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 77권, 세종 19년 5월 9일 무술 1번째기사 1437년 명 정통(正統) 2년
사로잡혔다가 도망해 온 박귀생의 아내에게 쌀·콩을 하사하다

평안도 도절제사가 여연 진무(閭延鎭撫) 신의(申義)를 보내어 치계(馳啓)하기를,

"도적이 조명간(趙明干)에 침입할 적에, 군인 박귀생(朴貴生)의 아내 미구(米狗)가 사로잡혔다가 도망쳐 돌아와서 이르기를,
‘처음 도적에게 사로잡혀 가다가 강에 이르러 피주(皮舟)를 탔는데, 배가 작고 가벼워서 나에게 흔들지 말라고 경계하기에 
내가 거짓 두려워하는 체하고 배 가운데 엎드렸다가, 강 한가운데 이르자 갑자기 몸을 솟구쳐 그 배를 뒤집고 문득 물에 몸을 던져 
헤엄쳐서 도로 건너오니, 도적 두 사람은 갑옷을 입고 활을 지녔기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 없어서 모두 빠져 죽었습니다. ’고 하였는데, 
뒤에 도적의 시체가 물 위에 떠올라서 과연 그 말과 합치하였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미구의 일은 비록 장사(壯士)라도 능히 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고, 쌀·콩 합계 6석과 면포 6필을 주고, 또 신의에게도 옷 두 벌을 하사하였는데, 신의도 도적을 막는 데에 공로가 있었던 사람이었다.






여고생 보다 강한 것


그것은 바로 마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