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전 전 세계가 석기시대로 되돌아갈 뻔 한 일


맨날 유머자료 퍼오다가 오랜만에 순수하게 직접 작성하는 글(이라고 하지만 대부분 러시아위키+나무위키에서 발췌) 올려봄

다들 예상한 것 처럼 쏘오련-미국 냉전이 한창일 때 대륙간탄도 핵미사일인 ICBM을 쏘느냐 마느냐 그 선택을 강요 받은 평범한 군인의 이야기 임.


세계 인류학자들이 지구 인류에 가장 크게 닥친 몇 안되는 실제 위기중 하나로 손꼽히는 사건임. 


그 날이 바로 38년전인 오늘...1983년 9월 26일 새벽에 일어난 것이었음.


알다시피 1983년은 진짜 미국과 쏘-오련이 치고 받고 싸워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분위기가 살벌한 시대였음


약 25일전인 1983년 9월 1일에 착오로 소련 영공으로 들어간 대한항공 007편 여객기를 소련 방공군 소속 SU-15TM이 요격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사실 소련측은 추락시킬 때까지도 이 기체가 미공군의 RC-135라고 굳게 믿었었다. 나중에 추락된 기체의 잔해와 블랙박스와 유류품을 보고 크게 놀랐다고 함)



아무튼 당시 대한항공 007편에는 수많은 민간인들과 미국 하원의원까지 탑승했기 때문에 전세계가 난리가 났으며 9월초는 진짜 유럽과 아시아가 전쟁나는 줄 알고 덜덜 떨었다.


이런 살벌한 상황에서 벌어진 인류 신석기시대 희귀 위기 사건...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스타니슬라프 예브그라포비치 페트로프 중령은 1939년 블라디보스톡에서 태어나 1972년부터 소련공군에 근무하기 시작한 임관 11년차 능력있는 44세의 젊은 장교였다.



당시 테르로프 중령은 모스크바에서 약 100km 떨어진 세르푸호프-15 지역의 위성관제센터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이곳은 지구를 돌고 있는 소련 군용 조기경보위성 여러대를 통제하면서 위성의 정보들을 받아 분석하던 곳으로 쉽게 말해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혹은 서독에 주둔하는 미군의 미사일부대 등에서 쏘는 소련에 위해가 될 수 있는 미사일(즉 ICBM)의 발사를 감시하던 소련 방어의 핵심 기지중 하나였다.




1983년 9월 26일 새벽 0시 좀 넘는 시간, 이곳 위성관제센터에서 갑자기 비상경보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관리하던 조기경보 인공위성이 갑자기 미국에서 ICBM을 소련을 향해 1발 발사했다는 경보를 울린 것.


얼마 지나지 않아 발사된 ICBM의 숫자는 5발로 늘어났고 관제센터는 초비상사태에 돌입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소련의 모든 핵미사일 사일로와 이동식 발사대에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당시 관제센터의 당식사령이었던 페트로프 중령은 졸지에 핵전쟁을 일으킬수 있는 권한을 떠안게 됐다.  


그의 판단에 따라 직접 핵미사일 발사명령을 내리거나 일과시간 중이라면 서기장에게 핵미사일 발사 명령지시를 내려줄 것을 요청할 수도 있었다. 

당시 상대국의 핵 미사일 발사여부를 감시하는 당시로는 최신의 조기경보 인공위성을 담당하고 있었던 것을 고려하면 핵전쟁이 전면적으로 발발하기 직전 몇분간은 모스크바 상부에서도 전적으로 그의 판단을 믿을 수 밖에 없었던 터였다.


요란하게 울리는 경보와 다급한 여러곳에서 오는 전화 벨소리, 그리고 상황판 지도위에서 깜박이는 미사일 램프...페트로프 중령은 정신이 반쯤 나간 상황에서도 자신의 위치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잠시 숨을 돌리고 생각해 보기로 스스로 결정했다.


1. 미국이 소련을 상대로 진짜 핵전쟁을 시작한다면 모든 ICBM을 함께 발사할 것이다. 그렇지만 컴퓨터가 잡아낸 것은 5개 밖에 되지 않는다. 

2. 이것은 그렇다면 컴퓨터나 인공위성의 오류일 것이다. 

3. 그렇다면 즉시 핵전쟁 시작을 멈추고 상부에 보고 해야 한다.

4. 그런데 이것이 진짜 미국의 핵미사일 발사라면 소중한 반격의 기회가 날아갈 수도 있다. 

5.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처음 판단한 자신의 판단력을 믿기로 했다. 인류가 구원받은 그 시간이다.


일단 페트로프 중령은 핵전쟁 취소 코드를 입력한 뒤, 상부에 컴퓨터 오류인 것 같다고 보고 했다. 


이후 미사일 도달시간이 지나도 피폭 보고가 없어 한시름 놓았던 페트로프 중령...


몇 시간이 지나서 인공위성이 강렬한 반사된 햇빛을 ICBM의 발사섬광으로 잘못인식해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페트로프 중령의 판단이 100% 옳았던 것이다. 


만약에 당시 일반적인 다른 군인이 핵미사일 공격명령 버튼을 눌러도 사실 과실이 되지 않을 상황이었다.


그의 도박에 가까운 결정은 결국 인류를 구원했다.


이후 소련당국은 페트로프 중령을 지방의 한직으로 내보냈고 곧 이어 이듬해인 1984년 그는 군을 제대하게 된다.


소련의 인공위성 감시 방공망의 취약점이 절대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에 알려지면 안되기 때문이었다. 


공식적으로는 그가 과오를 저지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상적인 제대로 군 연금을 받을수 있었고 이렇게 그는 조용히  모스크바 근방에서 지내게 된다.


이 사실이 알려진것은 사건이 발생한 뒤 15년이 지난 후 였다.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러시아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1급 기밀로 취급받던 사건이 15년이 지난 1998년 기밀해제가 되어 공개적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전 세계가 그에게 찬사를 보내며 감사해 했으며 세계시민상, 유엔 표창장, 드레스덴상이 그에게 주어지게 됐다. 




하지만 페트로프는 여러 매체의 인터뷰를 통해서 자신의 행동이 영웅적인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당시 그것이 나의 임무였고, 나는 합리적으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라며 겸손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페트로프는 2017년 5월 19일 향년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자신을 영웅시하지 않았던 생전의 행적처럼 조용히 가족들 곁에서 임종을 맞이 했다고 한다.


그의 사망소식도 그를 인터뷰했던 언론에서 그의 생일축하겸 안부를 묻는 전화에 그의 아들이 4개월전의 아버지의 임종을 전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9월 26일, 단 하루만이라도 페트로프 중령의 침착한 행동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자. 



만약 당시 핵미사일 버튼을 눌렀다면 우리는 지금 돌을 깨서 갈아서 짐승가죽 벗기고 살수도 있음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