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편







지휘관은 소녀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세이렌 만큼은 확실히 공략해나갔다. 세이렌이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몰라 용골이 없는 군함들은 출격조차 마음껏 할 수 없던 예전과는 달리 지금은 거의 모든 바다에서 군함들과 일부 상선들이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어느정도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만큼 함선소녀들에게 자유시간이 늘어났다.


하지만 그녀들에게 자유시간은 그저 괴로운 시간일 뿐이었다. 그녀들이 원하는 자유는 단 하나였다.


지휘관과의 관계.


그녀들은 자신들의 과오를 용서받고 예전같은 관계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그런 차원에서 중앵의 소녀들이 직접적으로 지휘관을 고문한 카가와 노시로를 진상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휘관은 부산에서 엔터프라이즈와 뉴 저지에게 내건 조건을 근거로 그라프 슈페, 도이칠란트 이외에는 사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하루빨리 세이렌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주인님.. 잘못된 줄은 알고 있으나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비서함인 슈페의 연락을 받은 지휘관이 급하게 집무실을 나간 직후였다.


그동안 지휘관에게 특별히 접근을 허가받지 못했던 로열 메이드대의 장, 벨파스트가 지휘관의 집무실을 찾았다.


확실히 지휘관이 슈페를 따라 관용차를 타고 항구 쪽으로 나가는 것을 확인한 벨파스트는 몰래, 그리고 조용히 집무실 내로 들어갔다.


“일단.. 먼지 부터 제거해야겠네요.”


벨파스트의 눈동자는 반쯤 죽어 있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지휘관의 집무실 관리는 모두 벨파스트의 몫이자 그녀의 자부심이었다.


로열 메이드대에는 청소만을 담당하는 메이드인 셰필드가 있고 경호를 특화적으로 잘하는 시리우스가 있다.


하지만 지휘관을 담당하는 메이드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이상 단 한 명뿐이었다.


집무실의 청소, 신변 보호, 그리고 간단한 식사 준비까지. 이 모든 일은 벨파스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고, 문자 그대로 벨파스트의 자부심이었다.


늘 그 일을 자랑스럽게 여겨왔던 그녀가 지휘관의 조건으로 인해 접근 자체가 금지된 이후, 벨파스트는 늘 다시 돌아가는 것을 갈망해왔다.


“흥흥흥~ 역시 주인님의 방은 늘 일하는 보람이 있네요..”


벨파스트의 얼굴에는 미소가 드리웠다. 오랜만에 관사를 청소할 수 있다는 일은 잠시나마 벨파스트의 불안감과 괴로움을 잊게 해주는 마약같은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마침 벨파스트는 지휘관이 쓰는 탁자 아래를 청소하기 위해 의자를 당겼다.


“어..?”


그리고 벨파스트는 보았다. 급히 나가느라 지휘관이 미처 끄지 못한 컴퓨터 모니터를 말이다.


“주.. 주인님..!”


모니터 한 쪽에는 각 함선 소녀들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프로그램이 실행되고 있었다. 마침 지휘관이 보고 있던 페이지는 벨파스트를 위시한 로열 메이드 대의 페이지였다. 


그 이외에 진영별로, 함종별로 정리된 분류로 나눠진 함선소녀들의 상태는 하나같이 좋았다.


피로도, 숙소의 쾌적도 등 객관적으로 수치화 할 수 있는 부문들은 모두 좋았다. 그 만큼 지휘관의 노력이 컸음을 알 수 있었다.


“주인님.. 말씀은 늘 그렇게 차갑게 하셔도 저 벨파스트는 주인님의 진심을 알고 있답니다..”


벨파스트가 눈여겨 본 것은 함선 소녀들의 호감도였다. 지휘관을 향한 소녀들의 강한 마음은 곧 호감도로 이어졌고 이는 터질듯한 호감도 그래프로 표현되었다.


“… 이건..!”


그리고 벨파스트는 그 프로그램 창 옆에서 실행되고 있던 또 다른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바로 서약에 관련된 도움말이었다.


자신 벨파스트의 호감도를 체크하고 서약에 관련된 메뉴얼을 확인하고 있다..


벨파스트의 뺨이 화악 달아올랐다.


“후.. 후후.. 후후후.. 그렇군요.. 감히 주인님의 메이드인 제가 주인님께 직접 반지를.. 후후.. 기대가 되네요..”


벨파스트는 잘 재단된 드레스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였다. 그리고 눈 앞에는 자신을 용서하고 환하게 웃으며 자신에게 직접 반지를 끼워주는 지휘관이 있었다.


“후후.. 주인님.. 이 불초 벨파스트, 그 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벨파스트는 미소를 머금은 채 자신이 오고 갔다는 흔적을 치우고 조용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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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 쯤 끝날 듯.


갑자기 착각물이 된 거 같지만 조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