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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버림받은 사령관 외전 - 못 다한 이야기' 의 3차 창작입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잘 봐주셨으면 합니다.



전편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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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는 오르카호가 떠나기 전 칸에게서 유진과 함께 지내보라는 권유를 들었다. 스틸라인 대원들은 어차피 그녀의 통제를 벗어났으니 차라리 따로 시간을 두자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마리는 그 권유를 거절하고 꿋꿋이 작전에 참가했다.  

 

 ‘생각해 봤는데... 그냥 작전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네. 신경써줬는데 미안하군.’ 

 ‘....왜 그런 결정을 내렸나?’ 

 ‘글쎄.... 내 마음 속에서 이 이상은 안된다고 생각해서일지도.’ 

  

 ‘자네의 제안을 듣고 생각해봤네. 스틸라인과 잠깐 떨어져서 시간을 두자고. 하지만 그러다가 갑자기 생각이 떠올랐네. 그렇게 된다면 이제 난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난 이미 많은 것을 버려왔네. 오르카호에 있을 때는 첫 번째 사령관을 따라야 한다는 내 의무를 버렸고, 두 번째 사령관 밑에서는 부하들을 지킨다는 의무도 버렸지.’ 

 ‘그건 어쩔 수 없었어. 명령에 저항할 수도 없지않나.’ 

 ‘그건 변명일 뿐이야. 그래도 난 스틸라인의 지휘관이었어어떻게든 해야만 했어. 하지만 난 네 의무를 방기하고 결국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쓰레기가 되었지.’ 

  

 마리는 온갖가지 감정이 뒤섞인 얼굴로 말을 이었다.  

 

 ‘자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네. 하지만 난 아직 불굴의 마리라는 이름은 가지고 있어. 비록 그들이 내 지휘를 따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난 지휘관이야. 거기서 벗어날 수는 없어. 아니, 벗어나면 안돼. 비록 그들이 내게 침을 뱉고, 설사 날 죽이려 해도. 난 그들과 함께 서있어야 해(Standing death). 만약 내가 그것조차 못한다면 난 이제 정말 아무것도 아니게 되. 그저 빈껍데기만 남겠지.’ 

 

 ‘난 이미 내 의무를 버렸고, 그 결과 명예를 잃었네. 또 다시 의무를 버리진 않겠어.’ 

 ‘....’ 

 ‘칸, 유진 도련님과 같이 있으라는 자네의 제안은 작전이 끝나고 수용하겠네. 지금은 함께 해야할 이들이 있어. 난 그걸 깨달았지.’ 

 

 마리는 칸의 눈을 바라보며 웃었다. 칸은 마리의 웃음이 마치 울음을 참기 위해 일부러 씩씩한 척 웃는 어린아이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 알겠네. 문제가 있다면 말하게. 언제든지 돕겠네.’ 

 ‘고맙네. 차 잘 마셨네.’ 

 

 칸은 일어나 나가는 마리의 등을 바라보며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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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는 어린아이를 대하는데 익숙하지 않다. 애당초 천성 군인인 그녀에게는 어린아이를 대한다는 상황 자체가 드물었고, 그렇기에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알지 못했다. 유진도 마리를 본 것은 오르카에 처음 도달한 날을 제외하면 없었다. 펙스의 회장은 유진이 아직은 전투에 익숙해질 필요가 없다고 여겼기에, 부모님과 함께 지낼 때에도 군용 바이오로이드들은 어머니인 레오나를 제외하면 자주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유진과 마리의 대면은 매우 어색하게 흘러갔다.  

 

 “도, 도련님. 안녕하십니까. 불굴의 마리 4호라고 합니다. 스틸라인 부대의 지휘관을 맡고 있습니다.” 

 “네. 반갑네요. 유진입니다.” 

 “.....” 

  

 순간 서로 할 말이 떨어져서 불편한 침묵이 생겼다. 콘스탄챠가 상황을 보다가 끼어들지 않았다면 더 오래 지속되었을 것이다.  

 

 “도련님, 차라도 한 잔 타드릴까요? 마리 지휘관님도 괜찮으신가요?” 

 “, 응. 고마워 콘스탄챠.” 

 “나도 고맙네.” 

 “별 말씀을요. 그럼 이쪽으로 오셔서 앉아서 기다리세요!” 

  

 콘스탄챠가 다과를 준비하러 사라지자 페로와 리리스가 바톤을 이어받았다.  

 

 “불굴의 마리 지휘관님, 원정은 잘 다녀오셨나요? 브리튼 섬에서 별다른 일은 없었나요?” 

 “아, 별일 없었네. 다행히 철충들은 다시 해협을 건너서 대륙 방면으로 나간 모양이더군.” 

 “그렇군요. 브리튼 섬은 어땠나요? 원래 그 쪽으로는 가본 적이 적지 않나요?” 

 “뭐, 그냥 평범했네. 다만 멸망 전에도 거기엔 군사시설이 대부분이었었지. 프랑스는 원래 블랙리버가 주로 다스렸거든.” 

 

 페로나 불굴의 마리, 블랙 리리스 둘 다 서로를 싫어하는 사이였지만 유진 앞에서 어색한 분위기를 없애기 위해서 서로 겉으로나마 눈치껏 나름 살갑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래도 무사하셔서 다행이네요. 거기서 원정이 어떻게 진행됬었나요? 아버지는 제게 군대에 관해서는 잘 안알려주셔서 궁금하네요.” 

 “아, 네 도련님. 그게 어떻게 되었느냐하면-” 

 

 유진은 딱히 적극적으로 끼어들지는 않고 대화를 듣다가 이따금씩 궁금한 점을 물어보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유진은 편안함을 느꼈다. 그의 입장에선 마리가 해주는 이야기가 아주 흥미진진했다. 페로도 눈치있게 마리를 거들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되었죠.” 

 “마리 지휘관은 참 재미있는 분이세요. 사실 처음 봤을 때는 따분한 사람인 줄 알았거든요.” 

 “하하. 그러셨습니까? 사실 저 같은 기종들은 별로 유머감각이 있는 편은 아닙니다.” 

 “그렇지도 않으신걸요이야기하다보면 즐거운게 마치 누나 같아요.” 

 “///” 

 

 유진은 그의 말을 듣던 불굴의 마리가 순간 얼굴을 붉히는 것을 보면서 의아해했다. 왜 저러지? 

 

 “마리 누나? 무슨 일 있나요?” 

 “아, 아닙니다.” 

 

 더 얼굴이 붉어지는 마리를 보며 페로와 콘스탄챠가 도끼눈을 떴다.  

 

 ‘이 년이 기어코....’ 

 ‘그래, 네 년 성벽이 어디 가겠냐....’ 

 

 속으로 혀를 차는 페로와 콘스탄챠의 속내도 모르는체, 유진은 그런 마리를 보며 쩔쩔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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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는 격분했다. 

“그러니까 왜 안된다고 하는 건데!” 

 

 잔뜩 화난 얼굴로 따지는 철혈의 레오나에게 라비아타 통령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  

 

 “이미 설명했잖습니까. 도련님과 친하게 지내다가 나중에 도련님이 펙스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힘들어질 수 있다고 말이죠. 도련님도, 당신도.” 

 “고작 그런 이유로 그러는거야? 유진의 엄마는 철혈의 레오나로 나랑 같은 기종이야. 안그래도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힘들텐데 내가 옆에 있으면 좀 더 안정감이 들지 않겠어? 왜 이걸 생각을 못하지?” 

  

 레오나의 주장에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천향의 히루메가 입을 열었다.  

 

 “레오나여, 유진 도련님의 곁에는 배틀 메이드도, 컴패니언도 있다. 현재로서 첩이 보기에 도련님은 이미 충분히 편안하게 지내시는 걸로 보인다. 첩의 생각으론 오히려 레오나 그대가 도련님 곁에 있는 것이 더 어색하지 않을까 하는군.”  

 “그러니까-” 

 “그리고.” 

 

 레오나의 반박을 끊으며 히루메가 말했다.  

 

 “내가 이미 말하지 않았나? 레오나여, 그대가 유진 도련님과 함께 있으려는 것은 그저 현실도피에 지나지 않아.” 

 “... 그 입 닥쳐.” 

 

 히루메의 말에 레오나는 표정을 무섭게 일그러뜨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라비아타가 슬며시 옆에 놔둔 대검으로 손을 뻗었다.  

 

 “이미 몇 번이고 말한 듯 하지만 아직도 이해를 못한 듯하니 다시 말해야겠군. 그대는 유진과 친하게 지내면서 자신의 상황에서 눈을 돌리고 있네. 도련님에게서 회장님의 모습을 찾으려고 하지 말게! 자네가 그의 곁에 언제까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그러다가 회장님이 오시면? 그 때는 그 분에게 무슨 말을 할텐가? 그 때도 지금 우리에게 하는 것처럼 유진 도련님 곁에 있고 싶다고 할 수 있을 성 싶나? 천만에! 유진 도련님은 자네와 있는 것보다 가족들과 있는 것이 더 행복할거네!” 

 “닥치라고!” 

 

 히루메에게 소리를 지른 레오나를 보며 라비아타는 순간적으로 몸을 긴장시켰지만 레오나는 그 직후에 달려들지 않았다. 대신에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나도... 나도 그걸 모를 줄 알아! 나도 알아! 내가 걔랑 아무리 친하게 지내도... 결국 난 여전히 나일 뿐이야. 더러운 배신자, 사령관을 배신한 레오나라고.... 그래도.... 유진이 나한테 웃어주면.... 마치 내가 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지금까지 날 괴롭혀온 죄책감이, 후회가.... 마치 용서받은 것 같이 느껴진다고.... 사령관님한테 용서받은 것 같아.... 이런 내 심정을 알아?! 이런 비참함을 아냐고오오오?! 아아아아아악!” 

 

 끝내 추하게 울부짖는 레오나를 내려다보며 히루메는 한편으로는 동정하는 듯, 한편으로는 경멸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라비아타는 얼굴을 감싸쥐며 말했다.  

 

 “하아... 바닐라? 앨리스? 레오나를 다프네가 있는 의료시설로 데려다줘요다프네한테 수면제를 처방해달라고 하고요.” 

 

 여전히 울부짖으며 바닐라와 앨리스에게 끌려가는 레오나를 바라보며 히루메는 라비아타에게 말했다.  

 

 “차라리 동면시켜 놓는게 좋을 거 같네. 우리가 무슨 말을 해도 들을거 같지 않으니.” 

 “하아... 생각해보죠..... 우리는 언제나 괴로움에서 풀려나 자유로워질까요?” 

  

 라비아타는 딱히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말했다. 그녀의 말에 히루메가 조용히 답했다.  

 

 “난 잘 모르겠지만, 어렴풋이 알겠군. 그런 괴로움은 결코 없어지는 법이 없네. 그저 익숙해질 뿐이지.” 

 

 라비아타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떨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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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 시간, 마리는 숙소에서 나와서 유진이 머무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낮에 유진과 이야기하면서 마리가 따로 그녀의 방에 두었던 영화들에 대해서 듣고 같이 보지 않겠냐고 제안했기 때문이었다.  

 

 “~” 

 

 오랜만에 즐거워지는 기분을 느끼며 걸어가던 순간 

 

 땡강푸쉬이이익! 

갑자기 사방에서 연기가 솟구치며 사방을 에워쌌다. 

 

 “!! 유진!!” 

 

 마리는 유진의 숙소 방향에서 솟아오르는 연기기둥을 보고 황급히 달려갔다 

 

 ‘연막탄?! 아니 이건-’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고 임시방편으로 소매로 얼굴을 가리던 마리는 갑자기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을 느꼈다 

 

 ‘이게 무슨.... 아니, 이 연기는 설마-’ 

 

 그녀는 어느새 자신의 몸에 연기 속에서 피부가 따끔거리며 정전기가 일어나는 느낌을 받았다 

 

 풀썩 

 

 마리는 결국 땅에 나뒹굴고 말았다. 손발의 말단부터 서서히 마비되는 가운데 어떻게든지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이제는 고개를 드는 것도 힘들었다 

 

 “아직도 살아있었네쓸데없이 명줄만 길기는...” 

 “!” 

 

 익숙한 목소리에 마리가 고개를 들자 그녀의 눈 앞에 길다란 분홍색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비록 얼굴에는 반투명한 막을 뒤집어 쓰고 있었지만 마리는 그녀가 누군지 알아보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미호-!” 

 “나도 아니까 말할 필요 없어 개년아.” 

 

 마리의 외침은 성대까지 마비되어서인지 거의 속삭이는 소리였지만 미호는 그것을 듣고 심들렁하게 말했다 

 

 “뭐, 이젠 말할 기운도 없지그럼 이제 죽어... 라고 하고 싶지만, 넌 여기서 죽으면 안돼.” 

 

 마리는 그녀에게 뭐라는 거냐라고 하고 싶었지만그녀는 서서히 눈이 감겨오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래. 이 년들은... 더 고통스럽게 죽어야 해. 정당한 방식으로, 그 사람이 괴로웠던 만큼.... 지옥불처럼 뜨겁게...” 

 

 미호는 얼굴을 덮고있는 막을 고쳐쓰고 유진이 머물던 숙소로 향했다숙소 앞에서는 연기를 보고 황급히 나오던 하치코와 펜리르가 널부러져 있었다 

 

 “흥, 성능은 확실하네펙스의 대(對)바이오로이드용 무기라더니... 이렇게 좋은 성능이 나올 줄은 몰랐는걸?” 

 

 미호가 터뜨린 연막탄은 그녀가 포츠머스 기지에서 슬쩍한과거 펙스에서 전쟁 전에 개발한 바이오로이드를 상대하기 위해 발명한 무기였다사실 이것은 가스가 아닌 소형 나노머신으로범위 안에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은 특수한 장비를 착용하지 않으면 신체능력을 마비시키는 전파를 방출하는 나노머신이 확산되게 되어있었다무엇보다 연기가 아닌 나노머신이었기에 어지간한 방독면은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기지에 쌓여있던 물자가 정리정돈 없이 뒤죽박죽이었기에 몰래 슬쩍해올 수 있었다. 

 

 미호가 문을 열고 숙소로 들어가자숙소에는 페로와 콘스탄챠가 누워있었다아마도 문과 창문을 막으려 시도했던 모양이었지만, 다 마치기도 전에 쓰러진 모양이었다 

 

 “콜록콜록, ... 누, 누구야?” 

 

 한참 기침을 하던 유진이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을 보고 놀라서 물었다. 

 

 “나야, 미호. 반갑네. 다시 보자고 했지?” 

 “미호?! 아니 이건 대체...” 

 “아, 미안.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나중에 말해줄게.” 

 

 굳어진 유진을 보며 미호는 가면 밑에서 싱긋 웃으며 말했다.  

 

 “따라와 주지 않을래? 같이 가야할 곳이 있어서. 그리고.... 네가 꼭 들어야 할 것들이 있어. 참고로 이건 납치라서 너한테는 선택권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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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진도를 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