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독자가 '김독자'로 서술되면 유상아 시점, '나'로 서술되면 김독자 시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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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익하며 문이 열리자 김독자가 유상아에게 말했다.
"상아씨 편한데 앉으세요. 수건을 가져오겠습니다."
김독자가 화장실로 들어가자 유상아는 주변을 찬찬히 살피기 시작했다.
깔끔하게 정돈된 이불과 그에 대항하듯 책상 위에서 널부러진 책들.
그 상황이 마치 회사 생활을 하는 김독자를 보는 듯해서 유상아는 자기도 모르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상아 씨? 왜 웃으십니까?"
"아,아무것도 아니에요."
"여기 수건입니다."
"고마워요 독자 씨."
"....."
"....."
수건을 받자 불편한 침묵이 주변을 가득 매웠다.
그 누구도 섣불리 침묵을 깨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기에 섣불리 다가가지 않은 것이 그 이유였다.
그 상황 속에서 먼저 침묵을 깬 것은 김독자였다.
"상아 씨. 아무리 우산을 썼어도 몸을 좀 녹이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온수는 나오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아뇨 저는 괜찮은데.."
"감기 걸리시면 안됩니다. 카페에서도 감기 기운 있으셨잖아요."
김독자에게 떠밀린 유상아는 옷을 챙겨 화장실로 들어갔다.
김독자의 자취방에 여자 옷이 있을리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김독자의 옷을 챙겼다.
쏴아아아.
샤워기를 키자 따뜻한 물이 나와 몸을 적셨다.
'근데 이 상황 마치 신혼부부 같은데..'
잠시 상상하던 유상아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
쏴아아.
물줄기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나 너무 말도 안되는 짓을 벌인 게 아닐까....
『왜 분노하는 거지? 너의 목적을 위해 그녀가 필요하니까. 내가 그녀를 죽인 것에 화가 난 거야? 아니면 그저 내가 그들의 얼굴을 흉내 냈기에 화가 난 거야?』
한순간 조소를 머금은 채 나를 바라보던 악귀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했다.
하지만 나는 그 악귀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그의 말에 사실인 부분이 있었으니까.
나는 나의 목적을 위해 유상아를 이용해야 한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악귀가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그녀가 나의 목적을 알게 될 때가 온다면.
나는 화장실 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때는 절 용서하지 말아주세요."
***
시간이 지나 나와 유상아 모두 샤워를 끝마쳤을때 우리 둘 사이에는 다시 침묵이 감돌았다.
옆에 앉은 유상아에게서 좋은 향기가 났다. 내가 늘 쓰는 샴푸일텐데, 왜 이리 다른 향기가 나는지....
한번 의식하기 시작하니, 유상아의 모습이 점차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옷이 커서 드러내진 어깨....젠장 내가 뭐하는 짓이지.
고개를 흔들어 이상한 생각을 털어냈다.
그렇게 침묵이 계속되던 와중.
꼬르륵.
어디선가 울려진 뱃소리.
조그마한 소리였지만 진원지가 가까웠기에 나와 유상아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소리의 진원지를 바라본 유상아는 얼굴을 빨개진 채 고개를 숙였고 나는 조심스래 유상아에게 물었다.
"상아 씨 혹시 배고프십니까...?
***
나는 가스렌지를 켜 언젠가 사두었던 파스타 면을 꺼내 조리하기 시작했다.
뭐 카페에서 음료 한 잔 마시고 아무것도 안 먹었니 배고플만도 하지.
당황하며 얼굴을 붉힌 유상아가 떠올라 나는 가볍게 웃으며 완성된 파스타를 건넸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유상아는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파스타를 받았다.
포크를 이용해 한 입 먹고, 또다시 한 입 먹고.
그렇게 파스타를 다 먹은 유상아가 감탄한 듯 입을 떼었다.
"맛있어요...독자 씨 요리 잘하시네요.."
"자취하다보니 배우게 됐습니다. 상아 씨는 요리 잘하십니까?"
"저는 누구에게 자랑할만한 실력은 안된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상아 씨 요리도 먹어보고 싶네요."
식사를 끝낸 유상아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책상에 널부러진 소설책 한 권을 집었다.
"멸망 이후의 세계....?"
"어 상아 씨 그, 그건..."
내 취향을 들키니 뭔가 부끄러운데. ..
유상아에게 있어서 회귀물이니 헌터물이니 하는 것은 다 이상하게 생각할테니 이걸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잠시 생각했다.
그런데 유상아에게서 나온 말은 내 예상과 사뭇 달랐다.
"독자 씨도 이거 읽으셨나요?"
"네...?"
"이 소설 저희 미노소프트 프로젝트에 당선된 소설인데. 저도 한번 읽어봤거든요."
"아...그런 프로젝트가 있었나요?"
"네. 웹소설과 철학을 적절히 조합한 작품이라 생각해요."
"전 잘 이해하진 못했지만, 엄청 재밌게 읽었습니다. 상아 씨가 알고 있었을 줄은 상상도 못했네요."
"저도 프로젝트 때문에 한번 읽어본거라 잘 알지는 못해요..."
나는 널부러진 책 중 하나를 유상아에게 건넸다.
책을 받은 유상아는 편한데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고, 나 또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늦은 밤.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고요한 밤이었지만, 책을 넘기는 소리는 선명하게 주변의 소리를 채워주고 있었다.
후기 : 늦어서 미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