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의뢰 정산금입니다. 게일 씨 이번 의뢰도 고생하셨어요.”


접수원이 건네는 주머니를 받아든 나는 접수원의 인사를 받으며 길드를 나섰다. 언제 받아도 두둑한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은 정말이지 참을 수가 없다니까 이래서 원정의뢰를 못끊어요.


“정산금 받아왔다.”

“그래, 이거지! 이걸 얼마나 기다렸다고!”


내 모습을 보자마자 들닥같이 달려온 마리는 재빠르게 자기 몫을 챙겨 분배금을 세어보기 시작했고 나머지 둘도 자기 몫을 받아서 분배가 잘 되었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돈 앞에서는 가족도 없다는데 확인은 필수지.


“이정도면 학비를 내고도 다음 의뢰까지 버틸 수 있어!”


가장 먼저 정산을 마친 마리는 품에 안고만 있어도 행복한지 주머니를 얼굴에 대고 비비고 있었고 나머지 둘도 정산에 문제가 없었는지 주머니를 품 안 깊숙히 집어넣었다.


“확실히 원정의뢰가 힘들기는 하지만 돈은 확실히 많이 받는군.”

“이정도라면 나도 공헌을 하고도 돈이 좀 남는걸. 처음에는 원정의뢰라고 해서 좀 걱정했는데 가끔씩하면 괜찮을 것 같네!”

 

엘리아의 말에 루체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고 분배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해산을 하려했다.


“그럼 오늘은 여기서 다들 헤어지자고. 다음에 좋은 의뢰가 있으면 다시 연락하지.”


그렇게 해산하려는 찰나,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평소라면 재빨리 아카데미로 향했을 마리가 우리를 붙잡았다.


“잠깐만, 기왕 무사히 돌아왔는데 축하파티라도 해야되지 않겠어?”

“축하파티라, 가난한 학생은 돈이 없다고 먼저 발빼던 너답지 않은데 마리?”


“사실 원정의뢰를 떠나기 전에 좋은 가게를 하나 찾았는데 그때는 돈이 없어서 구경만 했거든. 근데 이번 원정의뢰로 주머니 사정이 괜찮아졌으니까 다같이가서 한번 먹어보는게 어떨까 싶어서.”


호오, 우리 철부지 구두쇠 아가씨가 왠일로 제안을 하다니. 내 눈빛에 마리는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뭐야, 왜 날 그런 눈빛으로 봐?”

“아니, 왠일로 구두쇠 답지 않은 소리를 하길래 의뢰 도중에 도플갱어하고 뒤바뀐게 아닌가 하고 확인했을 뿐이야.”


“진짜 죽을래? 우리 게일 불맛 안본지 꽤 됐지? 지금 이 자리에서 도플갱어인지 아닌지 확실하게 몸으로 체험시켜줄까?”

 

곧장이라도 마법을 시전하려는 마리의 모습에 내가 겁먹은 척 두손을 들어올리자 곧바로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그래서 그 가게가 어딘데?”


내 물음에 마리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미리 알려주면 재미없잖아? 조용히 따라오기나 하라고.”

 

-


잠시 후, 마리가 우리를 데려온 곳은 번화가 끝자락에 위치한 한적한 가게였다. 마리는 기대가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문을 열었고 중후한 목소리가 우리를 반겼다.


“어서옵쇼. 이 시간에 손님은 처음인데? 자리는 많으니까 원하는 곳에 앉으라고.”


거구의 가게주인은 우리를 보더니 자리를 안내하고는 곧장 주방으로 몸을 옮겼다. 우리는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고 가게 내부를 둘러봤는데 이른시간에 와서 그런건지 가게 위치가 별로인건지 모르겠지만 가게 안은 한산하다 못해 텅 비어있었다.


“마리, 진짜 여기가 오고 싶었던 곳 맞아?”


루체의 질문에 마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응, 맞아. 지금은 이렇게 한가해보여도 저녁시간만 되면 자리가 꽉차서 발디딜 틈도 없는 곳이라고.”

“맞네. 이렇게 이른 저녁시간에 온 손님들은 간만에 보는군.”


언제왔는지 가게주인이 쟁반을 들고 서있었고 가게주인의 등장에 우리는 하던 대화도 멈추고 놀란 눈으로 가게주인을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허허, 이거 미안하구만. 나름 기척을 낸다고 했는데 이리 놀랄줄은 몰랐군.”

“다음에는 좀더 기척을 내주셨으면 합니다.”

 

내 말에 허허 웃던 가게주인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어서 우리에게 물었다.


“그래서 주문은 뭘로 할건지 정했나?”

“그야 물론 여기서 제일 잘나가는 걸로 다섯 개지! 아, 맥주도 있으면 같이 네잔만 부탁해.”

 

마리의 대답에 우리를 쓱 훑더니 엘리아에게 시선을 고정하고는 재차 물었다.

 

“제일 잘나가는 걸로 5인분이란 말이지.... 그쪽의 엘프 아가씨는 괜찮나? 우리집은 고기 메뉴 밖에 취급 안해서 말이야.”

“물론이다. 엘프가 고기를 안먹는다는 것은 철지난 낭설일 뿐이다.”


엘리아가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주문을 받은 가게주인은 손에 든 쟁반을 내려놓고 곧바로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나저나 이 가게, 그동안 번화가를 그렇게 다녔는데 처음보네.”

“그야 생긴지 얼마 안된 가게니까. 우리가 출발하기 일주일 전에 생긴 곳이라 번화가를 어쩌다오는 게일 너는 잘 모를만하지!”


그렇군. 그렇다면 모를만하지. 속으로 그리 생각한 나는 가게 내부를 두리번거렸다.


“그나저나 식전 메뉴가 절임무 하나뿐이라니. 마리, 여기 진짜 인기가 많은 곳이 많나?”


엘리아가 밑반찬으로 나온 절임무를 입에 넣으며 묻자, 마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의뢰를 떠나기 전에 어쩌다 이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지났는데 이 가게 앞에만 줄이 있었다고. 분명 엄청난 맛집이 분명해!”

“우리 가게를 그렇게 고평가 해주다니 고맙구만. 여기 우리 가게에서 잘 나가는 반반 세트 5인분일세!”

 

마리의 호평일색에 어느샌가 다가온 가게주인은 껄껄 웃으며 가져온 음식을 내려놓았고 우리는 대화를 멈추고 곧장 음식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가게주인이 가져온 것은 무언가를 튀긴 음식이었는데 한쪽은 노란 튀김옷이 먹음직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다른 쪽은 표면에 무언가를 버무려 놓은듯 새빨간 자태를 발산했다.


“보기만 해도 잘 튀긴 음식이란 걸 알겠네요. 이건 뭐라고 부르나요?”


루체가 감탄을 하며 묻자 가게주인은 웃으며 얘기했다.

“치킨일세.”

“치킨? 신기한 이름이네.”


마리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가게주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었다.


“노란 쪽은 후라이드, 빨간 쪽은 양념치킨일세. 닭고기를 소금과 후추를 섞은 소젖에 2시간 동안 담가 잡내를 제거한 후에 밀가루 계란물 밀가루 순으로 묻혀서 튀겨내지. 적당히 익었다 싶으면 건져서 기름을 빼낸 후에 주문이 들어오면 다시 튀겨내는 것이 핵심이지. 후라이드는 이렇게 만들고 양념치킨은 토마토로 만든 소스를 갓 튀긴 후라이드에 잘 버무리면 끝이지. 소스는 비법이라 알려줄 수는 없지만 말이야 하핫!”

“호오, 듣기만 해도 무척 기름질 것 같은 음식이군. 어떻게 만들어 낸거지?”


치킨 한 조각을 들고 이리저리 살피던 엘리아가 신기한 듯이 물어보자 가게주인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조용히 속삭였다.


“놀라지 말고 잘 듣게. 사실 이 요리의 창시자는 용사님이야.”

“용사님이요?”


가게주인의 발언에 루체가 놀란듯이 되물었다. 또 용사인가. 그 양반, 어지간히도 심심했나보군.


“사실 내가 전직 취사병인데 내가 한창 현역일 당시에 우리 부대가 용사님 파티와 함께 마왕군을 소탕할 기회가 있었지. 그래서 나 또한 식사지원을 위해 전장으로 향했네. 근데 용사님이 나를 보더니 대뜸 요리좀 치냐고 물어보시더군. 그래서 자신있게 그렇다고 했더니 나를 한참이나 뚫어져라 쳐다보시고는 코카트러스 한마리를 잡아오시더니 자신이 말하는대로 요리가 가능하냐고 하시고는 치킨의 요리법을 알려주셨네.”

“그럼 치킨이라는 이름도 용사님이 붙이신거야?”


마리의 질문에 가게주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사실 원래 치킨은 이러지 않았네. 그냥 밀가루 물에 코카트러스 고기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튀겨낸 것이었지. 그렇기에 맛도 이것보다는 덜했지만 용사님은 마치 사막에서 물을 발견한 듯이 그걸 엄청나게 드시더군. 그러시곤 내가 전역하고 가게를 차리면 무조건 찾아갈테니 연락을 달라고 하셨는데 그게 벌써 20년이나 지났군 허허.”


전에 족발과 보쌈도 그렇고 이 치킨도 그렇고 용사는 엄청난 미식가였던 모양이군. 속으로 감탄을 한 나는 후라이드 치킨 한 조각을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기름으로 인해 윤기가 감도는 겉표면은 엘리아의 말대로 무척이나 기름져보였지만 그게 거슬려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번들거리는 표면이 식욕을 더 자극할 뿐이었다.


“이런, 맥주도 주문했었는데 깜빡했군. 치킨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이 없어 내 신나서 그만. 금방 가져다 줄테니 식기 전에 먹게나!”


가게주인이 맥주를 가지러 자리를 뜸과 동시에 우리는 누구라 할새도 없이 곧바로 후라이드 치킨에 손을 뻗어 치킨 조각을 집어들고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베어물었다.


잘 익은 튀김옷이 바삭거리며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입안에 튀김옷에 갇혀있던 육즙이 터져나왔고 바삭한 겉과 촉촉한 속이 한데 어우러져 천상의 하모니를 자아내었다. 뭐라 말이 필요 없는 맛에 우리는 한동안 치킨을 뜯었다.


“...와 씨, 이거 미쳤는데?”


치킨 조각 하나를 해치우고 자연스레 흘러나온 내 독백에 모두가 고개만 끄덕였다. 손에 든 후라이드 조각을 해치운 나는 잘 발라먹은 뼈를 내려놓은 뒤, 곧장 양념 쪽으로 손을 뻗었고 그대로 한 조각을 들어 크게 베어물었다.


“양념은 어때, 게일?”


마리의 질문에 난 조용히 양념치킨을 음미했다. 양념으로 인해 매콤달달 했으나 바삭함을 잃어버리지 않은 튀김옷 안에서 이번에도 갇혀있던 육즙이 터져나왔고 튀김옷에 붙어있던 양념과 어우러져 후라이드와는 또다른 하모니가 입안에서 울렸고 몇번을 더 우물거리던 나는 조용히 엄지를 치켜들어 설명이 필요 없음을 알려주었다.


그런 내 반응에 기다렸다는 듯이 모두 양념치킨으로 달려들었고 그렇게 우리는 정신없이 치킨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치킨이 담겨있던 그릇이 바닥을 드러낼 때쯤 맥주를 들고 돌아온 가게주인이 웃으며 말했다.


“허허, 치킨이 그렇게나 맘에 들었다니 보는 내가 다 기쁘구만. 자, 여기 드워프 산 맥주일세!”


가게주인이 맥주를 내려놓음과 동시에 우리는 곧바로 잔을 들고 맥주를 들이켰다. 맥주의 톡톡쏘는 청량감이 치킨으로 인해 기름진 입안을 싹 씻어주며 개운함을 주었다. 나만 이렇게 생각한 것이 아닌지 말없이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고 있었다.


“크흐, 이 조합 굉장한데? 인생 절반 정도는 손해본 기분이라고!”


마리가 거칠게 맥주잔을 내려놓으며 말하자 루체와 엘리아도 동의한다는 듯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가게주인은 어떤 기분인지 잘 안다는 듯이 팔짱을 꼈다.


“꼬마 아가씨가 이 맛을 알다니 신기하구만. 모습만 어린거고 사실 혼기 꽉찬 노처녀인건 아닌지?”

“누가 노처녀야! 이래뵈도 아카데미 예비 졸업생이거든! 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고 여기 맥주 네잔이랑 치킨 2인분 추가!”


마리의 추가주문을 받은 가게주인은 재빠르게 주방으로 갔고 우리는 그제서야 맥주잔을 들고 건배를 했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전파하신 용사님께 감사를 담아 건배!”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