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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터니티가 존 윈체스터의 집에 온 다음날 아침을 시작한 것은 론 브래드버리의 울음이었다. 이터니티는 이전에 이야기했듯 론 브래드버리의 울음을 듣고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모든 육아하는 부모가 원하는 능력이었다.

 그것의 주인은 아침밥을 원하고 있었다. 얼마만에 취하는 편한 잠이었을테지만 자신의 잠을 깨운 주인에게 그것은 아무 불만도 표하지 않았다. 잠에서 깨어난 그것은 자신이 잤던 침대에 걸터앉고는 따듯하게 자신의 주인을 안아주고 자신의 커다란 가슴을 드러내 그것에 자신의 주인의 입을 물렸다.

 흘러나오는 모유에 론 이터니티는 귀신같이 조용해졌다. 집안의 울음소리는 가라앉았지만 이미 존 윈체스터는 첫 울음소리에 눈을 뜬 다음이었다. 뒤늦게 자신의 집 소파에서 몸을 일으킨 그는 모유수유를 하는 이터니티를 보고 고개를 돌렸다. 그것의 가슴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난 탓이었다.

 “너무 신경쓰실 필요없어요. 저는 바이오로이드일 뿐이니요.”

 “빌어먹게 큰 가슴을 가진 바이오로이드기도 하죠. 당신이 괜찮다고 해도 내 양심과 발키리는 괜찮다고 못할 거 같단 말이에요.”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미소를 지었다. 큰 가슴을 보았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 아닌 평화롭게 아침을 보내는 바이오로이드와 그것의 주인에 대한 기쁨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죽어가던 바이오로이드가 자신의 집에서 행복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 그것은 그에게 위안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저는 그저 사물...”

 “제발, 제발 그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자신이 사물이라고, 도구일 뿐이라고. 자신이 고작 그것밖에 되지 않는 존재라 말하고 싶은 건가요? 당신은 당신이 그 이상의 존재로 받아들일 수 있는 누군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제발. 그런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말아주세요.”

 누군가. 그것이 아는 사람이라고는 휴이 브래드버리와 론 브래드버리, 존 윈체스터 뿐이었다. 그리고 다른 두 사람은 몰라도 휴이 브래드버리는 자신을 도구만도 못한 것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것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자신은 그저 삼안산업에서 만들어진 상품에 불과했으니까.

 “당신은 당신이 품고있는 그 주인에게도 그렇게 말할 거에요? 자신은 그저 도구일 뿐이라고? 당신이 목숨바쳐 지켜낸 그 주인에게? 주인은 당신을 그저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도구라고 생각할까요? 새도 자신을 먹이고 키워준 사람을 부모로 알아요. 그 아이라고 다를까요?”

 이터니티는 자신의 가슴을 물고 빨고 있는 작은 아기를 바라보았다. 언뜻 휴이 브래드버리와 닮은, 하지만 바이오로이드의 모습도 가지고 있는 묘한 아기를. 그가 어떤 사람이 될 지 이터니티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가. 휴이 브래드버리같은 사람? 아니면 그녀의 앞에 있는 존 윈체스터와 같은 사람?

 “모든 것은 주인님의 뜻이겠죠.”

 “그렇겠지.”

 존 윈체스터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걸어갔다. 부엌이라고 말했지만 좁은 그의 집에서 부엌이란 집의 현관쪽 한켠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부엌이라는 공간은 선과 면으로 구별되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저 싱크대와 찬장, 가스레인지가 늘어선 일련의 공간의 한정되지 않은 주변이라는 말이었다.

 “좀 늦은 시간이지만 일어났으니 홍차라도 한잔 해야겠어요. 무슨 미국인이 칼같이 티타임을 즐기냐 하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여긴 영국이잖아요?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즐기라고 하잖아요. 게다가, 저는 이 티타임이라는 제도가 싫지만은 않아요. 문화에서 유래된 휴식시간이에요. 이건 전세계적으로 도입해야 하는 제도라 생각해요. 시에스타와 더불어 말이죠.”

 그렇게 말한 그는 찬장을 열고 티포트를 꺼내 가스레인지 위에 올렸다. 그 모습을 본 이터니티는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아, 차는 제가 끓여드릴게요. 굳이 하지 마시고 제게 맡겨주세요.”

 아기를 안고 일어서는 이터니티에게 존은 손을 저었다.

 “제게 맡겨주세요. 차는 매일같이 우려봤어요. 게가다 아기를 안고 있잖아요. 이터니티는 제가 차를 우리는 동안에 아기를 돌봐주세요. 만일 기다리기 지루하시다면 예전 이야기라도 해드릴게요. 발키리에 관한 이야기에요. 어때요?”

 “발키리 씨 말인가요?”

 존 윈체스터의 죽은 연인이자 바이오로이드이자 그의 아들의 어머니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들의 죽음에 견디지 못하고 그것은 스스로 작동정지를 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고보니 윈체스터씨는 발키리씨에 다른 이름은 붙이지 않았나요?”

 세상에는 수많은 발키리가 있을 것이었고 윈체스터가 만나본 발키리 역시 많았을 것이었다. 게다가 발키리는 개체의 명칭이 아닌 기종의 호칭이었다.

 “사실 발키리가 아닌 다른 이름을 불러보기로 정한 적이 있었어요. 원래 발키리의 정확한 이름은 T-8 발키리 EGL-293A였어요. 그것이 수많은 발키리에서 그녀를 특정할 수 있는 호칭이었죠. 어떻게 그런 명칭으로 부를 수 있었겠어요. 발키리는 더이상 도구나 전쟁병기가 아니라고 말해놓고서는 이름은 병기로서 붙은 일련번호로 부를 수는 없던 거였잖아요. 그래서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어요. 이쁘고 사랑스러운 이름으로요.”

 “좋네요. 이쁜 이름을 붙여주고요.”

 “하지만 잘 안되었던 거죠.”

 존 윈체스터는 티포트에 물을 넣으며 말했다.

 “알고보니 제게는 이름을 짓는 능력이 없었더라고요. 처음에 말했던 이름이 그거였어요. 메리. 발키리는 저를 이상한 사람 쳐다보듯 바라보았죠. 메리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에요. 흔한 이름이라나 뭐라나. 그래서 저는 조금 더 희귀한 이름을 붙여주었어요. 브룬힐데라고요. 그녀는 듣더니 질색을 하더라고요.”

 그는 왜 브룬힐데라는 명칭이 나왔는지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으니 내가 대신하겠다. 브룬힐데, 혹은 브륀힐트는 북유럽 신화, 혹은 그에서 파생된 이야기나 오페라에 나오는 발키리 중의 하나였고 가장 유명한 발키리였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서도 아 그 이름은 어디서 들어봤어. 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었다.

 사실 발키리가 질색을 한 것은 브룬힐데라는 이름이 나빠서가 아니었다. 그 어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발키리라는 이름이 싫다면서 나온 이름이 고작 발키리의 일원의 이름이라니, 너무한 것 아니냐 하는 반응이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이름들을 말해줬어요. 샐리, 안나, 엠마 그런 이름들이요. 저는 나빠보이지 않았지만 발키리는 전부 싫어하더라고요. 결국 발키리가 말했어요. 다 별로니 그냥 자신은 발키리라 불리는 편이 낫겠다고요. 대신 아이의 이름은 제대로, 정성을 들여 지어달라고요.”

 “그리고 그게 토르라고요?”

 “네, 재밌지 않아요? 발키리의 아들 토르.”

 이터너티는 그의 결정에 발키리가 얼마나 속을 썩였을까 걱정했다. 아마도 발키리는 그의 작명실력에 반쯤 포기한 것은 아닐까 싶었을 것이었다.

 “제가 능력이 있었다면 발키리에게 조금 더 좋은 이름을 붙여줬을지도 몰라요. 이제는 붙여줄 수 없게 되었지만요.”

 가스레인지에 티포트를 올린 존 윈체스터는 조금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겐 발키리도 토르도 없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는, 물론 눈으로 바라보았다는 말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이터니티의 가슴에서 눈을 피하고 있었으니까, 발키리와 토르를 떠올리게 하는 이터니티와 론 브래드버리가 있었다.

 그것을 눈치챈 이터니티는 화제를 돌리려 했다. 존 윈체스터를 더 슬프게 만들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말이에요, 원래 하던 이야기가 뭐였죠. 설마 이야기가 겹치는 건 아니겠죠?”

 “설마요. 이건 홍차에 관한 이야기에요. 이터니티가 저 대신에 홍차를 타려고 했던 것에 연관된  이야기기도 해요. 그때 어디에 있었더라... 이터니티는 알아요? 담배이름인 동네가 있는 주요. 요크셔는 아니었고... 영국 이름은 좀 헷갈려서 말이에요.”

 “윌트셔주 말인가요? 도시는 말보로 말하시는 거고요.”

 희고 붉은 곽에 황토색 필터가 달린 그 담배가 더 유명한 도시 말이다. 이터니티는 영국의 귀족가의 아이를 섬기기 위해 만들어졌다. 영국의 지명에 대한 것, 특히 공작령이 있는 도시에 대해 모를 그것이 아니었다. 존 처칠로부터 이어진 말보로 공작의 계보는 지금까지 이어지니까.

 “맞아요, 윌트셔주요. 그곳에 솔즈베리시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었죠. 솔즈베리 대성당에 마그나 카르타의 원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발키리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간 곳이었어요. 발키리에게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지 가르쳐주고 싶었던 거였죠. 물론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건 아니지만요. 중요한 이야기는 이거에요. 당시 발키리와 저는 가사를 분담하고 있었어요.”

 바이오로이드와 사람이 가사를 분담한다. 이터니티의 시선에서는 놀라운 이야기였다. 바이오로이드는 사람의 일을 대신 하도록 만들어진 존재였다. 아무리 전투용 바이오로이드라도 그런 것을 인간의 대신에 해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저도 하는 일이 없었고 무엇보다 발키리는 요리를 못했어요. 영국에서 만들어진 바이오로이드도 아니고 그렇게 요리를 못할 줄은 꿈에도 몰랐죠. 발키리는 무엇을 만들던 맛없게 만들었어요. 군대 시절에는 그런 걸 따질 여력이 없어서 맛있는 음식이 무엇인지, 아니면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조차 없었는지도 몰라요. 그래서 요리는 언제나 제가 했죠. 정확히는 주방일 전반은 말이에요. 언제나 음식을 만들어주는 건 저 아니면 음식점 주방장의 몫이었어요.”

 존은 그런 맛없는 음식도 추억이라는 듯 말했다.

 “솔즈베리에 도착한 날, 발키리는 차를 우리려는 저보고 자신이 대신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차 우리는 것 정도야 자신도 할 수 있다고 하는 거에요. 당시나 지금이나 차를 우릴 때 쓰는 건 고급 찻잎이 아니라 티백이었어요.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죠.”

 존은 홍차 티백을 하나 꺼내 이터니티에게 보여주었다. PG Tips 고유의 피라미드 형태로 된 티백이었다. 그는 바닥에서 방울이 솟기 시작하는 티포트에 뚜껑을 열고티백을 하나 넣었다.

 “저는 한번 해보라고 그녀에게 맡겼죠. 뭐 큰 일이 일어나겠어요? 그래봐야 티백으로 홍차를 우리는 건데요. 방법도 간단해요. 이터니티는 모든 레시피를 보았어요. 물을 불에 올리고 끓으면 티백을 넣고 우려나길 기다린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죠. 고급홍차만을 마시는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이 티백이야말로 홍차의 대중화에 앞장섰죠. 잎차로만 홍차를 우려냈다면 홍차의 자리는 커피가 대체되어 티타임이 아니라 커피타임이 되었을 거에요.”

 그가 그렇게 말하는 동안 티백에서 시작된 붉은 차가 서서히 티포트 전체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발키리는 실패했어요. 티백으로 홍차를 우리는 것마저도요. 만일 블랙리버가 미국회사가 아니라 영국회사였다면 모든 바이오로이드가 홍차를 제대로 끓이는 방법을 알게 만들었겠죠. 그래도 그렇지, 티백마저 우리는 걸 실패할줄은 몰랐어요. 한입 마시는 순간, 쓴맛밖에 안나더라고요. 티백에 들어있던 잎이 씹히는 건 그 다음 문제였죠. 어떻게 하면 티백을 망칠 수 있는지 묻고 싶었을 정도에요. 그래서 그 후로는 다시는 대신 요리를 하겠다는 이야기를 안했어요. 주방일은 온전히 제 몫이 된 거죠. 이 주방은 제게 맡기면 되는 거에요. 고급 쉐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먹을 수 있는 물건은 만들거든요.”

 이야기를 마친 존은 가스불을 껐다. 차가 제대로 우려나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차는 고온에서 팔팔 끓여내는 육수가 아니었다. 적당한 시간, 적당한 온도가 가장 중요했다. 설령 티백이라 할지라도 말이었다.

 “그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차는 다 우려났네요. 의도한 건가요?”

 이미 이터니티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그것이 온다고 해도 자신의 찻잔에 차를 따라 가는 것이 전부겠지. 그마저도 이미 존은 이터니티의 이야기를 들으며 찻잔을 테이블에 늘어놓고 있었다.

 “사실 시간이 부족하면 다른 이야기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었어요. 솔즈베리 대성당에서 마그나 카르타를 봤을 때의 일 같은 거요. 그때도 재밌는 일이 있었어요. 이건 차를 마시면서 하는 것도 좋겠네요.”

 존은 테이블에 마지막으로 다과와 티포트를 올렸다. 이터니티는 잠시 론을 바라보았다. 그것의 주인은 이미 모유로 배가 불렀는지 입에서 모유를 흘리며 잠들어 있었다.

 “여기요.”

 존은 고개를 돌리고 휴지를 내밀었다. 이터니티의 유두에 묻은 모유를 닦으라는 의도였다. 그 휴지로 이터니티는 론의 얼굴을 닦아준 다음에야 자신의 가슴을 닦았다. 자신의 옷을 가다듬어 가슴을 가린 그것은 자리에서 일어나 론을 안고 테이블 앞 의자에 앉았다. 그녀가 티포트로 손을 뻗자,

 “잠시만요. 이건 제가 해드릴게요. 티포트는 차를 우린 사람만이 만질 수 있는 겁니다.”

 존은 손을 뻗어 이터니티를 막고는 자신이 직접 티포트를 들었다. 그리고는 이터니티의 앞에 놓인 찻잔에 조심히 홍차를 따랐다.

 “어디 예절이죠.”

 “이 집의 예절이에요. 방금 만들었죠.”

 그런 예절따윈 없었다. 그랬다면 회사 탕비실에서 차를 우린 사람은 탕비실에 갖혀 차만 따라야 하는 운명이 될 테니.

 “앞으로는 그 예절에 따라야겠네요.”

 이터니티는 그렇게 말하며 차를 한모금 마셨다. 솔직히 말해 고급홍차에 비할 바가 못되는 맛이었다. 티백으로 완벽하게 우려냈다고 할수도 없는 맛이었다. 티백의 보존이 좋지 못한 것도 있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티백으로는 잘 만들어진 잎차의 맛을 이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일까. 사람들이 오랜시간 티타임에 대해 잊은 것이 있었다. 티타임이란 단순한 휴식도, 차를 즐기는 것도 아니었다. 같이 앉아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를 하고 마음이 오가는 시간이었다. 차는 그저 구실에 불과했다.

 이런 따듯함을 언제 느껴봤던가. 이터니티는 따듯한 음식을 먹은 일은 많았지만 이토록 따듯한 음식은 저택에서 맛볼 수 없었다. 음식을 통해 마음이 전해진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이터니티는 집을 떠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기쁜 시간을 보대고 있던 존 윈체스터의 집에 한 불청객이 찾아왔다.

 그의 집의 문을 누군가가 두드렸다. 똑. 똑. 똑. 똑과 똑의 사이에 마침표를 찍어야 할 정도로 그 노크의 사이에는 약간의 시간이 있었다. 예의를 찾으려는 행동이라 하기에는 그런 사람이 아침 티타임에 남의 집을 방문하는 것은 예의의 어긋난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예의를 차리는 척 하는 무례에 가까운 행동이겠지.

 이터니티는 티타임에 울린 문소리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의자에서 일어나며 자신의 주인을 자신의 품에 안고 문으로부터 자신의 주인을 멀리 했다. 론 브래드버리를 찾으러 온 저택의 무언가일수도 있었다.

 존 윈체스터는 문으로 다가갔다. 그에게 총이 있었다면 그는 손에 윈체스터 소총을 들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전직 군인인 그에게 총은 없었다. 그는 문 뒤 대신에 문가의 벽 뒤에 서고는 외쳤다.

 “누구시오!”

 대답은 조금의 시간도 지체하지 않고 들려왔다.

 “앞집에 사는 레인이요! 잘 모르겠다면 저 아래 펍, 언더 더 레인보우의 주인이기도 하고요.”

 “레인! 당연히 알고 있죠. 그래서 여긴 무슨 일이죠? 기억에 펍에서 외상을 진 적은 없는 것 같은데요. 혹시 홍차가 다 떨어졌나요? 이건 어때요. 홍차 한잔에 에일 한 파인트.”

 존 윈체스터는 티타임에 방문한 레인을 조금 비꼬며 말했다. 그가 알아들었을 지는 모르지만.

 “아뇨, 아뇨. 그런 일은 아닙니다. 그저 그 핏주머니와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서 왔어요. 알고 있어요. 당신의 집에 은발의 핏주머니가 살고 있다는 거요. 그 사실을 다른 주민들이 알면 어떻게 될까요? 이 마을에서 핏주머니가 받는 취급을 굳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죠. 당신의 성적 취향에 대해 말할 마음은 없어요. 다만, 성적 취향이 사회적으로 용인이 되냐 하는 건 별개의 문제겠죠.”

 “무슨 말이시죠?”

 존은 알고 있었다. 레인이라는 사람은 이터니티가 자신의 집에 있는 것을 알고 하는 말이었다. 그는 자신의 집 창문을 바라보았다. 커튼을 내리지 않은 창문으로는 건너편의 집을 볼 수 있었다. 문 밖에 사내에게는 남의 집을 바라보는 악취미라도 있는 사람인 모양이었다.

 “당신은 외지인이라 잘 모르겠죠. 이 마을에는 예전에 사람보다 많은 핏주머니가 있었어요. 그로 인해 이 마을이 얼마나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나요? 이곳에는 핏주머니만 봐도 치를 떠는 사람들이 있어요. 당장 그 핏주머니를 쫓아내세요. 쫓아내라고요!”

 레인이 문을 주먹으로 치자 쾅 하는 소리가 존의 집에 울려퍼졌다. 그 소리에 이터니티는 놀라 어깨를 살짝 들썩였다.

 “이 바이오로이드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아요. 오히려 당신들의 무관심 때문에 죽을 뻔하기까지 했어요. 이 바이오로이드가 당신들에게 무슨 짓을 저지르기라도 했나요? 그저 죽어가던 가여운 바이오로이드에요. 제가 보기에는 당신들이 오히려 바이오로이드에게 해를 가할 것 같은데요.”

 “핏주머니박이라 제가 하는 말을 못알아듣나보네요. 저 핏주머니들은 언젠가 우리를 다 죽일 거라고요. 지금은 우리들에게 고분고분 따르지만 언젠가는 우리에게 자신들의 본성을 드러낼 거에요. 전 봤어요. 저것들의 본성이 뭔지요. 파괴적이고 잔인하고 자비없는 존재죠. 그것들은 우리가 만들어낸 기계에요. 기계가 뭔가요. 감정이 없는 것이에요. 저것들은 교묘하게 감정이 있는 척 하면서 우리를 속일 뿐이에요. 당신도 속고 있는 거라고요. 당신을 이용하는 거에요. 불쌍한 척 하면서, 매력적인 모습으로 우리를 현혹시키는 거에요. 당신이 핏덩이에 박은 건 다 그놈들에게 속은 거라고요.”

 “속지 않았어!”

 존은 문을 열며 외쳤다. 자신보다 키가 큰 남자가 문앞으로 걸어나오자 레인은 겁을 먹고 뒤로 물러섰다. 존은 전직 군인이었다. 그의 팔은 지방이 붙었지만 아직 근육으로 갈라져 있었고 그의 덩치는 레인의 두배는 되어보였다. 그런 남자가 자신에게 화를 내며 다가오는데 겁을 먹지 않을 보통 사람은 없었다.

 “나는 발키리를 사랑했어. 그건 발키리에게 속아서, 현혹되어서 그렇게 된 게 아니야. 사람의 감정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야. 당신같은 사람들은 모르겠지. 세상의 일에 모두 등을 돌리고 자신이 믿는 것만 옳다고 말이야. 세상은 모두 틀렸고 자신만이 옳다고 말이야. 그래. 나는 발키리와 떡쳤어. 하지만 발키리는 핏주머니와 같은 멸칭으로 불릴 대상이 아니야. 발키리는 내 사랑이었고 내 유일한 사랑이었어.”

 존이 다가올 때마다 레인은 뒤로 물러났고 그는 결국 계단에 걸려 자빠지고 말았다. 한편 레인과 존의 싸움에 사람들은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조용한 마을이었다. 사람들이 싸우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싸움에 개입하지 않았다. 그들은 누구의 편도 들어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존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이방인이었고 마을의 주민들은 존처럼 바이오로이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레인처럼 바이오로이드에 대한 혐오감을 겉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들은 그저 선량한 시민이고 싶었다. 속으로는 수많은 혐오의 단어를 내뱉었지만 겉으로는 평안한척을 하기 마련이었다. 사회에서 모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핏주머니년들은 감싸주고 사람은 공격하겠다 이거야? 날 때리겠다고?”

 레인은 겁에 질려 땅바닥에 앉은채로 뒤로 물러서며 외쳤다. 어느새 존은 주먹을 들려 하고 있었다. 존이 레인을 때린다면 이 싸움은 존의 승리가 아닌 레인의 승리가 될 것이었다. 레인이 무슨 말을 했건 그는 피해자이자 이 마을에 토박이였고 존은 가해자이자 언제든 이 마을을 떠날 수 있는 외지인이었으니까.

 “주민 여러분! 이게 핏주머니박이의 실체입니다! 그 핏덩이 핏주머니년들과 같이 폭력적이고 언제든 우리를 공격할 준비가 되어있는 놈들이죠! 이런 자와 같은 마을에 살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레인은 주변 사람들에게 외쳤지만 그들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앞서 설명했던 것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어딜 돌아봐. 나를 똑바로 봐!”

 존은 레인의 멱살을 잡아 그를 들어올렸다.

 “나도 이터니티도 이 마을의 그 누구에게도 해를 가할 생각이 없어. 당신같이 자신이 무례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야. 그래, 당신이 바이오로이드에게 피해를 입었다 치자고. 그것이 당신의 모든 행동과 발언을 정당화시킬 순 없어. 그리고 모든 바이오로이드가 그렇지는 않다고. 그것조차 구별할 수 없는 거야? 당신과 같은 사람들은 바이오로이드의 진짜 본성이 무엇인지 몰라. 그들은 우리와 같다고. 기뻐할 때는 기뻐하고 슬퍼할 때는 슬퍼하는 존재야!”

 “거짓말 하지마! 당신은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몰라! 이 마을 사람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몰라. 당신 역시 당신이 겪은 일밖에 모를 거야. 당신이 박아대던 핏주머니에 반해서 콩깍지라도 씌운 모양이지! 안타까운 일이지, 그 핏덩이가 죽지 않았다면 당장에 이 마을에서 쫓...”

 존은 더 이상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앞서 말한 말을 지키지 않았다. 그는 주먹으로 레인의 얼굴을 가격했다. 레인은 땅에 엎어졌다. 그는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는 땅에 피와 침을 뱉으며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 당신들과 같은 핏덩이박이 새끼들은 다 이런 놈들이야. 폭력은 안된다면서 할 줄 아는 건 폭력밖에 없는 위선적인 놈들이라고! 주민 여러분! 이 놈들은 다 이런 놈들입니다!”

 레인의 시퍼렇게 멍이 들어가는 뺨에 보조개가 피어올랐다. 그 모습을 보며 존은 이를 악물고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은 그는 주먹을 들었다. 너무 꽉 쥐어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은 언제든 벽이든 무엇이든 때릴 준비가 되어있었지만 그는 차마 그 무엇도 때릴 수 없었다. 자신을 보고 있는 한 바이오로이드와 한 아기가 있었다.

 “시발...”

 그는 조용히 욕을 내뱉을 뿐이었다.

 “윈체스터 씨... 차가 식고 있어요.”

 이터니티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 말 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이면 충분했던 모양이었다. 존은 피식 웃으며 이터니티의 맞은 편에 털썩 앉았다. 아직 그의 심장은 흥분으로 격렬하게 뛰고 있었고 그의 손은 떨렸지만 그는 찻잔을 들어 한모금 마셨다.

 “쓰네요. 발키리가 우렸던 그 차가 더 맛있었어요.”

 그는 씁쓸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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