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편






그 날 이후, 벽람항로는 지휘관의 치세 하에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


자원은 효율적이면서도 유도리있게 분배되었다. 막혀있던 해역 공략 역시 다시 재개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녀들의 동요가 줄어들고 불안한 마음 속에 한 줄기 희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지휘관은 차가웠다.


함선 소녀들과의 따듯한 대화는 일절 하지 않았고 최소한의 업무상의 말만 이어갔다.


함선 소녀들은 그런 지휘관을 보며 전전긍긍했다. 분명 어느 정도 용서를 해 돌아온줄로만 알았던 지휘관이 계속하여 자신들을 냉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은 지휘관이 그 어떤 시선에도 상관쓰지 않고 무시를 하고 있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지휘관의 속 마음은 함선 소녀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점점 망가져가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눈동자들이 지휘관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할 때마다 시야가 아득해지고 숨쉬는 것이 답답해졌다. 


한국에서 지휘관직을 수행할 때야 자신의 과거에 대해 아는 이가 슈페, 도이칠란트 이외에는 없었고 그마저도 그 둘이 언급 자체를 거의 피했기 때문에 그 일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 섬은 거의 모든 이들이 그 어두웠던 괴거를 알고 있다. 


지휘관은 함선 소녀들이 다시 자신을 물어뜯기 위해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하며 두려워하고 있었다.


늘 감시받고 있는 기분이었다. 누군가가 어깨에 돌을 올려 자신을 짓이기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 결과 지휘관은 매일 정신적 고통을 호소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누군가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슈페, 도이칠란트에게 말하자니 그녀들이 걱정할까봐 차마 말을 할 수 없었다. 당연히 다른 함선소녀들에게는 그런 약한 모습이 물어뜯길 빌미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 내색 할 수도 없었다.


결국 지휘관이 의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약뿐이었다.


온갖 종류의 약물이 끼니때마다 지휘관의 정신을 파고들어 부정적인 생각과 격렬하게 싸워댔다. 하지만 당연히 그런 정신계 약물들이 인체에 좋을리가 없는 법, 지휘관의 몸과 마음은 점점 피폐해지고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지휘관은 악몽을 꾸었다. 그 꿈속에서 지휘관은 고문을 받던 그 때 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모든 소녀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경멸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우웩.. 구역질나는 쓰레기..”


“세상이 아닌 오직 너만을 증오한다.”


“저런 인간에게 창조되었다니.. 차라리 자침하는 편이 나을정도네요..”


소녀들은 돌아가며 지휘관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지휘관은 이 상황이 너무나도 낯설지 않았다. 


“아니야.. 아니야.. 이건.. 꿈이야..! 으으윽..”


지휘관은 이 모든게 꿈이라는 것을 지각하고 있었다. 즉, 이건 지휘관의 자각몽이었다.


하지만 지휘관은 그 모든게 꿈이라는 것을 지각할 뿐, 깨어날 수 없었다. 끊임없이 함선 소녀들에게 매도당하고 폭행당했다. 


“아니야.. 난 아무것도 안했어..”


지휘관은 이 말만 반복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더욱 무자비한 폭행과 폭언뿐이었고 결국 지휘관이 깨어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소녀들에게 경멸어린 시선으로 욕을 먹고 폭행을 당하다 머리를 얻어맞고 정신을 잃은 이후였다.






“우웁..!”


지휘관은 헛구역질을 하며 정신을 차렸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주위에는 약간의 은은한 달빛만이 비출 뿐, 전체적으로는 어두웠다.


지휘관은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돌려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 속에는 한 남자가 지휘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남자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증명하는 초췌한 눈과 비참한 상태의 몸뚱이가 비춰지고 있었다. 


그 남자의 몸에는 온갖 종류의 상처들이 흉측하게 치유되어 있었다. 지휘관의 눈에 그 남자는 역겨울 정도의 추한 사람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이내 그 추한 사람이 자신임을 생각한 지휘관은 갑자기 목 아래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고 있음을 직감했고 지팡이도 없이 절뚝거리며 화장실로 향했다.


“우욱!!!”


변기를 붙잡고 속에서 올라오는 것을 게워내려 했지만 계속하여 헛구역질만 할 뿐이었다.


“우우욱!!”


지휘관은 더 격동적으로 몸을 쥐어짜며 구역질하였지만 그 어떠한 것도 뱉어내지는 못했다.


“으으으..”


속 시원하게 나와야 할 것은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지휘관은 해가 떠오를 때까지 헛구역질을 반복해야했다. 당연히 그의 몸과 마음은 이미 망가져버리고 말았다. 다시 일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약들을 먹어야만 했다. 


“윽..”


약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자 올라오던 것이 겨우 진정되고 다시 내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약의 힘으로 잠시 잠재운 것일뿐, 그것들은 아직도 지휘관의 몸 속에 남아 언제고 다시 나올지 모르는 것이었다.











잠시 뒤,


지휘관이 지친 몸을 지팡이에 의지해 억지로 출근을 위해 숙소에서 나왔을 때, 광장에서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거의 모든 중앵의 함선 소녀들이 나와있었다. 그녀들은 어떤 사람의 형태의 것을 둘러싸고 있었다.


“아, 지휘관이여..! 드디어 나왔구나, 여가 많이 기다렸노라!”


그리고 그 중심에는 중앵의 수장, 나가토가 서있었다.


“…”


지휘관은 당연히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지휘관이여.. 그대가 우리에게 실망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쉽게 풀리지 않는다는 것도 당연히 알고 있다.. 그래서, 여가 그대를 위해 준비했노라..!”


나가토는 옆으로 물러서 그 뒤에 있던 것들을 자랑스럽게 선보였다.


“으으.. 지.. 휘관님.. 잘.. 못.. 했어..요..”


“지.. 히.. 간..”


그곳에는 지휘관을 무참하게 고문했던 중앵 소속의 항공모함 카가와 경순양함 노시로가 쇠사슬에 묶여 험한 꼴로 무릎 꿇려져 있었다. 그녀들은 모두 고개를 푹 숙이고 원초적인 공포와 고통 앞에 벌벌 떨고 있었다.


그녀들의 의복은 이미 찢어진지 오래였고 몸에서는 붉은 선혈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아마 지휘관이 당했던 고문을 비슷하게 당한 듯 해보였다. 특히 노시로의 한쪽 뿔은 잘려나가 있었고 카가의 여우귀 역시 일부분이 잘려나가 비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나가토는 그런 그녀들을 보고 지휘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휘관이여, 어떤가? 그대를 집요하게 괴롭힌 노시로와 카가다! 중앵의 수장으로써 이 둘을 지휘관에게 넘겨주기 위해 여가 준비했다..! 그대가 가지고 놀아도 좋고 그대가 당했던 그대로 되갚아줘도 좋다..!”


“…”


나가토는 엄청난 것을 선물했다며 당당해했지만 그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경직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러자 카가의 자매함인 아카기와 노시로의 자매함인 아가노가 지휘관에게 다가와 공손한 태도로 말을 건넸다.


“후후.. 지휘관님, 비록 카가는 제 자매이긴 하지만 감히 분수도 모르고 지휘관님께 해서는 안되는 짓을 저질러버렸죠.. 그래서 이 아카기, 언니로써 책임을 지고 카가라는 제 동생의 탈을 쓴 ‘벌레’를 친히 교정하였답니다~”


-IJN 아카기-


아카기는 요염한 표정으로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에 질새라 아가노 역시 말을 이었다.


“후훗~ 지휘관님, 저 아가노 역시 감히 키워주신 어버이의 은혜를 잊고 감히 지휘관님에게 해를 입힌 노시로를 용서할 수 없었답니다.. 그래서 아가노급의 기함으로써 철저히 재교육을 시켰으니 부디 안심하셔도 된답니다~”


-IJN 아가노-


아가노는 특유의 가학적인 미소로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아카기와 아가노, 두 함선 모두 지휘관에게 잘 보이고 용서를 받기 위해 자매들을 무참하게 고문한 것이었다.


“…”


지휘관은 여전히 말을 잇지 못했다. 카가와 노시로, 두 함선 소녀들이 묶여 다른 소녀들에게 경멸어린 시선을 받고 주위에서 내뱉는 욕설을 듣고 있는 모습이 마치 어젯밤 자신이 꾸었던 꿈이 예지몽이라도 되는 것 마냥 소름끼칠 정도로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우읍..”


지휘관의 속에서 무언가가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다. 시야는 아득해져갔지만 멀리서 수근대고 있는 중앵의 함선소녀들의 말 만큼은 선명하게 들려왔다.


-이 쓰레기들..-


-죽어.-


-배은망덕해.-


지휘관의 머릿속은 점점 뿌연 안개로 뒤덮혀갔다. 점점 정신이 아득해져갔다. 그 날의 기억을 머리를 잊기 위해 죽어라 노력하고 있었지만 몸은 그렇지 않았다. 그 고통을 모두 기억하고 있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지.. 지휘관님..? 괜찮으신가요..?”


“…아”


평소 같아도 그냥 무시할 만한 일은 아니었으나 지휘관은 이미 밤새 악몽과 구역질로 인해 정신이 한 차례 망가진 뒤였기에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지휘관의 정신은 거의 극한까지 내몰렸다.


결국..







털썩..


“지.. 지휘관!!”


“지휘관님!!”


지휘관은 갑자기 앞으로 몸이 쏠리는 것을 느낀 뒤 눈을 감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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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은 대충 완성했는데.. 

완결낼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