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으로 본 교수는 무척 큰 바에 있었고, 40명의 제자가 그의 주위에 있었다. 서로 인사를 나눈 뒤 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어떤 틀을 내가 진지하게 바라보자, 교수는 내게 사변적인 지식을 증진하는 프로젝트에서 현실적이고 기계적인 활동을 하고 있으니까 의아해서 그러는 것이냐고 물었다. 이어 그는, 세상은 곧 그 틀의 유용함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자신은 다른 사람의 머리에 절대로 떠오르지 않는 고귀하고 숭고한 생각을 해낸다고 우쭐거렸다. 그는 예술과 학문을 배우는 평소의 방법이 얼마나 고생스러운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자신이 고안한 방법을 따르면 지극히 무지한 사람도 적당한 비용과 약간의 육체적 노동만으로 철학, 시, 정치, 법, 수학, 신학에 관한 책을 쓸 수 있다고 했다. 특별한 재능이 없고 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상관없었다.

 

이어 그는 나를 틀이 있는 자리로 이끌고는, 틀의 사방에 제자 전원을 줄지어 서게 했다. 틀은 가로세로 6미터였고, 방 중앙에 있었다. 표면은 여러 나무 조각을 박아 만들었는데, 조각은 주사위 정도 크기였으나 몇 조각은 다른 것보다 더 컸다. 조각들은 전부 가느다란 철사로 연결되었다. 이 나무 조각들은 모든 면에 종이를 붙이고 있었다. 종이엔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모든 단어가 법, 시제, 격 변화 등에 따라 무질서하게 적혀 있었다. 교수는 이어 내게 틀을 움직일 테니 어떻게 작동하는지 관찰하라고 했다. 제자들은 그의 지시에 따라 쇠로 된 손잡이를 각자 잡았다. 이 손잡이는 틀의 가장자리에 고정되어 있었는데 총 40개였다. 갑작스럽게 손잡이가 돌아가자 단어의 배치가 전부 완전히 변했다. 그는 이어 36명의 제자에게 틀에 나타난 몇 줄을 조용히 읽어보라고 지시했다. 문장 일부를 구성할 수 있는 서너 개 단어를 발견하면 필기를 담당한 제자 네 명이 그것을 받아적었다. 이런 작업은 서너 번 반복되었고, 틀은 돌아갈 때마다 나무 조각이 뒤집히며 새로운 면에 있는 단어가 나타나도록 고안되었다.

 

학생들은 이 일을 하루에 여섯 시간씩 하고 있었다. 교수는 내게 전에 모아둔 토막 문장들을 엮은 커다란 2절판 책 몇 권을 보여줬다. 그는 이런 풍성한 토막 문장들을 잘 조립하여 모든 예술과 학문의 완전체로서 세상을 공개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대중이 기금을 모아 이 틀을 500대 제작하여 라가도에서 사용하고, 관리자들이 틀의 결과물을 기증한다면 그 작업이 더 개선되고 진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게 자신은 젊었을 때부터 이 틀을 발명하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으며, 틀에 모든 어휘를 담았고, 수많은 책을 참고하여 그 속에 나타난 분사, 명사, 동사, 그 외의 품사 등이 사용되는 일반적인 빈도를 지극히 엄격하게 계산했다고 장담했다.

 

나는 이 저명한 사람에게 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준 것에 겸허하게 감사를 표하고, 행운이 따라 조국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그를 이 훌륭한 기계를 단독으로 발명한 사람으로 널리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이 기계의 형태와 구조를 종이에 그려 가고 싶다고 했고, 그 결과물을 여기에 첨부했다. 나는 그에게, 유럽의 지식은 서로 발명을 훔치는 게 일종의 습관이며, 그 때문에 누가 진정한 발명자인지가 늘 논란이며 또 동시에 이점이 된다고 했다. 그에게는 최대한 신경 써서 이 틀을 발명한 영예가 온전히 그에게만 귀속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걸리버 여행기에서 주인공 걸리버가 발니바르비 학술원을 찾아가는 장면 일부 (3부) (이종인 역, 현대지성 출판사)


"재단 어딘가에서는 SCP-2020의 헛소리 목록을 정리해놓고,

'이건 진짜 있을지도 모르니 이러이러한 폭탄을 미리 개발해두자'라는 계획을 세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라는 말을 보니까 생각났다.

문법적으로 생성 가능한 변칙성을 모두 만들어낼 수 있게 세팅하고

이 기계를 외계인으로 만들어놓으면 2020이 될까?


근데 반전이 뭐냐면 걸리버 여행기는 원래 풍자소설이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