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삼촌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어

두 주먹을 꼭 쥐고 고개를 떨군 채 한참 가만히 서 계시긴 했지만


하나 뿐인 오빠가 멀쩡히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교외의 전원주택을 구입해 글을 쓴답시고 틀어박힌 지 십 년,

몇 달 전에 고독사한 변사체로 발견되었으니 감정이 복잡할 만도 해


어른이 된 후 나는 삼촌의 글들을 읽어 볼 기회가 있었어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사람의 뒷면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물건이었고

그런 장르 특유의 매력으로 상당한 인기를 누렸어

아마 삼촌의 이름은 몰라도 필명을 꺼내면 

"그 사람 죽었어?!" 하고 놀랄 사람 많을 거야


- 그 양반, 그냥 도회지에서나 살지. 이건 처분도 안 되고...


아빠는 애물단지 같은 전원주택에 투덜거렸지만

독신인 삼촌은 집을 포함한 모든 유산을 우리 남매에게 남긴다고 

생전에 공증인까지 둔 유언장을 준비해 두었어

아빠의 투덜거림은 사실 슬픔을 서툴게 표현한 것에 불과했던 것 같아


삼촌의 유해가 정리되고 나서 우리는 그 집을 구경하러 갔어

부모님이 몇 차례 드나들면서 정리를 하신 뒤였지

시가지에서 꽤 떨어진 그 집은 앞마당과 텃밭을 갖춘 그럴싸한 목제 이층집이었고

마당에는 개 한 마리가 우릴 향해 꼬리를 흔들었어


- 그렇게 되기 전에 개 먹을 거리를 다 준비해 둔 걸 보면, 그 양반 아무래도...

- 쉿.


엄마가 아빠를 홱 쳐다보았고 아빠는 입을 다물었어.

욕조에서 녹아 버렸기에 사인 추정은 불가능했다지만... 

뭐 다 그런 거 아니겠어.


초딩이었던 우리는 이내 사람 죽은 집이라는 것도 잊은 채  

모험심에 빠져들어 집안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녔어

삼촌의 작업 공간이었던 서재의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에 나는 매혹되었지


- 와, 이 집 지하실도 있어!

- 거기 불 안 들어오더라. 내려가지 마. 다친다.


모험심에 불을 지피는 말이었지만 아빠가 엄하게 째려보았기에

우리는 기회를 봐서 내려가기로 하고 일단 지상에 집중했어

삼촌 집에는 TV도 없었고 벽에는 고풍스러운 풍경화와 정물화만 걸려 있었어


- 삼촌은 대체 이런 데서 재미 없이 뭐 하고 살았던 거지?

- 컴퓨터는 있었잖아. 아무렴 글만 쓰셨겠냐?


누나가 가볍게 핀잔을 주었고 나는 그런가 보다 했어


우리가 돌아다니는 동안 부모님은 가져온 먹거리들을 앞마당 테이블에 깔고

큼지막한 바베큐 그릴을 끌어와 그 안에 준비한 숯을 채웠어


- 아, 이거 생각난다. 삼촌이 소세지랑 베이컨 구워 줬는데.


아빠는 고개를 끄덕였고 엄마는 무표정했어

팔리지도 않는 집, 너무 오래 비워 두면 여기저기 망가진다며

그 날은 거기서 자고 가기로 했지


아마도 아빠가 준비한, 엄마를 위한 추억 여행 비슷한 것 같았지만 

어느 정도 철이 든 우리는 그런 티는 내지 않았어

우리는 거실에서 이부자리를 깔고 잠들었지


***


뿌드득, 뿌드드득.

시작은 콘크리트로 된 집에 익숙한 내게는 생경한, 나무 계단을 밟는 소리였어

잠이 덜 깬 채 나는 그 소리가 무엇인지 파악하려 했지만, 이내 다시 잠들려 했지


- 아, 12년 남았는데.


누가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고 나는 퍼뜩 잠이 깼어

홱 돌아봤지만 조금 떨어진 곳에 요를 깔고 자는 누나밖에 보이지 않았어

그 때 무심코 고개를 돌린 내 눈에, 큼지막한 들창이 들어왔어

기가 막히게 밝은 보름밤이었고 아름답다고 볼 수도 있었을 거야


달빛이 핏빛만 아니었다면 말야


비명을 지르려 했는데 어떻게 하는 건지 알 수 없었어


- 그 놈의 새끼들인가. 아, 아닌데...


아까 그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어

고개를 돌릴 수도 없을 만큼 혼란에 빠진 나는 

부들부들 떨며 그 목소리를 듣는 수밖에 없었어

못 박힌 것처럼


- 대충 혈육 같은데 자질은 있어 뵈는군. 이봐, 너 글 쓰고 싶냐?


나는 입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느꼈지만,

비명을 질러도 되는지는 알 수 없었어

입 외의 다른 모든 신체를 꼼짝도 할 수 없었거든


- 에, 에?

- 글, 쓰고, 싶냐고.


글? 무슨 글? 


나는 삼촌이 소설가였다는 걸 떠올렸어.

그게 무슨 의미인진 알지 못했지만.


- 에이, 지하실로 내려와 봐.

- 지하실... 요?


나도 모르게 나는 일어났어

아니, 일으켜졌어

몽유병 환자처럼 걷는 동안도 내 등을 비추는 달빛은 붉었고

뿌드득, 뿌드드득 소리를 내며 나는 불도 없는 지하실로 걸어 들어갔지


거기엔 또 하나의 서재가 있었어

하지만 2층의 서재와는 다르게, 책장들 가운데 놓인 탁자 위에는

작업용 컴퓨터 대신 이전 시대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구식 타자기가 놓여 있었지


그리고 그 타자기에서 아까의 목소리가 들려 왔어


- 이제 보니 조카구나. 이봐, 글 쓸래?

- 아, 아니요?


나는 겁에 질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타자기는 다시 말을 걸었어


- 하, 이거 참. 글재주도 없는 놈을 유명 작가로 만들어 줬으면 

대가를 치르고 죽을 것이지, 이 자식이...

- 당신이 누군데요?


그 때 나는 멀리서 개 짖는 소리를 들었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소리에 나는 묘하게 안도감이 들었어

그리고 그 입도 없는 타자기는 아마도 한숨을 쉰 것 같아


- 연이 닿으면 네가 나를 찾겠지. 가서 마저 자라.


헉 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잠자리에서 일어났어

아침이었고, 이부자리에 누운 상태 그대로였지

나는 흥분한 채 먼저 일어나 계신 부모님을 붙잡고 두서 없이 간밤의 이야기를 했지만

부모님은 애가 악몽을 꿨나 하고 찬물 한 잔을 주시며 진정 시켰어


나는 지하실에서 본 타자기를 확인하겠다고 용맹하게 내려갔지만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어. 아빠가 저번에 오셔서 다 치웠거든

애초에 조명도 없어서 내가 뭔가를 본다는 건 불가능했고 말야


***


그땐 그저 기분 나쁜 꿈을 꿨다고 생각했어

그 날 이후 내가 속독과 작문에 재능을 보이기 시작해

각종 공모전에서 입상할 때까지도 나는 그 날 밤을 떠올리진 못했지


하지만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는 걸 깨달은 30대의 어느 순간,

나는 공포에 사로잡혔어

빌어먹게도 다른 길을 찾기에는 너무 멀리 왔거든

노년의 헤밍웨이처럼 써지지 않는다고 발작을 하고 싶은 기분이었지


그 때 20년 전의 밤이 떠올랐어

달이 핏빛처럼 붉던 그 밤, 그 전원주택

팔리지도 않고 관리하는 손길도 끊겨 반쯤 흉가가 되어 있었지만

기괴한 기분에 사로잡힌 채 나는 그 집으로 향했어


현관문을 지나 먼지 쌓인 바닥에 신을 신은 채 들어서면서도

나는 내가 왜 여기 온 것인지 합리적인 이유를 댈 수 없었지


뿌드득, 

뿌드드득

나무 계단을 다 내려가자 내 눈 앞에는 타자기 놓인 서재가 보였어


- 데모 버전, 잘 썼나?


묘한 승리감마저 느껴지는 목소리로 그것은 물었어


- 이번엔 계약을 방해할 개새끼도 없구나. 12년이야, 어때?


아무래도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