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내가 고백한 장소니까 뭐, 어쩌라고?"


시시한 추억따윌 꺼낸 곳에서, 그게 뭐 어쨌다는걸까요?

알토의 답답한 행동때문에 이젠 저도 슬슬 한계였습니다.


"...응, 지금부터 이야기할게. 그 전에"

"이제 됐으니까. 그냥 빨리 말해 ──"

"리나, 오늘로 16살이구나. 생일 축하해"


내 말을 끊어버린 알토는, 웃는 얼굴로 제 생일을 축하해줬습니다.

참, 알고보니 오늘은 제 생일이었네요.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만..


"내가 16살이 되고 나서, 쭉 이 날을 기다려 왔어"


황당한 경험에 어이를 상실한 저를 뒤로 한 채, 알토가 계속 지껄입니다.


"그 때, 약속했었잖아. 리나가 16세가 되면, 나도 각오를 다진다고"


아아, 그런 말을 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고백한 뒤로 말이죠.

하지만, 이제 와서야 하등 쓸모 없는 약속입니다. 그런 것조차 모르는 알토는,

더욱 열을 띈 채 제게 말을 건네고 있습니다.


"리나가 비록, 누군가와 실수를 저질렀다고 해도.. 나는 괜찮아. 그것은 분명,

너를 외롭게 놔뒀던 내 책임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결의를 담은 눈동자로, 저를 빤히 응시하는 알토.


아마 어제 일을 말하고 있는거겠지요. 용사님과의 사랑이 잘못이라니,

병신인가요? 내가 저지른 최대의 잘못은 눈 앞에 있는 이 쓰레기와

한 순간이나마 연인이였다는건데 말이죠.


뭐, 아직도 모르고 있나 보군요. 너무 어리석고 멍청해서 불쌍할 지경입니다.


"그래도 아직, 너를 사랑하고 있는 내가 있어. 그래서, 리나.. 나와 결혼해줘."


그러면서 알토는 제게 ─ ─ 나무 상자에 들어간 반지를 내밀었습니다.

쥐꼬리만한 알토의 수입에서 보면, 뭐, 가당치도 않는 노력을 하긴 했네요.


아아, 분명히.. 얼마 전까지 가지고 싶었던 물건이긴 합니다..

알토와 결혼하고 싶을 때의 저라면, 눈물을 쏟아냈을지도 몰랐겠네요.


인생 중 최고의 순간이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저는 웃는 얼굴로 알토로부터 반지를 받았습니다.


"리나...!"


제가 반지를 받자, 알토는 행복한듯한 소리를 냈습니다.

받아줬다고, 마음이 통했다고, 그런 어이없는 얼굴을 말이죠.


그런 그에게 미소를 띄우면서, 저는 손에 잡힌 반지를 그대로 들어


─── 지면으로 내던지고, 발로 짓밟았습니다.


"엣... 리나...?"


멍청한 상판때기를 한 얼간이같은 알토가, 넋이 나간 모습으로 저를 응시했습니다.

대체 왜 이렇게 놀라는거죠? 이 쓰레기는.


"이런 싸구려, 쓰레기같은 반지... 쓸리가 없잖아?"

"이럴수가.. 리나, 하지만 나는..."


본심을 제가 말하자, 눈물을 글썽이는 알토가 그런데도 뭔가를 지껄이려 하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보기 흉해서, 구차할 지경입니다.


"푸...풋.. 거,거절당하고 자빠졌네. 키키킥"


지금까지 관망하고 있던 용사님도, 역시 이 쓰레기의 초라한 모습에는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는지 쓴웃음을 짓고 있었습니다. 당연합니다.

이런 병신같은 모습은 누가 봐도 웃어버릴 수 밖에요.


"그렇구나. 리나는 오늘로 16세였어.."


깨달음을 얻은듯한 모습의 용사님은, 잠시 상념에 빠지셨습니다.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용사님은 그 자체로도 매우 멋져서, 저도 모르게

넋을 놓고 쳐다보고 말았습니다.


"좋아. 결정했다!"


성실한 얼굴이 된 용사님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갑자기 저를 끌어안았습니다.

용사님에게 안긴 저는, 두근두근하면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자 용사님은, 제게 이렇게 말해준 것입니다.


"이봐, 리나. 나랑 결혼하자? 너를, 용사의 아내로 맞이할게"

"에엣... 코오지님.. 괘,괜찮습니까? 저같은 걸로.."

"당연하잖아, 리나. 네게 정말로 반해버렸다고. 나란 남자는."


용사님의 말씀을 듣자, 저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조금 전의, 쓰레기가 내뱉은 청혼과는 격을 달리하는, 진정한 사랑이

그 자리에 맴돌고 있었으니까요.


서로를 응시하는 우리를, 비참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는 알토를 

알아차렸습니다만, 그런 더러운 존재 따윈 무시하고

용사님의 구혼에 응했습니다.


"기뻐요.. 코오지님.. 리나를.. 당신의 아내로 삼아주세요"


청혼에 대한 대답과 함께, 저와 용사님은 맹세의 키스를 나눕니다.

알토가 보고 있는 앞에서, 혀를 얽히고.. 진실된 사랑이란 걸 증명해보인겁니다.


"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알토의 귀가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향신료 삼아 ─ ─ 우리는 키스를 계속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