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아이티 부두교

보통 식민지배 당하다 독립한 제3세계는 줄줄이 독재자들이 집권해 나라가 개판되는 경우가 많음. 부두교의 나라 아이티도 역시 다르지 않지.


아이티는 19세기에 독립했지만, 한 순간도 빠짐없이 매번 시궁창 같은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어. 쿠데타도 일어나고 독재자도 많았음


다만 아이티에선 독재자도 부두교를 한 스푼 끼얹고 시작하는게 독특한 점이야


프랑수아 뒤발리에와 바롱 삼디

 


아이티의 독재자들 중 와중에 특히나 중요한 사람이 '프랑수아 뒤발리에(François Duvalier)'야. 이 사람은 원래 의사로서 존경받는 사람이었는데, '파파독(Papa Doc)'이라는 별명도 있었음. 뜻은 그대로 '아빠 의사'. 


또 당시 부패한 기득권 엘리트층과 맞서 싸우면서 일종의 민주투사, 영웅으로 여겨지기도 했어. 그리고 마침내 1957년, 대선에 출마해서 당선되었어. 그러니까, 첫 출발점은 쿠데타 같은 비정상적인 방식은 아니었던 셈


하지만 다들 예상했듯 막상 본인이 권력을 잡게 된 후 최악의 독재자로 변해버리고 만다... 그것도 뭐가 진짜 막장 독재자인지 똑똑히 보여주려고 작정한 거처럼 최악의 인간백정이 되어 버렸음.


우선 자신에게 저항하던 반정부 인사들을 붙잡아다 산 채로 살갗을 벗겨서 죽이는 등 잔인한 방식으로 처형했어. 게다가 먼저 처형될 사람들이 극도의 공포와 충격 속에서 죽어가라고, 그 부인과 자녀들까지 잡아와서 눈 앞에서 죽이는 등 잔혹한 일도 여러번 벌였어.


그리고 반체제 인사들을 잡아 가둔 고문실에다 벽에 구멍을 뚫고 그걸로 고문 광경을 엿보기도 했다네. 고문 피해자를 황산이 가득 담긴 욕조에 담가 죽이는 이상한 짓도 벌이고... 

남다른 변태취향을 가졌던 것 같다.


이 새끼는 아이티의 민속신앙에 특히 관심이 많았는데, 여기서 부두교를 십분 활용했어. 무엇보다 부두교를 중요한 종교로 공인을 해주고 부두교 지도자들을 적극적으로 등용했어. 그 전까지 미개한 아프리카 토속신앙 취급 받으면서 정치적 차원에서 척결하고자 했었는데 말이지.. 부두교가 수백년 동안 미개한 척결대상 취급받다가 마침내 주류로 올라선 순간인데, 하필 그걸 해준 놈이 이 새끼였네ㅋㅋ


뒤발리에는 어느 날 약을 과하게 먹고 심장마비가 와서 쓰러졌다가 깨어난 일이 있었는데 그 때 머리가 이상하게 된 건지 본격적으로 맛이 갔어. 그리고 본인이 부두교의 중요한 신령 중 하나인 '바롱 삼디(Baron Samedi)'라고 주장하기 시작했어.


바롱 삼디가 뭐나면, 부두교 신앙에서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신령이야. 무덤의 수호신령이라 무덤가에서 주로 활동하고, 누가 죽고 누가 살지는 바롱 삼디가 결정한다고 해. 한국의 저승사자랑도 꽤 닮았음. 다만 무시무시한 이미지이면서도 아이들을 사랑하고 친근하게 구는 갭모에도 보여준다고 하네


저기서 가운데 비석에 앉아있는 게 바롱삼디


바롱 삼디는 일단 흑인 남성인데, 얼굴은 해골이고 정장차림에 실크햇을 쓰고 시가를 피우는 모습으로 묘사되곤 해. 아마 바롱 삼디라는 이름은 몰라도 저게 워낙 멋있어서 각종 매체에서 저 이미지를 따다가 많이 쓰다보니 익숙할거야.


뒤발리에는 저 이미지를 그대로 따와서 중절모 쓰고 검은 정장 차림을 하고 다니는 등 바롱 삼디 코스프레를 하고 다녔어. 또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바롱 삼디의 뜻을 그대로 이어 받아서 아이티 국민들을 열심히 죽여댔지. 일단 무슨 행사가 벌어지면 친히 나서서 국민 몇 명 좀 죽이고 시작했음...

 


그러니까 우리 문화식으로 하자면, 북한 김씨 3대가 저승사자 코스프레 한답시고 검은 갓이랑 도포 같은거 걸치고 지방 순시 다니는 느낌 정도로 보면 될거 같네


근데 이 새낀 단순히 코스프레 하면서 국민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하는 수준을 떠나서, 본인이 진짜로 바롱 삼디의 화신이라고 진지하게 믿었던 것 같아. 뒤발리에는 자기 정적들을 목을 잘라다가 곱게 수집함에 모아두는 희한한 취미가 있었는데, 단순하게 미친 폭군이라서 그런다기 보다 죽은 사람의 목을 통해 그 영혼과 대화를 하려고 그랬다네. 


또 자기를 따르는 부두교 신자들에게 아이들을 자신을 위한 제물로 바쳐라고 명령하기도 했어. 더 희한한 건 이 새끼를 따르는 추종자 중 "뒤발리에에게 아이까지 바칠 수 있어야 진짜 애국자다" 같은 식으로 진지하게 주장하는 놈들도 있었단거... 무슨 국가단위로 세뇌당한 사이비종교 단체 느낌도 좀 난다... 주민들은 당연히 벌벌 떨었고, 아이티에는 야당이고 자유언론이고 뭐고 다 사라졌어. 


부두교풍으로 묘사된 정권 주요인사들


이런 꼬라지를 보다 못한 미국은 아이티에 대한 원조를 중단하기로 했어. 당시 미국 대통령이 존 F. 케네디였는데, 공교롭게도 케네디는 그러고 얼마 못가 암살당하고 말지. 뒤발리에는 그걸 자신이 부두교 주술로 저주해서 죽게 만들었다고 주장했어... 뭔 개쌉소리 같긴 한데, 또 시기적으로 절묘해서 몬가 그럴싸하기도 하다


뒤발리에는 그 전에 국가원수로서 케네디를 직접 만난 적도 있는데, 그때 케네디의 영혼을 빼앗아서 가둬두었다는 소릴 했어. 부두교에는 영혼을 단지에 가둬두는 '영혼 좀비'라는 개념이 있는데, 아마 그 개념일거야. 부두교 신앙에서 영혼을 빼앗기면 그 영혼이 빼앗은 자의 노예가 된다고 해. 그러니까, 뒤발리에는 케네디의 영혼이 자신의 노예가 되었다고 진지하게 믿었음.


그 이후로도 공교롭게도 뒤발리에가 부두교의 영력으로 선언한 말들이 생각보다 그럴 싸하게 들어 맞는 일이 있었어. 뒤발리에의 부하격이었다가 눈밖에 난 '클레멘트 바르보(Clemet Barbot)'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이 새끼는 뒤발리에의 자녀들을 납치하는 짓을 저질렀어. 


근데 뒤발리에가 눈이 뒤집혀서 바르보를 잡으려 들었지만 암만 수색해도 잡히지 않았다. 뒤발리에는 부두교의 힘을 빌어서, 바르보가 검은 개로 변해 숨어있다고 선언했어. 그리고 아이티 전국에 있는 검은 개를 모두 잡아 죽여라는 기상천외한 명령을 내렸음. 


 


저걸 시행하는 부하들도 현타가 존나 왔을거 같지만… 막상 검은 개를 눈에 띄는대로 잡아다 죽이다 보니 얼마 못가서 진짜로 저 새끼가 붙잡혔네...? 이쯤되니까 진짜로 뒤발리에가 바롱 삼디의 선택이라도 받았나 싶었을 거임...


이런 막장 인생을 살던 뒤발리에는 역사적 참교육 인과응보 그런 거 없이, 잘먹고 잘살다가 자기 아들을 후계자로 세습하고 곱게 죽었어. 이거 진짜 무슨 부두교 신령들의 가호라도 받고 있었던 걸까


통통 마쿠트

뒤발리에는 자신의 손발이 되어 줄 친위대, 비밀경찰도 만들었어. 


 


이름은 통통 마쿠트(Tonton macoutes)였음. 이름이 아기들 장난감 이름처럼 귀여운데, 하는 짓은 정반대였음


부두교 코스프레에 심취한 뒤발리에답게 통통 마쿠트도 사실 원래는 아이티 민간신앙에 등장하는 괴물 종족 같은거야. 프랑스어로 대충 '보따리 아저씨'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망태 할아버지'와 거의 비슷함



(한국 망태할아버지는 대충 이런 느낌)


그러니까 아이티에서 집에서 말 안 듣는 애새끼들을 보고 어른들이 "너 그렇게 말 안들으면 통통 마쿠트가 잡아간다!" 같은 식으로 겁을 주는 격. 그런 존재들의 이름을 가져와서 정권의 비밀경찰 부대 이름으로 붙인거야. 지배자가 죽음의 신령인 바롱 삼디고, 그 친위 부대는 저런 놈들이니 뭔가 매체 같은데 나오는 악의 세력 판박이네.

 

 



이게 아이티 축제 때 사람들이 분장한 통통 마쿠트인데, 일단 확실히 붙잡히면 ㅈ될거처럼 생기긴 했다..ㄷㄷ



 뒤발리에가 만든 통통 마쿠트는 이런 식의 마크도 달고, 민간전설의 컨셉에 정말 충실하게 말 안듣는 주민들을 잡아다가 해코지를 했음. 기본적으로는 비밀경찰로서 사회를 감시하고, 저항하거나 돌발행동을 하는 주민들을 즉결처분을 했지


대충 유명한걸로, 뒤발리에의 새로운 취임식날 통통 마쿠트들이 말 안듣는 국민들 5만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을 끌고가서 구금하고, 채찍으로 후려팼다는 얘기가 있어


또 사람들을 때려잡는 중 11살 짜리 꼬마를 숲으로 끌고가서 몽둥이로 두들겨 패서 암살했다는 얘기도 있음. 근데 위에 보면 바롱 삼디는 아이들을 좋아한다고 되있는데, 그 부하들이 애들을 납치해서 죽이는 컨셉이면 설정 충돌 아닌가..? 싶네


통통 마쿠트 중에는 특히나 부두교 지도자들이 많았다고 해. 아마 본인들도 진지하게 종교 사제로서 부두교 상급 신령인 바롱 삼디에게 복종하며 지하드 비슷한거 벌이고 있다고 생각했을듯...


뒤발리에가 죽은 후 아들인 장-클로드 뒤발리에가 그 자리를 고스란히 세습했어. 근데 이 새끼도 역시 똑같은 새끼라서 나라를 더욱 나락으로 빠트렸고, 결국엔 1986년 대대적인 시위가 일어나면서 축출당하게 되었어. 참고로 장-클로드 뒤발리에는 해외로 런해서 최근까지 잘먹고 잘살았음


뒤발리에 정권이 몰락하고 나서 통통 마쿠트는 머리 끝까지 빡친 민중들에게 처절하게 복수를 당했어. 눈에 띄면 붙잡혀서 화형을 당했고 심지어 인간수육이 되기도 했다고...


이후 아이티 역사의 뒷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이 나라는 쿠데타가 여러번 벌어져도 근본적으로 바뀌는 건 하나도 없었고 똑같이 부패하고 타락한 통치자들이 집권했어...


 



그러다 뭔 마가 끼었는지 몰라도 자연이 내린 대재앙까지 맞아버린다. 2010년에 그 유명한 아이티 대지진이 터졌고, 나라의 근간이 전부다 박살나는 상황이 되었지. 애초에 극빈국이라 그걸 회복할 여력조차 없었고...


길바닥에 나앉은 신세가 된 아이티 주민들은 진흙쿠키 같은 걸 빚어 먹으면서 연명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말았어...


 


(저거 먹어 본 사람 말로는 그냥 쌩 흙 씹어먹는 맛이라고 함)


지금도 정치적으로 극히 불안정하고, 몇 년전에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시위가 빗발치는 등 나라의 존재이유 자체가 사라져 가고 있음 

....뭐 이렇게까지 비참할 수 있나 싶을 정도다...ㅠㅠ


(대충 인터넷에서 유명한 짤)


개인적으로는 아이티 부두교 이야기가 굉장히 매혹적이라고 느꼈고, 혁명사, 자연, 민간 문화 등등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다고 느꼈어. 이 나라가 카리브 해에 위치해 있고, 나름 멋진 해안과 유적지를 갖고 있으니만큼 관광지로서의 잠재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 하루 빨리 혼란들이 수습되고 안정을 되찾았으면 싶네.


여기까지 해서 아이티 부두교 시리즈 끝임...


일단은 이게 마지막 편이고 끝인데 다음에 또 부두교 관련해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더 있으면 추가적으로 올리게 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