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울 수 없는 상처

 

 

진짜 짜증나헤어져!!!”

 

나는 김독자와 커플로 맞췄던 반지를 벗어 던지고 문을 쾅 닫았다.

방에서 김독자가 서글피 우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몹시 화가 났기에 무시하고 집을 나오곤유상아의 집으로 향했다나와 김독자는 연애를 시작한 뒤로매주 큰 집에서 모이기로 약속하고 우리는 따로 나와서 살았다.

오늘은 큰 집에 나와 김독자 빼고 아니…… 정확히는 이제’ 김독자만 빼고 모두 모여 있었다내가 씩씩 대며 문을 쾅 열고 들어오자일행들 모두 놀란 눈치였다그리고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

 

나는 오늘 그날이었기에 몹시 기분이 안 좋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날인 도중 대학교에서 별 같잖은 일을 겪었고지금은 원고도 제대로 쓰이지 않아 제대로 화난 상태였었다그러던 도중 김독자가 집에 돌아왔고나는 짧게 인사를 하고 계속 일에 집중했다.

 

수영아 보고 싶었어.”

나도나 지금 바쁘니까 이따가.”

 

기분도 안 좋았고 일을 하고 있었기에 김독자에게 유독 쌀쌀하게 굴었다.

하지만 난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김독자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나에게 제대로 화낸 적이 없었다그래서 이번에도 다 받아 줄줄 알고 나쁘게 대했다.

하지만 큰 오산이었다내 행동에 기분이 많이 상한 김독자는 나에게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았고내 일이 다 끝날 때까지 건드리지도 않았다.

많이 서운했지만그래도 나를 배려해주는 것 같아 빨리 일을 끝내고 김독자에게 안기려고 일에 집중하는 순간.

 

.

 

무언가가 건드리는 소리가 났고집에 들어온 모든 전원이 꺼졌다.

작업을 하던 나는 갑자기 컴퓨터가 꺼졌고제대로 이성의 끈이 끊어진 나는 김독자를 타박했다.

 

김독자뭐하는 거야지금 한창 바쁜데!”

나 아니야!”

여기 너 말고 누가 있는데너잖아!! 오늘 진짜 짜증나 죽겠는데…….”

 

정말 김독자가 한 행동이 아닌길고양이가 전선을 건드려서 정전이 된 것이었다제대로 상황 파악도 안 한 나는 계속 김독자에게 화풀이를 했다.

참다 참다 폭발한 김독자가 나에게 성질을 냈다.

 

아 진짜나 아니라고어떻게 내 여친이라는 사람이 남친을 의심해?”

그 남친이 뭐 대수라고아 짜증나내가 왜 너랑 사귀었는지…….”

?”

 

그 순간 나는 말이 헛 나왔다는 것을 깨달았지만내 알량한 자존심이 계속해서 그를 건드렸다그리고 나는 옷을 입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너 진짜 싫어나 갈 거야!”

어디 가게……. 밥도 안 먹었잖아.”

아 몰라신경 꺼헤어져 이제.”

 

그렇게 나는 반지를 벗어 던지고 집을 나오게 된 것이다.

내 이야기를 들은 일행들이 눈치를 살피며 나에게 물었다.

 

…… 수영아너가 그날이라 이해는 가지만 독자 씨도 많이 힘들었을 거야.”

맞아독자 씨 요즘 엄청 돌아다니는 거 알잖아.”

맞아요요즘 잘 못 드셔서 그런지 많이 마르셨던데.”

 

유상아정희원 이설화가 말했고신유승이 걱정하는 말투로 말했다.

 

근데…… 커플 반지 벗어 던지고 오는 건 조금 심하지 않았을까요?”

 

솔직히 나도 계속 반지를 벗어 던진 게 신경이 쓰였다집을 나오면서 김독자가 훌쩍이는 목소리가 들렸으니까하지만 나는 오늘 뭘 잘못 먹었는지 계속해서 배째라는 식으로 나왔다.

 

아 몰라몰라머리 아파나 오늘 자고 간다.”

 

그렇게 나는 머리를 짚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유상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에휴독자 씨괜찮겠죠?”

제가 중혁 씨한테 밥 해드리고 오라고 보냈어요.”

그래밥은 제대로 먹어야지.”

그보다 수영 언니 이번에는 절대 아저씨에게 안 질 기세 같은 데요

알아서 하겠지우리도 이만 쉬자.”

 

*

 

한수영이 나가고 나는 정전이 된 집을 고쳤고그녀가 벗어 던지고 간 반지를 주워 소중히 간직했다조금 진정이 된 나는 소파에 누워 있었다.

얼마 안 지나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유중혁이었다.

 

뭐야유중혁?”

아직 밥 안 먹었을 것 같아서 이설화가 보냈다잠시 앉아있어라.”

 

유중혁은 집에 들어온 채요리를 시작했다.

고소한 냄새와 맛있는 냄새가 집 전체를 풍겼다.

 

다 됐다와서 먹어라 김독자.”

잘 먹을게.”

 

메뉴는 김치찌개와 매운 제육볶음이었다.

나는 식탁에 앉아 밥을 먹으려는 순간음식을 보고 헛구역질이 나왔다.

 

우읍―!”

김독자왜 그러지냄새가 이상한가?”

 

유중혁은 내 등을 토닥였다.

속이 점점 울렁거렸고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우읍―!!!”

 

헛구역질이 더욱 심해지자 유중혁이 언성을 높이며 내 등을 치기 시작했다.

 

김독자무슨 일인가!”

 

나는 희미해져 가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고 유중혁에게 말했다.

 

중혁아…… 정말 미안한데 이만 가주라.”

김독자하지만…….”

부탁할게.”

 

유중혁은 말없이 나를 잠시 쳐다보다가 이내 짧게 한숨을 내쉬고 옷을 챙겨 입었다.

 

알겠다밥에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라금방 만들어 오겠다.”

 

그렇게 유중혁이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갔다.

나는 몰려오는 두통을 참고서 침대로 향했다.

조금 어지러운 나는 잠시 낮잠을 청했다그 뒤로 계속해서 나는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

 

중혁 씨 왔어요?”

 

큰 집으로 돌아온 유중혁을 이설화가 맞이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어딘가 안 좋아 보였다.

 

중혁 씨무슨 일 있으셨어요?”

이설화…….”

 

유중혁은 무거운 표정으로 김독자의 집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묵묵히 듣던 이설화가 입을 열었다.

 

아마 단순 구토증일 수도 있어요큰 병은 아닐 테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푹 쉬고 나면 괜찮아질 거에요.”

그렇군.”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됐다지금 이설화는 김독자의 상태를 살폈어야 했다.

 

*

 

김독자와 한수영이 싸운 지 벌써 3일째 되었다.

 

한수영너 진짜 독자 씨랑 화해 안 할 거야?”

아 몰라말 시키지 마나 바빠.”

 

아직 큰 집에서 지내는 한수영은 그에게는 전혀 관심 없다는 말투로 말했다.

그녀의 모습을 보는 일행들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

 

하아…… 하아…….”

 

조금 휴식을 취한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유중혁이 요리를 하며 조금 남았던 설거지의 냄새가 났었다.

남은 식기들을 설거지를 하던 도중나는 심장이 크게 뛰기 시작했다.

 

……?”

 

쨍그랑―!!!!

 

접시가 떨어져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하아…… 하아……. 우욱―!”

 

나는 또 계속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식기 도구 중식칼이 하나 있었다그리고 옆에는 유중혁이 요리를 하고 간 제육볶음이 있었다나는 식칼을 쥐는 순간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하아…… 하아…….”

 

아니야아니야.’

 

머리가 욱신거리는 나는 비틀거리고 있었다,

 

잘 참아왔잖아잘 버텨왔잖아.’

 

푸욱―!

 

손에 들고있던 식칼이 떨어졌고바닥에 있는 공에 박혔다.

속이 울렁거리고 눈앞이 흐려지는 나는 이상하게 보였다.

 

아아………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공에 박힌 식칼을 보고서는 나는 계속 그 일이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

 

「“독자야 안 돼!! 그거 내려놔!!”」

 

머릿속에서 어머니의 외침이 들려왔다.

 

「“독자야너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거야알겠지?”

이건 잊으렴아버지는 죽을 만한 사람이었단다.”

너가 한 행동이 아니란다내가 한 거란다.”」

 

엄마……. 어딨어요……?’

 

우웩―!!! 하아…… 하아…….”

 

엄마나 아무것도 안 보여요어딨어요아무것도 안 들려요 엄마.’

 

내 눈에는 계속해서 그 공의 모습이 보였다.

그 공의 모습이 내가 들고 있던 식칼에 찔린 아버지의 모습이 떠나가지를 않았다.

 

아니야이건 꿈이야. [4의 벽]. 4벽이는 어디있지?

 

지금까지 나를 지켜줬던 최고의 정신 방어 스킬인 [4의 벽]이 들려오지 않았다.

 

[전용 스킬, ‘4의 벽이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벽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나는 급히 [자기합리화]를 발동하려고 했다.

 

[당신의 영혼이 불안정합니다!]

[‘가장 오래된 꿈이 흔들립니다!]

[〈스타 스트림의 시스템이 크게 흔들립니다!]

[시스템의 오류로 스킬과 성흔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가장 오래된 꿈인 내가 흔들리기 시작하자시스템도 흔들려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아…… 하아…….”

 

내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져 갔고시간이 지날수록 그때의 악몽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아이 씨발빨리 꺼져!”」

 

그 사람의 목소리와 함께 병이 깨지는 소리가 났고내 머리에서 무언가가 흐르는게 느껴졌다.

 

죄송해요잘못했어요안 그럴게요한 번만 봐주세요.’

 

나는 자리에 쓰러졌고머리를 감싸고 중얼거렸다.

아까 깨진 접시 유리 파편이 내 몸 곳곳에 박히는게 느껴졌다.

 

죄송해요때리지 마세요잘못했어요.’

 

하아…… 우웨에엑.”

 

점점 내 정신이 아득해져 갔다나름 시나리오를 클리어 해나가며 강인해졌을 거라고 생각했었지만트라우마는 극복하지 못했다그녀의 말대로 뻔한 트라우마는 없으니까.

 

내 눈앞에는 유중혁이 하고 간 제육볶음이 공 옆에 떨어져 피범벅으로 보였고계속해서 그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독자야이건 피가 절대 아니란다엄마가 해놓은 제육볶음을 쏟아 이렇게 보이는 거란다아들은 지금부터 다시읽기를 하렴.”」

 

어머니가 나를 감싸며 내 정신을 지켜주는 것이 느껴졌다하지만 지금은 내 곁에 아무도 없었다.

 

하아…… 이건 꿈이다내가 한 것이 아니다……. 나는…….’

 

!! 우웨에에에엑!!!”

 

점점 정신을 잃기 시작했고 숨 쉬는 게 힘들어졌다.

무언가가 나를 족쇄 듯 정신이 흐려지고 있었고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나는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내들고 품속에 꼭 안았다.

그 반지가 내 유일한 구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하아…… 하아…….”

 

제발 그 누구라도 좋으니 나 좀 살려줘…….’

 

어머니……. …… 수영아…… 모두들…….”

 

그렇게 나는 점점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자 허공에서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전용 스킬, ‘4의 벽이 강제로 활성화됩니다!]

[‘4의 벽의 두께가 미친 듯이 두꺼워집니다!]

 

김독자?」

 

[4의 벽]이 활성화되었음에도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런 젠장……!」

 

[4의 벽]이 나에게 간섭하려고 시도하자 거대한 스파크가 튀며 벽을 막았다.

 

크윽무슨……?」

 

몸을 웅크린 나에게서 검은색 보호막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현실에서 도망치려고 죽을 듯이 발버둥 쳤던 그 보호막이었다.

수만 번도 더 외웠던 그 주문.

 

내 주변에는 보호막이 있어.」

아무도 나를 해치지 못하고.」

어떤 것도 나를 건드리지 못해.」

 

현실의 고통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했던 생각들이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현실을 현실이 아니게 만드는 힘이었다.

 

[‘가장 오래된 꿈이 폭주합니다!]

 

검은색 보호막 안에서 내 정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나는 트라우마 속에 먹혀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

그것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의 무서움이었다.

 

‘……미안해잘못했어요때리지 마세요.’

 

이런 씨발이대로 있다가 김독자는 죽어.」

 

허공에서 [4의 벽]이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가 막대한 개연성의 스파크를 튀기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비유가 관리국의 모든 설화를 관리하던 도중 갑자기 시스템 전체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빠……?”

 

비유도 급하게 어딘가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

 

독자 씨 괜찮겠죠?”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녀야 하는데…….”

 

일행들과 수다를 나누던 도중 허공에서 포탈과 거대한 스파크가 튀기며 두 존재가 나타났다.

 

[대장!!]

 

너희들!」

 

당황한 일행들은 허공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비유와 [4의 벽]은 다급하게 동시에 말했다.

 

김독자가 위험하다.」

 

[아빠가 위험해!!]

 

물을 마시던 한수영이 컵을 떨어뜨린 채 몸이 굳었다.

그리고 일행들은 서둘러 김독자의 집으로 향했다.

 

*

 

집에 도착하니 집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서 김독자는 아이처럼 웅크린 채 의식을 잃어 쓰러져 있었다.

그들이 김독자에게 다가가려고 했지만 그의 주변에 있는 보호막 떄문에 다가가지 못했다.

 

유중혁너가 해야 해.」

 

[4의 벽]의 말에 유중혁이 [흑천마도]를 꺼내들고 천천히 김독자에게 다가갔다마지막 시나리오에서 은밀한 모략가가 어린 독자에게 그랬듯이천천히 보호막을 하나씩 벗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칼을 잡은 또 다른 존재가 하나 더 있었다한수영이 눈물을 쏟으며 [흑천마도]의 한쪽을 잡고 천천히 그의 보호막을 벗겼다.

 

미안해…….”

 

그녀가 붉게 물든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모든 보호막을 벗기고 유중혁이 김독자를 들어 안았다.

그의 몸은 얼음장같이 차가웠고숨소리가 매우 희미했다.

일행들은 서둘러 [공단]의 병원으로 향했다.

소식을 들은 그의 엄마인 이수경이 급하게 달려왔다.

 

*

 

김독자를 침대에 눕히고 맥을 짚던 이설화가 말했다.

 

일단 큰 고비는 넘긴 것 같아요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아마 독자 씨의 트라우마에 먹힌 것 같아요.”

“……트라우마요?”

 

한참 동안 말없이 김독자의 머리를 쓰다듬던 이수경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직도 그 일을 잊지 못한 것이구나……. 미안하구나 아들아…….”

 

일행들은 모두 그의 트라우마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를 돌아오게 하기 위해 썼던 전독시에도 적혀 있었고그의 어머니인 이수경에게도 얼핏 들었었다일행들 모두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고요한 정적 속에서 한 목소리가 그 정적을 깼다.

 

나 혼자만 있게 해줄 수 있어……? 비유는 잠시만 남아있고.”

 

한수영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김독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의 말에 일행들 모두 조용히 병실을 빠져나왔다.

 

“……‘4의 벽’.”

 

허공에서 스파크가 튀며 벽이 튀어나왔다.

 

김독자는…… 어떻게 된 거야?”

 

그는 트라우마에 먹혀 계속해서 악몽을 꿀 거야.」

 

깰 방법은 있는 거야?”

 

지금으로선…… 시간이 답이라고 밖에 할 수 없어.」

 

그녀는 한참 동안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창백하고식은땀이 가득한 그의 얼굴그리고 그의 표정이 매우 안 좋았다.

그의 손에는 반지를 꼬옥 쥐고 있었다절대 놓지 않을 기세로.

한수영은 그 반지의 정체를 눈치챘다. 3일 전김독자와 싸우고 헤어지자며 벗어 던졌던 그 반지였다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미안해……. 내가 너무 심했어……. 너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그녀는 한참 동안 울었다.

그리고 마음을 굳게 다잡고 비유에게 말했다.

 

비유나에게 스타 스트림의 개연성을 나눠줘.”

 

[엄마뭐하려고!]

 

이 방법 밖에는 없어그리고 4네 도움도 필요해.”

 

설마…… ‘에 개입할 거야?」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방법 밖에 없잖아.”

 

미친 짓이야자칫하다가 영영 소멸할 수도 있어!」

 

괜찮아내가 해야 할 일이야비유부탁할게.”

 

한숨을 내쉰 비유가 개연성을 나에게 부여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옆에서는 [4의 벽]이 포탈을 구성하고 있었다.

 

명심해진입하는 순간 온몸이 찢겨나가는 고통이 느껴질 거야그게 이 세계의 비극을 바라봐야 하는 신의 임무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포탈에 몸을 넣었다.

 

[꿈의 포탈에 진입합니다!]

[‘가장 오래된 꿈에 개입합니다.]

[당신은 현재 가장 오래된 꿈의 가호를 받고 있습니다.]

[설화, ‘가장 오래된 꿈의 사랑을 받는 자가 당신을 보호합니다.]

 

내 몸이 어딘가로 빨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이내 내 몸 전신이 찢겨나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크흑……!”

 

어떻게든 참아야 했다그를 구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는 참았어야 했다.

정신이 아득해져 갔고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이내 정신이 돌아오고 있었고어딘가에 누워 있었다.

 

[‘가장 오래된 꿈의 꿈속에 진입하셨습니다.]

[당신에게 남은 시간은 3시간입니다.]

[3시간 후 꿈속에서 추방당합니다.]

 

내게 허용된 시간은 3시간 뿐이었다.

아무리 김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어도비극을 바라봐야 하는 신의 자격을 대신하기에는 부족했다.

나는 궁상을 떨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김독자를 찾아다녔다.

그를 찾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공원에서 터벅터벅 걷고 있는 온몸에 상처와 멍이 가득한 한 아이를 찾을 수 있었다.

 

“…….”

 

나는 그 아이의 모습을 보는 순간 몸이 굳어버렸다.

아직 초등학생도 안 된고작 4살이나 5살로 보이는 아이의 몸에는 피투성이로 가득했다나는 꾹 참으며 아이에게 천천히 웃으며 다가갔다.

 

안녕?”

“……?”

 

깜짝 놀란 아이는 나를 경계하는 듯이 보였지만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무슨 일이세요?”

누나랑 어디 놀러 갈래?”

죄송한데저 아세요?”

 

어린 아이라기에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차가운 목소리였다.

나는 다시 환히 웃으며 아이에게 눈을 맞추었다.

 

너는 먼 훗날 내 하나뿐인 독자이자남자친구가 될 사람이야.”

 

아이는 무슨 이상한 사람을 보듯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쳐다봤지만이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누나처럼 예쁜 사람이 제 여자친구라면 복받은 삶이네요.”

 

저렇게 웃는 얼굴이 천사처럼 아름답고 예쁘기만 한데아이의 몸 군데군데에 있는 상처들을 보니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다이 아이에게는 평생을 지우지 못할 상처가 항상 따라다니게 될 것이다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돈이 없어 가난하게 자라왔으며살인자의 아들로 낙인이 찍혀 평생 기자들의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그리고 또래 애들에게도 왕따를 당하게 될 것이다.

 

지울 수도가리지도 못하는 그런 상처가 아이에게 이미 크게 잡혀있었다.

초롱초롱 빛나는 아이의 눈은 우주처럼 광활했고매우 아름다웠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며 아이의 손을 잡았다.

 

가자오늘은 누나랑 실컷 노는 거야!”

하지만…….”

괜찮아누나가 너 좋아해서 그래널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어!”

 

나의 태도에 아이는 이내 편하게 웃기 시작했다.

 

*

 

나는 그렇게 아이와 하루종일 데이트를 했다.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들을 실컷 타기도 했으며아이와 함께 사진도 찍고밥도 먹었다그리고 이내 내 몸에 희미한 스파크가 튀며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당신에게 남은 시간은 10분입니다.]

[10분 후 당신은 꿈속에서 추방당합니다.]

 

아이는 내 몸에서 튀는 스파크는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아이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그네를 타던 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독자야…… 나는 네가 너무 예전 일에 신경쓰지 않았으면 좋겠어.”

저는 이미 충분히 어린데요?”

푸핫맞아그니까…… 앞으로 힘든 일이 생각날 때마다 누나랑 오늘 함께 했던 행복한 시간을 떠올리자약속할 수 있지?”

…… 좋아요예쁜 누나랑 노는 것도 재밌있었어요.”

그래!”

 

조용히 그네를 타던 아이가 내게 말을 걸었다.

 

누나 이제 떠나는 거죠?”

“……그럴 것 같아.”

다시 만날 수 있죠?”

그럼네가 날 기억해줘그리고 날 다시 만나면나에게 사랑한다고 해줘.”

“……진심이에요?”

당연하지사랑해 독자야그리고 정말 미안해.”

 

점점 내 몸이 흩어지고 있었다.

 

.

 

그네에서 내려온 아이가 내 볼에 입을 맞추었다.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꼭 기억할게요누나랑 다시 만나면 그때는…….”

 

[남은 개연성이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가장 오래된 꿈의 꿈속에서 사라집니다.]

[원래 세계로 돌아옵니다.]

 

아이의 목소리가 점점 들리지 않았다나는 급하게 아이의 손에게 반지를 쥐여 주었다김독자가 나에게 줬었던 그 반지였었다.

 

“……한다고 해줄게요!”

 

꼭이야꼭 나에게 해줘야 해?’

 

그렇게 점점 내 정신은 희미해져 갔고어느새 김독자의 품속에서 잠들었던 내가 천천히 눈이 떠지고 있었다내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내 귀속으로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도 많이 좋아하고 사랑해요다시 만나러 갈게요.”

 

꿈속에서 아이와 헤어지며 아이가 내에게 했던 말이었다.

나는 그 아이의 입모양을 똑똑히 봤기에 무슨 말인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이 나에게 들려오고 있었다.

 

날 구원해줘서 고마워수영아.”

 

김독자가 따듯한 목소리로 나에게 속삭였다.

나는 그의 품속에서 엉엉 울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별 것도 아닌 일로 화내고……. 안 그럴게…… 사랑해 독자야…….”

 

김독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꼭 쥐고 있던 반지를 내 손에 끼워주었다.

 

다시는 벗어 던지지 마진짜로 내 모든 것이 망가지는 것 같았으니까.”

 

나는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며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절대 안 뺄게항상 네 옆에서 너를 위한너만을 위한 사람이 될게.”

 

그렇게 다시 그의 입술과 내 입술이 포개졌다.

아직 그의 마음 한편에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남아있지만하나의 작은 구원으로 인해 조금씩 천천히 아물어 갈 것이다.

 

사랑해 독자야.”

나도 수영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