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독자 컴퍼니는 만장일치로 김독자에게 긴고아를 씌우는 것을 동의했다. 유중혁 역시 드물게 자신의 의견을 표출한 모습에 김독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당신은 ‘긴고아의 죄수’가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당신의 대부분의 행동은 ‘김독자 컴퍼니’에 의해 제한될 수 있습니다]
문득 처음 긴고아를 썻던 때가 떠올랐다. 거대 설화 ‘서유기’ 이후 다소 거칠긴 했지만 동료들의 환대를 받으며 돌아왔을 때. 그때 독자는 동료들에게 더없는 ‘소중함’을 느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함께 시나리오를 이겨나가고 싶었고 단 한명의 희생자도 용납되지 않았다. 자신의 목숨을 걸어서라도.
하지만 지금, 자신은 진심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 없었다. 어쩌면 그들의 세상을 끝장낸 ‘악마’로서, 독자는 그들의 눈을 바로 쳐다볼 자격이 없었다. 독자는 문득 자신의 머리 위에 씌여진 것이 기묘하다고 생각했다. 동료들은 자신이 다시 멋대로 사라질까봐 감시하기 위해서 씌웠을 것이다.
하지만 독자는 다시 동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을 할 수 없었다.
감히.
동시에 자신이 망쳐놓은 세계를 마음 편히 돌아다닐 수도 없었다.
감히.
긴고아 따위가 없어도.
[당신의 화신체 회복률은 98%입니다]
독자의 몸은 빠르게 회복되었다. 오랜 기간 사용 되지 않은 탓에 심각하게 빠져있던 살과 근육이 다시 탱탱한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물론 독자의 외출을 전면 봉쇠하고 모든 의식주를 챙겨주었던 동료들의 노력이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비정상적인 회복능력이 설명되기 어려웠다.
‘가장 오래된 꿈이라서 그런가’
독자는 자신이 받는 모든 것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주기적으로 제공되는 식사와 동료들의 문안, 그 속의 애정. 그리고
자신의 ‘생명’까지도…
독자는 단 한 순간도 자신이 가장 오래된 꿈이라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망각할 수 없었다. 그 사실은 독자의 마음 속에 깊이 틀어박혀 매 순간 독자를 처절한 죄책감 속에 밀어넣었다. 가장 오래된 꿈으로 살았던 평생 동안.
지금까지도.
톡톡. 가벼운 노크소리가 스르르 열리는 방문에 흩날렸다. 어디 안가고 잘 누워있네. 수영이 가벼운 미소를 머금으며 가방을 독자의 침대 옆에 내려놓았다. 잠깐 머리 좀 줘봐
“설화력 수치가 많이 떨어졌네”
떨어지는 속도가 심상치 않은데? 우리 몰래 이상한데에 힘쓰는거 아니야? 한수영이 쿡쿡 웃었다. 수영의 시선이 긴고야를 향했다가, 호선을 그리며 독자의 눈을 담았다.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그 눈을 피했다. 무심결의 행동이었다. 그 눈이 자신을 꽤뚫어보는 것 같았으니까. 수영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독자의 머리가 휙 돌아갔다.
내 눈 똑바로 봐.
이내 놀란눈이 수영을 향한다.
수영은 독자의 심경에 큰 변화가 생긴걸 바로 눈치챘다. 누구보다 독자를 유심히 지켜봐왔으니까. 김독자는 그 전과 차이가 없어보였다.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전과 같이 행동했다. 그 간의 공백이 마치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수영은 위화감을 느꼈다. 이전의 김독자를 ‘연기’하는 것만 같았다.
김독자가 이상할 정도로 그것과 비슷해 보여서.
마치 자신의…
그래 마치 자신의 ‘아바타’ 같아서.
“넌 왜 그렇게 사람 말을 못 알아듣냐”
죄책감. 수영은 김독자의 마음에 여전히 죄책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니 잘못이 아니라고 했는데”
수영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좀 편하게 살면 덧나?”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삶을 해쳐왔으면서
“왜 그렇게 자신을 용서하지 못 하는건데”
왜 자신은 끝까지 편해지지 못하는지
수영은 독자의 눈을 쳐다보았다. 공허한 눈. 제가 아는 김독자의 눈은 저런 눈이 아니었다. 항상 희망이 깃든, 자신감이 가득 찬 눈이었다.
수영은 독자의 눈이 언제 저렇게 변해버렸는지 알고 있었다. 지하철, 그곳은 지독히도 깜깜했다. 그리고 자신의 어린 시절, 아니 세계를 파멸로 이끈 괴물을 지켜보던 독자의 눈도.
“난 용서받을 자격이 없어”
한수영은 눈을 크게 떴다. 무슨말이냐며, 평소와 같이 능글맞은 웃음을 지을 줄 알았다. ‘연기’할 줄 알았다.
독자의 표정이 조금 변했다. 그 순간 수영은 차라리 평소처럼 공허하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독자의 얼굴 위로 그늘이 졌다. 수영은 울컥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어째서
이토록 슬퍼보이는지
힘들어보이는지
수영은 숨을 들이켰다. 이 방 문을 열때 다짐했던 바를 되새겼다. 이를 악 다물었다.
“김독자 잘들어”
표정에 독기를 지어냈다.
“니 잘난 죄책감, 그게 그렇게 크다면”
이번에도 내가 해야했다.
“그 죄책감의 깊이만큼 사회에 희생해. 피해를 복구시키는데 힘쓰라고. 아직 서울은 복구가 미흡하거든”
사회 따위 어찌되어있던 김독자가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럴 자격 있으니까
“어디사는 누구씨 찾으려고 우리가 꽤 오래 자리를 비웠거든”
하지만 괜히 비꼬며 소리쳤다.
“자괴감에 빠질 시간에 죄책감이나 덜어내려고 하라고”
김독자의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었다.
“더이상 괜찮은 척 연기하는 꼬라지 못 봐주겠으니까”
이것 봐. 또 또 나 나쁜 사람 만들지
김독자는 항상 자신만 나쁜사람 만드는 것 같다. 73마계에서도 99번 시나리오에서도. 지금도
하지만 우습게도 자신은 또 주어진 역할을 포기할 수 없다. 무릇 작가는 독자가 원하는 대로 하는 법이니까.
그러니까, 몇번이고 나쁜 역할 해줄 테니까.
저번처럼 능글맞은 웃음이라도 지어줘.
그런 표정 보기 힘드니까.
추천과 댓글은 큰 힘이 됩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