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 된 걸까.

 대체 어디에서 실수 한 걸까..

모르겠어. 모르겠다고. 온몸이 찢어질 듯이 아픈데도 잘 모르겠어. 어디가 아픈 건지 알고 싶지도 않아. 그냥... 그냥... 이제 다 모르겠다고.

 머릿속에서 다정한 남자의 목소리가 재생된다. 언제나 웃고 있었던 남자아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 반갑게 들어주었던 그 남자아이. 그 남자가 방금 나를 보며 울었다. 그리고 화를 냈다. 소리 질렀다. 무서웠다...  그런데 그런 얼굴에서 다정함을 느껴버렸다면, 그것은 그저 나의 착각이겠지. 

 아.. 그러고 보니 나, 마지막으로 웃어 본 것이 언제였지? 졸업 전, 동아리 실에서 이야기할 때, 그리고? 그리고.. 잘 모르겠네. 선배랑 사귀고 나서부터는...

 “으..욱...으엑...”

 몇 번씩이나 속을 게워내고서야 버틸만했다. 이제는 생각할 체력조차 없다. 미치겠네.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 거지?


-


띠리링. 띠리링.

“여보세요”

“네, 네, 네, 아... 예”

“...알겠습니다.”

 수아 누나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당장 연락이 닿는 가족조차 없는 사람이니까 가까웠던 나에게 연락을 했던 것이겠지. 내가 보호자 신분으로 가야 되는 건가? 하...

 -나가, 나가라고,

 만약에 내가 그때 내쫒지 않았다면? 적어도 그때 경찰에 신고라도 해줬다면? 아니, 그전에부터... 음... 쓸모없는 생각이다. 이제는 나는 그 여자하고 관계없잖아? 뭐, 그 잘난 남자친구 분께서 알아서 해주시겠지.

 ...

 그래야 할 텐데.


-


 입원 이후 2주가 지났다. 

 누나의 입원 당일, 내가 도착했을 때엔 이미 그 남자가 침대 앞에 있었다. 

팔과 다리가 붕대에 묶여 침대에 고정되어 있는 그 모습은 꽤나 징그러웠다. 그 남자 또한 같은 생각을 한 걸까, 깊게 잠들어있는 누나에게 가래를 모아 뱉었다. 그 이후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렸을 때엔 나 또한 병원에 누워있었으니까. 주먹 한번에 기절이라니, 재수도 없지.

 지난 시간동안 그 남자와 법정싸움을 했다. 폭행과 성폭행, 강간미수까지, 증거로서 집 앞의 cctv를 통해서 남성의 집에 들어가기 전과, 후의 차이를 대조한 영상과 나의 증언이 있었다. 그렇게 오늘 드디어,

- 피고, 이성민에게 징역 6년을 선고한다.

 고작 6년인가. 변호사에게 따지기도 했으나, 변호사가 말하길 6년이 최대란다. 하긴 20살부터 6년 감옥행이라니, 인생 끝났지 뭐.


-


+D 301

"누나, 누나 팬 그 새끼, 오늘 드디어 감옥 보냈어."

 들릴 리가 없나. 뭐, 들으라고 한말은 아니니까 상관은 없지. 

 마치 죽은 사람처럼 잠들어있는 얼굴을 보니 뭔가 기분이 묘하다. 그래도 뭐랄까, 나 되게 열심히 했으니까, 고맙다는 말 한마디는 듣고 싶었는데, 조금 짜증나기는 하지만, 이건 뭐.. 누나 잘못은 아니니까, 

“잘 있어. 이제 나 다신 안올거야. 그러니까, 빨리 일어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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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262

"--아 맞아.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 누나 그때도 눈치 없어가지고 담배피던 아저씨한테 말 걸다가 도망쳤잖아. 흐흐, 그리고 그리고? 누나 친구 손 대신 날 끌고 갔었는데, 그 얼빠진 표정이라~"

- 진짜 지극 정성이죠? 한 달 넘게 찾아오고 말이에요.

- 저번에는 책이랑 커피까지 들고 와서 공부를 한다니까요? 학생 같은데...

 시끄러워, 간호사 아줌마들 그렇게 할 일이 없는 거야? 나도 좋아서 이러는게 아니라고..

2주쯤 전, 의사에게 들었던 얘기가 있었다.

- 몸은 다 나았습니다만... 의식이 깨어나질 않아요. 아마 의식을 잃기 전, 있었던 그 일 때문에 조금 충격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만... 가끔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길어도 한 달이니까요.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개소리. 지금 한 달이 한참 넘었다. 나도 내 생활이 있다고.


-


+D 198


 “나, 그렇게 좋은 대학교는 아니지만, 적당히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왔어. 공무원도 유명한 일 하려면 대학을 가야한다네, 난 몰랐는데, 공무원 공부한다고 뭐, 두 달은 버렸지... 뭐, 아무튼 나, 이제 학생 신분이라서 병원에 많이 못 있어. 헤... 병원에 자주 못와도 너무 외로워 하지마.”

- 이 요오망한 후배님~!

“...요망한 선배님아.”


-


+D 80


- 혹시 이동민군, 잠시 나올 수 있겠나?

 학생으로 빽빽한 강의실에서 한 학생이 호출된다. “오오오” 하는 함성소리가 은근히 기대감을 가지게 만든다. 

“네 교수님.”

“그래, 자네가 이번 학기에서 유일하게 A+를 받았더군? 혹시 대학원ㅇ”

“네 감사합니다. 이만 들어가 봐도 괜찮을까요?”

 사람 많은 곳에서라면 가능할거라 생각했나, 빡빡이.

“내가 보기에 자네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경제학자가 될 가능성이 있어.”

관심없다고, 빡빡이. 

“아... 죄송합니다. 아직 저는...”


-


+D 1


[PM. 11:52]

"형, 형은 뭐 여자 친구 없어요?“

-빡

아으,.. 아파라, 

“아니 뭐 남자끼리 술 마시러 온 자리에서 이런 것도 못 물어요??”

“닥쳐 임마. 내가 여자 친구가 있었으면 걔랑 마셨지, 니랑 마시냐? 사주는 거니까 감사히 마셔”

“네~”

알코올이 흡수되며 시야가 흐려진다. 심장은 빨라지고, 머리가 아찔하다. 이렇게까지 마셔본 적이 없는데, 뭐,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

“형 근데 대학원생이 술 마셔도 되는거에요? 내일 일은 어떻게 할려고?”

“몰라, 다른애들이 알아서 해주겠지”

“무책임남.”

“퉤 임마. 그러는 너는 뭐 여자 없냐? 공부도 잘해. 얼굴도 잘생겼어. 게다가 이번에 서울에 집 큰 곳으로 이사 온 걸로 아는데, 뭐가 문제야?”

“에이, 여자 만나는데 그런게 어디 있나요. 그냥.. 뭐,, 운명이 아닌 거겠죠”

“오? 운명이라.. 좀 예쁜 여자라도 기다리나봐?”

“헤...뭐 그런건... 아닐걸요? 흐히히”

[PM. 11:59]

"그래도 말이야. 너, 뭔가 외로워 보인단 말이지. 맨날 볼때마다 이 눈이! 눈이 죽어있다고"

“...그래요? 술이 좀 떨어진 것 같은데, 제가 가져올게요.”

“야! 말 피하냐!”


[PM. 12:00]


-


+D 0


띠리링. 띠리링.

“네, 여보세요.”

- 신수아씨께서 의식을 차리셨습니다. 

“...그런가요?”

상기되었던 얼굴이 가라앉는다. 술기운에 떨렸던 목소리가 안정되고, 낮아진다. 눈은 평소보다 더욱 죽어있을 것이다. 나는 분명 이 연락을 기다렸다. 그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뭐라고 해야할까, 두렵다. 그녀를 맞이할 자신이 없다. 아니, 단지 그것 뿐일까.

- 혹시 면담이 필요하시다면 자리를 마련해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아니, 수아 누나에게는 제 얘기를 하지 말아주세요. 제 연락처 또한 알리지 말아주시고요.”

- 예? 아...어...으...네... 아...알..겠습니다..?

“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뒤를 바라본다.

“형, 미안한데, 저 먼저 일어나봐도 괜찮을까요”

“어어어어어... 먼저가아아...”

“하...그새 또 뭘 먹은 거야. 대리 부를게요. 같이 가요.”

“아아랏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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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이야, 돌아오지마. (5)

내용 오랜만이니까 1편 링크-> https://arca.live/b/regrets/69829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