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창작물검색용 채널

https://arca.live/b/lastorigin/23554593


인류는 무너졌음에도 그들의 유산은 계속 이어진다. 인류의 유산, 바이오로이드. 그녀들은 마지막 인간이 죽었을 때 절망했으나 동시에 다짐했다. 아직 끝난게 아니라고. 반드시 복수할 것이고 반드시 문명을 다시 건설하고 평화의 시대를 이룩하겠노라고. 그녀들의 염원은 하나둘 모였고 마치 정말로 그 염원이 이뤄지기라도 한듯 간절히 바라니 우주가 도와주기라도 한듯이 그녀들의 꿈은 이제 코 앞이었다.

아담이 아마겟돈의 군세를 거느리고 돌아왔다. 이브가 모든 원죄를 짊어졌다. 최후의 불은 촛불, 성냥불에 불과할 정도로 작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치 태양의 불꽃처럼 두 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커졌다. 오르카-레드스톤 동맹은 인류 영토의 56퍼를 복구했다. 아메리카 대륙,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유럽을 복구했다. 철충 둥지를 쓸어버리고 그들이 차지한 시설을 되찾아 인프라를 더욱 굳건히 구축하여 철충을 압박했다.

080이 철충의 후방을 기습하여 큰 피해를 주었다.

골든 워커즈의 빠르고 실용적인 인프라 건설은 철충에게 무시할 수 없는 압박감을 주었다.

둠 브링어가 내린 섬광이 철충을 지상에서 지워버렸다.
몽구스 팀은 철충의 머리를 떨어뜨렸다.

배틀메이드 프로젝트는 다시 한 번 아름다운 만큼 강한 자신들의 저력을 선보였다.

버뮤다 팀은 그 한계를 모르는 힘으로 철충을 무너뜨렸다.

하늘의 기사는 모든 전장의 하늘을 지배했다.

두 명의 스트라이커즈의 맹공을 버티는 철충은 없었다.

스틸라인의 진군을 막는 철충은 그 군화에 짓밟혔다.

발할라의 여전사들은 자신들이야말로 발할라로 갈 자격이 있는 전사임을 입증했다.

시티 가드는 지키지 못 했던 군중과 시민들을 그때를 떠올리며 아군을 지켰다.

무장한 처녀들이 철충의 요새를 무너뜨렸다.

애니웨어의 바이오로이드들은 아군의 후방에서 교육, 보급 등의 서포트를 맡아 아군의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앵거 오브 호드가 철충의 전선을 돌파하여 아군들에게 진입로를 만들어주었다.

어뮤즈 어텐던트는 이 지독한 전쟁에서 한 줄기 활기가 되어주었다.

오비탈 와쳐의 힘이 없었더라면 철충 둥지는 여전히 굳건했을 것이다.

와쳐 오브 네이쳐는 역설적이게도 인류의 멸망으로 인해 다시 복구된 자연을 되찾았다.

컴패니언, 반려는 주인을 지켰다.

코헤이 교단의 빛이 드디어 현실에 모습을 드러내었고 이제 구원이 코 앞에 놓여있음을 모두가 알았다.

퍼블릭 서번트는 여러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자신들의 유용함을 이용했다.

페어리 시리즈의 요정들이 전세를 뒤집었다.

무적함대의 진격은 철충조차 막을 수 없는 파도였다.

신은 언제나 그랬듯 최강의 포병대에 섰다.

D-엔터테인먼트는 황제의 지휘 아래 서사시를 또 하나를 썼다.

이 모든 승리는 한때 마녀였던 자신을 바꾸고자, 다시 모든 걸 바로잡고자 했던 눈을 뜬 영웅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코나의 탁월한 지휘는 오르카-레드스톤 동맹이 승리하도록 하였다. 마치 아테나처럼 코나가 이끄는 전투는 항상 극적인 승리였다. 코나가 직접 연결체와 일기토를 벌여 적장의 목을 참수하면 군의 사기가 치솟았고, 코나의 작전이 정확하게 먹혀들면 지휘관들의 칭찬을 샀다.

그러나 그녀들의 승리를 위해 전장을 지탱한 기둥은 레드스톤, 뉴 고블린 군단이었다. 역사에 적힌 모든 승리의 아래엔 진흙탕이 있다. 더러운 진흙탕의 색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찬란한 승리일 수록 진흙탕은 깊고 끈적하고 넓기 마련이었다. 코나를 비롯한 오르카 대장들은 그 진흙탕의 색을 보았다. 갈색, 혹은 검은색임이 분명했던 진흙탕의 색이 피처럼 빨간색이었다. 매튜는 자신의 군단을 아주 험하게 굴렸다. 고블린을 대포 사료, 고기방패로 쓰고 버림패이자 적들의 발을 묶는 용도로만 썼다. 고블린들에게도 장비는 주어졌지만 그들이 투입되는 곳은 매우 위험한 전장 뿐이었다. 마치 내다버리는 것처럼, 이제 필요없다는 것처럼 고블린을 운용했다.

뉴 고블린의 경우는 고블린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이었다. 고블린들의 물결로 철충의 화력을 일시적으로 떨어뜨리는데에 성공했으면 뉴 고블린들이 종심 타격을 가하였다. 뉴 고블린의 근접 병과, '그런트' 들이 엄청난 속도로 뛰어들어 순식간에 근거리 총격전을 시작하면 얼마 안 가 근접전이 시작한다. 접근을 허용한 철충을 특수한 무기로 파괴했다. 그들이 쓰는 근접 무기는 검처럼 생긴 둔기였고, 이 둔기에는 공기를 크게 폭발시키는 모듈이 있어 이 무기에 타격되는 철충들은 사방으로 파편을 흩뿌렸다. 그런트들의 근접전은 그런트의 뒤에 있는 원거리 병과 '슬링어' 들의 엄호 사격으로 인해 엄청난 위력을 내었다. 슬링어들이 쓰는 총알은 탄착되면 그 즉시 회전하여 적의 내부에 깊숙히 파고 들어 그 안에서 폭발하는 특수한 성질을 지녔고 철충이라 하여도 내부까지 튼튼할 수 없었기에 그 특수탄에 맞아 버티는 철충은 없었다. 뉴 고블린 군단의 진격은 철충을 묵사발냈다. 오르카 그 어떤 부대도 뉴 고블린 군단의 파괴력을 내지 못 한다. 알바트로스, 로크, 타이런트, 알프레드와 로버트를 수중에 넣은 레드스톤 AGS 부대는 오르카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강력해졌다.

더 크고 강력해진 그들은 철충들을 효율적으로 박살냈다. 타이런트는 연결체를 통째로 씹어먹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해졌다. 로크는 철충이 있는 지역에 집중적으로 낙뢰를 떨어뜨려 그 지역을 새까맣게 태워버렸다. 로버트는 철충들에게만 반응하는 스테이시스 필드를 펼쳐 전장을 아예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조성할 수 있었고 로버트는 스토커, 트릭스터, 레이더, 프레데터, 둠 이터, 익스큐셔너 등의 개체들까지 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알바트로스는 모든 물리 에너지를 흡수하고 방출하는 능력을 손에 넣어 더 이상 적이 없는 진정한 무적이 되었다. 레드스톤의 승리는 패턴이 이랬다. 고블린으로 적들의 화력을 받아낸 후 뉴 고블린으로 종심 타격을 시작하고, AGS 군단으로 끝장낸다. 지금까지 레드스톤의 모든 승리는 이런 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오르카와 함께 가진 시간으로 매튜는 다시 그녀들과 친해졌다. 그러나 매튜의 태도는 지휘관들에게 꾸준한 비평을 들었다. 물론 그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지만 말이다. 레드스톤의 또 다른 무기는 뉴 고블린 다섯 간부들과 매튜였다. 뉴 고블린 다섯 간부들은 그 단일로도 철충 둥지를 무너뜨릴 정도로 강력했다. 총사령관 스콧은 초고속이동 능력을 통해 철충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파괴했다. 2인자 디에고는 파이로맨시를 통해 둥지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에반스는 포스 필드로 철충들을 으깨버렸다. 도란스는 철을 갉아먹는 특수한 벌레들을 방출하여 모든 철충을 먹어치웠다. 에이번즈는 자신의 신체를 변형시킬 수 있는 능력을 통해 철충을 무너뜨렸다. 다섯 간부들은 뉴 고블린에게마저 공포를 살 정도로 강력했다. 그러나 이 다섯보다 훨씬 더 강한 자가 존재했다.

현재, 오르카-레드스톤 동맹이 에베레스트 산에 자리 잡은 철충 둥지를 공략하고 있다. 네스트의 위에 있는 최정점 개체가 금속으로 이루어진 칼날 촉수를 휘둘러 둥지를 무너뜨리러 온 이 침입자들을 퇴치하고 있었다. 1000개가 넘는 칼날 촉수들이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로 움직였고 그것이 움직일 수록 사상자가 늘어만 갔다. 라비아타는 트롤스버드로 이 촉수들의 공격을 간신히 막는 것이 고작이었다. 칸이 피를 철철 흘리면서 쓰러진 상태였고 마리 역시 온전한 몸 상태가 아니었다. 최정점 개체들이 가진 붉은 눈알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은 본능적인 혐오감을 일으켰다. 금속 촉수들의 날카로움은 한 번 닿으면 양단으로 이어진다. 앞으로 2400보만 앞으로 내딛으면 라비아타의 트롤스버드가 저 300개에 달하는 눈알 중 20개를 절단할 수 있다. 그러나 라비아타는 아까 말했듯 방어가 고작이었다. 주위에는 바이오로이드와 뉴 고블린, 고블린의 시체가 가득 했다. 이 시체들의 숫자를 세면 그걸로 공동묘지가 나올 것이다.

최정점 개체를 상대하고 있는 자는 단 둘이었다. 라비아타와 코나. 라비아타는 그녀 자신 역시 스펙이 대단했기에 칼날 촉수를 검으로 막아 자신을 보호할 수 있었고, 코나는 어마어마한 동체시력과 반응력, 순발력으로 칼날 촉수들의 공격을 회피하고 있었다. 라비아타는 더 이상 앞으로 내딛을 힘이 없을 정도로 지친 상태인데 반해 코나는 아직까지도 체력이 있는 건지 최정점 개체에게 접근하기까지 약 300보가 남았다. 코나는 이 최정점 개체와 전투를 시작하고나서부터 단 한대의 타격을 허용하지 않았고 오히려 들어오는 공격을 흘려내면서 접근하고 있었다. 코나가 순식간에 30보를 이동하자 최정점 개체 『하보크』의 300개의 붉은 눈알이 코나를 바라보았다. 칼날 촉수들이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그녀를 공격했지만 코나는 전부 회피하고 있었다. 라비아타를 향한 공격이 전부 코나에게 집중되고 있음에도 말이다.

'대단해...주인님의 힘은...'

라비아타는 코나의 힘에 감탄했다. 하지만 라비아타도 알고 코나도 안다. 라비아타에게 가해졌던 공격이 코나에게까지 집중되니 코나 역시 더 앞으로 접근하기가 힘들어졌다. 저 뒤에선 미호, 에이미, 발키리 등의 오르카 호의 저격수와 뉴 고블린 스나이퍼들이 계속 저격을 해주고는 있으나 그들의 공격은 하보크에겐 기별도 안 갈 정도로 약했다. 붉은 안구들조차 총알로 뚫지 못 할 정도로 딱딱했다. 모두가 코나의 엄청난 실력에 감탄하고 있었지만 점점 밀리는 기색에 모두가 초조했다. 코나에게 단 하나의 공격이 적중할 시, 그녀는 즉사하고 말 것이다. 모두가 그녀를 구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지만 몸이 나서지 않았다. 저 회오리 속으로 들어간다면 오히려 코나에게 짐이 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말이다. 코나는 점점 이 빠른 촉수들의 공격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닥터가 만들어준 코나의 마스크에는 적의 공격 및 이동을 분석하는 기능이 있고, 마스크와 연동된 슈트에게 그 공격과 이동에 알맞게 대응할 수 있는 움직임을 알려주고 슈트는 그에 따라 움직인다. 코나는 한 순간의 틈이 벌려지자마자 곧바로 거기를 파고 들어 순식간에 접근하는 데에 성공했다. 코나의 계략은 이랬다. 저 눈알 중 하나라도 좋으니 베고, 틈 속으로 호드가 쓰는 폭탄을 쑤셔박아 터뜨리는 것.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나면 제아무리 최정점 개체라 할지라도 치명상일 것이다.

7기의 네스트들은 하보크를 도울 수 없었다. 스콧이 네스트 3기를 동시에 막고 있었고, 2기의 네스트의 함재기는 나올 때마다 디에고의 화염에 의해 재도 남기지 못 했다. 남은 2기의 네스트는 에반스의 포스 필드에 꼼짝없이 묶이고, 나오는 함재기들이 도란스의 철식충에게 먹히고 있었으며 에이번즈는 네스트의 코어를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었다. 이들이 네스트를 막아주는 덕분에 오르카는 하보크에게 닿을 수 있었다. 다른 연결체들은 최상위 AGS가 막고 있었다. 11기의 익스큐셔너에게 동시에 공격당하고 있지만 오히려 압도하는 타이런트의 발 아래엔 이미 12기의 익스큐셔너의 파괴된 파편들로 가득 했다. 로크는 도망치는 레이더들을 쫓고 있었고, 로버트와 알프레드는 이 둥지 안에서 연결체가 태어나고 있는 곳을 탐색 중이다. 에이다는 이 둥지로 오는 철충 지원군을 위성포격으로 막고 있었다. 알바트로스는 현재 홀로 다른 곳에서 철충 둥지를 공략 중이다. 코나를 도울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하보크는 점점 다가오는 코나를 어떻게든 때놓기 위해 매우 빠르게 충격파를 일으켰다. 하보크의 몸으로부터 방출된 충격파는 지반을 파괴하고 산 자체가 뒤흔들릴 정도로 강력했다. 코나는 갑자기 부서지는 지반으로 인해 쓰러졌다.

"주인님!!!"

라비아타가 소리지르며 당장 그녀에게 뛰어갔으나 이미 칼날 촉수들은 잠시 넘어진 코나를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심지어 코나의 머리를 정확히 노린 상태로 말이다. 코나는 자신이 일어서는 속도보다 자신의 머리가 꿰뚫리는 속도가 더 빠름을 알고 얼어붙었다. 그러나 그 때, 이 모든 상황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자가 나타났다. 하늘 위에서 운석이 떨어지듯 쿵 떨어진 자는 매튜였다. 하보크는 그가 나타나자마자 괴성을 질렀다. 라비아타가 코나에게 도착했다. 매튜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음에도 라비아타가 왔음을 알았다.

"라비아타, 코나를 데리고 도망쳐라."

"네!"

라비아타가 코나를 번쩍 들어올려 서둘러 도망쳤다. 하보크는 도망치는 둘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눈 앞에 있는 이 인간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자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보크의 칼날 촉수가 매튜를 사정없이 난도질했지만 오히려 불꽃만 튀길 뿐이었다. 매튜는 하보크를 향해 뛰었다. 뛰면서도 촉수들이 그를 베고, 찌르고 하였지만 매튜는 그 어떤 상처를 입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고통은 느꼈다. 고통을 느낄 수록 매튜의 힘은 축적된다. 맞으면 맞을수록 더욱 더 빨라지는 속도에 코나도 라비아타도, 전장의 모두가 놀랐다. 하보크의 기체와 접근하는 데에 성공한 매튜는 하보크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그의 주먹에서 아까 하보크가 내뿜은 충격파보다 훨씬 더 크고 강력한 충격파가 터져나오면서 하보크의 절반이 파괴되었다. 최정점 개체가 파괴되자 네스트와 익스큐셔너를 비롯한 모든 연결체들의 행동이 정지되었고 매튜는 비틀거리며 한 쪽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후우...후욱...후욱..."

뉴 고블린 다섯 간부보다 강력한 자, 매튜는 코나를 돕기 전에 이미 약을 투여했기 때문에 거기에 따른 고통과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그는 푹 숙인 고개를 들어올려 퀭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들을 보았다. 모두 자신들이 이겼다는 것에 잔뜩 들떠있고 기쁜 표정이었다. 매튜는 그녀들이 자신을 걱정하는 눈으로 바라보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휘관들에게 돌아간 그는 간단하게 딱 한 마디만 말했다.

"끝났으니 돌아갈까."


☆ ☆ ☆ ☆


에베레스트 산의 철충 둥지는 후의 동북아시아에 다수 분포되어있는 철충 둥지를 공략하기 위한 관문으로, 이를 뚫지 못 하면 인류 수복은 결코 불가능하다. 오르카-레드스톤 동맹은 지금까지 모든 영토를 수복해왔다. 유럽,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아메리카, 그리고 러시아까지. 이 곳에선 여러 철충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오르카와 레드스톤은 이들을 기어이 뚫고 승리했다. 심지어 난공불락으로 평가받고 있던 홍콩의 철충 둥지마저 알바트로스가 함락시켰으니 이들의 사기는 이전보다 훨씬 더 높이 솟아오른 상태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겪었던 철충의 둥지는 어쩌면 앞으로 있을 둥지에 비해 체험판에 불과할 것이다. 중국, 한국, 일본의 둥지는 더욱 끔찍할 것이니까.

모두가 승리를 축하하는 의미로 축제를 즐기고 있었을 때 어떤 이들은 심각한 현 상황에 눈을 찌푸리고 있다. 제타와 알파이다. 몸을 덜덜 떨어대며 결코 편해보이지 않는 휴식을 취하는 매튜의 앞에 여러 종이 파일을 촥 던지면서 제타가 말했다.

"...당신 몸 상태야."

매튜는 눈조차 못 뜨고 있었다. 동맹의 극적인 승리는 대부분 매튜의 개입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뉴 고블린들이 죽는 상황에 놓여있어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러나 오르카의 바이오로이드들이 위험한 상황에 닥치면 제 몸 따윈 신경도 쓰지 않고 달려들었다. 그의 단일 전투력은 상당히 강하다. 라비아타 프로토타입이 5명 정도 있으면 그의 전투력이랑 동등하고, 그가 약까지 쓰면 훨씬 더 많은 라비아타 프로토타입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녀들이 위험한 상황이면 그 역시 위험한 상황이었고 강화제를 쓸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강화제의 도핑의 효과와 고통을 느끼면 신체적 능력이 대폭 상승하여 혼자서 철충 최정점 개체, 하보크를 묵사발 낼 수 있는 저력을 낸다. 하지만 이 강력한 힘엔 그의 수명이라는 댓가가 따른다.

제타의 눈엔 눈물이 조금 고여있었고 알파는 슬피 눈을 찡그렸다. 자신의 발치와 무릎에 종이 몇 장이 떨어져 있음에도 그는 줍지 못 했다. 눈조차 뜨지 못 했다. 옆에 있던 에이번즈가 주워서 그것을 쭈욱 훑어보았다. 당연하게도 그의 건강 상태가 기록되어있는 종이들이었다. 에이번즈는 그것들을 모아서 다시 제타에게 돌려주었다.

"돌아가시지요."

"....네 주인이 뒤지기 일보 직전이야. 그걸 보고도 표정 변화도 없어?"

"저는 이것을 판단할 수 있는 권리가 없습니다. 보스께서 이걸 모아 당신께 돌려주고, 당신네들을 돌려보내라고 하더군요."

매튜는 한 마디도 안 했지만 현재 그의 생각은 에이번즈가 하는 말과 일치했다. 매튜도 안다. 자기자신의 몸 상태를 어찌 모르겠는가. 눈꺼풀을 들 힘도, 손가락을 까딱이는 힘조차 나지 않는 것, 그는 직접 겪어보는 중이라 알고 있다. 제타를 보지 않았어도 그녀의 목소리는 울음이 섞여있었기에 그녀가 지금 울 정도로 감정이 격해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매튜는 마치 죽어가는 노인처럼 힘 없고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난....아직....싸워야....하...한...다..."

말도 제대로 못 한다. 그가 힘겹게 손목을 들어 손을 들자 에이번즈는 보다 더 많은 지연제를 그에게 투여했고 그는 그제서야 눈을 떴다. 제타는 에이번즈가 건내고 있는 그 종이 파일들을 손으로 쳐서 떨어뜨렸고 울음을 터뜨리면서 동시에 울분을 토했다.

"그래!! 걱정을 이렇게나 하는데 당신은 신경도 안 쓴다는 거지?! 이대로 가다간 죽는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도 당신은 안 들었어! 이젠 나도 몰라! 몰라!!! 그대로 객사하던 말던 이젠 상관 안 할 거라고!!"

뛰쳐나가는 제타를 알파가 팔을 뻗어 제지하려고 해보았지만 제타는 이미 그녀의 손에 안 닿는 거리로 달려갔다. 알파는 제타가 없는 이 자리를 빌어 그에게 말하였다.

"...곧 저희들의 승리가 다가와요. 동맹의 승리가요."

"곧이지."

지연제를 과대투여를 해야지만 이렇게 답변할 수 있는 힘을 낼 수 있다. 매튜의 몸은 그 정도로 망가졌다. 송장. 시체. 관에 들어가야 할 몸을 약으로 억지로 일으켜가며...그는 승리를 향한 광기스러운 집착을 보이고 있다. 알파는 그런 매튜가 굉장히 슬펐다.

"...문득, 의문이 들었어요. 당신은 저와 몸을 나누고, 저에게 말씀하셨죠. '해독제를 먹겠다' 고요."

"...그렇다."

"정말로 먹을 건가요? 해독제를 먹겠다는 약속, 정말로 지키실 건가요?"

알파는 그가 해독제를 먹겠다고 선포한 것마저 의심스럽게 들렸다. 그녀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으니까. 저렇게 지연제를 과다투여를 해야지만 움직이는 힘을 얻는 몸인데다 지금 그가 하고 있는 지연제는 이전 것들보다 훨씬 강력하다. 심지어 저것 이상의 효력을 내는 지연제는 만들 수 없다. 그러니 그는 저걸 왕창 때려넣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몸이 익숙해지면 질 수록 더 많은 지연제를 투여했다. 현재 그가 맞는 지연제의 양은 물탱크 정도이고, 그 만큼 강화 혈청도 맞고 있다. 이 악순환이 계속되면...어쩌면 해독제도 안 통할지도 모른다. 알파는 이런 상황에서 문득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렸다.

그가 해독제를 먹겠다고 한 약속이 거짓말일 수 있다.

"안심해라, 알파. 나도 죽고 싶지 않아."

"그러면 해독제를 당장 먹어야 해요. 저희들이 철충을 모조리 몰아내고 난 후에 당신이 죽어버리면 지금까지 거둔 승리가 모두 물거품으로 변해버린다고요."

"내가 여기서 해독제를 먹으면 전력의 큰 공백이 생긴다. 너에게 묻지. 홀로 하보크를 격파할 수 있는 개체가 몇이나 되지?"

하보크. 네스트를 아득히 뛰어넘는 철충 최정점 연결체. 각진 인간의 신체를 가졌으며 등 뒤엔 약 30,000개나 되는 칼날 촉수를 달고 있는 부속지가 있으며 칼날에는 수 백개의 뾰족한 가시를 발사하는 일종의 장치 같은 것이 달려있다. 내구도, 공격력이 이전에 있었던 철충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한 이 연결체는 동맹의 커다란 난적이었다. 네스트를 레드스톤에게 맡겨야 할 정도로 오르카는 아직 힘이 부족하고 레드스톤조차 이런 강력한 적들을 주로 맡으니 심각한 전력난에 처했다. 동맹에서 이 연결체를 격파할 수 있는 건 단 셋 뿐.

강화 타이런트, 강화 알바트로스, 그리고 풀 도핑 매튜. 알파는 매튜의 물음에 답을 알고 있음에도 답할 수 없었다. 그 역시 그녀가 답할 수 없다고 알고 있어서 한 말이었다. 매튜는 제타가 쳐서 날린 종이들을 일일이 줍고 나서는 똑바로 정리하기 위해 앞 탁자에 툭툭 쳐서 그것들을 정갈히 만들고 그것을 읽기 시작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비록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하나, 동맹의 현 상황 속에서 이런 전력을 그냥 포기할 것인가? 너희들 모두 내가 이런 몸 상태라는 걸 받아들였지 않았나. 전투가 날이 갈 수록 힘겨워지고 격렬해지고 있는데 내가 이 힘을 포기해버리면 어떻게 할 셈이지? 전력의 공백을 메꿀 수 있는 차선책이라도 있는가?"

"강화 타이런트와 강화 알바트로스를 더 생산하면...!"

"AGS의 장점은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에 있으나 타이런트와 알바트로스 같은 개체들은 대량생산이 안 되지. 아무렴, 멸망 이전에도 바이오로이드 지휘관급들도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었지 않은가."

"그렇다면 강화 알바트로스를 본 기지로 귀환시키면 되지 않나요?"

"우리들의 전투는 대략 방식이 이래왔다. 동맹이 한 둥지를 공략하면 알바트로스는 또 다른 둥지를 공략하는 식으로. 그 결과 우리의 영토 수복은 더 빨라졌다. 어차피 이제 중국, 한국, 일본 밖에 남지 않긴 하였지만 거기선 강화 알바트로스 역시 힘겨울 거다."

알파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해독제를 먹어서 몸 상태를 돌려놓으신 다음, 다시 도핑하시면 돼요!' 라고. 하지만 그건 말이 안 된다. 그에게 다시 고통을 주는 선택이며, 닥터마저도 그가 어떻게 이런 몸 상태가 되었는지 알지 못 한다. 정말로 우연히 화학 약품들이 그의 몸에 절묘히 섞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게다가 이젠 중국, 한국, 일본 밖에 영토가 남지 않은 철충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니 어떻게든 다시 자신들의 영토를 되찾으려고 발버둥칠 것이다.

알파는 할 말을 잃었다.

"...제발, 죽지 말아요."

오르카에서 그와 함께 있으면서 그녀는 매튜를 향한 호감도를 올렸다. 처음엔 약으로 제정신을 못 차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지만 그는 약의 중독성에 계속 저항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오르카의 여성들을 배려해주고 칭찬해주는 좋은 남자의 모습을 보였다. 알파에게도 그러한 태도는 예외가 아니었다. 알파는 그를 사랑해버렸고 그 역시 알파를 사랑했다. 그녀에게 이쉬운 점은 그의 사랑이 알파에게만 향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가 동등한 사랑을 주었기에 그를 사랑하게 된 것일지도 몰랐다. 그와 몸을 섞을 때도 그는 도저히 섹스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는데 열심히 힘을 내서 그녀들을 만족시켰다. 알파도 그의 그러한 노력에 더욱 빠져버리고 말았다. 매튜는 그 말에 대꾸도 안 하면서 알파가 방을 나가게 만들었다.

매튜에겐 이면이 존재한다. 태도의 이면이. 오르카의 바이오로이드에게는 그 무엇보다 자상하고 부드럽다. 그녀들에게 배신당하고 버림받았으면서도 그는 그러한 것을 신경쓰지 않았다. 스콧의 말을 빌리자면 묵인하는 듯, 사건을 덮으려고 하는 것처럼 그녀들의 반역을 개념치 않고 있었다. 모두가 한 번은 그에게 그런 사건을 언급하지만 그는 그럴 때마다 신경쓰지 않는다고만 답했다. 오르카에 있을 땐, 그는 항상 웃고 다녔다.

반면, 자신의 병력에게 대하는 태도는 무척 냉혹했었다. 정규군인 뉴 고블린조차 학대에 가까울 정도로 대했다. 임무를 실패한 뉴 고블린을 코나와 오르카 지휘관들의 앞에서 그대로 목을 졸라 죽이고, 식당에서도 사소한 다툼을 벌인 뉴 고블린의 양다리를 부러뜨리는 등 마치 멸망 이전의 인류가 바이오로이드를 대하는 것처럼 대했다. 노멀 고블린에겐 더욱 가혹해서 신 무기를 발명하면 그 테스트를 고블린을 향해 할 정도였다. 물론 뉴 고블린들도 정상이 아니라 그의 이러한 태도가 오히려 좋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지만. 지금은 이런 태도도 조금 부드러워졌다.

뉴 고블린 역시 오르카와 함께 하면서 태도가 달라졌다. 이프리트와 함께 일과를 땡땡이치고, 워울프와 함께 술 마시다 취해서 쓰러지고, 맛없는 레이션을 브라우니와 함께 맛있다고 먹어치우고, 식탁을 어지럽히면 바닐라에게 잔소리를 듣고 그 잔소리를 들을 때마다 위축된다던가, 끝까지 매튜에게 한 번 뜨자고 하지 못 하는 메이를 보면서 나앤과 함께 피를 토한다던가, 아우로라와 하치코의 민트 합작품을 먹고 기절한다던가, 아스널의 여러 망측한 말을 에밀리가 듣지 못 하도록 멀찍이 데리고 가서 놀아준다던가, 켈베로스와 함께 500바퀴를 뛴다던가 등등....그들 역시 점차 사람답게 변하고 있었다. 그러한 뉴 고블린에게도 매튜는 인정사정 없었다. 지휘관들이 그를 설득하고 나서야 뉴 고블린과 고블린을 향한 태도가 한층 누그러져서 임무를 실패해도 질책만으로 끝내는 선으로 내려왔다.

알파는 슬쩍 소란스러운 곳을 보았다. 브라우니들과 뉴 고블린들이 잡은 장수풍뎅이끼리 겨루기를 하면서 놀고 있는 모습. 그 폭력적인 뉴 고블린들이 사람답게 될 정도로 이 동맹은 승리보다 더 많은 값어치가 있는 것이었다. 돌아간 그녀는 코나와 지휘관들에게 매튜의 몸 상태의 악화와 아직까지도 해독제를 먹을 의사를 보이지 않는 그의 의지를 밝혔다. 모든 인원들이 곤란하다는 반응만을 보였다. 코나가 말했다.

"이럴 때일 수록....힘내서, 빨리 이겨야겠지."

빨리 이기면 그가 해독제를 먹을 것이다 라고 코나가 생각했고 그에게 억지로 약을 먹일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으니 모두 그 말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한편, 매튜는 지연제를 계속 흡입하면서 스콧과 함꼐 어느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곧, 이겠군요."

"그렇다."

유일하게 매튜의 진짜 목표를 알고 있는 스콧은 슬슬 그가 그리는 그림이 화룡정점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매튜가 그에게 물었다.

"세뇌된 레모네이드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 했나?"

"예. 아무도 그녀들에 관한 건 모르고 있습니다."

"닥터도?"

"아무런 검사도 안 하더군요."

그림의 완성의 키, 세뇌된 레모네이드. 매튜는 일종의 목적으로 다섯 레모네이드를 오르카에 심었다. 닥터가 그녀들의 세뇌가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파악할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닥터는 그녀들에게 이렇다 할 검사를 하지 않았다. 분명 한때 적이었다 하여도 뇌를 갈라보거나 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매튜는 지긋이 그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계획이 완성되면....수많은 뉴 고블린들이 반목을 일으킬 테지. 그 떈 너희들에게 처리를 맡기마."

"알겠습니다."

매튜는 굳이 스콧에게 걱정되지 않느냐고 묻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묻는 것은 바보같은 질문이다. 스콧을 비롯한 다섯 간부들은 특히 그가 믿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스콧에게만 알려준 것은 그의 신뢰가 얼마나 깊은지에 대한 의미였다. 스콧과의 대화가 끝나자 다른 네 명의 간부가 들어왔고 매튜는 다섯 간부들을 향해 말했다.

"내일 곧바로 작전을 수행한다. 대기하도록."


☆ ☆ ☆ ☆


매튜는 계획의 완성에 다가가기 위하여, 코나는 어서 그에게 해독제를 먹이기 위하여 축제를 하루만에 끝내고 곧바로 다시 작전을 개시했다. 레드스톤이 심은 유사 철충에 따르면 중국와 일본보다 한국에 자리 잡은 둥지가 최강의 둥지이며 철충의 최종 연결체가 바로 이 곳에 있다고 한다. 모든 철충들의 하이브 마인드...그 괴물을 무찌르지 않으면 철충을 멸망하지 않는다. 중국와 일본은 이 하이브 마인드의 영향력이 그대로 끼쳐지는 곳이니 만큼 아주아주 위험한 곳이다. 철충과의 전쟁은 이제부터 더러워질 수 밖에 없었다. 러시아는 그 추운 기후의 영향으로 둥지들의 활동이 매우 둔했기에 충분히 오르카의 병력만으로도 공략이 쉬웠으나 중국은 아니었다. 중국도 땅 덩어리가 무척 넓으며 무수히 많았던 인구의 영향으로 공장들도 아주 많으니 철충이 쓸 수 있는 기계들은 넘쳐났다.

아예 둥지 안에 또 다른 작은 둥지가 있을 정도로 중국의 둥지는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이러한 밀집도를 가진 둥지를 공략하는데만 해도 년 단위의 시간이 걸릴 것이니 어쩔 수 없이 동맹은 화학 공격을 감행했다. 금속을 부식시키는 탄두를 끊임없이 투하해서 중국의 모든 지역에 있는 철충들을 천천히 죄여갔고, 하이브 마인드 역시 중국의 철충들이 부식되는 만큼 계속 철충들을 보급해갔다. 레브 복사본과 매튜, 다섯 간부, 알바트로스, 타이런트 등의 최강자들이 직접 참전한 이 전투는 힘겹게 동맹의 승리로 끝났다. 이후 그들은 일본 열도를 공략하고자 했다.

일본 공략은 자연이 동맹을 도와주었기에 가능했다. 아무리 인류가 발전했어도 불가사의한 자연의 현상은 아직까지 제어할 수 없었다. 그들이 일본을 공략하러 갔을 땐 이미 대해일이 일본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었고 동맹은 일제히 도쿄의 중심부를 타격하여 하이브 마인드가 일본에게 뻗는 제어를 끊어버렸다. 제어가 끊기자 일본의 철충들은 기동을 정지하였고 수월하게 일본 수복을 끝마쳤다. 일본과 중국을 빼앗긴 하이브 마인드는 이제 더는 다른 영토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유일하게 남은 한국 반도, 이거 하나만을 사수하는 것으로 자세를 바꾼 것이다.

오르카-레드스톤 동맹 역시 속전이 불가능할 정도로 피해를 입고, 특히 레드스톤 군단의 뉴 고블린과 AGS가 상당수 죽고 파괴되어 당분간 전열을 가다듬을 시간이 필요했다. 오르카도 코나가 쓰촨성에서 크게 다친데다 용의 함대가 반파되는 피해를 입고 스틸라인은 아예 당분간 작전 수행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앵거 오브 호드는 리더가 두 다리를 잃는 참혹한 상처를 입었고 둠 브링어의 대장과 부관은 큰 화상을 영구적으로 입고 말았다.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한 건 라비아타와 마리였는데, 라비아타는 오른팔에 의수를 단 것으로 모자라 심장과 간이 기능을 일부 상실하여 인공 심장과 간으로 내장을 대체했다. 마리는 오른쪽 얼굴이 날아가서 닥터가 만든 특제 가면을 써야 잃어버린 얼굴의 반쪽 감각과 시각을 되찾을 수 있었고 그녀의 몸에서 인공이 아닌 부분이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오리진 더스트로도 그녀들의 부상은 극복하기 어려웠다.

동맹이 필수적으로 재정비를 해야했을 때 한국 반도의 하이브 마인드는 동맹의 재정비 시간 때 반도 북부와 삼면의 바다의 방어선을 7배 늘렸고 이전에 보았던 모든 연결체들이 칙과 같은 숫자로 늘렸으며 하이브 마인드 본체 역시 전투에 걸맞는 육신을 가졌다. 순수하고, 붉고, 뜨겁고, 무한대의 에너지 육신을. 동맹은 더 이상 저들이 만반의 준비를 갖추도록 두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 재정비를 중간에 멈추고 곧바로 공격을 준비했다.


☆ ☆ ☆ ☆


지구의 마지막 철충 둥지를 앞에 두고, 동맹 회의 때 레브 복사본은 회의 때 이렇게 말했다.

"알고리즘의 분석으로 알아본 바, 이 공격의 기회는 단 한 번 뿐입니다. 동맹의 정비가 다 끝나지 않은 것처럼 하이브 마인드의 방비 역시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승산 역시 동맹이 불리하고 공격을 가하였다 하더라도 저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지도 미지수죠. 그러나, 동맹의 공격이 통하는 '골든 타임' 은 딱 지금 뿐. 지금의 기회를 놓쳐버리면 동맹은 오랜 접전 끝에 공중분해 될 것입니다. 동맹의 승률을 올리기 위해서 속전속결은 필수이며 한 치의 실수 역시 있어서는 안 됩니다."

레브 복사본의 알고리즘 분석은 동맹의 최강자들을 계산 안에 넣어두면서 낸 결과였다. 알바트로스, 타이런트, 매튜, 다섯 간부들도 이번 전투에서 목숨을 보장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최강자들 말고도 당장 기용할 수 있는 부대 역시 부족하다. 레드스톤은 군단이 절반 가량 넘게 죽어 없어졌으며 AGS 역시 상당수가 파괴되었다. 오르카 호는 현재 다른 부대에 비해 피해가 비교적 적은 부대가 있어 레드스톤보다 상황은 더 나았다. 그러나 그 마저도 캐노니어, 배틀메이드, 스카이 나이츠, 080, 와쳐 오브 네이쳐, 애니웨어와 퍼블릭의 일부가 끝이었다. 모두가 이런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상태에서 용이 입을 열었다.

"....희망이 없구려."

오르카의 대장들이 모두 움찔하였고, 다섯 간부들은 말 없이 동조했다. 코나와 매튜는 반응도 하지 않았다. 움찔거린 이들은 용의 말에 반박하고 싶었다. 하지만 용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모두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매튜는 마치 장례식처럼 음울하기 짝이 없는 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가 일어난 그를 바라보았고 그는레브 복사본에게 말했다.

"최적의 승리 루트를 말해봐라."

레브 복사본은 미니맵을 보여주며 설명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둥지는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한국 반도는 대지의 면적, 그 자체가 둥지입니다. 인간의 몸으로 비유해보자면 철충은 면역계 백혈구입니다. 몸 안으로 침입해온 세균들을 퇴치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 백혈구들의 숫자가 어마어마하게 많으니 동맹은 심장을 타격해 단번에 끝내야만 합니다. 하이브 마인드의 본체는 삼안 본사에 자리 잡은 상태입니다."

"심장부로 향하는 루트는?"

"현재로서 가장 가능성 있는 루트는 하늘 뿐입니다. 대공 방어체계 역시 갖추고 있는 상태일테지만 한 번 무력화 시킬 수 있는 수단이 하나 존재합니다."

그 수단이 존재한다는 말에 모두 짐작하는 것은 한 가지 뿐이었다. 스콧은 그 수단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엘러트...."

엘러트. 크툴루의 부름에 등장하는 가공의 선박이다. 이 선박은 막 부활한 크툴루의 머리를 터뜨려 버렸다. 매튜는 별의 아이를 죽일 수 있는 무기에 엘러트 호의 이름을 따와 붙혔다. 현재 동맹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이고 별의 아이를 완전히 사살하는 것으로 그 성능을 증명하였다.

"엘러트의 피해 반경은...."

"자, 잠시만요."

코나가 레브 복사본의 말을 끊었다. 동맹의 피해가 극심하여 지금은 수단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닌 상황이었지만 코나를 비롯한 오르카의 대장들은 그 무기를 쓰는 것이 꺼려졌다. 코나는 그녀들이 우려하는 걱정을 대표하며 말했다.

"엘러트는 마지막 보루입니다. 별의 아이가 나타났을 때 써야하는....무기에요. 최근, 닥터가 FAN파가 해저로부터 이전보다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했어요. 저희들이 철충들을 거의 궤멸 직전까지 몰고 가는 것은 분명 별의 아이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어요. 갑자기 별의 아이가 깨어났을 때 그 괴물을 퇴치할 수 있는 수단이 없으면..."

"그럼 다른 방도가 있습니까?"

디에고가 팔짱을 끼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중국 대륙을 공략하기 위해서 썼던 특수 합성화학탄을 쓰면 될 거에요. 한국 반도 전체가 둥지라면 화학 공격이 더 잘 먹혀들게 분명하다구요."

"그 합성화학탄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

"그 합성화학탄을 만들 재료는?"

디에고의 반박에 코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합성화학탄의 위력은 절륜하다는 것으로 실전에서 입증되었지만 중국이라는 거대한 땅 덩어리를 공략하기 위해 모든 합성화학탄을 쏟아부은 터라 현재 남은 것은 없다. 다시 만들면 되지만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도 있는데다 안드바리는 전쟁이 계속될 수록 고갈되어가는 자재들의 상황에 큰 난감함을 표하고 있다. 만들 시간도, 재료도 없다. 심지어 억지로 시간과 재료를 준비한다면 한국 반도를 공격할 수 있는 기회가 영구히 사라진다. 디에고는 아무 말도 못 하는 코나와 자신의 말에 반박할 수 있는 에너지조차 없는 오르카의 대장들을 한심하다는 듯 흘겨본 후에 레브 복사본을 보며 말했다.

"엘러트의 위력이면 한국 반도에 어떤 영향이 가지?"

"저희들의 목표는 하이브 마인드의 본체가 존재하는 삼안 산업의 본사. 서울특별시에 자리 잡은 삼안의 본사에 엘러트의 포격을 가한다면 반도 면적의 3.22%가 없어질 것입니다."

"확실히 도달할 수는 있는가?"

"있습니다."

그 때, 매튜가 디에고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디에고는 매튜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매튜와 눈이 마주쳤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디에고는 입을 닫아 매튜에게 발언권을 넘겼고 매튜는 자리에서 스윽 일어났다. 이젠 일어나는 동작도 힘들어보였다.

"...그간 너희들과 다시 신뢰관계를 쌓아왔지."

회의 테이블의 앞에 서서 모두의 이목을 끈 그는 창문 바깥을 보았다. 저 멀리서 철충의 붉은 에너지가 넘실거린다. 바로 코 앞에 한국 반도가 있었다. 매튜는 생명유지 슈트를 매만졌다.

"레드스톤은 너희 오르카로 인해 바뀌었다. 난 뉴 고블린을 파괴와 살육 밖에 모르는 금수도 만들었지만 오르카는 그런 뉴 고블린을 사람으로 바꿔놓았더군. 크든 작든 레드스톤은 오르카에게 영향을 받았다. 나에게 있어 너희들은 보물이고, 레드스톤에게 있어 너희들은 둘도 없는 친구다. 정말로 꿈 속으로만 그리던 승리가 눈 앞이다. 친구와 함께 그 승리의 성취감과 드디어 평화가 도래했다는 만족감을 느끼고 싶다. 지금까지 많은 자들이 죽었잖나. 누군가는 자신들이 사지로 내몰았기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할 테지."

매튜의 마지막 말에 마리와 레오나가 그를 유약하게 바라보았다.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와 스틸라인은 그간 있었던 전투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던 두 부대였기에 그의 말에 당연하게 반응했다. 매튜도 마리와 레오나의 눈빛을 자신의 두 눈동자로 받아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너희들이 사지로 몬 탓이 아니다. 그녀들은 자신의 희생을 감수한 거야. 자신의 죽음이 승리로 향한 발판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그럴 수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준 용감한 군인들이지. 그들의 희생을 자신의 탓이라 여기는 것은 죽어간 자들에 대한 모독일 뿐."

매튜는 그 후 칸와 아스널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약했기 때문에? 아니야."

메이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결단이 늦어서? 아니야."

라비아타를 바라보았다.

"모범이 되어주지 못 해서? 아니야."

용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무능해서? 아니야."

마지막으로 코나를 바라보면서...

"모든 과오가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도....아니지."

매튜는 슈트 안 쪽으로부터 손을 집어넣어 무언가를 꺼냈다. 뉴 고블린의 전술 조준경이었다. 금이 가있고 일부가 깨져있으며 피와 그을음이 뭍어있는 전술 조준경이었다. 매튜를 비롯한 다섯 간부들의 표정이 급격히 침울해졌었다. 매튜는 그 조준경을 테이블 위에 툭 내려놓았고 내려놓자마자 어느 음성이 들렸다.

'보스! 그리고 오르카의 사령관님! 여기서 저랑 제 형제들이 미끼가 될 테니 어서 가십시오! 저희들은 죽겠지만 너무 슬퍼하시 마십쇼! 어차피 저희들은 죽기 위해 태어났잖습니까? 아하하...그 동안 죽어간 형제들과 자매들의 한을...반드시 풀어주십시쇼!' 

날카로운 기계와 금속의 소리가 들리면서 뒤에서부터 끔찍한 비명을 들렸다. 고글에 녹음된 목소리 역시 보다 다급해진 목소리로 변했다.

'반드시 이겨주십쇼! 이기세요! 이겨서 죽어나간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십쇼! 반드시 이ㄱ' 

이후론 비명소리가 녹음 전부를 차지했다. 도란스는 그 고글을 가져와 말 없이 손에 쥐고 눈을 감았다. 다섯 간부들 역시 뉴 고블린들에게 어느 감정을 가진 상태였고 모두가 지금 들리는 이 비명소리를 잠자코 들었다. 매튜는 숨을 힘 없이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이들은 기꺼이 희생한 거고, 우린 먼저 죽어간 자들로부터 반드시 이겨달라고 당부받은 거다. 죽어간 자들을 슬퍼해봤자 돌아오지 않아. 그렇다면, 이 자들의 넋을 기리는 방법은 하나 뿐이다. 반드시....반드시 이 전쟁에서 이기는 것. 그리고 이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바로 눈 앞에 있다. 난 엘러트를 쓸 것이다. 너희들이 반대해도 난 쓸 것이다. 비록 별의 아이에게 모두 죽는다 하여도 난 눈 앞의 승리를 가져올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거 뿐이라면 그거라도 할 것이다."

레브 복사본은 작전 설명을 계속 했다. 엘러트 포를 쓰면 삼안 본사로 향하는 길이 직통으로 뚫린다. 또한 엘러트 포의 여파로 인하여 주위 철충들이 일정 시간 동안에는 다가오지 못 할 것이므로 그 일정 시간 안에 하이브 마인드의 본체를 파괴한다면 한국 반도의 모든 철충들은 활동이 모두 멈출 것이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철충은 지구 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 소망하던 인류 수복이 정말 다가온 것이다. 레브 복사본은 곧바로 이 마지막 전투를 이끌어나갈 부대를 선정했다.

레드스톤 전 병력은 한국 반도에 투입될 것이고 오르카는 여파가 걷힌 후 본사 방어를 위해 결집하려고 하는 철충들을 막는다. 여기서 아직 피해가 전부 복구되지 않았던 부대 역시 포함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마지막 전투는 쓸 수 있는 병력 없는 병력 모두 털어넣어야 하는데 피해가 심하다고 작전에서 빼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매튜와 다섯 간부가 이끄는 레드스톤 군단이 하이브 마인드 격파에 나서고, 그들을 막으려고 모여드는 철충을 최대한 막아내는 것은 오르카의 역할이다. 모두 이러한 작전을 기억하고 해산했다.

작전 시작 시간은 00시 00분. 아직 작전 시작까지는 3시간이 남은 상태였다. 새까만 밤하늘 위에 떠있는 별과 달을 보며 마리는 병 째로 술을 들이키고 있었다. 아무런 동반자도 없이 홀로 외로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오른쪽 얼굴을 만져보았다. 감각이 조금 느껴지지만 피부로서 느껴지는 감각이 아니었다. 닥터가 말하길 이 부상은 아마 영구적일 것이라 했다. 마리는 승리를 위해서 자신의 얼굴 쯤이야 값싸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술을 들이켰다.

"기분이 영 아닌가?"

그 때, 뒤에서 갈색의 긴 장발의 칸이 마리를 찾아왔다. 그녀는 의족 없이 휠체어를 탄 상태였다. 마리는 그런 칸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 후에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탈론페더는?"

"따돌리고 왔지. 나도 조용한 시간을 가지고 싶어서 말이야."

"그렇다면 어서 와라."

칸은 휠체어에서 조심스럽게 내려와서 마리의 바로 옆에 앉았다. 그녀의 다리는 허벅지까지 절단된 상태였다. 바로 골반으로부터 풀밭의 딱딱한 감촉이 느껴지자 칸이 말했다.

"느낌이 이상하군."

위스키의 병을 딴 그녀는 마리와 쨍, 하고 병을 부딪힌 후 벌컥벌컥 들이켰다. 후, 하고 숨을 내쉰 칸은 마리처럼 밤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드디어 무거운 군장을 내려놓게 되겠군 그래."

"...그렇지."

"기쁘지 않은가? 항상 어렴풋이 생각하기만 했던 수복 이후의 세상을 드디어 누릴 수 있어. 그런데도....넌 기쁘지 않은가 보군."

마리의 표정은 반은 가면이었지만 다른 반은 그녀의 기분을 알려주고 있었다. 마리는 멸망 이전부터 생존해있던 개체이다. 이전 마리들의 기억을 가지고 있고 그들이 느꼈던 감정의 격렬함도 알고 있다. 오르카에서 가장 오래된 바이오로이드인 그녀는 다른 이들보다 훨씬 더 철충 전쟁이 끝나고 난 후의 미래를 많이 생각했을 것이고 정말로 그 때가 코 앞까지 오니 기뻐해야할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마리는 이상하게 기쁘지 않았다. 그리고 칸은 왜 마리가 기쁘지 않은지 알 것 같았다.

"...정말로 이 전쟁이 끝난다면 그건 경사로운 일이고 축복해야할 일이지. 죽어나간 내 부하들의 넋을 기릴 수 있고, 인류가 수복되어 다시 이전처럼 생기 넘치는 인간 사회가 될 수 있을 테지. 거기에 우리들의 자리 역시 분명히 있을 것이다."

"걱정이지, 전쟁 속에서 살아온 자들의 적응이란."

"멸망 전 인간도 여러 전쟁을 거쳐왔다고 하지. 전쟁 속에서 모든 끔찍한 것을 바라본 정신은 온전치 않고...그런 온전치 않은 정신으로 다시 사회로 돌아가고 나니 더 이상 자신이 사회에 어울리는 자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우리들도 그럴까봐 두렵네. 별의 아이도 언제 깨어날지도 모르고, 전쟁을 겪은 세대와 겪지 않은 세대의 갈등도....여러모로 걱정이 참 많지."

칸은 마리가 다시 술을 들이키는 것을 보며 자기도 술을 들이켰다. 마리는 일부러 말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마리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따로 있다. 그러나 칸은 그 마리가 말하지 않는다면 자신도 딱히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간단하게 술과 안주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레오나와 메이, 아스널 역시 상념에 잠기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녀들은 마리와 칸이 나눴던 대화와 비슷한 대화를 나눴다. 취기가 적당히 올라온 그녀는 아스널과 메이, 그리고 자신의 모습에 농담을 했다.

"우리들 꼴도 참 말이 아니야, 그렇지?"

메이의 얼굴에 있는 화상, 오른팔을 의수로 대체한 아스널, 그리고 왼쪽 안구를 잃어버려 안대로 가린 레오나. 레오나의 농담에 아스널이 받아주었다.

"정말 격렬한 전투였지. 다름 아닌 우리들이 이렇게 다칠 정도니까 말이야."

"난 별로 신경 안 써."

"으음? 그런가? 저번에 매튜의 앞에 섰을 때 화상 자국이 신경쓰인다고...."

"드, 들었어?!"

심드렁하게 대꾸한 메이를 당황케하며 아스널이 웃었다. 레오나도 피식 웃으면서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아스널은 진수성찬이나 다름이 없는 안주를 한 가득 씹었다.

"정말로 꿈만 같군. 정말로 꿈만 같아서 볼을 잡아당기는데도 그저 아프기만 해. 종전이 정말로 코 앞이라는 것이 믿기지가 않아..."

아까도 말한 것이지만 다시 한 번 아스널이 말했다. 아스널은 이 술자리를 가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전쟁의 끝이 정말로 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다는 말을 여러 번 했었다. 하지만 메이랑 레오나는 태클을 걸지 않았다. 그 만큼 전쟁이 길지 않았던가. 레오나는 잔에 담긴 술을 흔들었다.

"...아직 오르카가 작았을 땐 종전에 대해선 생각조차 하지 못 하고 있었지. 철충들의 눈을 피해 숨어서 조용히 힘을 기르는 것을 우선적으로 생각했었지. 이런 상황만 유지하자고만 생각했다가 정말로 싸움의 끝이 다가오니 기분이 묘하긴 하네."

"아직 이긴 건 아니지만, 그렇긴 해."

메이가 치즈 한 장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아스널은 잔에 담긴 와인에 자신의 얼굴이 비추자 문득 한 가지가 떠올랐다.

"자네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뭔데?"

메이가 묻자 아스널이 대답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우리들이 사회로 나간다면, 자네들은 무얼 하고 싶나?"

여자로서의 즐거움만을 말하던 아스널이 그리 말하자 둘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고 그 반응을 천천히 살핀 아스널도 풉 웃었다.

"하하하...그래, 안 어울리겠지. 하지만 나라고 그런 생각만 하는 건 아니라고? 우리들은 군용으로 설계되었지만 모듈의 차이일 뿐이지 않나. 언젠가 군용 모듈이 반납되고 우리는 사회로 나갈 거야. 그 때, 자네들은 무엇을 하고 살고 싶나?"

"그러네..."

레오나가 확실히 흥미로운 주제에 관심을 보였다. 아스널은 이 말을 꺼낸 당사자인 만큼 가장 먼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말하였다.

"나는 리조트에 가보고 싶네. 그 곳에서 팔다리 쭉 펴고 쉬면서....해독제를 먹은 그와 진득하게, 한 100판은 하는 거지!"

"...의외라고 생각한 거 취소야."

레오나가 이럴 줄 알았다고 말하자 아스널은 호탕하게 큰 웃음을 내었다. 메이는 물론 무슨 말인지 모르는 반응이었다.

"하하하하!!! 변하지 않는 것이라는 게 참 좋은 거지 않은가! 자네들은 어떤가?"

"...놀이공원."

메이가 작게 말하자 레오나와 아스널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메이는 술잔을 조심스럽게 내려두고 다시 말하였다.

"놀이공원에 가고 싶어."

"...풉,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웃지 마!!!"

"하, 하하하하...미안하구만. 그런데 왜 놀이공원이지?"

"재밌어보이잖아."

아스널은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았고 레오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웃음을 최대한 내보내고 있었다. 역시 지휘관들 중에서 제일 속내가 귀여운 메이다운 바램이었다. 아스널은 웃음을 필사적으로 넘긴 후에 레오나를 보았다. 메이 역시 레오나를 보면서 그녀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레오나, 자네는?"

"넌 어때, 레오나?"

"으음....나는...."

레오나는 멀리 내다보는 개체이니 자신의 미래 역시 멀리 내다보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 평화가 찾아온다면 가장 먼저 할 것은....

"내가 제조된 나라로 가보고 싶은 걸."

"스웨덴에?"

"응. 스웨덴. 거기서...적당히 좋은 집 하나 가져서....살림을 차리고..."

레오나는 잠시 상상해보았다. 자신의 품 안에 자신을 똑 닮은 딸이 잠들어있고 자신의 옆엔 해독제를 먹어 다시 건강해진 매튜가 서있는 모습을. 그리고 그 이와 아이와 함께 자신이 만든 자매들의 위령비를 방문하는 모습을. 레오나의 표정에 아스널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메이는 갑자기 욱신거리는 자신의 화상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하고 싶은 거 하나 더 있어."

메이는 자신의 화상을 만지며 자신을 대신에 죽어간 자들을 떠올렸다.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까 죽은 내 부하들을 만나고 싶어."

메이의 그 말에 레오나와 아스널의 표정이 싹 굳었다. 레오나는 자신보다 먼저 발할라로 간 자매들을 떠올렸고 아스널은 격렬한 전투 중에 죽은 자신의 전우들을 떠올렸다. 그녀들의 왁자지껄한 술자리에 갑자기 조용해졌고 그녀들은 마치 약속이라고 한 것처럼 같은 동작을 했다. 술잔에 술을 가득 따르고, 잔을 들어올려 건배한 것이다. 건배하면서 아스널이 말했다.

"...먼저 간 전우들을 위하여."

"먼저 간...내 자매들을 위하여."

메이가 마지막으로

"부하들의 안식을 위하여."

라고 말한 후 모두 술잔에 넘치도록 따라진 술을 모두 들이켰다.

라비아타와 용도 함께 술을 걸치며 대화하고 있었다. 용의 배 위에서 바다 내음을 맡으며 소주와 회로 하는 술자리를 가진 그녀들의 옆에는 텅 빈 소주 몇 십병들이 늘어있었고 회 접시도 옆에 수북히 쌓여있었다. 둘은 다른 지휘관 모델과 비슷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보다 더 심각한 내용을 말하고 있었다. 둘이 나누는 대화는 마리가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주제였다.

"멸망 이전 인간님들을 기억하시나요?"

"잊을 수가 없지...."

둘은 멀리 볼 것도 없이 김지석과 앙헬을 떠올리면 되었다. 라비아타와 용은 소주잔을 부딪혔다.

"곧 주인님들에 의해 인류는 수복될 거에요. 하지만 수복된 뒤엔....어떻게 될까요? 이전처럼 바이오로이드가 소모품으로서 쓰이게 될까요? 감정의 쓰레기통처럼 될까요?"

"...모르겠소."

"두려워요. 저희들이 피와 목숨을 바쳐 다시 재건된 인류 사회가 이전의 과오를 다시 반복하지 않을까 하고요."

용은 말 없이 소주를 털어넣었다. 철충들을 몰아내어 인류 사회를 다시 부흥시켰을 때 그 때 바이오로이드에 대한 처우는 어떻게 변할까? 다시 평화를 되찾아준 위인으로서? 과거의 유산으로서? 아니면 바이오로이드의 존재의의가 그렇듯 소모품으로서? 라비아타의 걱정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용은 소주병을 들어 라비아타의 빈 잔에 소주를 따라주며 말했다.

"그 누구도 앞으로 있을 일을 알지 못할 것이오. 그러나 우리들은 어떤 사회가 되더라도 다시 인류를 부흥시켜야 한다오. 그러기 위해서 지금껏 싸워왔고 희생자들의 시체를 발판 삼아 올라왔잖소. 우리가 해야할 일은 단 한 가지. 승리하는 것 뿐. 그거면 충분하지 않소?"

"...그렇, 죠."

모두가 승리 이후, 평화의 시대를 생각하면서 상념에 잠겼다. 밤의 기도실을 찾아 부디 승리할 수 있도록 비는 코나 역시 그러했고 새까만 밤에도 짙은 붉은색의 에너지가 넘실거리는 곳을 바라보는 매튜 역시 그러했다. 매튜의 손에는 작은 물병 크기의 유리병이 있었다. 안에 투명한 액체가 들어있는 유리병이었다. 그는 뚜껑을 열고 팔을 옆으로 뻗은 후 안에 있는 액체를 땅에 쏟아부었다.


 
=====
완결까지 2화 남은 거 같음.





https://arca.live/b/lastorigin/30712704?mode=best&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