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번역 채널

──예를들어 자기가 테러리스트라고 하자.

손에는 도시를 파괴해버릴 12개의 커다란 폭탄과 무수한 작은 소폭탄 스위치.

폭탄은 대체로 설치가 끝났고, 나머진 마지막 마무리만 한 뒤 스위치를 누를 뿐.

그럴 때 폭탄의 존재가 상대방에게 들켜 차례차례 해제되기 시작한다.

그럼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까?

실패했다고 순순히 포기할 것인가.

그럴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폭탄을 설치하지도 않았겠지.

아마도 이판사판, 일제히 기폭을 실시해볼 것이다.

확실히 도시를 파괴하기에는 폭탄의 양이 부족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대로는 어떠한 성과도 얻지 못하고 끝난다.

오히려 다음을 경계되어 폭탄의 설치도 어려워질 것이다.

다시 여기까지 하는 것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렇다면 실패하더라도 도전해봐야한다.

왜냐면 가능성이 0은 아니니까.


결국 나의 패배 원인은 적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애초에 흑막이 우리가 십이지미궁을 공략하는 걸 잠자코 지켜본다고 생각했던 게 실수였다.

마음 속 어딘가에서 적도 '약속'을 지켜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게임적 약속을 현실의 존재인 적이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야 그렇잖아?

만약 폭탄 해제 이벤트가 있는데 해제를 시작한 순간 원격 조작으로 기폭당하면 그게 게임인가.

게임 내에선 주인공들이 십이지미궁을 공략해 나가도 마신 알테나에 의한 원격 조작이라는 결말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 미궁범람을 시한폭탄형 이벤트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한 시간 내에 해제하지 못하면 미궁이라는 폭탄이 폭발.

십이지미궁이 전부 준비되는 것으로 모든 구조가 연동해 작동하는... 대규모 구조라고 생각한 것이다.

적 폭탄의 구조를 알지 못하는 이상 아무래도 상대측이 유리하다.

그 때문에 이 결말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아아앗!"


목덜미로 덤벼드는 늑대같은 마물을 벤다.

이어서 발목으로 기어오는 백의 목을 튕겨내고 돌진해오는 멧돼지 마물을 양단한다.

한숨 돌릴 틈도 없이 무수한 마물들이 덮쳐온다.

나는 탁류에 농락당하는 아이처럼 필사적으로 검을 휘두르며 저항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없었다.

그건 주위 모험가들도 마찬가지, 근접계 인원이 전면을 굳혀 원형 진을 짜고 중심부는 후위직들이 지원하는 방어진을 짜서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언제까지 버틸 것인지...

마물 쓰나미에 삼켜진지 한 시간도 안됐는데 정예로 있어야 할 대형 클랜 사람들이 차례로 다쳐 쓰러진다.

아니, 정예이기에 이 마물 대군에 삼켜지고도 수십분 버틸 수 있었다고 해야 할까.

웬만한 모험가들은 진형을 짜지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탁류에 삼켜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빠르냐 느리냐의 차이일 뿐이다.

언젠간 전위들의 탈락이 늘어가다 진형을 유지할 수 없게 되어 붕괴한다.


────그렇다면 차라리 나 혼자라도 빠져나가 미궁도시로 가야하는 거 아닌가?


악마의 속삭임이 뇌리에 떠오른다.

나 혼자라면 높은 스텟에 의지해 이곳을 빠져나가 도시로 향하는 것이 가능하다.

전 방위에서의 미궁 범람이다.

도시에도 마물들이 몰려가고 있을 것이다.

각 클랜의 마스터와 정예들이 이곳에 있는데 방위부대가 얼마나의 연계를 취할 수 있을지...

어쩌면 방벽은 벌써 붕괴됐고 마물들이 시내에 몰려들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엘리제는... 레리아나가...

초조의 불꽃이 몸을 태워 나를 괴롭힌다.


"────왕이시여."


문득 누군가가 내 옆에 나타났다.

갈색피부 백발의 여전사──리류테다.

그녀는 투박한 큰 창을 휘두르며 마물들을 요격하면서 내게 말한다.


"방금 전 클랜 마스터들 사이에서 도시로 사자를 보내는 것이 결정되었습니다. 왕이시여, 여기는 저희에게 맡기고 도시로 돌아가주십시오."


리류테의 말에 순간 나는 검을 휘두르는 걸 잊을 뻔 했다.


"...이것저것 할 말은 많은데, 왜 나지? 애초에 어떻게?"

"사자를 보낼 권리를 우리 타우로마조네스가 얻어냈습니다. 이곳은 저희가 최대 파벌이기에. 그리고 저희 중에 살아남는다면 왕이시여, 당신 외엔 없습니다. 돌아갈 방법은──이것을."


그렇게 말하며 그녀가 빠르게 넘겨준 것은, 푸른색으로 빛나는 크리스탈.

이건 설마...


"──전이의 크리스탈입니다. 만약을 위해 크리스 전하께서 저희 클랜마스터들에게 빌려준 것. 이걸 사용해 왕께선 도시로 돌아가십시오."

"그건..."


리류테의 제안은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다.

그 때문에 그녀들을 이곳에 남기고 퇴각하는 것이 망설여질 정도로.

그런 내게 리류테가 장난스럽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것을 사용한다는 건 저희의 왕이 된다는 뜻이라는 걸 잊지 마십시오."


그건 그녀들 나름의, 나를 왕으로 세우기 위한 모략일까 아니면 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배려일까.

대답은 정해져있다.

나는 시야가 흐려지는 것을 필사적으로 참으며 떨리는 입술로 말했다.


"──왕으로서 명령하지."

"옛!"

"죽지마라..."


내 단적인 말에 타우로마조네스의 젊은 리더가 히죽 웃고.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했다.

그 모습을 확실히 눈에 새기고, 나는 전이의 크리스탈을 사용했다.

푸른빛에 휩싸이며 마지막으로 본 광경.

그것은 포효를 지르며 붉은 투기의 옷을 두르고 적에게 돌격하는 타우로마조네스들의 모습이었다.




────전이한 곳은 시내의 중심부, 분수 광장이었다.

평소라면 많은 사람으로 북적거렸을, 시내의 평온을 상징했을 그곳인 지금 지옥으로 변해있었다.

여기저기 만연하는 마물들, 먹힌 사람들의 시체.

활활 타는 불길의 열기.

어딘가에서 마물들에게 덮쳐지는 여성의 비명.

농밀한 피의 향기...

시내는 이미 미물들의 손에 떨어져 버렸다.


"젠장...!"


나는 상황을 인식하자마자 엘리제의 여관으로 달렸다.

도중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가 들려와도 뿌리치고 그저 달렸다.

진심으로 미안하지만 내 안에서 우선순위는 확실히 정해져있다.

모든 걸 구할 순 없지만...

내가 죽더라도 구하고 싶은 건 두 소녀 뿐이다.

그래도 진행 방향에 있는 마물은 가능한 한 베면서 간다.

죽인 만큼의 마물이 죽이려던 사람들이나마 조금은 구해질테니까.

거주 구역에 들어서자 다른 지역에 비해 사망자의 수가 적은 걸 깨달았다.


'혹시... 거주 구역 사람들에게 피난 명령이 떨어진 건가?'


실낱같은 희망이 가슴 속에 스쳐지나간다.

만약 그렇다면 엘리제는 어딘가 안전한 곳에 피난했을 가능성이 높다.

드문드문 보이는 피해자들은 도망치는게 늦었거나 집 안이라면 안전하다고 방심하던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 내 낙관적인 생각은 나아감에 따라 배신당했다.

피해자의 숫자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확실히 피난이 행해진 숫자가 아니었다.

신경쓰이는 건 피해자보다 마물의 시체가 더 많은 점일까.

이 말은 누군가가 마물을 쓰러뜨리면서 집단을 지키며 데려갔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안에 엘리제도...?

그리고 곧바로 엘리제의 숙소에 도착한 내가 본 것은────.


"하아아앗!!"


────숙소를 등지고 싸우는 레리아나의 모습이었다.


"레리아나!!!!!"


내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레리아나의 표정이 확 밝아진다.

레리아나의 몸은 어디든 상처투성이, 그녀가 계속 이 숙소를... 엘리제를 지켜준 것이 분명했다.

진작 만신창이였던 레리아나의 몸에서 힘이 빠져 그녀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런 그녀에게 몰려오는 마물들을 일소해버리고 땅에 쓰러지려던 그녀를 직전에 받아낸다.


"하하... 약속대로 케인 대신 엘리제를 지켰다고."


피가 빠져 창백한 얼굴로 레리아나가 웃는다.

이렇게 될 때까지...

엘리제는 그녀에게 있어 분명 좋은 존재가 아니었을텐데...

엘리제를 지켜준 것 이상으로, 그렇게나 나를 생각해 준 것이 고마웠다.


"고마워..."


그렇게 말하며 아이템 박스에서 꺼낸 각종 고급 포션을 그녀에게 사용한다.

흘러나오는 피가 멎고 조금씩이지만 상처가 아물어 갔다.

큰 상처가 없었던 게 그나마 다행인걸까.


"케인!"


갑자기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와 그곳을 보니 2층 창문에서 얼굴을 내민 엘리제가 보였다.


"엘리제!"


상처 하나 없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안심한다.

아... 다행이다.

엘리제도 무사하다.

그야말로 구원받은 느낌...

무심코 표정이 풀리지만 그것도 다음 순간 얼어붙었다.

하늘을 선회하던 3m 정도의 거대한 매 마물이 사냥감을 발견하고 엘리제에게 덤벼들었기 때문이다.


"엘리제에에에!!!"


내 비명같은 목소리에 그녀가 위를 본다.

나는 곧바로 마검술로 매를 요격하기 위해 검을 겨누지만 휘두르지는 못했다.

이 각도는 위험하다.

휘두르면 엘리제까지 말려든다.

매가 엘리제에게 다가간다.

그 부드러운 몸을 쉽게 찢어버릴 커다란 발톱이 그녀에게 육박한다.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다.

하지만 시간은 얼지 않는다. 천천히 나아간다.

주위의 모든 것을 내버려둔 채, 잔혹할 정도로.


──────아아... 엘리제가, 죽어.


절망.

매가 그 크고 날카로운 발톱으로 엘리제에게 달려들고──그리고,


"──────아."


나는 엘리제가 천천히 한 지팡이를 꺼내는 것을 보았다.

낯익은 철제 완드.

그것을 매에게 향하고 엘리제가 한마디, 주창한다.


"──파이어볼."


지팡이의 끝에서 솟구치는 불꽃이 태어나 화구가 되어 매에게 돌진, 그 몸을 불태웠다.


".....................................허?"


시간의 흐름이 원래대로 돌아간다.

나는 멍하니 입을 벌리고 굳어졌다.

뭐야 지금...

왜 엘리제가 그렇게 높은 위력의 마법, 을......

..........................................설마.

설마설마설마설마설마설마설마설마설마설마설마설마설마설마설마설마────!!!

내가 바라보는 가운데 엘리제가 내게 미소짓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향하는 것 같은 자애로운 눈빛.

그건, 확실히 '내가 아는' 미소.


"────아아."


그제서야 겨우 이해했다.

그녀도... 컨티뉴(계승) 된 거구나.

이 세계에.

엘리제가 보여준 힘의 정체, 그것은 칭호 부스트다.

전 회차에 내가 알려준 칭호 획득 조건.

그것을 실행해 스테이터스를 올리고 있었을 것이다.

언제부터 그녀가 전의 기억을 각성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 이제와선 아무래도 좋다.

지금은 그저... 죽을때까지 나를 사랑해주던 그녀가 사랑스럽다.

나는 충동이 이끄는 대로 엘리제의 곁에 달려가려다가──그 강한 눈빛에 제지됐다.


"엘리제...?"

"케인... 나는, 우리는 괜찮으니까... 가."


대체, 뭘...?

당황하는 내게 엘리제가 성 쪽을 가리켰다.


"성으로. 아마 케인 말고는 싸울 수 없을테니까. 여기는 괜찮아... 나도 싸울 수 있어."

성... 봉인의 요점을 말하는 건가?

확실히 성의 봉인이 전부 해제되면 모든게 끝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엘리제 일행을 이곳에 두고 갈 수는...


"잘 모르겠지만..."


레리아나가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가야만하는 곳이 있으면 어서 가. 여기는 내가 붙어 있을게."

"레리아나..."


나는 잠시 망설이다 엘리제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알았어. 꼭 무사히 있어... 얘기하고 싶은 게 많아."

"응, 나도..."


서로 미소를 나누고 나는 아이템 박스에서 마검 소울이터와 박스걸의 사탕을 꺼내고 레리아나에게 아이템 박스를 건네주었다.


"팔찌는 맡겨둘게. 포션 필요하지?"

"나는 괜찮으니까 케인이 가지고 가는게..."

"괜찮아."


밀어붙이듯이 레리아나에게 넘겨준다.


"레리아나도 꼭 무사해야해."

"당연하지."


씨익 웃는 레리아나에게 믿음직함을 느끼며, 나는 마지막으로 두 명을 번갈아보고 성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면서 사탕을 입에 넣고 깨물어 부순다.

넘칠듯한 힘이 솟구치고 그것에 몸을 내맡겨 시내를 종횡무진 빠져나갔다.


"이야아앗호오오오오우!!!"


질풍처럼 마물들을 베어가며 환희의 함성을 지른다.

아아, 느껴진다.

지금 나는 바보같을 정도로 최고의 컨디션이다.

몸이 깃털이 된 것처럼 가볍다.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

슈퍼 알케인 모드다.

자중하자고 타일러도 얼굴이 헤실거리는게 멈추지 않는다.

왜냐면 엘리제가 살아 있었던 것이다.

엘리제의 안에 '엘리제'는 확실히 계승되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어!!!

세계가 물든다.

머리는 맑아지고, 육체의 피로가 초단위로 빠져나간다.

정신이 육체를 뛰어넘어 거리의 구석구석까지 파악된다.

벽이나 지붕을 도약하며 성으로 똑바로 나아가자 무수한 마물들에게 포위된 성문이 보였다.

모여드는 마물 안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두 마리의 거대한 짐승.

하나는 몸길이 100m에 가까운 거대한 칠흑의 뱀.

사람들을 그 거구로 조이며 놀고 있었는지, 요염함조차 느껴지는 그 비늘은 피로 젖은 살점이 달라붙어 있었다.

다른 하나는 몸길이 70m 정도의 소.

하늘을 찌르는 거대한 뿔과 강철을 떠올리게하는 검은 피부를 가지고 있다.

두 마리의 짐승은 성에 펼쳐진 마법 방벽을 뚫기 위해 몸통박치기를 반복하고 있다.

마법 방벽은 강대한 마물 전용으로 조정되어 있는지 십이지들의 침입은 막지만 그 외의 어중이떠중이 마물의 침입은 막을 수 없는 듯 했다.

예를들자면 튼튼한 그물철망이라고 할까.

동물의 침입은 막겠지만 작은 벌레는 통과시켜버린다.

미궁 성기사단은 그런 소형...이라기보단 보통 사이즈의 마물을 막으며 싸우는 듯 하고 안쪽에는 성으로 도망쳐 온 피난민들의 모습이 있었다.

계속 몸을 부딪치던 검은 뱀이 갑자기 고개를 든다.

주변을 둘러보더니 내쪽을 바라봤다.

뱀이 사냥감을 찾아냈다는 듯이 그 금색 눈동자를 가학적으로 일그러뜨린다.

벽 상대도 질렸으니 벌레로 조금 놀아볼까, 같은 느낌일까.

...인간을 얕잡아보고 있군.

나는 뱀 못지 않은 가학적인 미소를 띄우고 샴쉬르에 투기와 마력을 쏟아갔다.

도신에서 넘쳐나오는 마력이 점점 늘어나 수십m 크기의 거대한 도신을 형성.

금색으로 빛나는 칼날을 그 위력을 뽐내듯이 때때로 번개같은 섬광을 내뿜고 있었다.

──오라 블레이드의 상위 기술인 히어로 블레이드.

그 위력은 오라 블레이드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레벨 40을 넘어서야 겨우 진심을 내기 시작한 영웅 클래스의 스킬...

그것을 대표하는 기술 중 하나다.

금빛 검을 본 마사가 새삼 경계하듯이 목을 당신다.

하지만, 느리다.


"일도──양단!!"


땅을 강하게 차며 도약.

발 밑에 달표면 같은 크레이터를 만들며 뱀에게 일직선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크게 검을 치켜들고 거대한 칼날로 한 합.

달군 칼로 버터를 가르는 것처럼 매우 쉽게 그 목을 떨어뜨렸다.

대지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뱀의 머리가 땅으로 낙하.

뒤늦게 그 목을 뒤쫓듯이 거체가 천천히 넘어지기 시작했다.

뱀의 거체는 수많은 마물들을 밑에 깔아뭉개며 경로를 막아버렸다.

그것을 확인하는 것보다도 빠르게 소 쪽으로 향해 칼을 휘둘렀다.

첫 합으로 왼쪽 뒷다리를 자르고 두번째 합으로 왼쪽 앞다리를 절단한다.

균형을 잃고 무릎 꿇은 소의 머리를 세번째 합으로 떨어뜨렸다.

등장하자마자 순식간에 두 마리의 거대한 마물을 처리한 내게 적과 아군의 시간을 얼어붙는다.

그때 생긴 찰나의 공백 시간에 나는 성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경직된 사람들을 향해 꾸짖듯이 외친다.


"원정부대의 알케인이다! 사자로서 전이의 크리스탈을 사용해 귀환했다! 크리스 전하는 어디에 계신가!"


그 말로 정신을 차린 모험가 중에서 한 남자가 나타났다.

미궁 성기사단의 갑옷을 입은 장년의 남자.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호화로운 갑옷을 입고 있다.

아마도 간부급일 것이다.

그는 누구인지 묻거나 원정부대의 현상황 등 성가신 질문 하나 없이 내 물음에 답해주었다.


"크리스 전하께선 성 안에서 지휘를 맡고 계시지만 아까부터 연락이 안 된다! 확인하러 보낸 사람도 귀환하지 않으니 무언가 이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된다!"


어떠한 이상... 마인인가?

직접 머리를 노려 온 건가...

이 참상도, 지휘를 할 수 없게 되어 방위 부대의 제휴가 되지 않은 것이 적지않은 영향을 주고 있는 거겠지.


"알았다! 시급히 크리스 전하께 향하지!"


순식간에 사고를 마친 나는 그렇게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성안으로 달려나갔다.

성 안에 들어가자마자 내 눈에 보인 것은 굴러다니는 기사단원들의 시체.

...마인에 의한 것이겠지.

원통한 형상을 띄운 기사의 잔해들이지만 그것이 오히려 내게 크리스 전하의 거처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되어주고 있었다.

그것이 기사단원들의 '전하를 지켜주게.' 라는 메시지처럼도 보였다.

다리에 더욱 힘이 실린다.

그리고, 시체의 이정표를 따라 겨우 알현실에 도착한 내가 본 것은.


"큭......!"


알몸이나 다름 없는 것처럼 갑옷이 벗겨져 그 모양 좋은 가슴을 손으로 가린 크리스 전하와,


"후하하하하! 이건 걸작이군! 설마 네놈이 여자였을 줄이야!"


그런 그녀에게 칼을 들이대고 폭소하는 붉은 머리의 남자였다.


"네, 녀석은...!"


잊을 수 없는 그 남자의 풍모에 내 전신의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왜 저 녀석이.

분명 매일 아침 봉인을 확인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이 혼란을 틈타 마인 알테나가 봉인을 풀은 것일까?

여러 의문이 스쳐지나가지만 바로 아무래도 상관없어졌다.

입꼬리가 멋대로 올라간다.

속으로, 나 엄청 사악하게 웃고있겠지, 라고 생각하며 마검 소울이터를 뽑았다.

아 오늘은 정말 행복한 날이구나.

사랑하는 엘리제와 재회할 수 있었고, 레리아나는 무사하고, 아무리 죽여도 부족한 증오스러운 원수를 다시 죽일 수 있으니까.

──그치?


"오리오오오오오오오오올!!!!"