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편







얼마 뒤, 세이렌은 마지막 우두머리, 엠프레스를 마지막으로 모두 궤멸되었다.


지휘관의 신들린 용병술이 빛을 발했다. 항모를 중심으로 제공권 확보에 주안점을 두고 전투를 벌인 별과, 엠프레스는 그 위용에 걸맞지 않게 너무나도 간단하게 침몰하고 말았다.


전쟁은 끝났지만 아직 세이렌의 잔당들을 처리해야 했다.


지휘관과 슈페, 도이칠란트, 그리고 다른 함선 소녀들은 늘 쪽잠을 자가며 잔당 처리에 온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결국, 인류는 완전한 승리와 재해권의 완전 탈환을 선언할 수 있었다.


“지휘관, 이제 돌아가는거야?”


“그래. 이제는 전역해서 조용히 살고 싶어.”


지휘관은 평화로워진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흥..! 전역해도 이 도이칠란트님의 곁에 계속 있는거겠지?!”


도이칠란트는 팔짱을 끼고 고자세를 취했지만 지휘관은 그런 도이칠란트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으며 따듯하게 말했다. 


“그래. 죽는 그 날까지 네 옆에 있을게.”


“..!”


도이칠란트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자신과 닮은 지휘관이 언제까지나 자신과 같이 있어주겠다고 말해주었다. 그는 도이칠란트의 어두웠던 과거의 상처를 어루만져준 사람이다. 


‘지휘관, 이제는 내가 지휘관의 상처를 보듬아줄게.. 내가 받은 은혜, 그대로 돌려줘야하겠지..?’


앞으로 평생 지휘관의 곁에 있어야겠다고 다짐한 도이칠란트였다.


“지휘관.. 나도.. 평생 옆에 있어줄게..!”


슈페도 이에 질새라 지휘관에게 달라붙었다. 지휘관은 그런 슈페를 품에 안고 조용히 서로의 체온을 나누었다.


“…”


“지휘관..”


슈페의 표정에는 행복감만이 가득차있었고 언니인 도이칠란트의 기분까지 뭉클하게 만들었다.


“아 참.. 부산으로 돌아가는 날에 너희 둘에게 주려고 준비한게 있어.”


“응..? 뭔데?”


“그러게..?”


도이칠란트와 슈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지휘관은 그 것이 무엇인지 끝까지 숨기고 싶어했다.


“미안해, 하지만 그건 아직 말해줄 수 없어.”













얼마 뒤, 모항에는 알 수 없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지휘관이 모항 내의 누군가에게 서약의 반지를 건네주려 한다는 것이었다.


이 소문의 발원지는 예상할 수 있듯, 로열 메이드대의 장, 벨파스트였다. 얼마 전, 몰래 들어간 지휘관의 집무실에서 지휘관이 소녀들의 호감도와 서약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판단한 그녀는 혼잣말로  서약에 대해 말하고 다녔다.


“후후.. 주인님과 서약.. 주인님과 서약..”


그녀 나름대로 남들의 앞에서는 조용히 쉬쉬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샌가 그녀의 혼잣말을 들은 누군가가 소문을 퍼뜨리고 말았다.


“지휘관님께서 누군가와 서약을 준비하고 계신다고 하시네요..”


“아, 얼마 전에 들어온 보급품에서 반지를 본 것 같아..!”


“반지가 두 개라고 하던데?”


“오오! 드디어 지휘관이 우리들을 용서한 것이로구나..!”


“근데, 그 반지는 누가 받는거야?”


“후후, 당연히 나지! 내가 지휘관에게 얼마나 대쉬를 많이 했는데!”


“부끄럽지만.. 아무래도 반지를 받는 것은 여겠구나..!”


온갖 괴소문이 나돌았다. 소녀들은 늘 머리를 맞대고 누가 반지를 받을 것인지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러던 와중 지휘관의 퇴역이 결정되었다.


“에..? 퇴.. 퇴역..?”


“응.. 이번 달 말에 슈페랑 도이칠란트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간데..”


“그.. 그럼 우리는..”


“우리는 앞으로 다국적 평화 유지군 개념으로 남고 지휘관에 대해서는 그가 직접 후임 지휘관을 천거했나봐.. 유니온의 사람이라고 하더라고..”


함선 소녀들은 충격에 빠졌다. 그야 그럴게, 자신들이 그렇게 열을 올리던 지휘관과의 서약설에 정면으로 부정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벨파스트는 달랐다. 이미 돌기 시작한 착각의 회로는 가동이 중지될줄 모르고 끝없이 빨라져만갔다.


“후.. 후후.. 그러네요.. 분명 이 불초 벨파스트도 주인님의 고향으로 데리고 가시기 위해.. 후후후.. 그렇군요.. 이제야 주인님의 큰 뜻을 깨달을 수 있게 되었군요..!”


벨파스트의 상상의 나래는 이미 아이들을 낳는 것 까지 뻗어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렇게 회로를 돌리던 벨파스트와는 다르게 지휘관은 떠나기로 결정나는 날까지 메이드대는 얼굴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후후.. 그래요.. 서프라이즈는 아무도 예상치 못해야 가장 극적인 법이니까요..!”


벨파스트는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도 초조해져갔다. 지휘관으로부터 어떠한 징조도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결국, 지휘관의 퇴역일이 다가왔다.


모항의 항구에는 지휘관을 한국으로 안내할 한 함선 소녀의 의장이 정박해있었다.


“…”


그리고 그의 퇴역과 이별을 보기 위해 거의 모든 함선 소녀들이 항구에 나와있었다.


소녀들의 표정은 대체적으로 어두웠다. 결국 그녀들 사이에서 돌았던 소문은 거짓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단 한 명, 벨파스트의 표정만큼은 달랐다.


‘후후.. 이제 곧 주인님께 반지를..’








하지만 곧 벨파스트의 희망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그 시발점은 슈페의 목소리부터였다.


“지휘관, 그.. 우리한테 주고 싶다고 한게 뭐야..?”


“그래, 그게 대체 뭐야?”


도이칠란트 역시 옆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지휘관은 부끄럽다는 듯 그답지 않게 허둥대며 바지 뒷 주머니에서 무언가 작은 상자를 꺼냈다.


“미안, 지금 몸상태로 무릎을 꿇을 수는 없지만.. 꼭 주고 싶었어. 


어드미럴 그라프 슈페, 도이칠란트. 많이 부족한 남자지만, 저는 당신들의 상냥함과 따듯함에 반했어요. 내 어려움을 옆에서 같이 겪어준 둘의 옆에 계속 있고 싶어요.


나와.. 결혼해줄래요..?”


지휘관이 꺼내 든 것은 서약 반지였다. 


“…”


“…”


슈페와 도이칠란트는 잠시 움직이지 못했다. 지휘관은 차마 둘을 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주.. 주인님..?”


그리고 벨파스트의 표정이 크게 경직되었다. 초점을 잃은 눈동자는 벌벌 떨리고 있었고 목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좋아요.. 당신의 아내가 될게요. 사랑해요.. 삶이 끝나는 날까지.. 당신을 사랑할게요..”


슈페는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지휘관에게서 반지를 받았다. 


“응.. 기꺼이 받을게요.. 내 아픔을 가져가준 사람, 이젠 내가 당신의 아픔을 가져가 줄게요. 사랑해요. 고마워요. 이렇게 고백해줘서..”


도이칠란트는 평소의 고압적인 분위기와는 다르게 부드럽고 따듯한 어조로 지휘관의 고백을 받아들였다. 


“…”





그리고 이 이야기는 벨파스트와 다른 함선 소녀들의 얼빠진 얼굴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지휘관은 그대로 전역하여 슈페와 도이칠란트. 두 아내와 빵집을 하며 조용히 살아나갔다고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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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가 아쉽다면 아쉽지만 어느정도 여운을 남기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끝냄. 


재미있게 봤기를 바라며 여기서 물러간다. 다른 글을 쓸지 안쓸지 아니면 아카라이브를 떠날지 아무도 모르지만 여기까지 봐줘서 너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오래된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