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pcvi1DEQUj8

*노래와 함께 감상




봄과 겨울은 가깝다.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그 둘은 만날 수 없다. 

-


아침에 일어나자, 저택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날이 풀렸음에도 불구하고 흰눈이 하늘에서 내렸다.

저택은 그곳에 산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 고요를 지키고 있었다. 

심장이 쿵 하고 가라앉는 듯 했다. 

한수영은 제 방의 문을 살짝 열어 밖을 바라보았다. 


-끼익



한수영은 조용히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갔다. 

눈이 소복히 쌓인 마당에, 작은 벚나무가 우뚝 서 있었다.

그 벚나무 위에는 흰 옷을 입은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벚나무 위에서 한수영을 바라보며,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어댔다. 


그 해맑은 웃음을 보며 한수영도 미소지었다. 


사아아


벚나무가 흔들리고, 나무에서 벚꽃이 흩날리며 내렸다.

흰 벚이 눈처럼 내리자, 소년이 나무에서 내려와 한수영을 향해 손을 뻗었다.

따듯한 봄의 내음이 그들을 감싸며, 소년이 무언가 말을 했다. 


하지만 이내 벚꽃이 시야를 가리며 한수영의 의식이 멀어졌다. 


-


"헉!"


한수영이 자신의 방에서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눈을 떴다. 

주변을 둘러보고 자신의 방이란걸 깨달은 한수영은 안심하며 숨을 골랐다. 

금방이라도 운 듯 눈가가 시렸고, 가슴이 욱신거렸다. 

먹먹한 그 기분에 한수영은 잠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갑작스레 단편적인 기억들이 머릿속으로 몰려왔다. 


"넌 여기에 무슨일로 왔어?"


"버찌따러 왔어. 우리 엄마가 버찌를 참 좋아하거든"


흐릿한 기억들이 모여 뚜렷해졌다. 

전생의 기억들이 갑작스레 떠오르기 시작했다. 


"시발...뭐야"


한수영이 갑작스런 기억에 놀라 문을 박차고 나갔다. 


일단, 일단 김독자를 찾아가자. 이 기억이 뭔지 물어보고.

그리고. 그리고...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였다. 

찬란한 봄에서 멀어지는 자신과 김독자를 꿈꾸었다. 

한수영의 다리에서 힘이 쭉 풀렸다. 

바닥에 주저앉자, 눈에서 눈물이 투둑 떨어져내렸다. 

수천년의 그리움.

그것이 한수영의 마음속을 진탕 흔들어놓고 있었다. 


한수영은 저택의 복도에서 눈물만을 떨구었다. 



"독자야.."


한수영이 울먹이며 중얼거렸다. 


"독자야"


한수영이 다시금 말했다. 


"미안해"


-


김독자는 일주일 내내, 벚나무 위에서 시간을 떼웠다. 

낮잠을 자다, 한수영이 놓고 간 서책을 읽었다. 

서책은 대체로 소설이였다. 

그 중에는 한수영이 적은 서책도 있었다. 

김독자는 그 서책에서 풍기는 한수영의 냄새를 머금으며 외로움을 달레었다. 

김독자는 읽는것을 매우 좋아했다. 

시간이 매우 빨리 지나감과, 뿐더러 자신의 외롭고 쓸쓸한 현실로부터 도망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김독자는 한수영이 놓고간 책을 내내 읽고, 또 다시 읽으며 해가 지고 뜨는것을 바라보았다.


"수영아"


김독자가 나지막히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보고 싶어."


끝으로, 김독자의 눈을 따라 눈물 한방울이 흘러내렸다. 


신부를 기다린 수천년의 시간보다. 

한수영을 기다리 일주일이 더 길고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


한편, 한수영의 저택은 난장판이였다.

한수영의 시녀가 살해된 체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목의 경동맥이 단검으로 뚝 끊어져, 피가 주륵 흘러나오는 체로, 설산 위에 버려져있었다. 

시녀가 죽은 설산에서, 시녀의 피가 섞인 눈이 마치 붉은 벚 처럼보였다. 


한수영의 오랜 벗이였던 자가 죽었으니. 저택이 난리가 날 법도 하다. 

시녀를 죽이는 것은. 그 다음 타깃이 시녀의 주인. 즉, 한수영이라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시녀는 새벽, 한지를 사러 저잣거리에 다녀오던 참이 였다고 한다. 

그때 외군사, 아니면 뭐, 외국의 어떤 사람한테 당한 것이고. 


아무튼, 한수영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였다. 미치듯이 휘몰아치는 기억들과, 자신의 사람을 잃음에 대한 슬픔. 

그것이 뒤죽박죽 난잡하게 섞여, 한수영에게 고통을 주었다. 


"시발... 하, 아.. 제발 그만"


한수영이 이명이 들리는 한쪽 귀를 틀어막은 체 눈물을 줄줄 흘렸다. 

충혈된 눈이 다시금 붉어졌다. 

눈가가 다 짓무렀고, 볼에 열감이 스쳤다.

김독자가 보고 싶다. 

보고 싶어서 미칠 것 같다. 

제발.

제발.

제발!



한수영이 제 앞에 상을 힘껏 찼다. 

찻잔이 벽에 부딪혀 깨졌다. 

한수영이 부서진 찻잔조각을 힘껏 쥐었다.

피가 주륵 흘러나왔다. 

동시에, 눈물도 터져나왔다. 


가슴의 환상통도 점점 거세졌다. 

뚫린 것처럼 싸늘했고. 

뜯긴 것처럼 화끈했다. 

그리고 고통스러웠다. 

한수이 귀를 틀어막고 비명을 내질렀다. 


"흐으...아으윽"


"...독자야"


한수영이 김독자를 찾았다. 


그리고, 동시에 한수영의 방문이 벌컥 열렸다. 


"그 년을 찾았다!"


외군사가 한손에 피가 잔뜩 묻은 검을 든체 한수영의 방에 들어왔다. 

그리곤 한수영의 머리체를 휘어잡고 끌고 갔다. 

외군사가 머리를 힘껏 끌어당겨 한수영을 던졌다. 

마당에 한수영이 내 던져졌다. 


"콜록! 하아.."


한수영이 흙먼지를 들이마셨다, 뱉어냈다. 

뿌연 시야를 부벼 저택을 바라보았다. 

불이 붙어, 타오르는 저택이 보였다. 


시종들의 머리가 무참히 썰려나가는 장면을 본 한수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한수영은 바닥에 떨어진 검을 손에 잡았다. 

그리고, 잡힌 자신의 길다란 머리카락을 단번에 잘라내었다. 


-트드득


깔끔히 썰린 머리카락이 외군사의 손에 쥐어졌다. 

풀려난 한수영이 달리기 시작했다. 

사당을 향해. 

연못의 돌다리를 두 걸음에 건너고, 사당의 문에 다다랐다. 


-푹!


어디선가 날아온 적군의 화살이 한수영의 가슴에 박혔다. 

살을 찢고 폐부까지 꽤뚫은 화살이 느껴졌다. 


'죽는다.'


한수영이 마지막 힘을 다해 사당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수영아?"


김독자가 벚나무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쓰러지는 한수영을 안아들었다.

 

"...수영아? 한수영?"


김독자가 한수영을 불렀다. 


"뭐야. 이거. 화살?"


김독자가 한수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김..콜록! 독..자"


한수영이 제 앞에 있는 김독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못난 정인...천년동안 기다려줘서 고마워"


한수영이 김독자의 손을 꼬옥 잡았다. 


"장,난치지마 수영아"


한수영이 손을 뻗어 김독자에게 무언가 건네었다. 


흰 반지였다. 

청아한 백금으로 다듬은 흰 벚이 화사하게 달려있는 반지였다. 

한씨의 정혼자에게 하사하는 반지. 

그것이 피범벅이 된 체 김독자의 손에 들려졌다. 


"사랑해, 김독자."


"수영아?"


"..."


"....수영아?"


신은 사랑을 받을 때, 비로서 영멸에 이른다. 

김독자의 생명이 불붙은 동아줄처럼 불타고 있다. 


"수영아, 대답좀 해봐."


김독자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발끝에서부터, 김독자는 흰 매화가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수영아.."


-사아아아


흰 벚이 눈처럼 허공에 흩날려졌다. 


-

한수영과 김독자는 서로를 죽으리만치 사랑했다. 

전하지 못한 사랑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있을까. 


청아하게 흩어진 흰 벚은, 어딘가로 흩어져, 어딘가로 다가간다. 

그리고 수백개의 벚중 하나는 사랑을 이룰 수 있으리. 

-



..

.

.


"야! 김독자!"


단발머리의 소녀가 벚나무 아래에서 책을 읽고 있는 소년에게 소리쳤다. 


"왜! 왜! 또 소리를 질러! 너 진짜 시끄러워 한수영."


"허 참나, 그러는 너는? 오늘도 또 학교 땡땡이 쳤냐?"


"다녀봤자 뭐해. 성적도 잘 안나오는데."


"노력을 하고 말해라 노력을!"


한수영이 놀리는 얼굴로 말하자, 김독자가 옆에 떨어진 벚 더미를 한주먹 쥔뒤 한수영에게 던졌다. 


"야!"


한수영이 화를 냈다. 

김독자가 환하게 웃어보였다. 


"놀린 죄야 한수영!"


"이게 진짜!"


햇살처럼 환하게 웃는 두 아이들 사이에서 휫날리는 흰 벚은 마치 눈처럼 보였다. 

봄과 겨울이 상접한 순간. 

둘의 홍매같은 운명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영원으로 부터 벗어난 한 고독한 신과, 그에게 종장을 안겨준 한 소녀가 있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