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서아도 왔네요? 서아는 여기 처음 오지?"
"네!"
병원에 도착한 우리 가족을 본 설화 씨가 조금은 걱정스럽게 나를 보았다. 어린 아이에게 슬픔을 주고 싶지 않아, 지금껏 보여주지 않았던 수영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일까?
세상에 정답이란 것은 없었고, 이 선택 역시 옳고 그름은 없을 것이다. 단지, 지금 서아에게 세상에서 가장 예쁘지만, 병약한 아내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 같았고 그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기에 서아를 데리고 천천히 병실로 향했다.
병실로 내딛는 걸음이 조금씩 무거워졌지만, 옆에서 어깨를 토닥이며 빵긋 웃음짓는 비유를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고마워.'
비유에게 고맙다고 속삭인 뒤 웃음을 지어보였다. 비유는 그런 내 모습이 보기 좋았는지 똑같이 웃음을 지어주었다.
"보기 좋네요 독자 씨."
설화 씨가 웃음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괜히 부끄러워져 시선을 피했다.
"별 말씀을요. 감사합니다."
"정말 보기 좋아요. 몰랐거든요. 독자 씨가 그렇게 웃을 줄도 아는 사람이라는 거. 웃고 사세요. 얼마나 보기 좋아요. 웃을 일이 없어도 자식들 보면서 좀 웃고 그래요. 저렇게 이쁘고 귀여운 딸이 둘이나 있는데 우중충하고 침울한 표정만 좀 짓지 말고."
설화 씨의 말에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문득 어머니가 해주었던 말이 생각났다. 내가 충분히 사랑 받고 있음을,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설화 씨. 진심으로요."
설화 씨는 그저 빙긋 웃으며, 별다른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의 진심이 느껴져 코 끝이 찡해졌다. 병실 앞에 다다르자 설화 씨는 자리를 비워주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찾으라는 말을 남기고 업무를 보러 가는 듯했다. 항상 자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수영/34/여]
병실 앞 이름표를 두어 차례 손으로 쓸어보았다. 너를 마주하는 일이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그럼에도 조금씩 견뎌보려 한다. 네 자리는 평생 비워지지 않겠지만, 네가 없이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버티고 버티다보면 네가 돌아올 거라는 헛된 희망이라도 품고 살아가려 한다. 남몰래 그런 결심들을 하고선 서아를 보며 최대한 슬퍼보이지 않게 웃어보였다.
"우리 서아. 엄마 보러 갈까?"
서아는 긴장이 되었는지 조용히 고개만 끄덕거렸다. 병실 문을 열고 네가 누워있는 자리로 향한다. 너는 여전히 이불을 덮고 죽은 듯 고요히 누워있다. 서아는 그런 너의 볼을 만져보기도 하고 머리를 넘겨보기도 하고, 신기한듯 너를 바라보았다. 너를 보며 서아가 무슨 생각을 할까, 어떤 얘기를 할까, 눈물을 보이진 않을까. 서아가 울면 서아를 어떻게 달래주어야 할까.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긴장으로 식은땀이 조금씩 흘러내릴쯤 서아가 입을 떼었다.
"우리 엄마. 예쁘다."
예상 외의 말에 나와 비유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내, 지금껏 꽉 쥐어왔던 긴장의 끈을 놓고, 세상에서 가장 헤프게 웃어보였다. 무표정인 너와는 대조적으로 웃고있는 나를 보며 비유도 웃음이 터지고, 서아 역시 꺄르르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웃음에는 전염성이 있다고들 하던데, 그 말이 사실인듯 수영이의 병실에 웃음소리가 번져갔다. 웃긴 것 하나 없이 웃고 있는 우리들이 언뜻 무서워 보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최선을 다해 발버둥쳤다. 네가 깨어날 때까지 보란 듯이 행복하게 살아볼 것이다. 네가 보지 못하더라도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웃음으로 보여줄 것이다.
웃으면 복이 온다고 했다. 이곳의 우리들은 세상의 모든 복들을 다 끌어담을 듯 한참을 웃었다. 어쩐지 우리들의 웃음소리가 조금은 구슬프게 느껴졌다.
한참돗안 발버둥이 이어지다 이내 웃음소리가 잦아지고, 모두 수영이의 침대에 도란도란 모여앉았다. 나는 서아에게 그동안 감추기 바빴던 옛날 얘기들을 해주었다. 너와의 만남. 첫 번째 사도였던 너, 동료가 된 너, 어린 서아가 듣기에 조금 부적절한 내용들은 적당히 각색해가며 얘기해주었다. 서아는 어떨 때는 흥미진진하게, 또 가끔은 눈물을 흘려가며 내 얘기를 들어주었다. 이야기를 이어갈 때마다, 그 때의 네모습이 아른거렸다. 나는 고개를 저어 상념을 떨쳐내고 너의 머리를 한 번 쓸어넘긴 뒤, 서아에게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아이에게 하기엔 다소 무거운 얘기들이었으나 어찌저찌 잘 각색하여 이야기를 끝마쳤다. 서아는 할머니가 해주는 옛날얘기처럼 재밌게 들어주었다. 서아는 얘기를 듣는 내내 수영이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어린 녀석이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엄마가 많이 보고 싶었던가 보다. 그런 서아가 기특해 머리를 쓰다듬었다.
서아와 비유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문득, 가족끼리 외식한 번 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슬 식사할 시간도 되었고,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이라도 사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유야 서아야 이제 밥도 먹어야 할 거 같은데. 맛있는 거 사줄테니까 밥 먹으러 갈까?"
"외식이다!"
서아가 꺄르륵 웃으며 방방 뛰었고, 그런 서아를 못말린다는듯 비유가 바라보았다.
사르륵-
바람이 한 줌 불어와 창가의 커튼들을 밀어내고, 너의 머리카락을 몇가닥 헝클이고 간다. 나는 아이들을 먼저 내보내고 너의 머리를 정리해준 뒤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너의 이마에, 입에 입을 맞추었다. 웃는 네 모습이 아직도 많이 보고 싶지만, 이렇게라도 참아보려 한다. 그 때 문득, 베갯잇 속에 종이 같은 것이 보여 꺼내서 펼쳐보았다.
[04010215-노트북]
급하게 휘갈겨 쓴 듯 한 쪽지. 수영이의 생일과 내 생일, 노트북이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수영이 노트북 번혼가? 근데 못 보던 종인데 이런 게 여기 왜 끼어있지? 수영이가 정신을 차렸던 적이 있으면 설화 씨가 아셨을텐데...?'
의문들은 잠시 미뤄둔 채로 병실을 정리한 뒤 밖으로 나왔다. 서아와 비유를 데리고 식당으로 가, 그동안 먹지 못했던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다. 서아와 비유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지금은 잠시 이 행복을 만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불쑥불쑥 고개를 내미는 의문들을 고이 접어 한 켠에 둔 채 아이들과 같이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를 마친 후, 비유와 서아를 집에 데려다 주고, 수영이의 물건을 정리해둔 자택으로 향했다. 비유와 서아가 걱정하지 않도록 행선지를 미리 알리고, 혹시라도 늦으면 연락을 주겠노라 안심시킨 후에야 집을 나설 수 있었다.
네가 그렇게 된 뒤로,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던 이 방문을 열게되는 순간이 오게 될지 몰랐는데. 아련한 생각이 들었다. 너의 노트북을 찾아 꺼냈을 때, 먼지가 덕지덕지 묻은 모습에 괜히 울컥하는 마음이 들어, 노트북을 깨끗이 닦아낸 후에야 충전기를 꽂고 전원을 켤 수 있었다.
'앞으론 수영이 방도, 물건도 정리를 해 놔야겠는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곧이라도 네가 돌아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전원이 들어온 노트북은 비밀번호가 걸려있었고, 역시 04010215는 이 노트북의 비밀번호였다.
'노트북 비밀번호가 우리 생일이라니...'
고마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너무 단순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수영이답다면 수영이다운 행동인가?
노트북엔 네가 정리했을 폴더들이 이것저것 있었다. 네가 쓴 소설의 초안이 담겨있을 폴더. 김독자 컴퍼니의 단체사진. 근데...
독자♡
이 폴더는 대체 뭐지...?
호기심에 폴더를 열어보았다. 어디선가 야!하고 소리지르는 네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으나 기분탓이라 여겨버리고 폴더 속의 파일들을 확인했다. 대부분 낯부끄러운 사진들이었다. 단체사진에서 내 사진만 잘라서 꺼내놓았다든지, 자고있는 내 모습을 찍었다든지. 아쉬운 건 같이 찍은 사진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너를 볼 시간이 많았다고 생각한 건지. 너와의 사진이 많지 않다는 사실에 마음이 쓰라렸다.
부끄럽고, 창피하다. 이런 생각들보다도, 네가 나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 알 수 있는 폴더였기에 마음 한 켠이 무거워졌다.
'다시 돌아오면, 그 때가 언제가 됐든 사진 실컷 찍어줄게 수영아.'
나는 다짐하며, 폴더를 끄고 노트북을 더 뒤져볼까 생각하다 너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전원을 끄려다, 바탕화면에 못보던 메모장을 하나 발견했다.
'분명히 이런 건 없었는데?'
나는 홀린 듯이 메모장을 확인해보았다.
[야, 김독자.
기다리는 게 쉽지 않지? 나 없다고 밥도 잘 안 먹고, 너는 내가 돌아가면 혼날 줄 알아.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아서, 이렇게 메모장으로 할 말 남긴다.
나 없다고 끼니 안 챙기는 것도.
나 없다고 서아 제대로 안 키우는 것도.
그렇다고 서아만 신경쓰고 비유를 안 챙기는 것도.
힘들다고 내려놓고 편해지려는 것도.
어떤 것도 용서 안 해 줄 거니까. 내가 돌아갈 때까지 아빠답게 잘 버티고 있으란 말야. 알겠냐?
울고 싶을 땐 나 찾아와서 울고, 내가 듣든 못 듣든 나한테 하소연 하고 가도 되니까. 힘들다고 밥 안 먹고 그러지마라. 이 누나 마음이 아플 거 같다.
김독자... 어련히 알아서 잘하면 이런 잔소리도 안 할텐데. 하여튼 손이 많이 간다니까 너도? 울지말고 잘 지내고 있어.
고생많았어.]
네가 남긴 글을 보며 눈물이 흘렀다. 노트북을 잡고 하염없이 울다가 마음이 추스러질 때쯤, 의문이 들었다.
분명 이 편지의 시작은, 내가 기다린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있었다. 그렇다면, 수영이는 이 편지를 쓸 때 적어도 본인이 '죽지않는다'는 것을 알고서 남겼을 확률이 높다. 즉 자신이 아픈 이유 혹은, 추후에 자신이 어떻게 될지 알고서 이 것을 남겨두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지만 내 생각이 맞다면 수영이는 자신이 이렇게 될 것이라는 걸 예상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의문은 고생 많았다는 한참 뒤에 쓰여진 듯한 말이다. 이 글은 분명 수영이가 병실에 눕기 전에 쓰여진 듯한 뉘앙스의 글이었다. 고생 많았다는 무슨 이유로 넣어논 것일까? 단순히 고생 많을테니 넣어둔 것일까? 비약같기도 하지만, 나중에 작성된 것이라면?
마지막으로 그 쪽지와 이 글이 왜 지금 시점에, 내게 보인 것일까? 쪽지도 메모장도 분명히 없었던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러나, 당장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기에, 고민을 덮어두고 자리를 정리했다. 방을 조금 정리하고, 청소를 해둔 뒤 옛 자택을 나섰다. 비유와 서아가 기다리고 있을 집으로 향하는 그 순간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설화, '예상 표절'이 다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게...
[설화, '퇴고 전문가'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설화, '거짓 구원자'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빠르게 네가 있을 병실로 달려갔다. 핸드폰의 진동이 느껴졌지만 전화를 받을 정신이 없었다. 다급히 도착한 병원 입구에서 설화 씨가 나를 반겼다.
"독자 씨!!!! 수영 씨가!!"
"먼저 올라가보겠습니다!"
수 많은 생각들이 머릿 속을 헤집었다. 닦아내도 계속해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것들이 그저 잠깐의 환상이라면... 나는 생각을 멈추고 병실로 달려갔다.
병실의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을 때, 열려진 창문과 커튼 사이로 너의 실루엣이 보였다. 불현듯, 창문 틈 사이로 바람이 한 줄기 들어왔다.커튼이 살짝 걷히며 그토록 보고 싶었던 너의 웃는 얼굴이 보였다.
"보고 싶었어.."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 앉아 하염 없이 눈물을 쏟아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