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자기 자신의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라고 말한다.

셀레나 킴은 그것을 믿지 않는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는 주인공과 조연이 확실하게 나뉘어져 있는 소설 속 세계니까.

 

 

그것을 알려준 사람그러니까 김독자는 처음에는 그저 유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안나가 인정한 적이니까무엇보다 이리스를 살려준 은인이니까.

 

 

그저 고맙다고만 생각했다설령 나중에 적으로 맞닥들이게 되더라도 지금은 은혜를 입었고 감사한 마음은 결코 거짓이 아니니까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은혜를 입었다면 언젠가 갚아야 하는 게 도리인 것이니까.

<스타 스트림>이라는 세계를 살아가기에는 참으로 어리석은 신념이다.

 

 

그러던 어느 날그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미식협에서 당당하게 외치던 그의 모습이 생각났으니까.

 

 

[나는, 이제껏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설화를 만들 겁니다.]

 

 

성좌들에게 둘러 쌓여 그렇게 외치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렇게 말하고서 이렇게 빨리 죽으면··· 솔직히 꼴 사납지 않은가.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그는 절대 이렇게 빨리 죽을 위인이 아니다.

 

 

‘······.’

 

 

하지만만약에정말 일만분의 일의 확률로라도그가 죽은거라면.

그렇다면···.

 

 

“···은인이긴 해도 적을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셀레나는 그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고쳤다.

 

아직은혜를 갚지 못했는데.

 

 

 

 

 

 

 

 

 

 

 

 

*** 

 

 

 

 

 

 

 

 

 

 

 

 

 

 

얼마 뒤김독자가 돌아왔다.

그것을 알려준 안나 크로프트나의 주군은 기뻐하지도슬퍼하지도분노하지도 않았다.

 

그저 무표정을 고수하며 사실만을 전달하고 떠났다.

 

 

그리고 그것을 들은 자신도 별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역시 이렇게 쉽게 죽진 않는 사람이구나.

 

 

그래도 은혜를 갚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금새 기분이 좋아졌다.

 

 

 

 

 

 

 

 

 

 

 

 

 

 

*** 

 

 

 

 

 

 

 

 

 

 

 

 

 

 

 

 

어느 날갑자기 김독자가 나에게 만남을 요청했다.

정확히 말하면 나뿐만 아니라 안나와 이리스총 4명이서 만남을 가졌다.

 

 

다시 만난 그의 얼굴은어딘가 몹시 지쳐 보였다.

다크서클이 진하게 내려왔고 항상 별처럼 밝게 빛나던 그의 눈동자는 생기를 잃었다.

 

 

그런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정말 충격적이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던 세계그것이 모두 하나의 소설이었다는 이야기.

 

 

“···놀랍긴 하지만 충격적이진 않군요.”

 

 

“······그렇습니까?”

 

 

이미 정체불명의 시스템과 성좌라는 존재가 나온 순간부터 이러한 생각을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닙니다다만애써 부정한 것이죠 애초에 지금도 믿기지가 않고요.”

 

 

“···하하하······. 제게 할 말은 없으십니까?”

 

 

굳이 꼽자면 왜 저희에게 굳이 그 사실을 알려주신 걸까요엄연히 당신과 우리는 적인데.”

 

 

그러한 사정이 조금 있습니다. ···더 이상 숨기지 않기로 했거든요동료에게 있어서도 나에게 있어서도당신들에게는 이 사실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안나는 동요하긴 했지만 그것이 표정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존경스러웠다나는 혼란스러워 몸을 가누기도 어려운데.

 

 

만약 이 세계가 정말 소설이라면 이러한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는 거겠지.

나와는 사는 세계가 다른 사람들.

 

 

나의 한계는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자신은 누군가의 앞에 서서 그들을 이끄는 것보다 한명의 주군을 모시는 일이 더 어울린다.

 

 

그와 추가로 약간의 잡담을 나누고 우리는 금방 자리에서 일어났다.

애초에 그와 우리가 오랫동안 잡담을 나눌 만큼 친근한 사이도 아니니까.

 

 

돌아가기 위해 <아스가르드>에서 지원해준 페라르기니에 타기 전해야할 일이 떠올랐다.

 

 

은혜를 갚지 못한 것

그리고 동시에 초췌한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솔직히 말하면나는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나는 그보다 힘이 약하고재력도 떨어지며무엇하나 그보다 우세한 것이 없다.

 

 

하지만지금이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이 세상의 모든 근심은 다 짊어지고 있다는 그 얼굴.

그 짐을 조금 덜어준다면은혜를 충분히 갚은게 아닐까라는 생각.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는 건 자신 있어.’

 

 

안나에게 사정을 설명하고나는 김독자가 있던 자리로 달려갔다.

안나는 한숨을 쉬면서도 나를 막지 않았다.

 

 

5분 정도 달렸을까

난간에 기대어 담배를 피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눈이 내린 것처럼 새하얀 피부와 다크서클이 내려온 얼굴로 담배를 피고 있는 그의 모습은 퇴폐적인 인상을 주었다.

 

 

“···셀레나방금 돌아가신 거 아니었습니까?”

 

 

···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가기는 아깝잖아요조금 상대해주세요.”

 

 

그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나는 그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매캐한 담배 냄새가 폐를 채운다.

 

 

여유 있다면 한 대만 주실 수 있나요?”

 

 

“···당신 담배도 피웁니까?”

 

 

헤헤안어울리죠.”

 

 

“······솔직히 조금 그렇습니다하하하...”

 

 

그 후에는 시답잖은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좋아하는 음식은 뭐냐취미는 무엇이냐 등등... 대충 시간을 보내다가 떠났다.

 

 

즐거웠다.

이렇게 마음 편히 사람 대 사람으로 대화한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으니까.

 

가장 경계해야할 적 중 하나지만통하는게 많아서 그런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분위기를 봐서는 그도 나름대로 즐긴 것 같았고.

 

 

본래 목적은 새까맣게 잊어버렸지만요···.”

 

 

결국 이번에도 은혜를 갚지는 못했다.

그의 얼굴이 조금은 펴지긴 했지만 이걸로는 자신이 만족하지 못했다.

 

 

다음번에는 꼭 확실하게 해야지.

 

언젠가 자신도 모르게 김독자와의 다음을 계획하는 그녀였다.

 

 

 

 

 

 

 

 

 

 

 

 

*** 

 

 

 

 

 

 

 

 

 

 

 

 

 

 

우연이었다.

경매장에서 그를 만난 것도.

 

 

우연이었다.

난생 처음그가 정말 행복하다는 듯 미소 지은 모습을 본 것도.

 

 

그건 또 뭐야내려놓아야죠 수영 어린이?”

 

 

꼴깝을 떨어요내 돈으로 살 거니까 신경 꺼.”

 

 

이젠 하다하다 레몬 사탕으로 만족 못해서 생레몬을 먹는 거냐안 셔?”

 

 

이것 봐 입에 대기만 했는데 침고여.”

 

 

그의 옆에는오른쪽 눈 아래에 매력적인 눈물점을 가진 단발 머리의 여자가 그에게 입을 아하고 벌리며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진짜네엄청 고였다.”

 

 

근데 은근 중독적임자꾸 손이 가.”

 

 

어으난 도저히 생레몬은··· 어 셀레나?”

 

 

그게 누구?”

 

 

안나 크로프트의 동료나쁜 사람은 아니야.”

 

 

단발 머리의 여자가 나를 바라보며 위아래로 훑었다

충분히 기분이 나쁠 수 있는 행동이었지만 어째서인지 화가 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지금 나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가슴에 못이 박힌 것처럼무언가가 쿵하고 내려앉았다.

 

 

한수영. ‘김독자 컴퍼니의 실질적 지배자다별로 반갑지는 않네.”

 

 

“······. 셀레나 킴이라고 합니다···.”

 

 

그 후로는 무슨 대화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김독자와 한수영의 말이 알 수 없는 외계의 언어로 들렸다.

 

 

기억하는 것은김독자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다는 것.

그뿐이었다.

 

 

 

 

 

 

 

 

 

 

 

 

 

 

*** 

 

 

 

 

 

 

 

 

 

 

 

 

거처로 돌아왔을 무렵에는 이미 저녁이었다.

새카만 밤하늘에 별들이 환한 빛을 내며 자신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저 어딘가에 그의 별 또한 있을 것이다.

 

 

“···한심하네요.”

 

 

사실자신도 알고 있었다.

인정하기 싫어서자신이 없어서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

 

 

당신이 좋아요너무나도 좋아요···.”

 

 

하지만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란 걸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마음을 숨긴다늘 그래왔던 것처럼 그저 지나가는 상냥한 사람으로 기억되도록.

 

 

괜히 감정을 드러내서그 지나가는 상냥한 사람으로도 기억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언젠가 봤던 로맨스 소설이 생각난다.

살아가는 것에 지쳐 무너진 여자 주인공과 다른 사람들의 과분한 기대를 받아 지쳐가는 남자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그것의 주인공이 될 사람들은 분명 그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이들이겠지.

아마 이 세계의 기반이 되는 소설에서도자신은 그닥 중요한 역할은 아니었을 것이다.

 

 

 

은혜를 갚는 것은 그만 두기로 했다.

사실 그것은 조금이라도 더 그의 옆에 있고 싶었던 핑계에 불과했으니까.

 

 

 

눈을 감고조용히 그와의 첫만남을 기억해 낸다.

그가 처음으로 내게 웃어줬던 날미식협에서 나를 도와준 날시답잖은 잡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던 날.

 

 

모두 나에게 있어서 어떤 보석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다.

 

 

그 이상을 바라는 건 아마 제 욕심이겠죠.”

 

 

이것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이야기.

 이 거대한 이야기 속에서 나와 그는 이어질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분수에 맞지 않는 사랑이니까.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의 구원이 될 수 있기를.

당신에게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그녀는 밤하늘 아래에서 어떤 때보다 간절하게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