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기승전결


(여자)아이들 - '나는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에서 영감을 받았음을 알립니다. 거기서 따온거 맞으니까 표절이네 뭐네 말하지 말기. 어차피 비영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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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기승전결에서, '승'이 뜻하는 바는 파괴다.


새가 좋아하건 싫어하건, 새장을 망치로 내려쳐 부수고는 새를 잡아다 먼 하늘로 집어던지는 것.


지금 신재필이 처한 상황도 딱 그랬다.


본인의 새장이 우그러지고 있는 것도 모른체, 신재필은 횡단보도 너머의 어느 사람을 보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밝은 갈색 머리를 한 여자.


예쁜 사람이었지만, 그가 처다보고 있는 이유는 그래서가 아니었다.


이유는 그도 알지 못했다.


그의 눈앞이 붉게 보였다. 아니, 빨간불이었다. 건너편 보행자 신호등의 빨간불.


그 빨간불은 마치 '승'의 자비와 같이, 그 사람과 신재필이 만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모두가 알듯, 언젠가 빨간불은 녹색불이 된다.


지금처럼.


건너편의 편의점에 가야겠다는 생각도 잠시 잊고, 신재필은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 사이에 목석처럼 그냥 서 있었다.


뚜벅, 뚜벅, 뚜벅. 그 여자가 걸어왔다.


그를 똑바로 처다보면서.


뚜벅.


한 발자국 내딛는게 길게 느껴진다.


뚜벅.


이상하게도, 사람들 사이에서 꽤 눈에 띄는 그녀를 아무도 보지 않고 있었다. 아니, 그가 그녀만을 보고 있는 탓일까.


뚜벅.


그리고


뚜벅.


마침네 그녀가 그의 앞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는


뚜벅.


그를 지나쳐 걸어갔다.


뚜벅 뚜벅 뚜벅.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예쁜 여자 하나가 자기를 지나쳐갔다는 일일 뿐인데도.


어째서인지 멈췄던 숨을 몰아쉬며, 그는 눈앞의 다시 빨간불이 들어온 보행자 신호등을 보았다.


그는 이 다음에, 다시 녹색불을 기다렸다가 편의점에 들를 것이다.


자취방에서 조촐한 한끼 식사를 하고, 다음날 CAD 강의를 들으러 갈 것이다.


여느날과 다름없이.




하지만 그의 새장은 부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