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 https://arca.live/b/reader/39967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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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한 초겨울 새벽, 모두가 잠들고 불이 꺼져 어두컴컴한 큰집의 부엌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도둑이 아닐까 걱정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다행히 밤새 소설을 읽던 내가 커피를 타는 소리였다. 나는 내 이니셜이 새겨진 머그잔 가득 담은 라떼를 한 모금 홀짝이며 부엌에서 나왔다.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내 방 맞은 편의 수영이 방 문틈 새로 빛이 흘러나왔다.



'수영이는 오늘도 안 자나?'



요 며칠 수영이는 주 5회 연재하랴, 단행본 2권 출판 준비에 1권 판매량 백만부수 돌파 기념 이라고 만 권이나 되는 친필 사인본 만들랴, 거기에 대학 기말고사 시험문제 출제까지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당연히 잠도 제대로 못 잤고, 데이트는커녕 식사 때나 겨우 볼 수 있는 수영이는 새빨갛게 충혈된 눈에 다크서클이 가득했고 볼살이 쪽 빠진 얼굴에, 밥을 먹으면서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다. 바쁘니 어쩔 수 없다지만, 저러다 쓰러지는 게 아닐까 걱정이 자꾸 들었다.



‘안 되겠다, 오늘만이라도 좀 재워야겠어.’


“수영아, 나 들어갈게?”



가볍게 노크를 두 번 해봤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나는 문고리를 조심스럽게 당기며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화면이 켜져 있는 컴퓨터의 모니터가 보였고, 그 아래에는 책상에 엎어져 잠이 든 수영이가 있었다. 나는 화장대에 커피잔을 놓고 살금살금 다가갔다. 모니터에 올라온 한글 창과 빼곡히 적혀있는 글자들을 보건데, 마감을 하다 수마를 이기지 못하고 잠든 모양이었다.



‘그러게 좀 쉬면서 하래도...’



침대에서 편하게 자지 못하고 책상에서 불편하게 자는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침대에 옮기다 겨우 든 잠에서 깰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때 수영이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으음...”



잠에서 깬 건가 싶어 나는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었지만, 수영이는 신음만 한번 내고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스웨터 사이로 보이는 수영이의 하얀 목에 손등을 대보니, 느껴지는 체온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깜짝 놀라 손등을 때며 수영이의 얼굴을 보았다. 빨갛게 상기된 뺨에 입술은 약간 푸르스름한 빛을 띄고 있었다.



‘유중혁 이 자식을 확 그냥!’




날이 추워져 난방 키자는 사람들의 말을 난방비 절약한다고 몸으로 버티라는 한마디로 묵살한 유중혁의 얼굴에 주먹을 꽂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나는 급히 도깨비 상점을 열었다. [새끼 불사조 솜털로 만든 담요]. 웬만한 명품 거위 털 이불보다 뛰어난 보온 능력에 착용자의 체온이 낮아지면 자체적으로 열을 내는 기능까지 있는 담요를 가장 큰 사이즈로 사서 수영이의 온몸에 덮어주었다. 곧 담요가 열을 내며 수영이의 몸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한숨을 돌린 나는 몸을 낮추어 수영이를 바라봤다. 어깨에 살짝 걸친 찰랑거리는 검은 단발과 잡티 하나 없이 하얀 피부에 고양이처럼 약간 올라간 눈매, 왼쪽 눈 아래에 박힌 매력적인 눈물점과 오똑한 콧날, 혈색이 돌아와 앵두처럼 붉은 입술까지,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운 얼굴이었다. 


나는 몸을 기울여 천천히 수영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손으로 수영이의 앞머리를 걷어내고, 드러난 수영이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입술을 통해 들어오는 수영이의 온기를 잠시간 느끼고 난 후 살며시 입을 떼어냈다. 널부러진 수영이의 앞머리를 정리해주고 조심히 일어난 나는 핸드폰을 켜 어딘가에 메일을 보낸 다음 다 식은 커피잔을 들고 조심히 방을 나갔다.



“잘 자 수영아, 좋은 꿈 꿔.”



*



짹, 째잭



“으음…”



밖에서 나는 새소리에 눈이 떠졌다. 아마도 새벽에 마감을 하다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기지개를 켜려는 내 팔에 뭔가가 걸렸다. 몸을 둘러보니 붉은 빛을 띠는 주황색 담요가 내 몸을 덮고 있었다.



“뭐야 이 담요는?”



담요를 걷어서 만져보니 온기가 느껴지는 게, 평범한 담요가 아니라 아이템인 것 같았다. 나는 한동안 담요를 바라보다가, 컴퓨터로 고개를 돌렸다. 컴퓨터의 시계에는 아침 9시 58분이라고 나와 있었다.



“X발 아직 마감 못했는데!!!”



연재처의 마감 시간은 업데이트 당일 오전 10시였고, 새벽에 마감하다 잠든 덕분에 오늘치 연재분은 반을 조금 넘긴 상태에서 멈춰 있었다. 내가 아무리 천재 미소녀 작가라고 해도 2분 안에 나머지 반을 쓰는 건 무리였다.



“내가 미쳤지, 왜 마감하다 쳐 자서는!”



과거의 나를 저주하며 나는 담당자에게 연락하기 위해 휴대폰을 켰다. 켜진 휴대폰 화면에는 담당자의 번호로 보내진 문자가 있었다. 아 망했구나, 나는 담당자가 보냈을 잔소리 가득한 문자를 상상하며 문자를 열었다. 그런데 문자의 내용은 내 예상과 달랐다.



‘김독자 대표님의 문자 확인했습니다 작가님. 일주일 동안 휴재라고 공지 올려놨고, 오후에 출판사에도 연락해서 이벤트 일정을 조정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김독자 컴퍼니 행사 잘 다녀오세요.’


“뭐야 이거?”



내가 알기로 이번 달에 예정된 김독자 컴퍼니 행사 같은 건 없었다. 순간적으로 스팸 문자인가 싶었지만, 발신자의 번호는 담당자의 것이 확실했다. 나는 문자를 다시 살펴보기 위해 맨 위로 올렸다가 첫 줄에서 그대로 손가락을 멈췄다.



“잠깐, 김독자 연락이라고?”



나는 그 문단을 빤히 보다 내 왼손에 쥐어져 있는 담요를 다시 바라보고는 너털웃음을 흘렸다.



“하여튼 김독자, 맨날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한다니까...”



일에 집중하느라 얼굴 한번 제대로 못 보고 애정 표현도 안 해주는 애인한테 속상할 법도 한데. 불평 한마디 없이 나를 늘 걱정해주고, 잠든 내가 추울까 봐 담요를 덮어주고 없는 행사를 지어내 내가 쉴 수 있게 만들어 준 김독자가 고맙고, 미안했다. 김독자 덕분에 얻은 휴가니까 일주일 동안 쭉 김독자 옆에 있으면서 그동안 못한 데이트도 하고 애정 표현도 잔뜩 해줘야지.



“야 김독자, 어디 있어!”



방문을 열고 자신을 찾는 한수영의 목소리를 들으며, 김독자는 미소 지었다.




*




냉기 저항은 가오꿈 파편의 권능으로 잠깐 먹통으로 만들었다. 겨우 스킬 하나가 독수를 막을순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