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고 커피나 코코아 한잔의 여유를 가지며 느긋하게 읽는 걸 권합니다.

진짜 존나 길어요.



전에

[긴 글] AI그림이 핫한 와중에 잡지식 뿌리기 - 유머 채널 (arca.live) 

이런 글을 적은 적 있었는데


지금 글의 목적은 이전에 적은 결과에서


가장 중요한 걸 빼먹고


아무래도 전달 결과가 내 생각과 의도랑은 다른 의도로 전파된 거 같아서 정리하려고 했음.


진짜 글 존나 길어요. 인내심 가지고 읽어줘요. 


최소 마지막에서 영어 인용문이라도 읽어줘요.

*로 찾을 수 있게 해둠





안읽은 게이들을 위해 요약하면


카메라 옵스큐라



1. 르네상스시대에 카메라 옵스큐라를 이용해서 사물의 스케치를 빠르고 정확하게 뜰 수 있게 되었다.

2. 그런데 19세기 18세기 무렵에 카메라가 진짜 개발되면서 화가들은 작풍을 바꾸었다.

3. AI시대가 진짜 본격적으로 다가온 만큼 그림 쪽 지망생들은 기술 공부를 해야할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우선 수정하고 싶은데

이전에 르네상스 시대 계속 그랬는데


내가 착각하고 잘못 적었음

르네상스가 아니라 근대초임


르네상스 시대에 카메라 옵스큐라를 사용한 건 맞는데


카메라가 개발된 건 1850년 내외

근대 시대임


 

이 전 글 연도도 적었으니 괜찮겠지만 혹시 몰라 적어둠

 

 

 1350-1550 르네상스/종교 개혁지리상의 발견

 1560-1660 근대초 유럽의 위기

 1660-1789 구체제절대주의 시대과학 혁명과 계몽주의

 1770-1850 프랑스 혁명과 산업 혁명

 1870-1914 국제적 산업화  경쟁의 발전

  역사 연표 | 서양사 (sootax.co.kr) 

 

###역시 이 글 또한 논문 조차 아니기 때문에 속성으로 작성된 글이기 때문에 크고 작은 에러가 있을 수 있음. 글쓴이는 최대한 사실에 입각해서 적으려 했으나, 이에 대한 판단은 읽는 이 개인의 몫이며, 글쓴이는 책임질 수 없음###

 


 안읽은 게이들을 위해서 조금 처음부터 빌드업함

검색으로 %치면 이번 핵심 내용부터 나올 거임.

처음부터 보는 걸 권하고 싶은데 존나 길긴 함.



 

Q: 현재 AI는 과거 카메라의 개발과 화가들과의 관계는 다를까?

 


 당시 근대 시대 화가들의 밥 벌어먹는 모습을 생각해봐야 해. 과거의 화가의 모습과 지금 화가의 모습은 어떨까? 생각을 해봐야해.

 

 상상이 되는 게이들도 있겠고 아닌 게이들도 있겠는데

 내 생각은 

 "현재와 과거는 크게 다르지 않다." 임.


 배고프면 일하고 피곤하면 자겠지. 

해가 뜨면 일을 하고 밤이 되면 쉬겠지

 

그럼 일을 하면 어떤 모습으로 할까?

카메라가 없이 일을 하면 어떤 일을 할까?


카메라를 제외하곤 전혀 다를 거 없으리라 생각함.

 

 이전 글에 적은 대로 화가는 인물사진이나 지역사진을 '그려주는 것'으로 수당을 받았다.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했음

 

 

 그림을 그리는 그림쟁이들은 알 거임 하나 그리는데 수당 받고 그리는데

 많은 시간을 들여서 최고의 결과를 뽑아야한 다는 것을. 안그러면 자기 명성에 타격을 받지. 일이 안들어와.

 

과거는 이런 것이 더 심했음.

 

진짜 작품 상태가 쓰레기다 하면 길드에서 박탈당하고 쫒겨나거든

우리 길드에 너 같은 놈 필요 없다고 내 쫒아버림.

 

그럼에도 화가들은 노력을 많이 했음.

 

지금 화가들보다 과거 화가들은 더 많은 수고를 들여서 그림을 그려야했음

 

19세기 페인트 툴


미술도구들은 지금보다 내구도도 떨어지고

 지우개 대신 빵 따위나 쪼개서 지워야했고

깨끗한 물을 얻기 힘들 수도 있고

 깨끗한 기름도 비싸고

 물감은 지금의 몇 배는 비쌌고

 색 내기는 쉽지 않았지.

 

이것들을 모두 극복해 나아가면서 노력 끝에 결실을 '판매'했지

 

다른 이야기지만 지금 커미션 문제들은 이런 책임을 대대적으로 지키지 못해서 발생한 것 아닌가 생각이 듬.

 요즘 너무 자주 올라오길래. 본인들도 이제 관리하겠지. 개인적으론 이 이야기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싶음.

 

다시 이야기 돌아가서

화가들은 자신의 작품활동을 하는 것 말고도 생계 유지를 위해 그림을 그렸던 일이 있었다고 이해하면 좋을 거 같음.



 지금은 화가로 먹고 살겠다. 대성하겠다 하는 야망 있는 예술가 친구들을 보면 알바를 많이 하던데 

카메라가 개발되기 이전의 화가들은 근근히 먹고 살긴 하지만 그림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해.


 물론 현대에서도 다른 직장을 들어가서 일하는 사람도 많이 있겠지만


미대 졸업한 친구들 말로는 현실에 찌들어서 예술의 길을 포기하게 된다더라고.


 예술 작품 한 번 하려면 시간이 엄청 걸리는데 그것을 고려해서 회사를 관두는 것은


 근속기간이 길어질 수록 쉽지 않은 선택이라고 했음.

 

반면에 당시 화가들은 예술가의 길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음.

 

일과 예술을 병행할 수 있었다는 말임.

 

그림만으로 먹고 살 수 있다던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대를 쭈욱 이어보면

 

 

1840년 즈음에 카메라가 개발되었네?


근대시대부턴 화가들은 


카메라탓에 그림만으로 먹고 살기 어려워지게 됨


즉, 생계 유지를 못하게 되어버림.

 



%여기서부터 본론임

 


당시 르네상스 사회상은 이직이라는 개념 자체가 불투명한 사회였음

길드라는 개념은 다들 알거임.




중세 길드는 엄청난 성장을 거두면서, 재계로서의 큰 권력을 가지게 됨.


각 길드별로의 권력이 있고 이는 하늘과도 같았음


만약에 내가 어떤 상회에 가입했고 거기 소속으로 물건을 파는데

주변 가격과 맞추지 않는다면 나는 엄청난 패널티를 소속 길드로부터 받아야했고

이게 좆 같아서 길드 밖에서 활동하면 걸리면 진짜 끔찍한 처사가 기다리고 있었음





길드의 부작용


시장 독점이지.


실제 물가 상승율 좆댔습니다.




길드의 권세는 도시 자체를 자치할 수 있는 수준이었음.


영주들에게 반란과 봉기를 들고 도시를 뺏은 사례도 수 없이 많음


모든 도시들이 그랬던 건 아니고 반대로 반란 끝에 처형 엔딩 맞은 경우도 있음


일종의 길드란 개념은 그 권세로부터 생각할 때, 한국에서의 민영화 개념으로 보면 좋을 거 같음. 결과적으로 거의 같음. << 아마 사학하는 사람들은 개거품 물 말일 거임


길드는 굉장히 오만했고

탈퇴도 힘들었고

가입도 힘들었음


이러한 중세 길드의 관례는 몇 백 년간 유지되면서 19세기 초기까지 남았다고 함.

이 탓에 화가들은 이직이 사실상 불가능했음

못하는 건 아닌데 이게 맞나. 처참한 상황이라 이해하면 좋겠음


길드 자체는 18세기 후반에 약화되지만

길드 자체는 곳에 따라선 19세기 초반에도 남아있을 정도였음.


그만큼 그들의 관례와 가치관은 오래도록 뿌리 깊게 있었다고 함.






카메라가 개발되면서 많은 화가들은 초상화를 대신할 수익을 찾아야만 했고


카메라의 개발은 실제로 당시 많은 화가들을 굶게 만들었다고 함.

 뒷배가 없는 평범한 예술가들은 말이지.


흔히 누더기를 입으며 빼빼 마르고 거미줄 친 방에서 홀로 쓸쓸히 그림을 그리는 예술 작가들을 떠올린다면

그것은 이 근대 시대의 예술가의 모습이었다고 함.


이거에 대해 재밌는 거 하나 있는데 이건 밑에서 이야기 할까 함



여기에서 

글을 이해했는지 확인차로 현대 예술가를 떠올려 비교해보자.


현대에서도 예술 작품을 한다. 그리고 돈을 잘 번다는 건 소수겠지?

예술 작품을 하고 싶어 미대를 졸업했는데 현실에서 순수예술은 소수만이 해.


그럼 순수 예술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현대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현대와 근데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의 모습을 생각해보자.




이야기 궤는 같지만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흔히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는 일이 많음

여기서는 산업혁명보단 산업화를 다루고자 함.

둘의 차이는 보고 자하는 기간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편하겠음


산업화는 17세기 중반부터 18세기 후반까지의 과정을 말함


제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고 철기가 엄청나게 저렴하게 됨.

증기력부터 시작해서 많은 공장이 들어서게 되고

출생인구는 두 배 두 배 두 배 증가해서 제곱단위로 증가하게 됨


진짜임



해당 도표는 영국의 10년단위의 출산율이라고 보면 좋겠음


1820년 즈음에 최고조에 다르는데 이때 여성은 1인당 거의 평균 6명의 자녀를 낳았다고 함

지수함수를 그리지?


최종적으로 50년간 2배의 인구 성장률을 달성하는 것이 19세기 영국이었음


참고로 중세에는 낳는다면 7~10명씩 낳았다고는 하는데

물자 생산량과 운반량이 제한적이던 당시 기술상, 많은 인구를 먹여살리는 건 불가능했음.


또 다른 이유로, 남자와 여자의 연령차가 20세 30세는 차이 나서 생계 문제가 있어서

미망인이 많았고 이에 따라, 전체 평균은 적었다고 함.


지금 이런 이야기를 왜 하냐면


산업화에서 놓고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내용은 바로 물자 생산량이었고


이러한 생산량의 확대와 인구는 중요한 연결이 있기 때문임.


그리고 그것은 군사력으로 이어지지.


굶지 않는 병사. 얼마나 멋지냐.



그리고 가장 큰 것은 가치관의 변화인데


산업화 도중의 가치관의 변화는 우리 인류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됨.

새로운 개념이 떠오르는 시대였거든


우리는 밥을 만들어 먹을 때, 어떻게 해서 만들어 먹을까

소스가 필요하면? 공장에서 만든 걸 사지

밥이 필요하면? 쌀을 마트에서 사지

탕수육이 먹고 싶으면? 인스턴트를 사먹지


질문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만들어 먹는 사람 있음?


없다고 봄.


소스 하나 만들려고 하는 수고와 비용을 생각하면 소스를 사 먹는 거랑 차이 좆도 안나거든


근대 이전에는 이런 발상이 안되었음



아직도 고식적인 유럽 고급 레스토랑에선 소스부터 치즈까지 모든 걸 만들려고 함

내가 유럽에서 잠깐 살았을 때, 100년된 레스토랑에 간 적이 있는데


그 사진을 보여주려 했는데 내 면상이 강하게 찍혀 있어서 안될 거 같음. 화면 절반을 가리네.


무슨 사진이냐면

치즈 저장고가 있음

퍼온 거임. 출처는 나도 몰?루?


진짜 레스토랑에서 치즈를 처음부터 끝까지 만듬

미친 놈들인가 싶었음


이게 근대 이전에 마인드다.

현대 말로는 장인정신이라고 할 수 있겠음


다른 말로는


'효율'이 나지 않는다.



효율

그것도 노동력의 효율


산업화 시대에 새롭게 떠오른 개념임.




공장시대가 들어서면서 가장 큰 차이는 분업화였다는 건 누구나 아는 이야기 일거임


분업화란 하나의 상품의 생산에 대해서

 전문가는 최소한으로 배제하고

그저 하나의 업무만 숙달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게 됨


즉 노동자의 가치가 급락하게 됨.


대체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임.


과거에는 숙련공 = 장인이었음. 


당연히 가치가 있었고 길드에서도 권익을 가졌음. 몸 값도 비쌌지.


웃어른 하시는 말


"먹고 살려면 장인되라."


"먹고 살려면 이공계 대학교 가라."


어떻게 현대 사회랑 하는 말 생각하는 게 똑같음.


MEDIEVAL GUILDS AND CRAFTSMEN by Dimitris Romeo Havlidis | Feb 9, 2017  


그런데 이제는 숙련공=장인이 아니게 됨



이 차이 가치관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기존 기득권층은


자신의 추락에 대해 급격하게 당황하게 됨.


관리자로 일할 수 있었고 기회도 있었지만

그 자리 수는 제한적이었고


상당한 사람들은 이런 심리적인 충격을 벗어나지 못해서, 공장에 몸을 담글 수 없었음.


효율을 이해한 사람만이 관리자로서 살아남을 수 있었음.


새로운 개념을 이해한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말임.



물건을 잘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최소치 기준에 맞추어

많이 뽑아 낼 수 있는 사람.


이 사람이 관리자로서 적성에 더 맞았던 거지.


장인들은 이러한 새로운 개념을 받아드릴 수 없었고 그들은 추락해버렸음.



이게 18세기 유럽이었음.


한 마디로 장인의 몰락이었고

그들은 그저 새로운 기술과 그에 따른 가치관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이었음.



저 괴물은 공장이고 시계가 있지

공장이 아이들을 잡아먹음

착취에 대한 그림임


더 웃긴 건


생산량이 많아야

더 많은 물건을 팔고

더 많은 이득을 내기 때문에


현대인이 많은 노동력을 대체할 거라 예상하는 공장의 기계는


노동력을 대체하긴 커녕, 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게 되었음.


이것을 마르크스는 착취로 이해했던가?

하지만 착취로 보기에는 초기에는 굉장히 많은 돈을 실제로 만질 수 있었음


그래서 영국 시골 청년들은 돈을 벌러 도시로 이전하였고

이를 주변 상인들이 

현재의 파견업체처럼

물건을 나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돈을 받고 마차에 실어서 옮겨주기 까지 했음


대이동이 시작된 거임


사람을 실은 마차가 일렬로 계속 이동하는 풍자화가 있었는데 이름을 모르겠네



이에 따라서 도시 인구 밀집도가 급격히 커지고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잉여인력이 급증하고

슬럼은 확대되면서

Capital and Labour, drawn by R. J. Hammerton, who sometimes used the penname Shallaballa, seen near the lower righthand corner (12 August 1843), Vol. 5: 48-49. Punch; or, The London Charivari 17.7 cm high by 24.3 cm wide.



살인마 잭 같은 사건 사고가 급증함




인구밀집도가 엄청났거든

B/W print; A humorous etching by George Cruikshank showing an early knifeboard horse bus bound for the 1851 Great Exhibition in Hyde Park, copied 2006

대중교통 이용을 이런 식으로 했다는 풍자임


주소 들어가보면 이런 사진도 있음


저 신사들 다 승객들임 ㅋ ㅋㅋㅋㅋ



그리고 위에 아이를 먹는 공장이 현실이 되기 시작함

A cartoon from Punch Magazine, satirizing the sweatshops of the 19th century clothing industry (c. 1870).


당시 여성들이 주로 근무하였던 옷감? 직조? 관련 공장 모습이래.





이러한 영국의 과거는 무언가를 보여줌


무엇을 보여주냐면


기술의 발전에 의해서 어떤 사람은 실직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기회를 얻기도 함.


이것의 역사적 핵심은 내가 생각하기로


 장인에게 달렸다는 생각이듬


장인은 기존에 열심히 일하던 성실한 사람들이었음

성실하지 않았으면 장인의 기술을 얻으면서 그 공방을 유지하는 건 쉽지 않았을 거임.


안정적인 주 거래처나 고객사가 있었다는 것이고

이는 그들이 길드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사실 또한 존재했다고 생각함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그들의 가치는 추락하게 됨


그들이 꼭 추락해야만 했을까?


장인이라는 직책은 추락하더라도 상품의 양질있는 제품을 추구할 수 밖에 없는 인물들도 있었을 거임.

공방 인력 부족 등의 이유로 가격을 올리는 일도 있을 수 있을 거임


하지만 나는 이것을 실력이라는 것 하나로 손꼽아 말하고 싶지 않음

이는 굉장히 안이한 것 같음


세상사 실력 하나로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는 법이니까.


나는 이렇게 생각함




만약 장인들이 효율이란 개념을 이해했고

새로운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생산 방식을 얻어서 

보다 양질의 제품을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는 없었을까


물론 내가 거기서 살아서 하는 건 아니고


적어도




이런 망치질하며, 몸이 망가져라 금속기를 생산하는 장인보다



이런 식으로 때려주거나 대신 프레스로 눌러주는 

그런 효율 있는 장인으로 살아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듬.


예시가 좀 부적절한 것 같은데 요지만 전달되면 충분하다고 생각됨.



아까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서


아까 화가 이야기에서 재밌는 거 있다고 그랬지.



흔히 누더기를 입으며 빼빼 마르고 거미줄 친 방에서 홀로 쓸쓸히 그림을 그리는 예술 작가들을 떠올린다면 그것은 이 근대 시대의 예술가의 모습이었다고 함


라는 이야기 기억할런지 모르겠음.



과거 카메라가 최초로 개발되었을 때, 화가들은 역시 절대다수는 예술만으로 살아 숨쉴 수 없었음을 짐작했고

직종을 옮겨야했음.


물론 길드라는 관례가 있기 때문에 


사회 분위기상 너무 동떨어진 일은 할 수 없었음


새롭게 시작하는 건 몰라도 화가로서 이직은 있을 수 없었음


그래서 한 화가들의 선택은


사진작가 사진가가 되는 거였음.


사진가 출신들 대부분은 화가들이었음.

사진도 찍어주고 그 사진을 컬러 초상화로 만들어주곤 했음


그리고 그렇게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이고 다룰 수 있게 된 인물들은 전부라곤 하지 않겠지만 나름의 업적을 이룩하는데 성공했음.


사진가이자 화가였던 대표적인 당시 인물들을 열거해보면



나다르는 이전에 적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걸로 알고 있음


굉장히 진보적인 사람임.




수채화를 그리던 양반인데 사진작가로 전향함




지금 열거된 사람들은 현대미술의 아버지격으로 불릴 만큼 굉장히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들이라고 알고 있음


특히 헨리 로빈손 작가양반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말고 예술작품을 만들면 된다는 주의로 굉장히 파격적인 작품을 이야기했고

현대미술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줌.



그의 대표적인 사진임.



그들은 화가이기 이전에 예술가였음.






마무리로 영어를 하나 인용하며 가볍게 번역하고 본 글은 마무리 하고자 함.


만약 시간이 된다면 부디 번역해서 읽어보길 바라는 추천글임.


긴 글을 읽어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마음에 들었다면 퍼가서 널리 퍼트려주세요.


*


“Is Photography Art?”


First, many people believed that photography could not be art, because it was made by a machine rather than by human creativity. From the beginning, artists were dismissive of photography, and saw it as a threat to “real art.’’ Even in the first presentations of 1839, classical painter Paul Delaroche is reported to have blurted out “From today, painting is dead!” Two decades later, the poet Charles Baudelaire wrote, in a review of the Salon of 1859:


“If photography is allowed to supplement art in some of its functions, it will soon supplant or corrupt it altogether, thanks to the stupidity of the multitude which is its natural ally.’’  ..... How Photography Became an Art Form | by Aaron Hertzmann | Medium



"사진은 예술인가?"


첫째로, 많은 사람들은 사진을 예술이라 여길 수 없었다. 그 이유로 사진은 사람의 창의성에 의해 제시된 것이 아니라, 어떠한 기계에 의한 것이기 대문이었다. 사진의 여명기, 예술가들은 사진을 얕잡고 하찮게 보았고 사진을 "예술의 위협"으로 바라보았다. 심지어, 1839년 첫 시연회에서 고전 미술가 Paul Delaroche 가 갑자기 소리치길, "오늘 이래로, 그림은 죽는다!" 라는 보고가 되었다. 20년 뒤 시인 Charles Baudelaire 1859년에 대한 리뷰를 썼는데 다음과 같다.


"만약 사진이 예술의 일부로써 예술을 보안하고 보충하는데 허가된다면, 이것은 바야흐로 (사진기가 도움되기 때문에)자연스럽게 형성된 절대 다수 지지자들의 우둔함으로  예술은 사진으로 대체되던지, 부패할 것이다."



사진이 화가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 책&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hani.co.kr)

How Photography Became an Art Form | by Aaron Hertzmann | Medium

사진역사-19세기 예술사진    한밭대학교 김윤중 (wins.or.kr)







.......



끝나지 않는 개꼰대의  참견: 안읽어도 됨.


 TV는 바보상자다.

컴퓨터는 전자마약이다.



둘은 과거 언급했던 인물들 절대다수가 기술관련 전문가도 아니었고

은 과거 언급되었던 시기 전부가 만들어진지 얼마 안되거나 국내 유입된지 얼마 안되었던 시기의 발언들임


현재는   다 헛소리 취급 받고 있으며,  인류에게 풍요로움을 제공해주고 있음



이제 질문을 함.

AI는 무엇일까







Q: R&D 현업 종사자로써 가장 일할 때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라 생각함?



바로 아이디어 공유임


사무실내 그림쟁이들에게 이걸 그려줘 하면

누군가가 하는 이해를 바로 못함

한참을 이야기해서 이미지를 공유해야 가능함


이 시간이 정말 아깝고


가끔 디자이너 위주의 프로젝트에서


의견 어필하는 거로 현재 디자인의 설계 할 때의 불리함과 사용자의 불리함 등을

수치적으로 제안하였지만

윗대가리가 병신새끼라 밀리고 물건 개좆망하면

 윗대가리 예산 내는 펜쟁이 새끼들이랑  그림쟁이들한테 개빡침.

그게 내 커리어가 되거든.




한 가지 의문점을 던지고 싶음


왜 굳이 ai 그림이 먼저 개발된거지?


생각해본 적 있음?


나도 이쪽은 기술 알못이라 자세한 건 아니지만

TTS등 음성을 생성하는 기술은 한국어는 아니지만 영어권에선 이미 엔비디아부터 굵직한 기업들이 재현하는데 거의 마친 걸로 알고 있음.

관련 신경망이랑 모델들 다 있다고 아티클을 본적이 있음.


귿에 왜 AI그림임?



이건 내 경험상의 뇌피셜인데


 현재 전세계적으로 AI그림을 우선적으로 발전 시키려하고 노력하는 가장 큰 원인은


그림 하나를 그린다는 스킬은  인간의 창의력을 방해하는 요소로 현재 사회에서 바라보고 있음


인간의 창의력은 무한하고 누구나 가지고 있음

그런데 그것을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느냐 못 그리느냐에 따라서


재능과 노력으로 결정지어진다는 것은 매우 아쉽다고 밖에 평가할 수 없음.


아마 그림쟁이들에겐 관점이 굉장히 충격적일텐데


이게 마인 크래프트와 레고가 인기있는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함.


그림 그리는 거 보다 쉽잖아?



이미 AI그림은 전세계에서 창의력을 뽑아주는 도구로써 활용되고 있고

이것은 저작권 여부 침해를 떠나서 창작으로 인정되고 있음.
물론 NAI처럼 기술적으로 합법 법리적인 문제가 남았는데 이건 gui찾아보면 될 거 같고 밑에서 이야기함



이어서 인간의 무한한 창의력을 방해하는 요소를 배제하기 위한 사례로

근대사에서도 건축 항공 군사 지도작성 등 많은 곳에서 이미 검증된 사례임


건축과 항공 군사작전을 할 때, 그림을 잘 그려야하는 건 거의 필수 항목이었으며

선이 화가처럼 깔끔하지 못하면 나락갔음


건축 관련 학생들은 아마 드래프트 머신이나 암 같은 걸 다뤄봤을텐데


이거임


나도 제도랑 그림 연습할 때, 써 봤음.



이런 것들은 바로 설계 도면을 아날로그로 작성할 때,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이쁘게 

그것도 누구나 작성할 수 있게 만들어준 도구임


이것부터 그림을 그린다는 스킬 한정 지어서 굉장한 위협을 주고 있었고


현재 75세 할배들 입장에서도 굉장한 발명 도구 중 하나로 인식 되어있음


75세 이상의 대학교수들은 저거 다룰 줄 암.


못 다루면 일 못했거든.



지금은 컴퓨터에 수치를 입력하면 땅하고 그림을 그려줌.

땅이 땅이 아니고 

그 원리는 입력된 수치에 맞는 메리트 함수를 생성해서 편미분방정식을 컴퓨터가 풀어주고

그에 맞는 내가 원하는 함수를, 기하를 제안 제공해주는 것임


심지어는 이미 저작권 걸려 있는 거에서 차용해서 뽑아주는 툴도 있음.

알아서 뽑아줌.


내가 할 일은 지금 AI그림 태그 다는 거처럼

구속조건 제한 걸고 가중치 넣어주면 됨.

그러고 컴퓨터가 뽑아주고


나머지는 내가 적당히 정리해서 쓰면 됨.

가끔 저작권 소송전이 있기는 한데

파츠 한 두개 빼고 조금 수치 바꾸면 통과 잘 안됨.

아이디어에서 파생된 제품으로 분류되어 버림.


현재 이공계 설계 분야 현실이 이렇다. 우리도 그림 그린다는 말임.


차이는


너네는 붓이나 애플펜슬일 수 있지만

나는 키보드임


이것을 창작 창의라고 인정할 수 없는 것일까? 


이미 공식적으로 인정 하고 있음.



AI그림,

이런 거처럼은 아녀도


 그려주는 기술 습득의 필요성


그림에 대한 허들을 낮추는 기술적 발전은 진즉부터 있어 왔고

인간 인류사에서 끊임없이 연구되어왔음


너네가 쓰는 페인트툴도 다 그런 거임.


앞으로도 계속 발전하고


따라서 AI그림은  앞으로도 이공계를 위해서 발전될 것임


이는 그 어떤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정해진 대세임.

어느 정도냐면


만약 완성된 AI그림이 있다고 칠 때

저작권 고발해도 미국 기업이라면 로비를 해서라도 걔네를 찍어 누르려 할거임.


돈을 있는 거 없는 거 풀고 풀어서 찍어 누른 다는 말임.



그 정도로 현업에선 강력한 기능으로 차용될 것임.




국내는 모르겠는데

해외에선 '아이디어'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자 동력이자 원천으로 바라봄


'아이디어'는 공익으로써 공유되어야하고 제안되어야한다고 말함,


그래서 질문을 묵살하는 행위를 굉장히 야만인으로 바라보고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병신 취급함


국내 학교에서 질문하면 싫어하는 사람들 있지. 그런 모습이 별로 없음. 권리로 보고

같은 학생들 또한 공부를 안하는 친구들이라도

수업 내용이 이해도 안되서 끙끙 앓고 있으면

이해도 안되었는데 질문을 왜 안하는 지 오히려 되물음.


이러한 수업에서의 과거 학자들이 고안한 아이디어의 공유.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다른 새로운 아이디어의 제안

이것을 생산이자 창의 창작이라고 말함.



지금 AI그림으로 존나게 신났다는 말임.

위협적이라고 거리 둘 때가 아님.


어찌되건 중요한 건 기업 입장에선 법리가 어찌되던 많은 기업들이 자금력으로 


그림쟁이들의 주장을 묵살시키려 달려들거임


진짜 모든 걸 뜯어먹으려 할 걸.

그 정도로 굉장한 기술이고


R&D 현업 종사자인 내 입장에서도 굉장히 필요로 한다고만 이해해주면 좋겠음


그러니 미대생 너네들 꺼져라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진지하게



일전의 사진기 글이랑 같은 맥락인데

기술 공부 하는 게 좋을 거임


카메라 탓에 생계를 잃어 버린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만

새로운 길을 찾고 새로운 만족을 얻는 사람들도 있음


메가 트랜드의 진행은 시작했고

이건 누구도 거스를 수 없음


적어도 TV 바보상자 부르던 개꼰대 할배들처럼


과거 카메라에 예술이 아니라 울부짖던 근대 예술가처럼 주장하지말고

그저 새로운 신기술에 위협만을 느끼고 거부감만을 가지며


막연하게 배척하고 멸시하려고 하지 말고


현재 할 수 있는 것을

현실을 똑바로 마주 보고

준비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