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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즈의 주도로 이루어진 'Project ORCA, 별밤의 무대' 이후, 오르카호 내 모든 인원들은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했다. 

 그리하여 닥터가 찾아낸 어느 이름 모를 섬에 우리는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간만에 긴 잠을 방해받지 않고 잔 것 같았다.

 괜찮다고 생각했었지만, 아무래도 긴장했던 몸이 이제는 휴식을 취해도 된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태양이 하늘 위에 있는 것이 창 밖으로 보였다.


 바깥에서는 무언가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모래를 밟는 소리와 파도 소리가 들려오고있었다.

 발걸음을 옮겨 바깥으로 나가자, 뜨거운 태양의 기운이 온 몸에 느껴진다.

 그 기운을 받으며, 나는 바위에 걸터앉아 바지를 살짝 걷은 채, 투명한 바다에 살짝 발을 담갔다.

 그리 깊지않은 완만한 깊이의 바다. 그리고 간지러운 모래들의 움직임이 발가락 사이로 느껴졌다.


 시선을 위로 들어올리자, 근처 절벽에서 햇살을 쬐며 깃털을 정리하는 새들과 절벽 아래 바다로 뛰어드는 새들이 보인다. 

 그것을 따라가자 사냥에 성공한 새들이 홰치며 다시 둥지를 향해 날아올랐다.


 저 멀리서 네레이드와 의외의 조합인 운디네가 모래사장을 달리는 모습이 보인다.

 환하게 웃으며 달리는 네레이드와 약간은 화가 난 운디네.

 아마 네레이드가 운디네의 물건에 손을 댔던 것일까.


 그리고 그 모습을 솜씨좋게 파라솔을 세운 세이렌이 그 아래에서 여유롭게 레모네이드를 마시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언제 갈아입은 것인지, 새하얀 원피스와 큰 밀짚모자가 눈에 띈다.

 나의 시선을 알아챈 것인지, 세이렌이 나를 향해 작고 하얀 손을 흔들었다.

 나도 마주 손을 흔들어 인사해주었다.


 스틸라인의 인원들은 간단한 진지 구축과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한 전술 상황 훈련을 하는 듯,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움직임 속에서, 약간 넋이 나간 이프리트의 모습이 보인다.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식사 준비를 하는 듯, 소완과 에키드나가 여기저기 분주히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그런 모습을 살짝 뒤로한 채, 주변을 둘러보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러자 숲을 머금은 바람과 파도의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발치에 몰려든 물고기들을 가볍게 발을 흔들어 휘휘 쫒아내고는, 바위에서 내려와 다시 모래사장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먼 발치에서 나를 보던 하치코와 페로 그리고 리리스를 불러내어 잠시 산책을 한다고 말을 했다.

 경호가 필요하다며 붙으려는 리리스에게 다시 한 번, 단호하게 금방 올 것이니 걱정하지 마라고 이야기를 해두었다.

 물론 콘스탄챠에게도 이야기를 전해달라고 하고는 숲을 향해 걸어갔다.


 근처의 졸졸 흐르는 시냇물을 따라 걸어가자, 숲의 축축한 냄새가 코를 깊게 찔러들어왔다.

 흙길 사이로 정리된 길이 드문드문 보였고, 그 사이로 소담스러운 꽃들이 피어있는 것이 보였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함께 약간은 느긋하게 발길이 닿는 대로 걸어들어갔다.



* * *



 적당한 햇살이 내려쬐는 숲 한가운데를 나는 걷고있다.

 아직은 살짝 젖어들어간 흙길에 나의 발자국이 새겨지는 것을 보며, 나의 흔적을 지금 이곳에 남기고있다.


 흙길에 내려앉은 나뭇잎과 쓰러진 나무 위에 앉은 새들이 허락받지않은 침입자의 움직임에 소란스럽게 이곳저곳을 누비었다.


 조금 더 발걸음을 재촉해 안으로 더 들어갔다.


 물기에 완전히 젖어든 나뭇잎이 나의 발걸음 소리를 삼켰고, 기묘하리만큼 고요함이 나를 감쌌다.

 오르카호. 사령관으로서의 책임. 별의 아이. 철충등. 

 잡다한 생각들은 모두 숲의 고요함에 삼켜져버리고, 이 공간에서 숨을 쉬는 존재는 나뿐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일부러 입을 열어 소리를 내보았다. 

 고요한 이곳에 나의 목소리가 존재감을 슬며시 나타내었다 다시 숲의 침묵에 먹혀들어갔다.


 

 * * *



 나는 어렴풋하게 들려오던 소리를 향해 점점 다가갔다. 

 희미하고 작던 소리는 점점 그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 존재감을 드러내었고, 나는 그리 크지않은 폭포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 크지않은 폭포지만, 아래에 위치한 바위에 부서지며 반짝이는 무지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바위에서 부서진 물방울들이 폭포 주변을 장식하는 흠뻑 젖은 녹색의 이끼들.


 작게 생겨난 물 웅덩이에는 작은 새 몇마리가 모여 헤엄을 치며 날개를 퍼덕거리고 있었다.

 그리 크게 자라지않은 초록색의 넓은 잎의 그늘 아래가 새들의 자그마한 휴식처인 듯 했다.


 아직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지않은 나를 새들이 눈치채지 못한 것인지, 그렇게 저들끼리 제각기 소리를 내며 퍼드덕거렸다.


 그 사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색을 가진 작은 새가 나를 눈치챈 것인지 고개를 돌렸다.

 제 나름대로 나를 판단하려는 것인지, 고개를 좌우로 갸웃거리는 것이 퍽 귀여웠다.

 그리 위협이 된다 생각하지 않은 것일까.

 새는 날개를 퍼드덕거리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나무 사이로 숨겨진 자그마한 통나무집을.



* * *

 


 『닥터의 말에 따르면, 현재 우리가 있는 이 섬을 발견한 것은 생각보다 오래 전이라고 하였다.』

 『정기적으로 발신하는 신호만이 있을 뿐, 거기에는 별다른 신호도, 메시지도 없이, 단순히 신호만이 발신되고 있을 뿐이라고.』


*


 빡빡할 것이라 생각했던 대문의 경첩이 부드럽게 열렸다.

 먼지로 가득 할 것이라는 처음의 예상도 틀렸다.


 안은 생각보다 깨끗했다. 최근까지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 듯,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몇가지 이름모를 꽃들도 화분에 담긴 채 싱그러운 색을 자랑하고 있었다.

 다만 이유모를 서늘함이 온 몸에 느껴졌다.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신발에 묻은 진흙들이 신경쓰였다. 잠시 주변을 살펴보니 사용한 지는 오래되어보이지만, 

 간단하게 흙을 제거할 수 있는 도구로 보이는 것이 있었다.


 진흙들을 털어내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서자, 깨끗하게 정리되어있는 내부를 볼 수 있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서가들과, 어둠을 밝혀줄 작은 등.

 깨끗하게 정리되어있는 방들까지.


 이곳에 사는 사람의 성격을 잘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 * *



 오두막의 내부를 보던 중, 유난히 크게 만들어진 문에 시선이 갔다.

 문 앞에 누군가 오랫동안 서있었던 듯, 사람의 발 모양으로 움푹 들어간 자국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문 앞에 놓여진 쟁반 위 식어버린 음식들도.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 안을 장식하고 있는 것은 거대한 캡슐이었다.


 그리고.


 캡슐 안에는 사람이 갇혀있었다.


 굳게 다문 입술과 약간 고집스런 눈매. 그리고 각진 턱을 가진 남자가 있었다.


 그러나 이내 무언가 다른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창백한 안색. 그리고 호흡하지 않는 몸.


 캡슐 안에 있는 이 사람은 죽은 자였다.


 조금 더 자세히 보기위해, 한 걸음 내딛으려던 그때.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나의 행동을 제지했다.


 "죽은 자의 휴식은 존중해야 하는 법이거늘, 귀하는 누구시기에 거칠은 흙발로 이곳을 침입하려는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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