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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는 2화에서 이어지는 내용이라 2화 내용을 알면 더 이해하기 수월할거임


빈약한 필력이지만 이 글로 누군가 한 발이라도 뽑았으면 좋겠다


그림은 모툰이 AI화가 기능으로 생성했음



사회 상류층에게서 재산을 강탈해, 생존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극빈층에게 나눠준다는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비밀 결사 '밸런스트 핸드'.



지금 프랑스에 위치한, 밸런스트 핸드 유럽지부의 육상행동대장실 겸 회의실에서, 검은색 짧은 머리를 한 남자, 주황색 눈동자의 여자, 그리고 인간의 두개골 그림이 그려진 초록색 복면을 뒤집어쓴 남자가 의자에 앉은 채, 탁자를 둘러싸고 있었다. 


무언가에 대한 회의를 진행하다가, 방금 끝이 난 듯했다.



"다들 수고하셨어요~"



검은 머리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탱고 씨도 수고하셨습니다."



주황색 눈동자의 여자는, 자신 앞에 놓인 서류들을 바로 세워 정리했다.



"야, 시에라. 왜 나한테는 수고했다는 말 안 해주냐? 좀 섭섭~하구만."



초록색 복면의 남자는 머리 뒤에 깍지를 낀 채, 주황색 눈동자의 여자, 시에라를 쳐다보았다.

그의 모습은, 섭섭한 사람의 모습과는 거리가 에펠탑의 높이만큼 멀어 보였다. 



[ 시에라 (27, 女) {본명 : 카멜리사 그라이언트} ]



"..."



시에라는 굉장히 할 말이 많다는 듯한 표정을 하며 초록색 복면의 남자를 말없이 노려보았으나,



"...수고하셨습니다. 위스키 씨."



곧 초록색 복면의 남자, 위스키의 꼬투리 잡기에 응답해주었다.

위스키에게 비판의 말을 마구마구 쏟아내고 싶은 욕구를 꾹 참았다.



"너 얼굴에 '나 화났어요'라고 써있는 것 같은데... 나한테 뭐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그런 거 없으니까... 이제 그만 나가서 일 보시죠."

"예이~ 도적단 두목님의 분부를 받들겠사옵니다~"

"절 그렇게 부르지 말...! 하... 됐습니다."



"휴우..."

검은 머리의 남자, 탱고는 위스키와 시에라의 대화를 마음을 졸이며 지켜보다가, 둘의 대화가 끝난 듯 보이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무조건 폭발하겠다 싶었는데... 이 정도로 끝나서 정말 다행이야...'



끼익-



문을 열고 회의실을 나가는 탱고.

그를 뒤따라 위스키도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문밖으로 나섰다.



'내가 그렇게 큰 사고를 쳤나? 아직도 잘 이해가 안 간단 말이지...'



위스키는 시에라가 자신에게 화가 잔뜩 난 이유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다가,



'뭐, 앞으로는 안 그러면 되겠지. 그나저나 앞으로 3시간 동안은 딱히 할 일이 없는데, '토마토 폭탄'이나 더 만들까?' 



이윽고 여가시간에 무얼 하면서 보낼지에 대해 뇌를 굴리게 되었다.



'아, 참... 그걸 테스트하는 일을 까먹고 있었네.'



자신이 입은 바디슈트의 왼쪽 허벅지 쪽에 달린 주머니에서, 위스키가 꺼낸 것은, 그가 '신 은신팔찌'라 이름 붙인 기계였다.



과거 위스키는 '은신팔찌'라 명명한 기계를 개발했는데, '은신팔찌'는 팔에 착용한 상태에서 조그만 전원 버튼을 눌러 작동시키면, 전원이 꺼질 때까지 주변 빛의 굴절을 조절하여 착용자를 투명하게 만들어주는 물건이었다.

정확히는, 주변 일정 범위 내에 있는 모든 것을 투명화시켰기에, 착용자가 들고 있는 물건까지도 투명화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은신팔찌'는 딱 봐도 이곳저곳에 매우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물건이었지만, 두 가지 큰 단점이 있었다.


첫 번째 단점은, 가동 중에 가끔 갑자기 '빠지직-' 같은 전류가 흐르는 듯한 소리와 함께, 전원이 꺼져버리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이 현상이 일어나면 최소 30분 이상은 전원을 다시 켤 수 없었기에, 어쩌다 한 번씩 위스키를 낭패 보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두 번째 단점은, 에너지 효율이 너무 구려 배터리를 완충해놓아도 가동 시간이 52초를 넘기지 못한다는 것.

그래서 '은신팔찌' 하나만 믿고 몰래 조사할 수 있는 장소는 매우 한정적이었다.


그런 '은신팔찌'의 두 번째 단점을 개선하여, 최대 가동 시간을 비약적으로 늘린 작품이, 최근에 위스키가 개발한 '신 은신팔찌'였던 것이다.



'일과시간에 노가리 까고 자빠져 있는 녀석들이 있는지 없는지 한 번 돌아봐야겠구만.'



밸런스트 핸드 유럽지부... 아니, 밸런스트 핸드 모든 지부를 통틀어 가장 잡담, 속칭 '노가리 까기'에 가까운 행위를 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위스키는 전혀 모르고 있는 듯했다.


위스키가 '신 은신팔찌'를 왼팔에 착용한 뒤, 전원 버튼을 누르려던 그 순간. 한 가지 생각이 위스키의 머릿속을 스쳤다.



'시에라는 회의 끝나고 뭘 할까? 자기 말로는 맨날 하루종일 일하고 전투 기술 연마하고 어쩌고저쩌고 해서 바쁘다고는 하는데...'



위스키는 전원 버튼을 눌러 자신의 몸을 투명하게 만들고는, 자신이 방금 전까지 있었던, 회의실 겸 육상행동대장실로 향했다.



'정말 그런지 확인해볼까. 혹시 알아? 일이고 뭐고 낮잠이나 한숨 시원하게 때리는 모습을 보게 될지.'



-



위스키는 회의실로 들어간 뒤,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곧 위스키에 눈에 들어오게 된 것은, 펼쳐진 신문을 보며, 지도에 펜으로 열심히 무언가를 적고 있는 시에라의 모습이었다.

신문 기사 중에선 '[도적 사냥꾼] 카를로드, 페도라 도적단 일망타진'이라는 유독 큰 제목을 가진 기사가 눈에 띄었다. 아마 그 신문의 메인 기사인듯했다.



'일 열심히 하고 있었구만. 뭘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탕 할 곳이라도 물색 중인가?'



위스키는 시에라가 앉은 의자의 바로 뒤쪽까지, 발소리를 지우며 이동한 후, 그녀의 행동을 팔짱을 낀 채 지켜보았다.

그녀에게서 허브향과 비슷한 향기가 은은하게 느껴졌다.



-



그로부터 10분이 흐르고... 20분이 흐르고...

 

성실하게 꾸준히 자기 일에 집중하는 시에라를 보던, 위스키는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에 대해, 슬슬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대로 1시간을 더 지켜봐도 똑같을 것 같구만. 역시 이 녀석한테서 게으른 면을 찾는 건 불가능한 건가?'



뭔가 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위스키가 회의실을 나가는 문쪽으로 몸을 튼 순간이었다.



'아무래도 개뻘짓...'



뽀오오옹~



회의실 내에 울려 퍼진 추잡한 소리를, 위스키는 아주 분명하게 들었다.

젊은 여성이 방귀를 뀌는 모습을 수없이 목격한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그 소리는 방귀 소리임이 확실했다.


현재 회의실에 있는 사람은 단둘, 위스키와 시에라뿐.

  

자신은 그러지 않았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기에, 누가 범인인지는 너무나도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은 아니었던 모양이네?'



위스키의 시선은, 바로 방귀 소리의 근원지 쪽 방향으로 옮겨갔다.

시에라의 향기와는 완벽하게 대비되는, 구린내가 위스키 쪽으로도 퍼졌다.



'...여전히 시에라의 방귀에선 썩은 계란 냄새가 나는구만.'



시에라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무표정한 얼굴로 계속 일에 매진하고 있었다.

물론 개인 집무실에서 아무도 없을 때 방귀를 뀌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긴 했지만...

이 공간엔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은 시에라만의 착각이라는 게 문제였다.


아직 시에라의 뱃속에 배출하지 못한 가스가 남아있었던 것일까.

시에라는 곧 열심히 글을 쓰던 손을 멈추고, 두 눈을 살짝 감더니,



"으음..."



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또다시 엉덩이를 통해 유독가스를 살포했다. 방귀의 풍압으로 인해 시에라의 치마가 살짝 펄럭였다.

고상하고 차분한 이미지의 그녀가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일상생활 중에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는, 이런 방법이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꽤 큰 걸 방출했네. 큭큭큭... 오랜만에 이 녀석의 재미있는 얼굴을 구경하게 되겠는걸?'



자신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가스를 빼는 데 집중하는 시에라의 모습을 보면서, 위스키는 히죽대고 있었다.



뿌우우우우우우웅~



시에라는 다시 한 번 방귀를 뀌고는, 자신의 엉덩이 뒤쪽을 손부채질했다.

아무래도 자신의 아랫배에 쌓여있던, 구린내 나는 기체가 만족할 만큼 제거된 듯 보였다.



'자~ 이제 시작해볼까?'



다른 사람이 수치스러워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을 인생의 재미로 삼는, 위스키가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위스키는 바로 '신 은신팔찌'의 전원을 꺼서, 투명화를 풀어 시에라가 자신을 볼 수 있게 만들었고...



"아니... 시에라."



곧 당황한 듯한 제스쳐를 취하며, 갑작스럽게 봉변을 당한 것 마냥 연기했다.


느닷없이 들려오는 위스키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뒤를 휙 돌아본 그녀는,



'...이 인간이 대체 왜 여기 있어??!!?'



몸과 얼굴이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사람이 바로 뒤에 있는데 방귀를 뀌는 건... 좀 아니지 않냐?"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위스키는 시에라에게 따지듯이 말했다.

불쌍하게도 날벼락을 맞은, 시에라의 얼굴이 매우 빠르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분명히 나가는 걸 확인했는데...?? 정말로 아무도 없었는데...???'



이곳에 존재할 수가 없는 위스키가 자신의 눈앞에 있다는 사실은, 시에라를 매우 큰 혼란에 빠뜨렸다.

따지고 보면 시에라는 말도 안 되는 억까를 당한 셈이다.



"햐... 냄새 굉장하다 진짜..."



당황스러움과 부끄러움이 짙게 드러난 시에라의 표정은, 위스키의 도파민 수치를 하늘을 찌를 기세... 아니, 우주를 돌파할 기세로 치솟게 만들었다.



'그래... 보나마나 위스키가 이상한 수작을 부린 게 분명해. 또 날 곤란하게 만들려는 의도겠지!'



커다란 충격을 받아 정신적으로 극도로 불안정해진, 시에라는 간신히 진실에 가까운 결론을 이끌어 냈다.

결국 화가 대폭발 해버린 시에라는 위스키를 향해 잔소리를 중기관총도 공중제비 돌게 할 스피드로 연사하고 싶었지만... 

그것보단 위스키가 더 이상 자신의 가스를 흡입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 그녀에게는 더더욱 중요했다.


분노와 수치스러움으로 인해, 귀까지 새빨개진 시에라가, 눈을 질끈 감고 크게 외쳤다.



"당장 나가세요!!!"



어쩐지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속담이 떠오르는 상황이었다.







회의실에서 쫓겨난 위스키는 '신 은신팔찌'의 전원을 켠 상태로, 가끔씩 갑자기 투명화를 풀어 동료를 놀라게 하기도 하면서, 밸런스트 핸드 유럽지부 내부를 여기저기 싸돌아다녔고...



'사무실에 있는 녀석들은 지금 뭐 하고 있으려나...'



어느새 사무실 문 앞에 도달하게 되었다.



(대충 문 닫히는 소리)



그때, 사무실에서 양복을 입은 남성 결사원 한 명이 튀어나오더니, 사무실 문을 닫고는 어디론가 다급하게 뛰어갔다.



'크로커스 쟤는 어딜 저렇게 급히 간다냐?'



사실 안 풀어도 상관없는 궁금증을 뒤로하고, 위스키는 마치 어딘가에 잠입하는 첩보 영화의 주인공처럼, 아주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사무실에 들어갔다.



'처음 보는 얼굴이구만. 경영부에 새로 들어온 아가씨인가?'



사무실에 들어온 위스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는, 오피스룩을 입은 초록색 긴 생머리의 여인이었다.

매력적인 분홍색 눈동자를 가진 그녀는, 아름다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 아르메리아 (28, 女) {본명 : 라이리스 블랙건} ]



그녀의 이름은 라이리스 블랙건. 

최근에 밸런스트 핸드에 가입하여 사무업무에 투입된, 그녀는 밸런스트 핸드로부터 '아르메리아'라는 코드 네임을 부여받았다.


그녀가 보여준 뛰어난 일 처리 능력과 열정, 밝은 성격과 청순한 외모, 사람을 가리지 않는 친절함과 훌륭한 인성 등은, 밸런스트 핸드 유럽지부의 남성 결사원들로 하여금 그녀를 '사무실 여신'이라 칭송하게 만들었다.

하와이안 피자를 좋아한다는 점 외에는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그녀였기에, 그런 그녀를 보게 된 남자는 백이면 구십구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었지만...



'...우리 해상부 쪽으로는 언제 신입이 오려나~'



위스키는 그녀의 외모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는 듯했다.


위스키가 살며시 사무실 문을 닫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르메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프린터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아마 프린터에서 출력되는 문서들을 가져가려는 의도일 것이다.


사무실 내부 전체를 대충 둘러본 위스키는,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는 30명 언저리의 남성 결사원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곧 사무실을 지키는 인원이 현재 아르메리아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근데... 사라진 사무실 인원들이 어디서 뭘 하든 나랑 상관없잖아?'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아주 짧은 생각 끝에 '알빠노?'라는 결론을 내리고 시선을 프린터 앞에 선 아르메리아 쪽으로 돌린 그 순간.



부아아아아아아아아악-! 뿌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욱~ 부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윽-



'...얘 방금 방귀 뀐 거 맞지? 그것도 큰 걸로다가...'



위스키는 아르메리아가 구린내 나는 가스를 배출하는 현장을 목도해버렸다.


사실 아르메리아는 가스가 잘 차는 체질인 까닭에, 20대 여성 하루 평균 방귀 배출량의 2배 이상의 방귀를 매일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다른 사람 앞에서 가스를 뿜는 민폐를 저지르지 않으려고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기에, 그녀와 방귀를 트고 지내는 숙소 룸메이트들 외에는 그러한 사실을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타인 앞에서 방귀를 뀌지 않기 위해 계속 아랫배에 가스를 담아두는 대가로, 일과시간 내내 쌓인 가스에 의한 복통과 싸워야 했지만, 아르메리아는 그것에 대해 전혀 내색하지 않고 항상 밝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참지 말고 화장실에 가서 해결하고 오면 되지 않나?' 하고 물을 수도 있지만, 하필 화장실이 사무실과 멀리 떨어진 장소에 있었던지라, 방귀가 마려울 때마다 화장실에 다녀온다면 업무에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일에 대한 열정이 넘쳤기 때문에, 화장실을 다녀오는 데 사용하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싶은 마음에, 정말 못 참겠다 싶을 때를 제외하고는 화장실에 방귀를 해결하러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아르메리아에게 있어서 사무실에 혼자 남은 순간은,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면서 화장실에 가지 않고도 뱃속에 가득 찬 가스로 인한 복통을 해소할 수 있는, 절호의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은 아르메리아의 눈에 보이지 않는 한 남자의 존재로 인해, 그런 순간이 아니게 되어버렸지만...



뿌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부부부부우우뿌아아아아아아앙~ 뽀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옥~



아르메리아가 남몰래 엉덩이를 통해 가스를 뿜어대는 모습을 눈을 희번덕거리며 관람하던 위스키는, 이윽고 그 가스의 냄새를 감지하게 되었다.



'...구린내가 적당하게 나네. 시에라의 냄새가 대물 저격총이라면 이건 그냥 권총이라고나 할까?'



위스키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시에라가 알게 된다면 '진짜 대물 저격총에 맞아 보실래요?' 같은 반응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프쉬쉬익... 부르르르르륵- 프스스스스스...



뱃속 기체 노폐물을 깔끔하게 비워낸 뒤, 독소가 싹 가신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프린터에서 뽑아낸 문서들을 들고 뒤돌아선 아르메리아는...



"여어~ 사무실 뉴페이스 아가씨~"



아까까지만 해도 전혀 보이지 않았던, 방금 막 투명화를 해제한 위스키와 마주하게 되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너 방귀 참 우렁차게 뀌더라. 내 속이 다 시원하던데?"

"아..."



밸런스트 핸드에 가입한 이래 최대 위기를 맞닥뜨린 아르메리아.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내가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방귀를 뀐 거구나... 창피해라...'



초월적인 위기 대처 능력으로 곧 상황을 받아들이고는, 자신의 머릿속을 지배한 혼란을 잠재웠다.

물론 제대로 살펴봤다고 해도 결과는 같았겠지만 말이다.



"죄송합니다, 위스키 님. 여기 계신 줄 모르고 그만 실례를 저질렀네요."



정중하게 사과를 하는 아르메리아의 얼굴은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뭐 이런 일로 죄송할 것까지야... 근데 니가 뿜어낸 냄새가 좀 심한 것 같은데... 대체 뭘 먹었길래 이런 냄새가 나는지 조금 궁금한걸?"

"내, 냄새가 심한가요?"



아르메리아의 방귀 냄새가 평범한 편에 속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위스키는 그녀에게 더 수치스러운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녀도 자신의 냄새가 심하다고는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기에, 위스키의 그러한 말에 그녀는 조금 당황한 듯한 반응을 보였지만,



"...어제 아침에는 크루아상, 마멀레이드, 우유, 크림 커피, 빵 오 쇼콜라를 먹었고, 어제 점심에는 어니언스프, 비프 브루기뇽..."



이윽고 어제 아침 식사 메뉴부터 오늘 점심 식사 메뉴까지, 조금도 막힘없이 줄줄 읊었다.

그냥 그녀를 더 부끄럽게 만들고 싶었을 뿐인, 위스키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너 기억력 진짜 좋다. 난 오늘 점심때 먹은 것도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말이지."

"원하신다면, 제가 일주일 전에 먹은 것까지 알려 드릴 수 있습니다."

"그 이상은 뇌절이야 인마."

"후후... 그건 역시 그렇겠죠?"



어느샌가, 아르메리아는 프린터의 앞을 떠나 위스키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위스키 님 혹시... 저를 기억하고 계신가요?"

"응? 뭔 소리야. 우리 방금 처음 만난 거잖아?"

"아... 기억이 잘 안 나시나 보네요."



아르메리아는 머리를 한 번 쓸어넘겼다.



"언젠가 제가 많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위스키 님이 도움을 주신 적이 있었거든요."

"아 그래? 미안하구만. 난 너처럼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말이야."

"그때 도움을 받은 은혜에 보답하려고 위스키 님을 찾아다녔는데, 밸런스트 핸드의 일원 되시는 분에게 여기서 활동하고 계시단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어... 그래서 혹시 날 따라서 여기에 들어온 거냐?"

"예, 그렇습니다."

"보답 같은 거 안 해도 돼. 아직도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그런 걸 바라고 널 도왔을 것 같지는 않거든?"

"아,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요. 제가 여기 들어온 이유는 위스키 님을 돕기 위한 것도 있지만, 밸런스트 핸드의 목표에 동참하고 싶어서 인 게 더 큽니다. 즉, 제가 이곳이 마음에 들어서 가입했다는 거죠."

"그러냐? 그럼 뭐, 니 맘대로 하든지 말든지... 아, 니가 그 '사무실 여신' 맞지? 사무실에서 일하는 여자는 너 혼자뿐이니까."

"...절 그렇게 부르시는 분들이 많다고는 들었는데... 여신이라니... 제겐 너무 과분한 별명 같습니다."

"큭큭... 솔직히 과분한 건 맞지. 여신이 방귀 같은 걸 뀔 리가 없잖아?"

"아..."



조금 벌게진 채 멋쩍은 웃음을 짓고 있는 아르메리아의 얼굴이, 위스키의 눈에 들어왔다.



"농담이고, 니네 부서 대빵인 탱고 알지? 그놈이 나랑 같이 노가리 깔 때마다 니 얘길 하더라고. 결혼은 너 같은 여자랑 해야 한다고 하던가?"

"...그런걸 막 까발려도 되나요? 좀 비밀스러운 얘기 같은데..."

"아... 그런가? 그럼 못들은 걸로 해줘."

"이미 제 머릿속 깊이 박혀버렸는걸요..."

'나랑 대화하실 때마다 볼이 빨개지셨던 게 그것 때문이었구나...'



그렇게 둘은 좀 더 대화의 시간을 가지다가...



"난 이만 가봐야겠... 참, 너 코드 네임이 뭐냐?"

"'아르메리아'가 제 코드 네임이고... 본명은 '라이리스 블랙건'입니다."

"본명은 안 물어봤다만?"

"기억해주셨으면 해서요."

"여기 있는 녀석들 코드 네임만 외워도 뇌용량 터질 것 같은데 본명까지 외워달라고? 내가 굳이 그래야 할 이유라도 있나?"

"그런 게 있다면 진작 말했겠죠."

"...이렇게 당당하게 나오니까 할 말이 없구만. 뭐, 노력은 해보겠지만 기대는 하지 말라고."

"후후... 알겠습니다."

"어... 잠깐만..."

"무슨 일이시죠?"

"미안한데... 방금 니 본명 까먹어버렸다. 다시 한 번 좀 말해줄래?"

"풉... 진짜 기대하면 안 되겠네요. '라이리스 블랙건'입니다."

"내가 원래 기억력이 이 정도로 나쁜 편은 아닌데... 벌써 비타민 D와 E를 챙겨 먹을 때가 온 건가? 아무튼, 다음에 보자고. 아르메리아."

"네, 안녕히 가세요."



사무실 문밖을 나서는 위스키를, 아르메리아는 쭉 바라보고 있었다.



'후훗. 꽤 재미있으신 분이셨구나? 위스키 님은.'



아르메리아는 상당히 특이한 취향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열심히 순찰을 돌았더니 좀 피곤하구만... 이제 그만 내 집무실에서 조금 쉬도록 할까.'



'신 은신팔찌'를 테스트한답시고 온갖 쓰잘데기 없는 짓만 하다가 드디어 기력이 빠져버린 위스키는 자신의 개인 집무실인 '해상행동대장실'로 향했다.



끼익-



해상행동대장실의 닫힌 문을 연 위스키는,



"...델타 너 여기서 뭐하냐?"

"앗... 위스키 님..."



선원복을 입은 채 웃음기가 있으면서도 뭔가 당혹스러워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는, 자신의 부하인 '델타'를 마주하게 되었다.



[ 델타 (23, 女) {본명 : 엔리나 마르보네} ]



밸런스트 핸드로부터 '델타'라는 코드 네임을 부여받은, 또 주황색의 긴 포니테일 머리가 인상적인, 그녀는 현재 위스키가 수장으로 있는 해상부의 간부로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아직 23세라는 젊은 나이임에도, 미성년 시절부터 밸런스트 핸드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다녔기에, 의외로 시에라나 탱고보다도 밸런스트 핸드에 더 오랜 시간 몸담고 있었다.


활달하고 붙임성이 좋은 성격을 가지고 있어 인기가 많은 그녀였지만, 조금 별나다고 할 수 있는 면도 가지고 있었으니...



델타의 주황색 눈동자를 보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위스키는 해상행동대장실 내부를 지배한, 상한 치킨무 냄새 같은 악취를 맡게 되었다.



"너 설마... 여기서 방구 꼈냐?"

"에헤헤... 그게요... 보고 드릴 게 있어서 왔는데 마침 부재중이셔서..."

"부재중이셔서?"

"위스키 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필 그때 속이 부글부글 끓는 거에요... 점심때 크림 파스타를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가?"



밸런스트 핸드의 식당에서는 자율배식이 가능했기에, 가끔 좋아하는 음식을 원 없이 먹다가 델타처럼 탈이 나는 결사원이 생기곤 했다.

단, 배식을 자유롭게 받는 대신에 잔반을 남기지 않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이었는데,

이것 때문에 위스키가 밥을 남길 때마다, 시에라에게 '세상에 먹을 게 없어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잔반을 남기시다니, 부끄러운 줄 아세요. 그리고 또 잔반을 처리하는 데도 돈이...(이하생략)' 따위의 잔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한다.

그 잔소리에 대해 위스키가 '그럼 니가 먹어주면 되겠구만' 같은 반응을 보이면, 시에라는 진짜로 위스키가 남긴 잔반을 전부 먹어버리는, 기행에 가까운 행동을 하였는데,

언젠가 시에라의 그런 행동에 대해서 위스키가 '근데... 이것도 일종의 간접키스 아니냐?' 라는 발언을 했다가, 시에라의 격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는 풍문이... 밸런스트 핸드 유럽지부 결사원들 사이에서 돌았었던 시기가 있었다.


뭔가 서술이 삼천포로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기분 탓일 것이다. 아마도.



"...암튼 속이 너무 불편해져서... '방귀를 뀌고 나서 환기를 시키면 안 들키겠지?' 하는 생각에 가스를 좀 내보냈거든요? 그리고 나서 증거를 없애려고 환기를 시킬려 하니까 그때 마침 딱! 위스키 님이 나타나신 거 있죠? 헤헤..."



델타는 얼굴을 조금 붉힌 채, 뒤통수를 긁적이며 웃고 있었다. 마치 웃음으로 민망함을 감추려는 듯이.



"...진짜 골때리는구만. 상사 집무실에 테러나 저지르는 녀석이 내 부하라니..."

"에이~ 또 오바하신다. 솔직히 말해서 테러까지는 아니잖아요오... 물론! 잘못한 건 잘못한 거지만요~"



꾸르르르르릐릑-



"...방금 거 혹시 니 배에서 난 소리-"



뿌오와아아아아앙~



"야, 너 또 뀌었지."

"에헤헤... 저기 위스키 님~ 이왕 들킨 김에... 여기서 몇 방 더 뀌어도 될까요?"

"뭐 인마?"



생각보다 훨씬 뻔뻔했던 델타의 태도는, 위스키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