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썰풀이같은 느낌이 될 거고 좀 길어

그냥 한가할 때 심심풀이로 읽어봐


나는 한 동네 꽤 오래 살았음

중간에 이사해서 다른 지역 나갔다 오긴 했는데

몇 년 살다가 연어해서 다시 지금 동네로 돌아오게 됨

뭐 그러니까 그래도 대충 10년은 넘게 봐왔지


중딩때부터 이 동네에서 중학교 고등학교 다 나왔는데

이건 내가 중학생 시절에 처음 겪었던 일임


나는 남녀공학도 아니고 남녀합반 중학교를 나옴(지금도 남녀합반인진 모르겠음)

당시에 나름 잘 사는 집 딸내미가 하나 있었음


그렇다고 재수없게 잘난척하고 그런 건 아니고

씀씀이가 좀 큰 정도? 그리고 애들이랑 두루두루 친했음

같은 반이라 나도 얘랑 친했기 때문에 얘네 집까지 애들이 뭉쳐서 놀러간 적도 있다


애들이 뭉쳐서 놀러갔댔잖아?

진짜 한 4~5명까지도 같이 놀러갔단 말이지

잘 사는 집이라 했던 만큼 집도 존나 넓었음

좀 부자아파트같은 곳인데 지금 생각해보니 60평이 넘는 느낌(정확히는 모르지만)


그런데 어느 날은 이 녀석이 친구들 5명 정도 모아서 집에 데려다놓더니

갑자기 비명을 지르면서 애들이 모여있는 방으로 뛰쳐들어오는 거야


뭐야 왜 그래?


애들이 놀라서 모여서 걱정스레 물어보니





사실 나는 귀신이 보여...


이런 말을 하는 거임


당시의 나는 얘 말을 믿진 않았음

솔직하게 말하면 "뭔 개쌉소리지 씨발"이라는 생각이 더 컸음

그도 그럴게 갑자기 귀신이 보인다 이러면 좆뜬금 없지 않음?

다른 애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아무튼 그 녀석이 사실 자기는 귀신이 보이는데,


집에도 귀신이 있어서 가끔 튀어나오면 너무 무섭다

부모님한테 말해도 소용이 없다

우리 학교 근처에 있는 롯데리아 알지? 거기에도 너무 무서운 귀신이 있어

그 롯데리아는 조만간 망할 것 같아


이런 이야기를 하길래 상당히 인상 깊었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음


그 날 갑자기 방에 뛰쳐들어온 건

옆방에서 기타를 가져오려고 했는데 귀신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깜짝 놀라서 그랬던 거라고 했음

(취미로 일렉기타를 치는 힙한 녀석이었음)


그 자리에서 "뻥까지마라"라고 말할 만한 놈은 없었음

다들 착하고 순했으니까. 어쩌면 진짜로 믿은 애도 있을지도 몰라

그냥 "그렇구나 힘들겠네" "롯데리아 무서워"

라고 맞장구를 쳐줬지


사건은 얼마 안 있어서 벌어졌는데




진짜로 학교 근처 롯데리아가 망함



그 날 얘네 집에서 롯데리아에 귀신이 붙어있어서 망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애들끼리

모여서 "어떡해 진짜인가봐"라고 소문이 돌았음

그리고 이 소문은 학교 전체에 퍼져나갔고

그 애는 다시금 우리들을 모아서 한 마디를 더 했음





그 자리에 엄청 무서운 귀신이 붙어있어서

무슨 가게가 들어오더라도 항상 망할 거야

귀신이 방해하거든


롯데리아가 망할 거라고 예언했는데 그게 들어맞았으니

반 친구들은 다들 이 녀석 말을 철썩같이 믿었음

나는 반신반의였는데, 그냥 우연이 겹친 게 아닐까 하는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지

어쩌면 다른 애들도 100% 믿은 건 아닐지도 몰라


롯데리아가 망한 자리에 아마 당시엔 휴대폰 대리점이 들어왔던 것 같은데





놀랍게도 그 자리에 들어온 가게들은 정말로 거의 6개월도 못 채우고 족족 망해서 나갔음


내 기억만 따져도 롯데리아, 휴대폰 대리점, 슈퍼마켓, 야채가게, 정육점, 분식집, 어떨 땐 자리 안 나가서 그냥 빈 자리...


그래서 내가 다니던 중학교엔 그런 소문이 정설처럼 돌았음




"학교 근처에 있던 그 롯데리아 자리엔 귀신이 붙어있다"


다들 꺼려하면서 그 가게가 있는 자리엔 잘 가지 않으려 했지

나는 그 가게 옆건물이 당시에 다니던 영어학원 자리라서 그냥 무시하고 지나다녔지만..


그 자리에 분식집이 생길 쯔음해선 그 중학교를 졸업해서 난 고딩이 되어 있었고

대학 다니느라 그렇게까지 열심히 그 가게 자리를 보진 않았지만

어쨌든 항상 있던 게 망해서 새로운 가게가 들어서있는 걸 본 기억은 남




또냐, 진짜 귀신이라도 붙었나


이 생각을 어렴풋이 했었지



하지만 그로부터 10년 하고도 더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어른이 되어 세상의 이치와 사회가 돌아가는 구조를 어느 정도 이해한 지금은

대충 롯데리아가 왜 망했고 그 자리에 들어오는 가게들이 왜 족족 망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음




첫째로,

롯데리아가 있던 이 자리는 큰길과 마주하지 않고 학교 뒷골목과 마주한 자리임.

유동인구가 지나다니면서 볼 일이 거의 없고 뒷골목을 통해 어딘가로 이동할 때에나 발견할 수 있는 위치임.

필연적으로 장사가 안 될만한 자리인 거지.


둘째로,

이건 내가 성인이 되고 한참 지나서야 동네 소문을 통해 알게 된 건데

이 동네 건물주들은 개씹부자새끼들이라서 월세를 고정시켜놓고 절대 내려주질 않는다 함

보통 임대 자리가 잘 안 나가면 월세를 내려서라도 임차인을 꼬실텐데

"알빠노? 내 자존심이 있어서 월세는 못 내림 수구"

이런 마인드로 그냥 방치를 했던 거임

월세 그까짓 거 좀 못 받아도 사는 데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부자새끼들이 많다 함


결국 장사가 잘 될 것 같지도 않은 좆같은 불모지에 월세도 안 내려주는 곳인데

일단 울며 겨자먹기로 들어왔다가 역시나 장사 좆도 안돼서 다들 장사 접고 나가는 그런 자리였단 거지



그래서 지금 그 자리에 뭐가 들어와있냐면

24시간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가 들어와 있음 ㅋㅋ

그리고 놀랍게도 이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는 장장 3년동안 이 자리를 지키는 중임


무인 가게라서 인건비도 안 들겠다,

cctv도 설치해놨고 딱히 도둑놈들이 활개치는 동네도 아니어서 털어가는 일도 없겠다

정말 조용히 계속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는 거지




정말로 이 자리에 귀신이 붙어있다면 지금 쯤 무슨 생각을 할까

저주라도 날려서 그 자리 장사하는 놈들한테 영적인 장애라도 가해야 하는데

무인이라서 평소엔 아무도 없고 여름엔 더위에 지치고 빡친 사람들이

묵묵히 아이스크림을 바구니에 쓸어담고 빠르게 계산만 하고 나가버리는 가게에서

24시간 중에 사람이 존재하는 시간이 1~2시간이 될락말락한 이런 가게에서

귀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대체 뭐가 있을런지


이건 뭐 군대식 해결처럼 물리로 밀어버린 것도 아니고

인간들의 철저한 무관심으로 귀신이 퇴마당해버렸구마잉...하는 생각이 들더라


어렸을 적에 그 귀신 본다는 허언증인지 관종인지 진심인지 모를 녀석의 예언 아닌 예언에

다들 깜짝 놀라서 진짠가봐!하고 호들갑호들갑 했던 그 시절 기억들은 아직도 어렴풋이 머릿속에 남아있음


그 때 귀신을 본다던 그 아이는 지금 뭐하고 있을까


가끔 궁금해지기도 함.


정말로 귀신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그냥 자리가 병신이라서 장사가 안되는 곳이라 망한 건데,

우연이 겹쳐서 예언처럼 됐던 걸까?


영원히 알 길은 없겠지만

나름 흥미로운 추억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