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나오던, 단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이 너무나 멋져 보일 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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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아는 푹신한 베개를 껴안았다. USB로 텔레비전에 틀어놓은 영상에 나오는 남자가 그려진 베개였다. 저번에도, 그전에도 틀어졌던 영상이었지만, 지루하다는 듯이 시선이 떨어지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너무나 힘들었던 날이지만, 그녀의 얼굴은 복숭앗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를 바라보고 있자면 쌓인 피로가 다 풀리는 기분이다.
"왕, 왕!"
그 옆에서 검은 털의 강아지가 사료를 와그작 씹었다. 개 목걸이에 달린 둥근 장식에 새겨진 '유중혁' 이라는 세 글자가 전등의 불빛에 반짝였다. 영상에서 나오는 프로게이머 선수 옆 선수의 이름이 적힌 자막과 동일한 글자였다.
텔레비전 건너편에 자리한 벽에는 '유중혁'이라는 세 글자와 영상에서 나오는 남자의 사진들이 붙어있었다. 한겨울의 옷을 입은 사진으로 시작해서 여름 옷을 입은 사진까지. 검은색이라는 것은 동일했으나, 묘하게 다른 옷을 입은 사진들이 하얀색 벽을 꾸미고 있었다.
책상 한 귀퉁이에 올려진 유중혁 우승 장면 모음집.mp3. 라는 글씨가 까만색 MP3에서 반짝였다. 언제나 유중혁으로 시작하는 글씨가 반짝이는 MP3들이 줄지어 나열되어 있었다.
연갈색의 정장 옆, 의자에 걸쳐진 티셔츠에도 유중혁의 사진이 그려져 있었다. 티셔츠의 뒷면에는 유중혁의 이름이 흰 티를 장식했다. 의자 주변의 탁자에는 유중혁의 사진이 그려진 흰 머그잔이 올려져 있었다.
그녀의 집은 유중혁의 굿즈들이 가득채우고 있었다. 한정판 굿즈들은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라 하지만, 그녀의 집에서는 집을 장식하는 굿즈들 중 애정하는 것들에 불과했다.
그녀가 유중혁의 팬이 된 것은 몇 년 전의 일이다. 말 그대로, 첫눈에 반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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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반했다 라는 말은 흔한 연애소설에서 나오던 말이었다.
개연성 하나 없어서 한참 감수성 풍부하던 중학생의 눈에도 소설을 유치해 보이도록 만들던 말은, 그 아무리 열심히 설명하듯이 묘사하더라도 현실감을 깨버리는 말이라 몰입을 깨버리기나 하던 말이었다. 자신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흔한 팬들의 팬 활동 이유에 해당하기도 했다. 그래서 겪게 될 줄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말이다.
인턴으로 회사에 처음 입사하고 곧이어 사원이 막 되었을 때의 일이다. 인턴으로 일할 때 쌓여왔던 긴장과 피로가 한 번에 터져버린 날이 있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힘없이 걷다가 횡단보도에서 멈춰 서 있었다. 길거리에 켜진 전광판의 화려한 불빛에 시선이 이끌려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모니터에 중계되는 게임 화면들. 그 중에서도 유난히 뛰어난 화면이 있어 그 화면만을 바라보았을 때였다. 아마도 프로게이머일 한 남자가 그 화면에 나타났다. 그리고 유상아는 그 남자한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화면이 게임 화면으로 바뀌었을 때도 계속 아른거리는 사람이었다. 연애소설에서 첫눈에 반했다 라는 문장이 나올 때 묘사되던 것과 다를 것 하나 없었다.
유상아는 초록 불이 켜진 횡단보도를 건너 집으로 향했다. 아직도 아른거리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입고 있던 정장을 의자에 던지듯 걸어 놓고 침대에 누워버렸다. 하얀 천장을 바라보았지만, 남자의 얼굴은 흰 천장을 배경 삼아 아른거렸다. 손으로 만지막 거리던 리모컨의 버튼을 눌렀다. 팟 하며 까만 텔레비전에 불이 들어왔다. 버튼을 눌러 화면을 계속 바꾸다 전광판에서 바라보던 화면이 띄워졌다. 화면이 조금은 다른 것을 보아 여러 방송사에서 중계하는 듯 싶었다. 치열하게 경쟁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3월의 쌀쌀한 날씨에도 방을 덥게 데웠다. 열기로 가득한 방송이 끝에 다다르자 우승자 라는 글씨와 트로피의 형상이 화면을 가득채웠다. 우승자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였다. 자신과 비슷한 나이쯤 되었을, 전광판에서 보았던 남자였다. 유중혁 이라는 세 글자가 옆에 떠 있는 것을 보아 이름은 유중혁일 터였다.
유상아는 다음 날에도 퇴근 후에 유중혁의 영상을 텔레비전에 띄웠다.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보자며 며칠 동안 띄우다 유중혁의 영상을 보는 것은 그녀의 퇴근 후 취미로 굳어졌다. 굿즈가 하나씩 집을 채우게 된 것도 그때부터의 일이다.
평범해 보이는 직장인이지만 누군가의 열렬한 팬이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유상아가 회사에서 일에만 관심을 두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을 보자면 다른 누군가에 빠져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다. 회사가 게임 회사인만큼 언젠가는 마주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일에 열중하곤 했다. 인사팀의 한 사원은 운이 좋으면 유명한 프로게이머와 회사 복도에서 마주칠 수 있는 자리였다. 설령 평범한 한 사원으로 보여진다 해도 말이다.
가끔씩 열리는 경기에 유중혁의 경기가 있으면 티켓을 예매하기도 했었다. 길면 1분 안에 전부 예매되기 때문에 간신히 얻은 티켓을 보물처럼 꼭 쥐었던 일도 전부 팬 활동을 하며 겪었던 추억이다.
지금은 은퇴한 프로게이머의 팬의 이야기이다.
+제목 좀 지어주라 플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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