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 장르가 생겼나 궁금해서 꺼무위키의 정보를 참고해봤다



70~80년대 경제 성장시기의 일본에서 유행한 음악 기조이자 기조상으로 따지면 시부야계의 아버지뻘. 이름에 걸맞는 도시적이고 세련된 분위기가 특징이다. 그 당시 일본의 지나칠 정도의 낙관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드러내는 음악 장르로도 볼 수 있다.


고도 성장기를 거치며 일본 사회는 어마어마한 자본력을 갖게 되었다. 쏟아져 들어오는 서구권의 문화를 접하게 되면서 일본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문화수준은 나날이 높아져갔으며,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당시 일본 음반사들은 해외의 프로듀서와 최고급 장비를 도입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버블시대 특유의 차고 넘치는 자본력과 그를 바탕으로 구축한 최고급 음악적 인프라는 일찍이 핫피 엔도의 흥행이 입증하듯 자연스럽게 일본 가요 전체의 질을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일본 가요계의 프로듀싱 능력도 진일보하게 된다. [1]

이러한 기조가 절정에 달할 시기, 일본 가요계에는 AOR[2]로 대표되는 최신 유행 장르들, 곧 재즈펑크디스코의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곡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3] 이러한 곡들의 신시사이저와 전기악기, 이른 시기의 디지털 음악등을 기반으로 짜여진 그루브한 진행은 도쿄 등지의 대도시권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불러냈다. 이 새로운 장르를 리스너들은 "도시에서 흥하는 음악"이라 하여 CITY POP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분류하기에 이르렀으며, 이 시티 팝은 소비자들의 한껏 높아진 구매력을 타고 일본 전역에 걸쳐 크게 유행하게 된다. 



우리나라 시티팝이 유입된 이유
대한민국의 대중음악계에도 시티 팝을 연상케하는 바람이 분 적이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전후하여 급격한 성장세를 보였던 시기에 이와 비슷한 낙관적인 분위기가 한국의 문화에도 흐르며 봄여름가을겨울빛과 소금김현철 등의 퓨전 재즈 아티스트들이 데뷔하여 수 많은 히트곡들을 발표했었다.

2010년대에 들어 베이퍼웨이브의 등장으로 복고 열풍이 거세지며 시티 팝 또한 특유의 세련된 분위기로 인해 (구미권에서는 힙스터들 위주로)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에 한 켠에서는 시티 팝 리바이벌이라는 이름 아래 특유의 요소들을 차용한 음악들이 다시 등장하고 있기도 하다. 윤종신의 Welcome SummerSummer man, 그리고 유세윤의 나는 고생했다등이 그 예시다. 또한 백예린이나 유빈도 시티팝 느낌의 노래를 내놓고 있다. 일렉트로닉 계열 중에서는 퓨처 펑크 장르가 시티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유빈이 표절한 덕에 인기와 관심이[5]

어쨌든 이들의 영향으로 201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한국에서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과거 일본의 시티 팝 열풍이 불고 있다. 특히 유튜브 댓글에서 Plastic Love, 青い珊瑚礁, la la la love song 등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많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