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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불빛만이 비추는 어두운 통로에서 주인 없는 검들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

우아하게 장식된 여덟 자루의 검들은 때때로 서로 부딪쳐 마치 악기 처럼 연주하고 있다.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 같았던 검들의 연주회가 불시에 딱 멈췄다.

그 다음 순간에 그 몸을, 본래의 역할을 떠올린 듯이 날카로운 칼끝을 한 곳으로 향했다.

그 끝에는 갈색 피부의 금발 미녀──레리아나의 모습이 있었다.

레리아나는 동물같은 민첩성으로 적을 향해 돌진한다.

그녀가 장비한 경장비는 거의 수영복이라고 해도 될 만한 노출도다.

가슴과 사타구니를 살짝 가릴 정도의 가죽으로, 건강해보이는 팔뚝이나 허벅지는 아낌없이 노출하고 있다.

간신히 방어구라고 부를 만한 것은 손과 발에 찬 건틀릿과 그리브 뿐.

방어력이 부족해보이는 그런 모습임에도 검에 뛰어드는 건 그야말로 자살행위라고 다들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도 레리아나의 모습에서 단 한치의 주저와 공포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살짝 미소마저 띄운 채 적 한가운데로 몸을 던졌다.

춤추는 검들──댄싱 샤벨과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지고 샤벨들은 레리아나를 꼬챙이로 만들기 위해 돌진한다.

여덟 자루의 검이 동시에 내질러지는 공격은 점(0차원)의 공격이면서도 면(2차원)의 공격을 가진, 말하자면 찌르기의 벽이라고 할 만 했다.

적정 레벨대 모험가여도 치명상은 확실.

하지만 레리아나의 대응은 주먹의 벽이었다.

백열권. 마투사 계열의 스킬 중 하나.

마력에 의해 구현된 주먹이 복수의 공격을 가능하게 한다.

무수한 주먹의 벽이 찌르기의 벽을 받아쳐 분쇄한다.

금속과 금속이 서로 부딪쳐 부서지는 불쾌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여덟 자루의 샤벨들은 도신을 잃고 땅에 떨어져 빛이 되며 아이템으로 바뀌었다.

이쪽을 돌아보고, 어때, 라는 듯 의기양양한 얼굴을 하는 레리아나에게 쓴웃음 지으면서도 박수로 칭찬한다.


"오~ 역시 큐바슈의 전사."

"헤헤, 뭐 그렇지!"


쑥쓰러워하면서도 의기양양하게 웃는 레리아나.

짧은 기간이었지만 레리아나의 성격은 대충 파악했다.

칭찬받으면 기뻐하고 까면 화낸다.

좋게 말하면 표리 없는 솔직함, 나쁘게 말하면 단순하다.

인간으로서는 호감을 가질 수 있는 성격이지만 모험가로서 보면 결점도 있다.

그 단숨함 탓에 함정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오는 동안 벌써 세 번이나 함정에 빠졌다.

다행히 레리아나의 높은 스펙과 내 보조로 상처없이 끝났지만 평범한 모험가였다면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지식을 익히고 경험을 쌓아두면 쉽게 해결 될 문제.

타고난 재능을 감안하면 딱히 문제되지 않는 결점이다.

실력 있는 척후 한 명을 파티에 넣는 것만으로도 해결 될 것이다.

레리아나의 전투타입을 간결하게 평가하면 마투사다.

큐바슈에 전해지는 다양한 마법과 격투술을 조합한 무술이다.

통상 마투사 계열 직업은 별로라는 평이 많다.

스테이터스의 성장이 전사계도 아니고 마법계열도 아니라는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각 직업의 최강 스킬을 배울 수 없다는 점이 크다.

마투사가 배울 수 있는 건 전사 계열과 마법사 계열의 상급스킬이 끝.

각 직업의 최상급과 최강 스킬을 익힐 수 없다.

당연하다, 만약 배울 수 있다면 죄다 마투사를 고를 것이다.

심지어 각 직업에 비해 스킬을 배우는 늦다는 결점도 있다.

이건 크다. 왜냐면 레벨 20 적정 던전에서 그 레벨이라면 익혔을 스킬을 쓸 수 없으니까.

게임에서 적정 레벨이라는 건 스테이터스 뿐 아니라 그 레벨에 배울 수 있는 스킬을 포함해 계산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스킬을 배우지 않았다는 건 정말 큰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고로 마투사는 중간에 파티에서 쫓겨다는 게 숙명.

라스트 보스에서 쓰이지 않는다.

만능이 아니라 잔재주만 많은 그런 슬픈 직업이다.

그런 마투사인 레리아나의 평가는 오히려 최강이라는 말로 요약됐다.

왜냐면 레리아나의 고유 스킬 [음양대극의 이치] 때문이다.

고유 스킬 [음양대극의 이치]는 자신의 스텟 중 하나를 다른 스텟으로 변환하는 기술이다.

예를 들면 HP를 MP로 바꿔 회복시키거나 마력 스텟을 임시로 근력으로 바꿔 적에게 큰 데미지를 줄 수 있다.

레벨이 낮을 땐 변환에 로스가 있어 효율이 좋지 않지만 최종에는 두 배로 바꿀 수 있는 사기 스킬이다.

이 스킬로 레리아나는 작 중에서 손꼽히는 화력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물리 마법 가리지 않고 대응 가능.

초기 레벨이 15라서 일부 칭호를 따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것을 메우고도 남는 스펙이다.

레리아나의 그런 스펙은 공략 사이트를 통해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 눈으로 본 감상은 상상 이상이라는 것이 솔직한 감상.

고유 스킬은 물론이고 타고난 격투 센스와 마력의 사용법이 보통 사람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그것을 알 수 있다.

이전, 그저 스테이터스를 올렸을 뿐인 촌놈이었을 무렵의 나라면 그녀를 스텟과 스킬만으로밖에 판단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검으로 과거 소유자들의 지식과 경험을 얻은 지금이라면 그녀가 얼마나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안다.

그녀를 동료로 한다면 그 어떤 파틸라도 일류를 노릴 수 있는 정도까지 올라갈 것이다.

그런 만큼, 악의를 가진 사람이 그녀에게 다가가면 과연 어떻게 될까... 조금 걱정이다.

분명 그 솔직한 성격을 이용해 이용당하는 것이 아닐까.

...뭐 내가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게임에서의 내가 그렇게 그녀를 속여서 동료로 만들었으니까.


"오우 도착도착. 보스방이야."


곰곰이 생각하며 적당히 적들을 정리하고 있으니 어느새 보스방에 도착했다.

각인이 새겨진 문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다.

삼림형, 지하동굴형, 건축물형 등 던전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지만 보스방의 문은 공통이다.

일설에 의하면 이 문은 봉인 역할을 가지고 있으며, 보스가 방에서 나가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한다.

뭐 보스를 동굴 통로에서 만나면 망겜이니까.


"그럼 연다."


레리아나가 그렇게 말하며 문에 손을 대자, 빛을 발하면 문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건...


"어라? 바론 버터플라이가 아니잖아? 뭐야!?"


놀라움에 소리를 지르는 레리아나.

그 안에 있었던 건 1m 정도의 나비 날개를 가진 인간형 몬스터였다.

공중을 헤엄치듯 부하인 템트 버터플라이가 춤추고 있다.

언뜻 보면 요정처럼 보이는 우아한 모습이지만 녹색 피부와 곤충같은 겹눈이 몬스터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몸은 여성의 것이라 가슴이 부풀어 있다.

참고로 바론 버터플라이는 수컷.

즉, 이 몬스터는...


"마담 버터플라이네. 바론 버터플라이보다 몇 단계 아래 몬스터였지 아마."

"뭐어~ 마담 버터플라이? 진짜? 이상하네."

"뭐 일단 쓰러뜨리자."


고개를 갸웃거리는 레리아나에게 그렇게 제안하고 검을 뽑았다.


"어 그렇네. 빨리 처리할까."


전투는 시원스럽게 끝났다.

마담 버터플라이의 주 공격은 상태이상을 거는 거였고 우리의 저항력은 적의 그것보다 높아서 애초에 적에게 승산은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거의 작업을 하듯이 적을 처리했고 남겨진 목제 보물상자만이 남았다.


"왜 바론 버터플라이가 아니었지."

"애초에 그거 어디서 들었어?"


투덜대는 레리아나에게 계속 신경쓰이던 점을 물었다.


"어디냐니 그야 정보상이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레리아나.

나는 그 대답에 희미한 두통을 느껴 관자놀이를 눌렀다.

정보상이라니...


"레리아나... 말하기 좀 그렇지만 자기가 정보상이라고 하는 놈들은 거의 사기꾼이야."

"어!? 그런거야!?"

"뭐 진짜 정보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들어본 적 없어."


내가 아는 정보상이라는 건 시골에서 갓 상경한 촌뜨기들을 속여 돈을 챙기는 노숙자들인 것이다.

일단 나는 작은아버지에게 그렇게 들었다.

그 수법에 레리아나가 걸린 것이다.

이 미궁도시에는 밤낮으로 새로운 미궁이 생겨나고 사라진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이름의 미궁이 생기는 지는 시내 중앙에 있는 분수 광장에서 알 수 있지만 어떤 몬스터가 나오고 무슨 아이템을 주는지는 알 수 없다.

미궁의 이름으로 추측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공략사이트의 정보로, 베테랑 모험가들은 본인의 경험으로 대답을 끌어내지만 신인은 당연히 모른다.

그리고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는다.

그런 신인들을 노리기 위해 슬럼 사람들이 생각한 게 정보상이라는 사기다.


"젠장 그 자식 역시 사기꾼이었구나! 뭔가 수상하다고 생각했어!"


내 이야기를 들은 레리아나가 바닥을 세게 밟으며 화를 냈다.

띠용띠용하고 멜론같은 가슴이 흔들리고 있다.

그녀의 가슴도 정말 화가 난 것 같다.


"수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왜 속은거야..."


기가 막혀 말했다.

애초에 기본적으로 정보라는 건 본인의 눈과 귀로 확인해보기 전까진 진실을 모르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진실을 모르는 상품을 사고 팔다니 애초에 말도 안되는 장사다.

후에 거짓말이라는 걸 알았다고 해도 이미 상대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에 돈도 되찾지 못한다.

그럼 진실이었을 때 돈을 낸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

이번엔 손님쪽에서 돈을 내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

그러니까 정보상이라는 직업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만약 한다고 해도 믿을 수 있는 아는 사람끼리만 몰래 할 것이다.

레리아나는 내 눈길에 조금 머쓱해하며 말했다.


"아니 그치만... 꽤 비싸게 부르니까 사기가 아닐거라고 생각해서..."

"아..."


납득했다.


"그게 놈들 수법이야. 반대로 비싸게 불러서 손님을 속이지."


물건을 살 때 그게 좋은건지 아닌지 감정하는게 중요하다.

하지만 그 적정 가격을 모를 경우 소비자는 가격을 보고 감정하려는 심리가 생긴다.

가격이 비싸니 품질도 좋을 것이라는 심리다.

이를 위광가격이나 명성가격이라고 부른다.

보통 물건이라는 건 비쌀수록 수요가 줄지만 명성가격으로 감정하면 적당히 비싼 쪽이 팔리는 것이다.

이번 경우는 정보라는 감정 불가능한 상품을 가격으로 감정하려는 심리를 이용당한 것이다.


"그래서 가격이랑 신뢰가 비례하는 건 아니야. 오히려 사기가 가격이 비쌀 수도 있으니 주의해."

"그, 그렇구나... 하나 배웠어."


레리아나는 어느새 꺼낸 메모장에 적으며 말했다.

이상한 부분에서 성실하네. 그래서 속는 걸까.


"갑자기 생각났는데... 레리아나 혹시 미궁도시에 온 지 별로 안됐어?"

"으..."


순간 레리아나의 말문이 막힌다.


"맞아... 겨우 한 달 전에 왔어."


한달 전... 꽤 최근이네.


"뭐 정보상같은 수상한 곳에 의지하지 않는 게 좋을거야."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느긋히 있을 사정이 있어서말야."


그 병이겠지...

한 달에 한 살씩 젊어진다는 건 20세 여성이 20개월밖에 못버틴다는 뜻이다.

어리다면 더 심각할 것이다.

그녀가 초조해 할 만도 하다.


"뭐... 무슨 사정인진 모르겠지만... 가능하면 그것도 믿을 수 있는 사람 아니면 숨기는게 좋을거야. 약점 잡힐수도 있으니까."

"응 알았어. 고마워!"


힘차게 감사를 표하는 레리아나에게 미소로 답한다.


"그럼 드롭 아이템 분배는 어떻게 할래? 특히... 이거."


그렇게 말하며 내가 잡은 건 마담 버터플라이의 드롭 아이템... 여성용 속옷이었다.

레이스가 장식된 어른스러운 디자인, 그러나 너무 튀지 않는 흰색 속옷.

야함과 청초함을 갖춘 절묘한 디자인이다.

장비로서의 능력은 약간의 물리 및 마법 방어력과 매료, 당황에 대한 저항력을 주는 점.

...사실 이런 여성용 장비품은 꽤 비싸게 팔린다.

미궁에서 나온 이런 장비엔 사이즈 조절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체형의 여성이라도 착용하는 순간 딱 맞게 된다.

게다가 튼튼해서 오래 쓸 수 있다.

디자인도 좋다면 세상 모든 여성들이 눈독들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래서 이 미궁은 난이도에 비해 꽤 좋은 부류라고 할 수 있다.


"저기... 괜찮으면 그... 내가 가져도 될까."


레리아나가 그런 것도 이해된다.


"아 물론 그만큼 돈 낼게. 철칙이잖아."


급하게 덧붙이는 레리아나.

드롭아이템의 분배는 팀 와해의 원인 상위에 속한다.

보통 현물로 드롭하는 경우가 많아서 싸움을 피하기 위해 파는 형식으로 하는 게 기본 규칙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아니 괜찮아. 줄 게."

"어 괜찮아?"

"응."


나는 선뜻 수긍했다.

비싸다고 해봤자 금화 한 장도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나는 돈이 궁하지 않다.

그야 그럴게...


"저번에 레리아나한테 걸어서 꽤 벌었거든."


나는 그렇게 말하고 웃었다.

지금 내 소지금은 금화 100장 이상이다.

그 대부분이 투기장에서의 승리금.

2회차... 아니 정확힌 3회차인 나는 과거 투기장의 경기 결과를 알고 있다.

즉 이길 수 있는 도박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신중하게 전 회차 승자에게 베팅한 결과 쉽게 큰 돈을 얻는 것에 성공했다.

그 중에는 레리아나에게 걸어 챙긴 몫도 있었다.

그러니 이 정도는 은혜갚기도 못된다.


"으음 그런거면 감사히 받을게. 이 은혜는 다음 경기에 이겨서 갚는 걸로... 헤헤."


레리아나가 멋쩍게 웃으며 속옷을 받고 문득 장난스레 웃었다.


"...뭣하면 입은 모습 보여줄까?"

"으응!?"

"아핫! 농담이야 농담. 나는 그런 가벼운 여자가 아니거든."


레리아나가 깔깔 웃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휘둘리고 있구만...'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