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한 세계의 대혼란이 끝나고, 세계는 차츰 복구되어갔다.


혼란의 영웅들은 하나씩 잊혀져 갔고, 영웅들 역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예언자, 안나 크로프트도 마찬가지였다.


혼란을 상징하는 붉은 역안을 한 그녀는 지금 어느 한적한 계곡에 있었다.


계곡물에 발을 담근 그녀는 스타 스트림이 존재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흐르는 물결이 그녀의 발목에 감겨 나갈 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아픈 기억들이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구원의 마왕.


김독자.


그리고 그의 동료들.


대혼돈이 종식된 후, 서로에게 기대며 살아가는 영웅들이었다.


안나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처가 깊어지는 듯했다.


기댈 곳 하나 없는 안나에게는 스쳐가는 고통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큰 아픔이었다.


사실 김독자는 안나에게도 큰집에서 살자고 제안했었다.


멸망 속에서 감정 따위는 사치라 여기며 살아온 그녀였지만,


세계가 다시 돌아온 지금은 김독자를 향한 감정을 마음껏 누리고 싶었던 그녀였기에


안나는 김독자의 제안을 수락했었다.


그 순간부터, 안나는 김독자의 미래를 보지 않았다.


자신의 사랑만큼은 온전한 안나 크로프트라는 사람으로 이뤄내고 싶었기에


사랑하는 사람의 미래를 읽어서 다가가고 싶지는 않았다.


*


사흘이나 흘렀을까,


안나는 자신의 결정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김독자가 중대 발표를 하겠다며 사람들을 모으더니


한수영과 사귀기로 했다고 말했다.


안나는 그 길로 집을 나왔다.


김독자를 그리던 밤들은 자신에겐 욕심이란 걸, 사치라는 걸 너무나도 아프게 알아버린 안나는 정처없이 떠돌았다.


자신의 운명이 김독자의 주위를 맴돌아 그의 앞길을 막지 않게,


자신의 사랑이 김독자에게서 벗어나 더 아프지 않게,


김독자의 곁에서 떠났다.


*


지금도 안나는 아픔에서 해방되지 못했다.


내뱉는 숨마다 가시가 돋친 듯한 고통이고


마음 깊은 곳으로 숨어든 사랑은 지우려 할수록 아파왔다.


안나는 이 아픔을 지우고 싶었기에


힘들 때마다 부르던 김독자가 들려준 노래를 불렀다.


"언젠가, 그대 곁에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가 언제라도 나를 잊지 않았다면."


"그댈 그린 날들이 내게 마지막 남은 기쁨이었단 걸."


"내가 택한 운명이, 다른 무엇이 아닌 오직 그대뿐이란 걸."


"이제 그대 곁에서 영원히."


가사를 천천히 곱씹었다.


어쩌면 이렇게 자신의 상황과 딱 맞는지,


안나는 놀라워할 뿐이었다.


하지만 하나, 자신과 맞지 않는 가사가 남아있었다.


이제 그대 곁에서 영원히.


어떻게 그대 곁에 영원히 있을 수 있을까?


나는 더 이상 그대 곁에 갈 수 없는데.


너를 보기만 해도 마음이 너무 아파서


너의 주변에도 있을 수가 없는데.


안나의 머릿속엔 한 가지 해답만이 맴돌았다.


마음이 아프지 않으려면


이 세상에서 벗어나면 되지 않을까?


명계에서 네가 올 때까지 너를 생각하면서 한없이 기다리다가


네가 오면 그때부터 영원히 같이 있자.


구원의 마왕을 기다리면서 아프지 않을 만큼 영겁의 시간을 지내자.


안나는 다시 일어나 걸었다.


명계를 향해서.


언젠가 만날 김독자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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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안나 -> 독자니까 독안임. 캐붕 / 오타 및 맞춤법 등 / 개연성 지적 감사히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