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우리가 거사할 만하다. 그러나 왕이 만약 바로 궁궐로 돌아간다면 좀더 참고 기다릴 것이요, 만일 또 보현원으로 옮겨 간다면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하였다. 이튿날 왕이 장차 보현원에 거둥하려고 오문() 앞에 이르러 시신()을 불러다 술잔을 돌리게 하고, 술이 거나해지자 왕이 좌우를 돌아보며 이르기를,
“장하도다. 이곳은 군사들을 연습시킬 만하다.”

하고, 무신에게 명하여 오병 수박희()를 하라고 하였다. 대개 왕이 무신들의 불평을 알고 후한 상품을 내려 그들을 위로하려고 했던 것이다. 한뇌는 무신들이 총애를 받을까 두려워하여 드디어 시기하는 마음을 품었는데, 대장군 이소응()이 한 사람과 더불어 서로 맞잡고 치다가 이소응이 이기지 못하고 달아나자, 한뇌가 갑자기 앞으로 나가더니 그의 뺨을 쳐서 곧장 섬돌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러자 왕이 여러 신하들과 더불어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고, 임종식과 이복기() 또한 이소응을 욕하였다. 이에 정중부·김광미()·양숙()·진준() 등이 안색이 변하며 서로 눈짓을 하였다. 정중부가 성난 목소리로 한뇌를 꾸짖기를,
“이소응이 비록 무부()이기는 하지만 벼슬이 3품()인데, 어찌 욕보이기를 이다지도 심하게 하는가?”

하니, 왕이 정중부의 손을 잡아 위로하고 화해시켰다. 이고()가 칼을 뽑아 정중부에게 눈짓을 하였지만 정중부는 그를 말렸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에 어가가 보현원에 가까이 가자, 이고와 이의방이 먼저 가서 왕의 유지()라 속여 순검군()을 집합시켜 놓고는, 왕이 겨우 보현원 문에 들어가고 여러 신하가 장차 물러나려 하는데 이고 등이 임종식과 이복기를 문에서 쳐죽였다. 좌승선() 김돈중()은 난이 일어났음을 알고 중도에서 거짓으로 취한 체 말에서 떨어져 도망하였고, 한뇌는 친한 환관에게 의탁하여 몰래 어상() 아래 숨었다. 왕이 크게 놀라 환관 왕광취()로 하여금 금지하게 하자, 정중부가 말하기를,
“화근()인 한뇌가 아직도 왕의 곁에 있으니, 내보내어 그를 베도록 청합니다.”

하였다. 내시() 배윤재()가 들어가 아뢰었으나, 한뇌가 왕의 옷을 잡고 나오지 않았다. 이고가 또 칼을 빼어 위협하니 그제야 나오므로, 즉시 죽여 버렸다. 지유() 김석재()가 이의방에게 이르기를,
“이고()가 감히 어전()에서 칼을 뺀단 말인가?”

하였는데, 이의방이 눈을 부릅뜨고 이를 꾸짖으니, 김석재가 다시 말하지 못하였다. 이에 승선() 이세통(), 내시() 이당주(), 어사 잡단() 김기신(), 지후() 유익겸(), 사천감() 김자기(), 태사령() 허자단() 등 무릇 호종하던 문관 및 대소 신료()·환관이 모두 죽임을 당하였는데,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처음에 정중부와 이의방 등이 약속하기를,
“우리들은 오른쪽 소매를 벗고서 머리에 쓴 복두()를 버리는 것으로 표시를 하되, 그렇게 하지 않는 자는 모두 죽이자.”

고 하였기 때문에, 무인()으로 복두를 버리지 않은 자 역시 많이 피살되었다. 오직 승선 노영순()만은 본래 병가()의 자식인데다가 또 무신들과 더불어 서로 친하게 지냈기 때문에 화를 면하였다. 왕이 크게 두려워하여 그들의 마음을 위안시키려고 여러 장수에게 칼을 내려 주자, 무신들은 더욱 교만하고 횡포하였다. 이보다 앞서 동요()에 이르기를,
“어느 곳이 보현찰인고? 이 금을 따라가면 다같이 도살되리라.[ ]”

하였다. 혹자가 정중부와 이의방에게 고하기를,
“김돈중이 먼저 알고 도망하였다.”
하니, 정중부 등이 놀라며 말하기를,
“만약 김돈중이 도성에 들어가서 태자()의 영()을 받들어 성문을 닫고 굳게 막으며 난동의 우두머리를 체포하자고 아뢰면, 일이 매우 위태롭게 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하니, 이의방이 말하기를,
“만약 그렇게 되어 우리가 남쪽 강해()로 피신하지 못한다면, 북녘 거란[]에게 투항하여 피하자.”

하고, 드디어 걸음이 빠른 자를 보내어 서울에 이르러 정탐하게 하였다. 그 사람이 밤에 성안으로 들어가 김돈중의 집에 가서 엿보았더니 적적하고 사람의 기척이 없기에, 승선(, 김돈중을 가리킴)이 있는 곳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어가를 호종해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하므로, 그 사람이 그대로 돌아와서 보고하니, 정중부와 이의방 등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일은 이미 성취되었다.”

하고는, 곧 그의 일당을 머물러 있게 하여 행궁()을 지키게 하고, 날쌔고 용맹이 있는 자를 뽑아 곧장 경성()으로 달려가게 하여, 가구소()에 이르러 별감() 김수장()을 죽이고, 바로 대궐로 들어가서 추밀원 부사(使) 양순정(), 사천감() 음중인(), 대부 소경() 박보균(), 감찰 어사() 최동식(), 내시 지후() 김광() 등 대궐 안에 숙직하고 있는 관료들을 잡아 모두 죽였다. 전중 내급사(殿) 문극겸()이 성중()에서 숙직하고 있다가 난이 일어났음을 듣고 도망하여 숨었으나 추적해 온 군사에게 잡혔는데, 문극겸이 말하기를,
“나는 전 정언() 문극겸이다. 주상께서 만약 내 말을 따르셨다면, 어찌 오늘의 난이 있겠는가? 원하건대, 예리한 칼로 나를 결판내라.”

하였다. 군사가 이상하게 여겨 사로잡아 여러 장수 앞으로 송치하였다. 여러 장수가 말하기를,
“우리들이 평소에 이름을 듣던 자이니, 죽이지 말라.”

하고, 궁성()에 가두어 두었다. 이고와 이의방 등이 순검군()을 거느리고 밤에 태자궁()에 이르러 행궁 별감() 김거실(), 원외랑() 이인보() 등을 죽이고, 또 천동택(, 의종의 사제())에 들어가 별상원() 10여 인을 죽이고서, 사람들을 시켜 길에서 외치기를,
“무릇 문신()의 관()을 쓴 자는 비록 서리()일지라도 씨를 남기지 말게 하라.”

하니, 군졸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판이부()로 치사()한 최유칭(), 판이부사() 허홍재(), 동지추밀원사() 서순(), 지추밀원사() 최온(), 상서 우승() 김돈시(), 국자감 대사성() 이지심(), 비서감() 김광중(), 이부 시랑() 윤돈신(), 위위 소경() 조문귀(), 대부 소경() 최윤서(), 시랑() 조문진(), 내시 소경() 진현광(), 시어사() 박윤공(), 병부낭중() 강처약(), 도성 낭중() 강처균(), 봉어() 전치유(), 지후() 배진()·배연() 등 50여 인을 수색해 내어 죽였다. 왕이 더욱 두려워하여 정중부를 불러다 난을 그치게 할 것을 꾀하니, 정중부가 ‘네, 네.’ 하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왕이 즉시 이고()와 이의방()을 응양용호군 중랑장()으로 삼고, 그 나머지 무인() 가운데, 상장군()은 예()대로 수사공 복야()를, 대장군()은 상장군을 더하였으며, 이의방의 형 이준의()를 승선()으로 삼았다. 정중부 등이 왕을 환궁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