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아이티 부두교

어제 올린 게 반응이 괜찮아서 부두교의 좀비 관련 이야기를 좀 더 가져왔어


사실상 부두교는 사회 공동체에서 눈밖에 난 사람에게 약물을 먹여서 좀비를 만드는 거지만, 

이게 엄연히 종교인만큼 부두교 신자들은 그렇게 유물론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음


부두교에선 좀비를 영혼을 강탈당한 상태로 봐.

좀비를 만드는 사제가 희생자의 영혼을 빼앗아서 가둬두면, 영혼을 잃은 희생자는 살아있지만 살아있지 않은 상태가 된다는 방식... 


그리고 재밌게도 원조 부두교에선 육체 좀비와 영혼 좀비가 따로 존재하더라. 저기서 강탈당해서 단지에 갇힌 영혼이 곧 영혼 좀비가 된다는거




이렇게 생긴 단지를 아프리카-카리브해권역에서 '카나리(canari)' 단지라고 부르는데, 부두교 사제들은 여기에다 영혼 좀비를 가둬 놓는다네. 물론 갇힌 영혼은 풀어달라고 애원하지만 본인 뜻대로 벗어날 수 없지


카나리 단지는 다시 부두교의 종교 신전 격 되는 공간인 훈포에다 안치를 해놓음.


훈포는 대충 이렇게 생긴 공간


여기까지 말은 그냥 영혼, 육체라고 했는데 사실 부두교는 생각보다 영혼관, 사후세계관이 복잡해서 딱 잘라서 영혼, 육체라고 말하긴 어려워. 


괴미챈럼들 대부분은 서양 기독교의 영혼/육체로 이원화된 영혼관에 익숙할거야. 

물론 이런 괴담게시판을 꾸준히 들락거린 모범적인 사람들답게 실제로 영혼의 존재를 믿는 챈럼은 거의 없겠지만ㅋㅋ

적어도 사후세계가 존재하는 단편 창작물을 하나 만들어 보라고 하면 대체로 우선 영혼과 육체를 이원론적으로 나누는 방식으로 만들어 가겠지 아마.



조금 더 나가서 우리 동양권의 유교적인 관념을 잘 알고 있다면 영혼을 다시 혼(魂=얼)과 백(魄=넋)으로 나누는 3단계 구분법도 알고 있을거야. 혼이 좀 더 명료한 영혼에 가까운 무언가고, 백은 육신에 붙어있는 생기 비슷한 무언가 라는 거.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로 올라가 점차적으로 흩어지고, 백은 육신과 함께 차차 흙이 되어 소멸된다는 관념. 

여기서 혼백이 소멸될 때까지 대강 4대의 세대가 흐를 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4대 조상까지는 제사를 지내지


사실 중국의 유교는 사후세계관이 명확하게 설정되어 있지 않아서, 대부분 (기독교 신자가 아닌) 한국인의 세계관은 불교식 사후세계관과 뒤섞여서 사후에 염라대왕의 심판을 받는다는 논리도 익숙할거야.

그래서 한국인들은 대체로 혼백이 지상에서 흩어져 사라지지만, 다시 혼이 저승에 가서 심판을 받고 극락이나 나락에 간다는 관념도 갖고 있는, 뭔가 모순된 이야기가 중첩된 관념을 갖고 있을거임


부두교에서 인간을 이루는 요소는 5가지가 있어

제투알(z'etoile), 그로 본 앙주(gros bon ange), 티 본 앙주(ti bon ange), 엔암(n'ame), 코 카다브흐(corps cadavre)


제투알(z'etoile)


제투알의 'etoile' 부분은 프랑스어로 '별'을 뜻하고 부두교에선 각 개인마다 그의 예정된 운명을 담고 있는 별이 있다고 믿어. 이게 사람 몸 속에 있는 건 아니고 하늘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째서인지 인간을 이루는 5대 요소 중 하나로 포함이 된다네. 별은 한 사람의 소망과 그 영혼이 살게 될 다음 생의 일들의 정해진 순서를 담고 있고, 부두교 사제들은 호리박병으로 점을 쳐서 알 수 있다고 함


그로 본 앙주(gros bon ange)



그로 본 앙주와 티 본 앙주를 이해하는 게 아주 쉽진 않은데, 아이티 사람들은 늦은 오후 햇빛 아래에 생기는 두 개의 그림자로 이해를 한다고 해,


 그림자를 보면 하나는 짙은 색으로 중심에 있고 다른 하나는 좀 더 흐릿하게 한 쪽으로 쳐져 있잖아. 이때 희미한 걸 티본앙주, 즉 '작고 착한 천사'로 이해할 수 있고, 가운데 보이는 짙은 상은 그로본앙주, 즉 '크고 착한 천사'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하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아이티 부두교는 인간의 영혼으로 큰 천사와 작은 천사 두 개가 들어 있다고 보는거. 그로 본 앙주는 모든 생명체에게 깃들어 있는 공동의 영혼 같은거, 일종의 '생명의 힘' 같은거라고 볼 수 있음. 이 영혼의 역할을 생명체가 생명을 유지하고 살아있게 하는 거. 태아가 수태되면 그로 본 앙주가 태아에게 들어가고, 사람이 죽으면 곧 빠져 나와서 신에게로 돌아간다고 함. 


티 본 앙주(ti bon ange)



그로 본 앙주는 그냥 생명의 에너지이고, 모든 감각이 있는 생명체에 공동으로 들어있는거라면, 티 본 앙주는 각 인격체에게 하나씩만 들어 있고, 그 인격체가 곧 그 자신이게 해주는 작은 영혼이야. 사실상 사람의 개성, 성격, 의지력, 자아 정체성 이런걸 담당하는 것. 사실상 이게 한 개인의 인격의 본질이고, 가장 중요한 존재야.


서양이나 동아시아권이라면 사람의 영혼이 빠져나가면 그대로 죽는거지만, 부두교에선 사람을 살아있게 하는 건 '그로 본 앙주'이기 때문에, '티 본 앙주'가 빠져나가도 살아있을 수 있다고 해. 밤에 꿈을 꾸는 것도 '티 본 앙주'가 몸에서 빠져나와 다른 곳에서 무언가를 경험하는 것으로 설명해.


여기까지 보면 알겠지만, 우리가 흔히 갖고 있는 서양 기독교식 영혼이 딱 저거 두개를 합쳐논 느낌일거야 


1) 생명체를 살아있게 하고, 이게 빠져나가면 죽는 것, 

2) 인간에게 그 자신의 고유한 개성을 부여하고 자의식을 갖게 하는 것. 


부두교는 저거 두 개를 딱 나눠놓아서 그 자신의 고유한 개성과 자의식, 정체성(=티 본 앙주)은 사라졌지만, 어쨌든 생명력(=그로 본 앙주)이 빠져나가진 않아서 살아있기는 한 존재라는 관념이 가능해졌지. 이게 바로 살아있지만 살아 있지 않은 좀비라는 존재가 되는거


엔암(n'ame)

엔암은 일종의 육신이 형체를 유지하고, 신체의 각 부분이 활동하게 해주는 생기라고 해. 아마 동양 유교권의 '백'과 비슷한거 같은데, 거기서 영적인 색채를 많이 빼고 물리적인 측면을 많이 더 한(?) 설명하기 좀 난감한 무언가 같다.


암튼 사람이 죽은 후에도 엔암이 남아있고, 대략 18개월 정도에 걸쳐 서서히 사라지기 때문에 사람의 시체가 흙으로 돌아가기 까지도 그 정도 걸린다고 설명해.


코 카다브흐(corps cadavre)

피와 살로 된 육신을 말해.

부두교는 육신의 부활을 믿지 않는 종교고, 만약 좀비가 되었어도 육신이 심하게 훼손되면 그대로 죽음 셈이 돼.


이걸 서양, 동양이랑 비교해서 정리하자면 대충 아래처럼 볼 수 있을거야.



우리가 아는 좀비는 '그로 본 앙주 + 티 본 앙주 + 엔암 + 코 카다브흐'에서 티 본 앙주만 빼앗은거야(사실 약물로 정신을 빼놓은거지만, 어쨌든 종교 관념상 그렇게 믿음). 그리고 빼앗은 티 본 앙주는 단지에 가둬놓고, 다시 영혼 좀비로서 취급하는거지.


부두교에선 사람이 죽을 때 저 다섯가지가 서로 분열되서 흩어진다고 믿는데, 바로 그 타이밍이 부두교 사제인 보코르가 티 본 앙주를 채집하기 가장 좋은 시점이라고 해. 대략 한 7일 정도가 골든타임. 그래서 부두교 신자들은 장례식 언저리에 티 본 앙주를 빼앗기는걸 두려워한다고 하네. 이렇게 해서 영혼 좀비를 만들면, 몸은 죽었지만 영혼만 남아서 갇혀 있는 신세가 되는 거


반면에 몸도 살아 있는 상태로 티 본 앙주를 빼앗을 수 있는데, 이게 그냥 어제 얘기한 좀비를 만드는 방식이랑 동일한거 같아. 

구체적으로는 사제인 보코르가 희생자의 집 앞에 십자 모양으로 독약을 뿌린 후 저주를 외우거나 하는 등 상징적인 행위가 추가된다고 함.



이런 식으로 육체 좀비와 영혼 좀비를 동시에 얻는 일거양득(?)이 되는 셈


참고로 갇히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승을 떠나게 된 영혼은 다른 문화권과 비슷하게 적당히 구천을 떠돌다 하늘로 돌아간다고...


출처는 어제 올린 글이랑 동일하고,

사실 아이티 부두교는 파면 팔 수록 재밌는게 많으니까 반응이 괜찮으면 더 올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