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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들과 백남기 유가족들의 개지랄발광에 반감을 갖는 한국인들 중에서도, 그 반감의 이유를 아래와 같이 찾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아니, 나는 솔직히 말하면 대부분일 거라 추정한다.)

 

"그래, 어느 정도는 혈육을 잃었으니 이해해 줄 수 있지만, 그래도 그 '정도'가 너무 심한 것 아니냐. 이만 하면 그만 추스려야지."

 

사실은 이것부터가 잘못된 생각이다. 혈육이 죽었어도 개지랄발광은 하면 안 되는 짓이다. 한국인들은 원칙에 입각한 연역적 사고에 굉장히 미숙하고, 언제나 '관계'와 '정도'를 따지는 문화 속에서 살아왔다. 한국인들, 아니 동아시아인들은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원리에 입각한 결정에 매우 낯설어하고 심지어 반감까지 갖는다. '사람사는 세상'이 그리도 매정하고 유도리없을 수 있냐면서. 그래서 항상 "요 정도까지 하면 될까? 요 정도까지 하면 먹힐까?" 따위의 꼼수스러운 고민을 한다. 이게 형이상학과 근본원리를 등한시하며 현세적이고 실용적으로만 흘러온 동아시아 사상사의 가장 큰 맹점이다. (내가 언젠가도 얘기했지만, 이게 동아시아에서 산업혁명이 폭발하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들 중 하나이다.) 그런데 과연 사람을 인간적으로 만드는 결정은 감정에 입각한 도덕률일까, 이성과 책임에 입각한 도덕률일까? 이 답은 내가 게시물의 끝에 제시하겠다. 

 

좃도 모르는 어중이떠중이 씹새끼들은 흔히 동아시아가 서양보다 더 실용적이고 현세적이지 못해서 문명이 뒤쳐졌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정반대이다. 동아시아는 유럽보다 형이상학적인 사고체계를 더 치열하고 치밀하게 전개시키지 못한 채 실용과 현실에만 집착했기 때문에 근대학문을 만들지 못한 것이다. 한국의 좃도 모르는 어중이떠중이 씹새끼들은 바로 한국인이기 때문에 그 '한국적인 사고패턴'에 벗어나지 못해서 이런 착각을 하는 것 뿐이다.

 

일반적인 사고체계 뿐만 아니라 도덕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전통적인 도덕률은 '도덕적 감정'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보니, 한국인들은 자식이나 부모가 뒈졌을 때 땡깡부리는 병신들의 개지랄발광을 다 받아준다. 심지어 수사기관과 사법부까지도. 이건 정상적인 시민사회가 아니다. 한국사회는 그러고 나서 어처구니 없게도 '정도'를 따진다. 한국인들은, 반이성적인 개지랄발광을 조금 했으면 봐주고 반이성적인 개지랄발광을 많이 하면 안된다는, 지극히 무원칙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다. 그 '정도'는 누가 결정하나? 결정의 원칙이라도 있나?

 

 

코쟁이들이 "아이 엠 쏘리"라고 말할 때, 이건 미안하다는 뜻이라기보다 유감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이 문장에는 "밧 어쩌고 저쩌고~~"가 따라붙는다. 독일어에서는 이게 훨씬 더 명확한데, '내가 실수를 범해서 남에게 피해를 끼친 경우'와 '내가 보기에 남이 불쌍해 보이는 경우'는 완전히 다른 케이스이다. 전자에는 나의 책임이 주어지지만, 후자에는 그렇지 않고 그냥 나는 '사람좋은 척을 하며' 연민의 표현만 취하면 된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이 차이를 모른다.

 

 

앞에 주어진 질문에 답해 보겠다. 도덕적 감정에 입각해서 "'사람사는 세상'이 어찌 그리도 매정하고 유도리없을 수 있냐."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꼬라지가 어떤가? 죽은 지 애비 팔고 지 자식들 팔아서 유족들이 잇속을 챙기고 있지 않나? (아니라고 부정하는 사람은 나와 토론해 보시길.) 그렇다면 과연 도덕적 감정에 기초한 도덕률과 의무와 이성에 기초한 도덕률 중에 뭐가 더 인간적이고 덜 반인륜적인가? 답은 명백할 것이다.

 

도덕적 감정이란 기본적으로 이렇다. 사람의 도덕적 감정은 사람들마다 다 다르고 대상에 따른 근원의 차이도 확실하며 어떤 때는 컸다가 어떤 때는 작아지기도 한다. 한 마디로 믿을 게 못 된다. 하지만 이성과 의무에 입각한 시민사회의 도덕은 보편적이고 인권을 가진 누구에게나 적용된다. 내가 섬노예를 보고 분노하는 이유는, 내가 그 섬노예에게 큰 연민이나 동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그 섬노예를 언제 봤다고 연민이나 동정이 크겠나.) 단지 그 섬노예가 인간이 누려야 할 인권을 못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도덕적 감정에 기초한 전근대적 도덕률이 한반도에 뿌리깊게 자리잡지 않았다면, 과연 일부 한국인들이 '시체팔이'를 할 수 있을까? 누구라도 동의하다시피 시체팔이는 매우 반인륜적이고 구역질나는 장사방법이다. 그리고 만일 그러했다면, 한국에 무수히 많은 위선자들이 자신의 도덕적 감정을 뽐내려고 지랄육갑을 할까? 이 글을 읽는 분들께서는 과연 한국인들이 특별히 더 동정과 연민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믿으시나? 그렇다면 과연 뭐가 '사람을 인간적으로 만드는 도덕'에 더 적합한가. 답은 명백하다.

 

사람은 유치한 위선적 행동과 말이 쪽팔리는 짓이라는 것을 자각할 때, 훨씬 더 '인간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이게 계몽이고 시민사회의 이념이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