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을 뜬다. 이불에 덮혀 잠들어 있던 정신이 서서히 깨어난다.

수면 패턴은 이미 무너졌다. 방 안에는 빛도 들어오지 않아서 밖이 몇 시인지도 모른다.

한 달 간은 이렇게 살았었나, 이제는 정말로 위험할지도 모른다.


손으로 휴대폰을 집어 전원을 켰다. 그 빛이 너무나 밝았다.


'20 : 00'


언제 잠드는지 모르고, 언제 눈을 뜨는지 모른다. 술과 담배는 효과가 없었다. 무슨 짓을 해봐도, 어떤 망상을 해봐도 나아지는 건 없었다.

결국 다시 처음, 그날과 똑같이 나는 휴대폰을 붙들었다.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후 소리샘으로 연결되오며,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언제나와 같이 힘 없이 늘어진 손, 그 소리가 들리면 나는 다시 현실과 마주한다.



*



우연이 있다면 필연도 있는 것이라며, 그녀는 우리의 만남을 필연이라고 말했다.


"좋아해, 몇 번 말한건지 모르겠지만. 정말 좋아해."

"응, 앞으로도 함께야."


생각해보면 너는 나에게 '좋아해'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었던걸까.

필연이라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 네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건지 도통 모르겠어.


"더 좋은 남자가 생겼던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을 타일렀다. 네가 못났어, 네가 부족했던거야. 라며.

밝게 미소짓던 그녀가, 다른 남자의 곁에 서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이제 포기해야한다.

언제까지나 그녀는 뒤를 돌아봐주지 않는다. 

자리에 내던져진 나는 다시 일어나야 했다.


하지만 매년, 이제는 번호의 주인이 바뀌었을지도 모르는 이 번호로. 나는 습관적으로 전화를 건다.

 

*


또 새해가 밝았다.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바쁜 와중에도 나는 습관처럼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이제는 포기하지 않도록, 다짐과 결의를 맺는 나만의 방법이었다.


"벌써 2년이 지났구나."


단 한 명 뿐이었던 사람에게 버림받았던 과거도 이제 정말 과거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노력했다. 일어서려고 발버둥쳤다.

그녀의 SNS에 올라온 행복해 보이는 사진을 보며 낙담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연결음을 들을 때마다 오기가 생겨 포기하지 않았다. 


이제 언제나처럼 상담원 누님의 목소리가.........


"어?"


저편에서 내 이름을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그리운 연인을 부르는 것 처럼 서글픈 소리로 자꾸 내 이름을 불렀다.


"....."

"듣고.. 있어..?"


들리면 안 되는데, 저기에서 몇 년만에 들리는 목소리가 너무 생생했다.


"...끄, 끊겠습—"

"미안해..!!!"


손이 멈췄다. 통화 종료 버튼 위에 올라있던 손가락이 서서히 멀어졌다.

절대 나에게 먼저 다가오지 않던 네가, 처절히 달라붙는 목소리로 내게 소리쳤다.


"미안해, 정말... 정말.. 미안해. 너를 싫어했던 게 아니었어...! 그때는 내가... 정말 어리석었어..!"


차게 식어가는 나와 다르게 너는 매달리듯 우는 듯 했다.


"그때는 정말... 미안.. 미안해요. 하라는대로 할 테니까.. 그러니까.. 제발 용서해주세요... 저와 다시 사귀어주세요..."


이상했다. 그녀가 붙잡아오면 언제라도 다시 돌아갈 것 처럼 연약한 나였다.

그건 최근까지도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뭐가."


내 입은 누가 조종하기라도 한 것 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어쩌면 가슴 한 켠에 품어두고 있었던 생각일지도 모른다.


"너, 별로 날 좋아하던것도 아니었잖아. 그냥 우연이었던거야."

"아니야....! 아니니까... 그런 생각 하지 말아줘.."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것은 우연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니까, 나는 우연히 만난, 그렇지만 내게는 너무나도 운명적인 나의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야한다.


"어차피 안받을거라고 생각해서 연락한 거였어.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다."

"아니야..! 지금까지 받지 않아서 미안해.. 응..? 제발..."

"미안, 끊을게."

"잠깐...!"


전화를 끊었다. 약간의 씁쓸함이 가슴에 아련하게 매워져 왔다. 이것도 복수라면 복수라고 할 수도 있겠지.

언제까지나 기다리기만 했다가는 나는 어쩌면 죽었을 수도 있던 것이다.


눈을 감았다 뜨면, 새하얀 함박눈이 쏟아지는 밤하늘과 함께 나의 '여자친구'가 보였다.

한걸음에 달려나가 맞이하려 팔을 벌리면, 그보다 더 빠르게 내 몸이 속박되었다.


"기다렸지?"

"아니, 하나도."



-끝-


밑에 소꿉친구 후회물 보고 갑자기 삘 받고 쓴 거라서 소재라던지 비슷한 부분이 있어.

즉석이라 부족한 부분이 많으니까 이해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