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개의 얘기지만


이번 학기 한국근현대사 강의 듣다가 조선족 주제를 다루게 되었는데


조선족이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게 김해성 목사임


1996년 김해성 목사는 조선족 사기피해 실태조사단 구성원으로 중국을 방문하여 현지에서 조선족 및 중국인들의 사기피해 상황을 조사했다(≪한겨레≫, 1996. 12. 26). 이듬해 그는 중국 내 조선족들이 한국인에게 당한 피해가 북한에까지 전파되고 있으며 따라서 북한에서는 중국동포들도 이렇게 당하고 있는데 통일이 되면 자신들의 처지는 더 심각하게 짓밟힐 수 있다는 얘기가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중국동포에 대한 무관심을 반성하고 동포로 인정해야 하며 이들이 한국인에 의해 입은 피해를 하루 속히 보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정부에 해외동포를 위한 부서를 만들어 체계적인 해외동포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내비치기 시작했다(≪한겨레≫, 1997. 1. 28)9 -  박우. (2011). 한국 체류 조선족 ‘단체’의 변화와 인정투쟁에 관한 연구. 경제와사회, (), 246-247 page 

김해성 목사가 당시 운영했던 '노동자의 집'이랑 '중국 동포의 집'은 사실 여러 외국인들을 망라하고 외국인 노동자 인권 운동에 나섰는데,


아이러니한 사실은 2017년 성추행으로 목사직에서 물러났다가 2021년에 복귀함


물론 김해성 목사뿐만 아니라 노무현의 역할도 컸음


종교단체들의 운동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무렵인 2003년 11월 29일,  노무현 대통령이 서울조선족교회를 방문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조선족교회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조선족들에게 현재 대한민국 정부가 조선족의 국적문제,  동포로서 인정하기 위한 민족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국가 간에 존중하고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는 취지의 ‘양해’의 말을 전했다(가리봉중국동포타운 특보, 2003. 11. 29).  대통령의 방문은 단식 농성을 하던 조선족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문제가 당장 해결된다고 하기보다는 대통령이 관심을 가졌다는 것,  투쟁의 대상을 대화의 테이블에 놓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 박우. (2011). 한국 체류 조선족 ‘단체’의 변화와 인정투쟁에 관한 연구. 경제와사회, (), 255 page


이런 과정을 통해 조선족은 대한민국의 민족 담론에서


한국 국민 - 재외 동포(선진국, 후진국) - 외노자 구조를 만들었음


서울조선족교회가 운동의 방향을 민족주의가 짙은 방향으로 나가자 ‘중국동포의 집’과 조선족복지선교센터는 조선족들이 중국 국적 포기선언과 한국 국적 회복운동을 전개하는 것은 자칫 조선족들이 중국에서 쌓아올린 공적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 우려했다. 박우. (2011). 한국 체류 조선족 ‘단체’의 변화와 인정투쟁에 관한 연구. 경제와사회, (), 254 page


그러면서 종교단체 쪽에서는 국적 회복까지 ㄱㄱ 했고 비종교 조선족들은 중국에서 쌓아올린 '자신들의 공적'을 걱정해서 갈등을 빚기도 함


뭐 여튼 오늘날 조선족 문제가 자꾸만 커지고 조선족들이 누리는 특혜에 대한 얘기도 분분하길래 내가 들은 강의랑 논문 같이 끄집어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