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처음 독자씨를 인식하기 시작한 건 탕비실이었겠네요. 초탈한 듯 대충지내면서도 항상 스마트폰에 시선을 두고 있는게 꼭, 박스 안에 들어간 고양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하철에서 독자씨를 마주친 건 지금도 운명이라 생각해요. 그 때 독자씨가 아니었으면 우유부단하게 이도저도 못한 채 싸늘하게 주검이 되었겠죠? 스페인어나 외우다가 말이죠. 독자씨의 도움도 되어드리지 못했을테구요.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아직도 메뚜기가 미안하면서도 괜히 반갑고 그래요.

처음 독자씨와 떨어져 공필두 아저씨와 이동할 때, 독자씨가 많이 생각났어요. 독자씨의 빈자리도 되게 크게 느껴졌고, 제가 독자씨처럼 강했다면 공필두 아저씨가 저를 지키려다 위험에 빠질 이유도 없었겠죠. 강해져야겠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소중한 누군가를 지키려면, 이 세상에 맞는 스펙을 쌓아야겠다고 그 때 다짐한 것 같아요. 제가 할 줄 아는 거라곤 그런 거밖에 없으니까요. 독자씨에게 독자의 삶이 있듯, 상아에겐 상아의 삶이 있는 거니까요. 그렇죠?

필두 아저씨와 떨어지고 독자씨를 마주쳤을 때, 왠지 모를 얄미움, 서운함, 반가움, 기대감 등 만감이 교차했어요. 나는 독자씨를 되게 많이 걱정했는데, 독자씨는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 얄미웠고, 서운했고, 달라진 제 모습을 보고 독자씨가 기뻐해주지 않을까하는 기대감. 막연히 독자씨를 마주했다는 데에서 오는 반가움. 독자씨는 또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유중혁씨와 여자 한 분을 데리고 계셨지만요. 그 때, 수영씨가 사도인 걸 알고 제가 얼마나 실망하고 화가났는지 독자씨는 모를 거에요.

독자씨가 구원의 마왕이라는 수식언을 얻었을 때에도, 다른 거대 설화들을 얻을 때에도, 최후의 벽을 넘어 시나리오의 끝을 보았을 때도 독자씨는 항상 주변사람들을 애태우고, 걱정하게 만들고 힘든 일들은 혼자 다 떠안으려고 했었죠. 참 미련하고 바보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독자씨답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독자씨 안의 도서관에서 임시 사서로 근무하지 않았다면 그런 독자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당신의 설화를 몰랐더라면, 이런 마음을 포기할 수 있었을까요?

너무 늦어버린 것 같지만, 독자씨를 많이 좋아했어요. 늘 그렇듯, 독자씨의 곁에서, 독자씨의 행복을 빌어줄게요. 늦었지만 이제라도 힘든 일은 내려 놓고 편히 쉴 수 있기를.

"왜 이제 돌아온거야 김독자 멍청아..."

"늦어서 미안. 한수영. 죄송하고 고맙습니다. 여러분."

나는, 우는 한수영을 잠시 떼어낸 채 일행들을 둘러보다 유상아씨와 눈을 마주쳤다. 어딘가 슬퍼보이면서도 후련한 듯한 표정의 상아씨가 웃으며 나를 반겼다.

"늦었지만, 어서 와요. 독자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