를 놀리느라 잠에서 깰 수 있었다.




 평소보다 볼품 없게 써지기는 했으나 재밌게 읽었기를 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